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7]고전과 현대 산문집, 책선물 2題
받아서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 ‘冊’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본인이 지은 책, 이른바 著書를 보내 오는 것은 기쁨이 두 배. 게다가 저자가 ‘여성 동지’라면 기쁨은 더 크다. 지난 주 전전전(D일보) 직장 친구가 용인 아내집 경비실에 자신이 지은 『아버지를 찾아서』 『머내여지도』 『머내만세운동』 등 세 권을 놓고 갔기에 興奮까지 됐다. 그런데 전직장(한국고전번역원)의 여성 고전번역가가 택배로 자신의 책을 보내왔다. 퇴직한 지 6년이 넘었는데 ‘나’라는 존재를 잊지 않은 것만 해도 感激할 만하지 않은가. 책의 주제(선인들의 문집 중의 警句나 箴言 구절을 의역하고 해설과 함께 저자의 省察을 기술)가 나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그 마음씀씀이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또한, 엊그제 인사동의 친구 工房에서 만난 여성 수필가가 ‘알게 돼 반갑다’며 즉석에서 자신의 산문집에 서명을 하여 건넸다.
첫 번째 친구의 책 『아버지를 찾아서』는 며칠 전 너무 재밌어 꼬박 하루를 소비해 通讀했다. 북리뷰라고 할 것은 없지만, 그 소회를 한밤중에 써보기도 했고, 다른 책은 읽고 있는 중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23]아름다운 사람(47)-아버지를 살려내다 - Daum 카페 여성 고전번역가의 저서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하승현 지음, 생각지도 2025년 2월 펴냄, 236쪽, 18000원)는 漢字가 아니고 漢文투성이어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나는 것같아, 어느 세월에 리뷰하게 될지 모르겠다. ‘자신을 성찰하라’는 뜻인 듯한 책제목도 골치 아픈데, 부제 ‘기울어진 삶의 중심축을 다시 세우는 동양 고전의 말들’은 더 어렵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양 고전’은 율곡의 <격몽요결>을 비롯하여 이규보, 김시습, 정조임금, 송익필, 장유, 유희춘, 성현, 홍대용, 허목, 이덕무, 유득공, 정약용 등 기라성같은 先賢들의 文集 50여권에서 저자가 임의대로 가려뽑은 주옥같은 글들을 빌려 자신의 思考를 밝히고 있다. “삶의 균형추를 잃은 사람들은 고전을 읽으라”는 그의 持論은 명쾌하다. 그 까닭은, 時代는 달라도 한 人間이 살아가면서 거치는 정신적 성숙 과정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선인들의 通察이 우리에게 羅針盤이 돼주고, 삶이라는 출렁다리 위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훌륭한 藥房文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무슨 뜻이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줄은 충분히 알겠다. 저자의 당부대로 내 삶의 균형추가 흔들릴 때마다 한 편 한 편 새겨 읽을 생각이다.
저자는 일찍이 성균관 한림원과 민족문화추진회(약칭 民推.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에서 漢文을 제대로 배우고, 古典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그가 엮은 <사필史筆>과 <후설喉舌>은 진실로 탁월한 저서이다. ‘사필’은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史官들이 임금과 명신 그리고 여러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論評을 모은 책이고, ‘후설’은 ‘승정원일기’를 번역하면서 알게 된,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우리 역사의 속살과 민낯들을 현대의 우리말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역사로부터 배우라”는 것. 이 두 권만큼은 나의 ‘명예’를 걸고 진짜 강추!
한편, 어제 다 읽어버린 권미강 작가의 산문집 『나는 진실합니까』(도서출판 상상인 2024년 11월 펴냄, 299쪽, 16000원)는 대부분 대구매일신문과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칼럼 70여편을 모은 책이다. 200자 원고지 8-10장 분량의 ‘칼럼’이라는 형식은 대부분 그때 그때 정치 사회 문화 부문의 ‘사실과 진실’을 다투는 일종의 時論이다. 寸鐵殺人같은 결론이 있기도 하고, 폐부를 찌르는 아픈 助言, 또는 언론인 또는 작가라는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진단하는 銳利한 시각이 있게 마련이다. 기자를 잠깐 했다고 들었는데, 역시 모두 짱짱한 글들의 행진이었다. <괴벨스와 리플리 증후군> <캄비세스왕의 재판> <역사를 말할 권리> <저항과 변절의 도구> 등 칼럼 제목만 봐도 感이 올 것이다. 1,2,3부가 총체적으로 ‘정치적인 칼럼’이라면 4,5부는 생활칼럼들이 주류이나, 6부 ‘416 순례길을 걸으며’ 13편은 前代未聞의 세월호 참사 관련한 글들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많이 아팠다. 『416단원고약전』이라는 책을 펀딩으로 펴낸 기획자답게 300명 가까이 희생된 학생과 선생님들을 呼名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역시 記錄은 歲月을 기억하는 글이라는 말이 맞다. 어디 그 참사가 ‘약전略傳’ 한 권으로 위로가 될까. 졸지에 생을 마감한 우리의 아들 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뜻있는 마음 따뜻한 이웃들은 정혜신 박사를 비롯해 무릇 기하이던가.
아무튼, 작가는 책제목 <나는 진실합니까>라고 자신에게 반문을 하고 대답하는 대신, 정작 책에서 우리에게 <당신은 진실하세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眞實’의 사전적 의미야 ‘거짓없이 참되고 바르다’일 터이나, 진실이라는 말은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은가. 그런데, 그 진실이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汚染이 돼도 너무 오염이 되어 ‘깨끗함’과 갈수록 멀어져 가고 있다. 나쁜 일이다. 작가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그 점을 한탄하고 있다. 진실을 아는 게 어렵고 고통스러운가. 그래서 차라리 진실을 외면하고 망각 속에서 안온하게 살고 싶은가. 아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진실에 직면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을. 그러려면 분명한 소신과 명확한 역사적 관점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비로소 ‘진실’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한 고전번역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생에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자고 하고, 한 수필가(시인)은 진실된 삶을 살자고 이 신새벽, 나를 부추기고 있다. 모두 착한, 善한 이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