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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심매도(高士尋梅圖) 이른 봄에 학처럼 여윈 노선비가 지팡이 짚고 매화가 피었는가해서 설산을 헤매는 그림이 그처럼 인상 깊었을까. 겨울이 얼마나 삭막했으면 천지는 아직 잔설(殘雪)의 계절인데 노새 타고 매화를 찾아 나섰을까? 올해 심춘(尋春) 여행은 잠실서 서도생활하는 이정수 장군과 떠났다. 3월3일, 승용차로 대전 가서 작년에 개통한 고속도로를 달려 진주 도착하니, 서울은 겨울인데 여기는 벌써 훈풍이 얼굴을 간질인다. 고성반도 들어서니 가로변 붉은 동백꽃 너머 보리싹 푸른 들 끝 바다 배경으로 봄나물 캐는 아낙의 모습이 한 폭 그림이다. 여기가 한려수도다. 로변엔 보라빛 야생화가 여기저기 피어있는데, 꿀풀 아종(亞種)인듯 야생화가 종처럼 생긴 꽃을 줄줄이 달았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가 이런 시를 남겼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단원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서울 공해 속에 천금을 쌓아 무엇하리. 노안(老眼)이 와서 돋보기로 신문 보는 나이 되어도 탈속(脫俗)을 모르면 이야기는 끝났다. 봄빛 느끼려고 차 몰고 여기 천리길 온 것을 어떻게 설명하리. 거제대교 건너 이정표 보니, 남쪽 길이 청마(靑馬) 유치환 생가와 해금강 거쳐 지세포 간다. 청마는 이군 부인의 경주여고 교장선생님이다. 사십여년 지나 우리는 교과서에 실렸던 청마의 ‘깃발'이란 시를 기억에서 재구성하는데, 넷의 두뇌를 동원해야 함을 알았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생가 들어가는 도로변 동백은 기름 바른 듯 잎이 윤끼로 반질거리고, 꽃은 여인의 입술처럼 붉다. 복원한 청마 생가는 기역자 구성으로, 본채는 들녘을 내려다 보고, 사랑채 손바닥만한 툇마루는 그 밑에 달랑 놓인 요강 하나로 육십년 전 풍물 연출하고 있다. 채마밭엔 마늘과 유채 심어놓았고, 돌담 밑 모란 몇 그루는 봄볕에 졸고 있다. 집 주변은 선풍수 눈에 문장(文章)이 나온다는 직립(直立) 문필봉(文筆峰)은 보이지 않으나, 대시인을 길러낸 곳답게 일월(日月) 화창히 빛나고, 삼태기 모양 둘러싼 산세 연꽃처럼 부드럽다. 집 근처의 정자나무도 일품이다. 환담하면서 차를 달리니 바다에 하얀 스티로폴 덮은 굴 양식장 옆에 한글 갓 배운듯한 서툰 글씨로 ‘굴 구이’라고 써붙인 식당이 있다. 낮선 곳에선 음식점 찾을 때 주차장에 많은 차가 파킹한 곳으로 가면 된다. 점심 시간이라 홀에 들어가니, 몸매 관리라곤 평생 해본적 없는, 팔뚝이 우리 허벅지만한 촌부(村婦)들이 남자들과 시끌벅적 많다. 우리가 만 천원 하는 굴구이 하나와 2천원 하는 굴 죽 네 개 시키니, 아줌마가 손바닥만한 굴 가득 담은 스테인레스 철판을 숯불 화덕에 올린 후 뚜껑을 덮어놓고 간다. 마늘과 채소가 든 쟁반과 면장갑 네 개, 그리고 나무 자루 달린 칼 네 개 갖다주고, ‘소주는 필요 없어예?’ 물어본다. ‘아줌마 이제 먹어도 됩니까?’ 물어보니 와보지는 않고, ‘좀 더 계시이소. 익어야 굴 껍데기가 벌어짐니더. 빨리 열모 껍데기가 잘 안벌어집니더’ 대답만 한다. 서비스는 이랬으나 맛은 장난이 아니었다. 면장갑 끼고 칼로 벌려 먹어보니, 짭조롬한 바다냄새와 탱글탱글 씹히는 촉감이 완전 엑셀런트. 