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은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이 행성의 정의를 재정립하면서, 자신의 공전 궤도 내에서 지배적인 천체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행성 지위를 잃고 '왜소행성'으로 재분류되었다. 크기가 달의 3분의 2 정도로 작고, 해왕성 궤도를 침범하는 불규칙한 타원 궤도를 도는 등 다른 행성들과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명왕성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134340이라는 번호가 붙은 왜소행성이다.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있었는데/ 은하계 맨 뒷자리에 있다가/ 결국 혼자가 된 명왕성”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정말 많이 외웠던 태양계의 9개 행성. 지금은 명왕성이 제외되었으니 8개의 행성이라고 해야 맞다. 그런데 나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까지 다 읇조리게 된다. 나 하나 정도는 과학계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9개의 태양계 행성으로 기억해줘도 될 것 같다.
명왕성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어처구니 없겠다. 인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태양계에 넣었다가 또 어느날 갑자기 자격을 박탈당한 채 134340이라는 숫자로 박제되어 버린 명왕성의 기분은 어떨까? 왠지 누군가의 장난질에 놀아난 기분이 아닐까?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무릎에 든 멍을 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요즘 나도 언제 어디서 부딪혀 들었는지 모르는 멍을 자주 본다. 처음엔 왜 멍이 들었는지 고민했었는데 요즘은 무감각해져서 또 어디서 부딪혔나보지 하고 무심하게 된다. 처음엔 아팠지만 지금은 무뎌져 버린 그 상처들이, 어쩌면 우주 저 멀리 홀로 남겨진 명왕성의 처지와 닮아보기기도 한다.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호칭을 넘어 존재의 증명과도 같다. 인간의 편의와 기준에 의해 ‘행성’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에게 시인은 짧은 제목 ‘명’을 통해 그 상실감을 극대화한 것 같다. 한자로 명(名)은 이름을 뜻한다. 여기서 제목은 명왕성을 줄여 말한 것에서 따온 것이긴 하겠지만 이름을 잃은 명왕성과 ‘명’에서 모음 하나를 덜어내면 ‘멍’이 되니 참 절묘한 연결이다.
첫댓글 ‘행성’의 지위를 박탈한 성. 기다리며 읽는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