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이와 할머니 | 김지원 글, 박광명 그림
190㎜×247㎜ | 무선 | 64쪽 | 2024년 6월 10일 | 12,000원 | ISBN 979-11-93138-44-1 73810
내 몸이 기억하는 곳, 내 마음이 그리는 곳은 어디일까?
산골 소년 찬이의 짠내 가득 서울 상경기!
아롱아롱 들꽃과 나무 열매 피어나는
정다운 품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이야기
산골의 작은 집에 아침이 오면
이른 새벽부터 장대비가 쏟아져요. 초록빛 여름과 함께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어요. 이맘때 산골의 아침은 적막한 듯 분주해요. 보금자리를 찾아 바삐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고, 구수하게 익어 가는 옥수수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요. 할머니가 매일 부지런히 텃밭에서 정성스레 키운 옥수수와 감자, 싱싱한 채소를 한 바구니 가득 채워 오셨지요. 찬이는 툇마루에 앉아 비에 젖은 산자락을 가만 바라보아요.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갓 삶아 김이 폴폴 나는 옥수수도 나누어 먹어요. 소박하지만 참 행복해지는 맛… 찬이가 정말 좋아하는 맛이에요.
찬이와 할머니는 산골 깊은 곳에서 둘이 살고 있어요. 찬이는 할머니만큼이나 이곳이 참 좋아요. 집 밖을 나서면 자연이 찬이의 친구가 되어 주거든요. 숲길을 걸으며 도랑에 사는 가재나 송사리와 물놀이를 하고 여러 풀잎과 버섯들, 메뚜기와 인사를 나누며 뒷산을 누벼요. 지천에 널린 열매들을 따 먹으며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하루가 훌쩍 저물곤 하지요.
비가 그친 후 숲길을 걷다 보면 나뭇잎 위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며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새소리,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더없이 정겹고 사랑스럽다._본문 13쪽
할머니, 제 소원은요
그렇지만 문득… 엄마 아빠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봐요. 한때는 찬이에게도 엄마와 아빠, 할머니까지 넷이 함께 오순도순 지내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며 자주 다투던 엄마와 아빠는, 각자 돈벌이를 한다며 먼 서울로 떠나 버렸어요. 할머니 앞에선 일부러 씩씩한 척해 왔지만, 사실 찬이는 엄마 아빠가 아주 그립고 보고 싶어요. 마음 가장 안쪽에 품은 찬이의 소원은 예전처럼 네 식구가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있는 서울은 어떤 곳일까요? 찬이는 가끔 서울로 가는 상상을 해 보곤 했어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요. 단짝 친구 영수는 방학 동안 서울에 간대요. 찬이에게는 다른 세계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바로 그 서울에요.
찬이는 한 번쯤 꼭 가 보고 싶었다. 서울이라는 곳을._본문 34쪽
산골의 바람과 도시의 불빛 사이에서
산골에서 자란 찬이에게 서울이란 도시는 미지의 별세계처럼 느껴집니다. 뒷산에 난 들꽃과 열매들의 이름은 줄줄 외우는 찬이이지만, 서울에 관해선 모르는 것투성이거든요. 서울에선 무얼 하며 놀고 어떤 것을 배우는지 찬이는 궁금해요. 그러던 어느 날, 작은 풀벌레 소리도 크게 울릴 만큼 고요하던 찬이의 일상에도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옵니다. 서울에 사는 이모로부터 찬이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죠. 먼저 서울 생활을 접하고 돌아와 온종일 자랑을 하던 영수를 보며 못내 부러워했지만, 서울로 떠날 날이 가까워 올수록 찬이의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해요. 찬이가 떠나고 산골에 홀로 남을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울컥 차오르고 반려 강아지인 흰둥이도 눈에 밟혔지요. 그렇지만 할머니와 이모의 뜻은 하나뿐이었어요. 서울에 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그리 말하며 찬이를 밀어내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구슬피 우는 소쩍새 같아요. 헤어지는 날 찬이와 할머니는 내내 눈물이 났지요.
‘할머니, 나는 꼭 서울에 가야만 하는 걸까요?’
할머니가 챙겨 주신 묵직한 꾸러미와 동그마니 찬이를 실은 이모의 차가 천천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할머니도, 흰둥이도, 고요한 산자락도 시야에서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_본문 42쪽
잃고 싶지 않은 품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찬이와 할머니』는 산골 소년 찬이가 정든 집과 할머니의 품을 떠나 서울에 살게 되면서 마주하는 변화를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모네 식구를 따라 시작된 서울 생활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처럼 대단해 보였지만, 왜인지 찬이는 조금씩 쓸쓸해집니다. 너른 산과 숲길을 제 몸처럼 속속들이 알고 자유로이 노닐던 찬이였지만, 네모난 아파트 단지는 집으로 가는 길조차 잃을 만치 어려운 미로 같습니다. 시골에선 못 먹던 음식들을 잔뜩 먹어도 자꾸만 할머니가 해 주시던 밥 생각만 나고, 부족한 것 하나 없는데 무언가 빠진 듯한 이 기분은 무얼까요. 찬이의 마음속에서 할머니와 흰둥이, 푸르던 산골 집이 자꾸만 아른거리는 이유는 왜일까요.