비싼 낙산사 전복죽을 무색케 한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 겉조리도 고소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퍼담아 주는게 경상도식인 갑다. 굴 하나로만 배 채워보긴 난생 처음이다’. ‘서비스는 드세요가 아니라 쳐묵어라다. 일식집에서 이 정도 먹으려면 10만원은 나온다.’ 우리는 희희낙락 소감을 말하며 맛을 음미하고, 먹다 남은 굴은 비닐봉지에 싸가지고 나왔다. 이런 횡재 만나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이군은 장군답게 독도법(讀圖法)에 밝아 지도 보며 거리와 시간 대충 예측하니 운전하는 내가 편하다. 저구에서 홍포로 가니, 바다는 푸른 비단천을 펼친 것 같고, 깍아지른 절벽 아래 하얀 포말은 시원하다. 동백과 노송 너머로 멀리 욕지도와 매물도가 보이는데, 눈 아래 크고 작은 병대도 섬들이 수반 위의 수석같다. ‘카메라 어딨노?’ 맘에 든단 표시다. ‘나폴리나 산타루치아와 비교해 어떠냐?’. ‘차로 미국 40여개 주 다녀봤고, 나폴리, 모나코, 지중해 절경(絶景) 봤지만, 여긴 그 이상이다’. 홍포는 서너 가구가 사는 곳이다. 여차는 노래방과 콘도식 대형 민박집 두 개 있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미단공주의 정인(情人)이 처형된 곳이 여차다. ‘여보 단지에 묻어둔 돈 있지? 여기 호텔 하나 세우자’. 경치 맘에 든다는 표현을 이군은 이렇게 한다. ‘여보 나도 여기 와서 이장군하고 바둑이나 두며 살고 싶다.’ 여행은 이렇게 죽이 맞아야 흥이 난다. 장승포 가니 부산서 7척 거한 강종대가 와서 우릴 기다린다. 거제도라 즉각 날라온 것이다. 거기서 섬에서 섬으로 가는 배를 탔으니, 고려호는 인원 삼십명을 양쪽 뱃전 때리는 파고(波高) 3미터 물결과 뒤흔드는 바람 뚫고 우릴 지심도(只心島)에 내려주었다. 하얀 삽살개가 뱃머리에 나와 반기더니, 사람들 안내라도 하듯 그늘진 숲 터널로 꼬리 흔들며 앞서간다. 땅에 지천으로 떨어진 동백꽃 보다가 김선장 집에 짐 맡기었다. 어둡기 전에 서둘러 섬 구경 나서니, 여긴 가을에 밀감꽃 하얗게 피어 겨우내 노란 밀감 향기롭게 익고, 11월 부터 4월까지 동백꽃 핀다. ‘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바다를? 오랜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괴테는 시칠리아섬 이렇게 읊었다. 나는 '외도(外島)는 사람이 가꾼 낙원이요, 지심도는 자연이 가꾼 천혜의 파라다이스'라 읊는다.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 읊어보자. 이보소 이웃들아 산수(山水) 구경 가자스랴. 답청(踏靑)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는 내일 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에 조수(釣水) 하세. 갓 괴어 익은 술 갈건(葛巾)으로 받아놓고, 꽃나무 가지 꺽어 수 놓고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 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봉두(峰頭)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있네. 연하(煙霞) 일휘(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폈는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 사. 