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을 보니 요즘 유행중인 로또복권의 당첨금이 사상최고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지난주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이월되어 앞으로 당첨금은 100억원 정도나 된단다. 얼마전부터 '인생역전' 운운 해가며 미국 등에서 시행되던 로또복권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신문지상에서 40억원, 60억원 당첨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나도 벌써 두 차례에 걸쳐 거금 4천원을 들여 행운을 찾는 대열 속에 뛰어들어봤다. 물론 결과는 '꽝'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역전이라는 데 에이 한번 더 100억원에 붙어봐?
2. 또다른 오늘
오늘은 설 다음날이자 내 생일.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에 난리가 난다. 드디어 우리나라에 사상초유의 100억원 당첨자가 나왔단다. 어? 어? 어라? 그런데 저 번호는? 아니 이런이런? '3, 7, 11, xx, xx, xx' 내가 지난주에 2천원을 투자해서 사 둔 로또복권 번호하고 똑 같네? 이럴 수가? 지, 진짜다. 지갑에서 꺼내 다시금 번호를 확인해본다. 우리 식구들 생일로 조합해 둔 6개의 숫자가 그야말로 TV 화면 속의 당첨숫자와 똑 같다. 야 세상에 이럴 수가? 그동안 몇 십 차례 아니지 수년간 구입한 주택복권에서 그 흔한 만원짜리 한 번 당첨된 일도 없는 내게 이런 큰 행운이 굴러오다니... 저 사상최대의 행운의 주인공이 바로 나란 말이지. 와! 야호다 야-호!
자, 이제 저 많은 돈을 어떻게 처리하지? 우선 세금을 떼고 나면 70억원쯤 되겠지? 그럼 우선 내가 얼마를 가질까? 그동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복권 1등 당첨자에겐 각종 공식적인 불우이웃단체 등에서 손을 벌린다지? 어디 그뿐이겠어? 이를 표적으로 삼아 범죄까지 생각할 불한당같은 친구들도 나타나겠지? 이거 참 고민되네.
가만, 내가 쓸 최저한의 금액만 남겨두고 몽땅 KBS나 MBC같은 방송국에 불우이웃성금으로 내버려? 아니지? 가족들이 이를 알면 얼마나 서운해할까? 아냐 서운한 정도로 끝나지 않을 꺼야. '저 혼자 잘난 미친 놈'하며 의절하게 될 지도 모르지. 그럼 안되지. 그럼 어디까지 분배범위에 넣지? 우선 엄마. 그리고 누나, 형, 동생들. 또 처남, 처형들. 참 부모님 이상으로 내게 잘 해주신 고모를 빼면 안되겠지? 에이 그래 여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기부하지 뭐.
그럼 우선 내 몫부터 정하고... 음 한 10억이면, 그러면 집도 좀 넓히고 얘들 학자금도 충분하고 아내에게 멋진 기천만원짜리 코트도 하나 사주고, 남은 평생도 돈 걱정없이 살 수 있겠지. 그럼 가족들은? 엄마와 고모한테는 5억씩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어디보자 9명이니까 동일하게 2억씩 나눠 줘? 그럼 모두 38억원을 갖고 32억원은 기부한다?
아냐아냐 안될 일이야. 1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갖게되면 미지의 강도같은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이들로부터 우리식구가 안전하지 못할 거야. 아니지 그전에 단란하게 잘 살던 우리 가족들이 많은 것을 잃게 될 지도 몰라. 절약, 우애,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간의 사랑에 틈이 생길 거야. 그건 안되지. 어쨌든 10억은 너무 많아 그럼 5억? 아니야 그것도 많은 것 같아. 재미있게 잘 살던 우리 가정이 돈 때문에 흔들릴 필요가 없을 거야. 우리집 마련에 2억원 정도가 무난할 거야. 이것도 어디야? 1년에 천만원 모으려고 엄청 아끼며 살아왔는데... 집 한 채 빚 없이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할 거야. 나머진 내가 버는 생활비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잖아. 그래 어쨌든 횡재는 했으니 집 한 채 정도는 욕심내더라도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다른 모든 신들도 용서해주시겠지. 그래 2억이면 필요충분의 최대치다. 좋다 우리 네 식구는 2억원으로 만족하자. 끝!
그럼 나머지 식구들한테도 서운하지 않게 분배하자. 우선 엄마랑 고모한테도 각각 2억씩 드리고 나머지 형제들은 1억씩. 그럼 모두 얼마냐? 6억에다가 9억 하면 모두 15억원. 그래 그 정도면 됐어. 그럼 남은 55억원은 KBS에 불우이웃성금으로 기부해 버리자. 설마 다른 가족들이 좀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릴 비난까지야 하겠어? 음, 시집 안 간 바로 아래 여동생이 좀 걸리네. 오빠가 돼 갖고 가게하나 차릴 돈 좀 해주지 하면서 말야... 그래도 아니야. 암 아니고말고.
3. 그리고 다시 오늘
아차차 출근시간 다 되가네. 신문에 쓸데없는 걸 크게 떠벌리고. 이게 기사야 광고야? 자칫 복권공화국 되는 거 아냐?
아무래도 요즘 장에 이상이 있나 봐. 변비 증세인가? 아내가 비데를 쓰라던데 거참 그런 건 여자들이나 쓰는 것 같던데...
그건 그렇고 내 복에 무슨... 날씨도 꾸리한데 빨리 나서자.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가려면 일찍 나서야지.
거참 복권이라. 진짜 크게 당첨되면 정말 골치 깨나 아프겠다. 거참! 당첨돼도 골치 아프고, 안 되면 서운하고, 그렇다고 이런 기대라도 없으면 언제나 빚 없이 내 집에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으려나? 그냥 더도 말고 한 삼천만원짜리만 당첨되면 더 이상 복권에 기대 안하고 평범하게 잘 살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