도시에 속해 편리한 의식주와 생활 환경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도시의 물질문명을 내려놓고 자연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힘을 얻는 이들도 있을 테지요. 이에 작가는 자연과 도시의 삶이 가져다주는 여러 감정을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찬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새로이 돌아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힘차게 날아오르는 동고비가 깃털 속에 감춘 오묘한 빛깔을. 산수국의 꽃망울이 하얀 팝콘처럼 피어나는 순간을. 몸에 독이 되는 버섯과 약이 되는 열매를 알아보는 지혜를. 정성과 노력을 들인 밥 한 그릇의 무게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지닌 고유한 목소리와 이름을요. 이토록 생생한 자연의 냄새를 안고서, 이 이야기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자연을 잊어가던 아이들의 기억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 본 들꽃의 빛깔과 새들의 노랫소리를 내일도 느낄 수 있도록, 더 넓은 세계를 향한 가능성을 잃지 않고 상상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연의 품속으로 데려다줍니다.
이렇게 풍족한데 정작 그 맛들은 하나같이 뭔가 부족하다니···. 찬이는 왠지 이상했다._본문 48쪽
마음이 그리는 안식처는
처음 그 자리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본능으로 그리게 되는 품, 잃고 싶지 않은, 잃어서는 안 되는 품. 찬이의 마음속 안식처는 늘 할머니의 품이었습니다. 찬이가 내내 그리던 품은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던 자연이었지요. 집 앞에 핀 능소화를 소중히 어루만져 보았던 날. 동고비의 날갯짓을 어여쁘게 바라보시던 엄마에 대한 기억. 단짝 친구와 함께 만든 숲속 비밀 아지트. 가족이 된 흰둥이가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 자연의 맛을 담뿍 담은 할머니표 시골 밥상, 툇마루에 누워 올려다보던 밤하늘의 별빛… 매 순간 찬이의 마음을 채워 주고 몸을 덥혀 준 자연의 조각들이지요.
그리고 이는 찬이의 일상이지만, 오로지 찬이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본디 사람은, 우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왔으니까요. 자연이 품으로 빚어내는 것은 숲과 강산, 하늘에 이어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자연이 채워 주는 풍경과 냄새를 작가가 이토록 생생히 그려낸 이유는 우리가 내 안의 자연을, 자연 안의 나 자신을 기억해 보길 바랐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세상에 갓 태어난 우리를 처음 안아주었던 품을 잃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하여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할머니에겐 나밖에 없는데··· 그 누구도 없는데….’
찬이는 자신이 이렇게 미워질 수가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무래도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_본문 54쪽
할머니의 손길처럼
우리를 안아주는 자연의 품
비가 오는 날엔 물길을,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결을, 둥근 해가 뜬 날엔 햇살을 따라,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찬이와 할머니의 일상이 마음에 초록빛 물결을 남기는 동화 『찬이와 할머니』. 전작 『여름 상상』을 통해 계절의 고유한 색채를 재치 넘치게 담아낸 박광명 작가는, 『찬이와 할머니』 속에 담긴 자연의 정서를 잔잔하게 번지는 수묵과도 같이 부드러운 풍경 안에 담아냈습니다. 자연이 채워 주는 편안하고 따스한 일상이 밥에 뜸을 들이듯 그림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지요. 소소하게 여겨지는 일상의 조각을 정성 들여 닦고 비추어 넉넉하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는 김지원 작가의 이야기가 박광명 작가의 그림을 만나 우리 마음에 초록빛 물결을 남깁니다.
공부나 성적에도 신경 쓰지 않고, 번쩍이는 스마트폰이나 게임기보다 하늘과 꽃을 바라보길 좋아하는 아이 찬이의 하루 안에 함께 머물러 있노라면, 기억 속 그리운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습니다. 작은 지붕 아래서 찬이와 산골 생활을 애지중지 돌보아 온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어 우리를 키워내고 안아주는 자연과도 닮았지요. 그러다 문득 어제와 다른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집을 떠나 홀로 길에 서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길가에 핀 작은 맨드라미 하나 어여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매 순간 잊지 않고 돌아오는 새봄을 두 팔 가득 품에 안아볼 수 있겠지요.
찬이는 엄마 품에 와락 안겼다. 고요하던 작은 시골집엔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고, 비가 그친 밤 유난히도 밝은 달빛은 오래도록 창가에 머물렀다._본문 62쪽
작가 소개
글 김지원
꽃과 나무를 키우며 틈틈이 동화를 쓰고 있어요. 자연을 좋아하는 만큼 동물 보호나 지구 환경에도 관심이 많답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더 사랑하고 아끼며 우리가 사는 지구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숲이나 동물을 소재로 한 글을 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림 박광명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점박이 개와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대단한 밥』, 『안녕, 중력』, 『여름 상상』이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soomook_ill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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