공명(功名)도 날 괴우고 부귀도 날 괴우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꼬? 지심도 면적은 약 10만 평. 14 가구가 사는데, 하늘에서 내려보면 마음 심(心)자 같다고 한다. 희귀종 거제 풍란을 비롯, 비파나무 후박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많다. 섬 북쪽 원시림에는 어른 둘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거대한 동백나무도 있다. 민박집 뒤에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가 있는데, 매화나무 수형을 볼 줄 아는 이군이 상춘(賞春) 친구로 제격이다. 밀감 밭 사이로 난 길 따라 섬 서쪽 벼랑으로 가니, 벼랑 위에 아열대나무와 잔디가 자라는 평지가 있다. 거긴 여름에 산나리꽃 원추리꽃 만발하고, 풍란 핀 절벽 밑엔 그렇게 바람이 부는 데도 감성돔 꾼 몇이 바위에 붙어있다. 텐트 쳐놓고 원추리꽃과 풍난 감상하고 낚시꾼 자리돔 회 얻어먹으며 딱 열흘만 거기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 동쪽으로 가니 바람이 심해서, 일본군이 선박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나바론 요새같은 포 진지 옆 밭에 새파란 방풍(防風)이 탐스럽다. 몇뿌리 캐어왔는데, 여기 방풍은 향이 좋아 댓처인 부산의 횟집에 납품한다고 한다. 저녁 먹고 남자들은 풍(風) 예방하고 약독(藥毒)을 푸는 방풍 안주로 몇 잔 마셨고, 여인들은 군불 뜨껀뜨껀한 윗채 황토방에서 로독을 풀었다. 아침엔 바람 개고 햇볕 화창하다. 지심도에 동백 후박 비파 대나무가 많다. 맛이 새콤달콤한 비파는 신선의 과일이요, 죽실(竹實)은 봉황이 먹는 열매다. 동백과 후박 열매는 팔색조와 흑비둘기가 좋아하는 열매다. 그런 새소리 청아하고 속기(俗氣) 벗어나 신선의 음악같다. 몇년 전 모 방송사에서 ‘팔색조’란 드라마를 촬영했고, 조류학자가 10여 차례 다녀간 섬이다. 밤새 이야기 하고 새벽에 종대는 여차 경치가 좋더라고 하자, 구경하겠다고 첫 배로 나갔다. 부산서 일부러 와서 하루밤 같이 지낸 후 떠났다. 그가 굴원(屈原)이나 한고조(漢高祖) 아닌들 어떠랴? 필부(匹夫)의 사귐도 이만하면 된 것이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 강사장은 중학교 동기, 이장군은 고등 동기이다. 피차 이순(耳順)을 앞두었으니, 우리 인생 남가일몽(南柯一夢)도 끝이 멀지 않았다. 종대와 헤어져 산책길 나가니, 땅을 점점히 수놓은 건 동백꽃 낙화(洛花)다. 뚜꺼운 표토는 카페트 깐듯 푹신푹신한 촉감 준다. 맹종죽 대밭 길 끝엔 기와가 아직도 깔끔한 일제 때 지은 목조건물에 세 가구가 산다. 맹종죽은 죽순 굵기가 사람 종아리만 하다. 맹종죽 죽순 무침에 여기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회 조화는 기막힐 것이다. 대밭 밑에 차나무 심으면 죽로차(竹露茶) 만들 수 있다. 대밭 속 옹달샘 수질이 최상일 것이다. 당장 주민등록 옮겨 다산(茶山)처럼 다도(茶道) 즐기며 살고 싶었다. 사슴도 몇마리 키우고 싶었다. 지심도 최고 비경(秘境)은 북동쪽 해안이다. 거긴 하늘을 가리는 낙락장송(落落長松) 숲에 저절로 떨어진 동백나무가 씨앗이 움이나 몇가닥 희미한 빛에 의존해 싹을 틔우고 있다. 절벽 위 좁은 바위길은 푸른 파도 훔뻑 뒤집어썼다가 물이 빠지면 수많은 폭포 연출한다. 웅장한 파도소리는 가슴을 뒤흔든다. 인간의 어떤 천재가 이처럼 기막힌 심포니와 조경(造景)을 만들 수 있는가 싶었다. 말못하는 바위와 파도 둘이서 그 완벽한 예술을 만들었구나 싶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지나갈뻔 하다가 밭에 들어가 인가(人家) 뒤 수줍은 미인같은 매화를 만났다. 매실 딸려고 눈 높이로 낮게 키운 눈 높이 매화꽃이 그리 청초하다. 꽃바침이 녹색인 청매(靑梅)는 소녀같고, 홍색인 홍매(紅梅)는 요염한 여인같다. 매향(梅香)이 하도 진동하길래 꽃가지를 하나씩 오십대 두 선녀 옷깃에 꽂아주니, 봄바람이 두 선녀 뒤로 매화 향기를 날려, 우리는 흥겨운 마음으로 그 향기를 따라 걸었다. 뱃머리 가보니 거기도 천국이다. 댓가지로 귀퉁이를 묶은 모기장같은 것을 물에 담갔다가 올리면, 학꽁치 듬뿍이다. 낚는 게 아니라 퍼담아 올리는 식이다. 인심도 좋다. 다투어 초장과 소주 내놓고 낮 선 객한테도 권한다. 네 것 내 것 없는 술판 벌어져 나와 이군도 학꽁치 맛보았다. 태초의 에덴동산 같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지심도에다 필리핀의 수상(水上) 호텔 혹은 초옥(草屋)이나 방갈로라도 세우면 좋겠지. 관광객에게 죽순, 녹차, 매실, 비파, 방풍, 밀감 수확하는 일 체험시키면 그건 체험관광일 거다. 대나무 숯 훈제 생선도 별미이다. 진주(眞珠) 양식도 좋다. 현장에서 진주 까면 진주가 크고 작은 자기 복, 관광객들 좋아할 것이다. 그런 공상을 할때 강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이 김교수,내가 여차 가다가 장끼 한마리 잡았다.’ ‘장끼를?’ ‘응!’ ‘그 놈이 눈이 봉사더냐?’ ‘자동차 헷트라이트에 눈이 부셔 꼼짝 못하는 걸 형님이 잡아서 부두에 맡겨놓았으니, 동생아 선물로 가져가거라.’ 장승포 부두 나오니 정말 멸치박스 속에 장끼가 들어있다. 검붉은 털빛이 황홀하도록 곱고, 움직이는 몸짓 민첩하여, ‘어쩌면 이렇게 잘생긴 꿩을 잡았을까요?’ 박스에 숨쉬라고 뚫어놓은 구멍 안을 들여다보며 두 여인이 아주 감격을 한다. 여행 끝에 남해고속도로 올라 하동에 닿으니, 섬진강 강물은 푸른 대숲 비쳐 더 맑다. 곳곳이 매화꽃이고, 배꽃이다. 강변엔 한가히 물새 나르고 있다. 화개장터에서 산채밥 먹고, 평사리 박경리씨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 둘러보고, 바다 구경 싫컿 한 김에 산 보자고 화엄사 쪽 노고단 넘어갔다. 지리산은 웅장한 노을에 물들고 있었다. ‘교수님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읍니까?’ 친구 부인이 묻길래, ‘말씀 하시지요’ 했더니, ‘아까 그 꿩 혹시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여기다 방생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아름다운 제안을 어찌 반대합니까. 좋습니다.' 그래 우리는 산세 안온한 곳을 골라서 차 세우고 꿩을 날려보냈다. 그때부터 기분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지리산 마고할매님이 거제 용왕님이 보내신 꿩을 보고 퍽 좋아하실꺼야.’ ‘그 장끼 너무 잘 생겨서 지리산 과부 까투리들이 환장할꺼다.’ 이런 농담을 하면서 밤 11시 서울 닿았지만, 그날 네사람은 구름 위 학이라도 타고 온듯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2002년 2월) |
첫댓글 잘보았습니다.이렇게 글씨 잘 쓰는 분이 옆에 있다는것에 자부심을 느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