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토론 교육으로
학생들의 인성과 자립 역량을 기르겠습니다.
- 장만채 전라남도 교육감 -
최창의가 만난 열네 번째 교육감은 전라남도교육청 장만채 교육감이다.
2016년 2월 23일에 교육감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최창의 : 전라남도는 우리 나라 서쪽과 남쪽에 걸쳐 있습니다. 주로 평야가 많지만 바닷가와 섬 지역도 있지요. 전남이 갖는 독특한 교육 환경은 어떤가요?
장만채 : 전남 교육은 전국 상황이 압축돼 있습니다. 전남의 교육 문제를 풀면 우리 나라 모든 교육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섬이나 외딴 곳에 있는 작은 학교부터 대도시의 밀집형 학교까지 다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수도권이나 대도시들은 교육 환경이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섬 지역 같은 곳은 교육 환경이 열악한 편이지요.
최창의 : 전남의 어려운 교육 여건 속에서도 6년째 교육감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평소 교육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장만채 : 초·중등교육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검증되지 않은 것을 초·중등교육에서 가르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중등교육은 앞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 터전을 닦는 과정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입시라는 것에 묶여 가지고 초·중등교육부터 꽃을 피우려고 그래요. 정보와 지식 기반 사회로 간다고 했을 때는 우리 교육 체계 자체가 바뀌어야 돼요. 전남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당장 성적에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할지라도 인생을 50년, 60년 놓고 봤을 때 어떤 교육이 중요한가 생각해야 돼요.
최창의 : 장만채 교육감님은 진보교육감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선까지 했는데도 과감한 변화와 혁신이 미약하다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장만채 : 저는 우리 아이들 교육에 가장 필요한 것에 중심을 두고 보거든요. 그래서 정책이나 사안마다 진보적일 수도 있고 보수적일 수도 있어요. 두 발이 모두 움직였을 때를 변화라고 말한다면 우리 전남교육청은 반 발만 뗍니다. 나머지 반 발은 내 다음 교육감이 떼라는 거예요. 그렇게 4대 교육감 정도 가야 두 발이 떼어지고, 그런 변화라야 지속 가능하다는 거지요. 전남교육청에서 조금은 더디게 가지만 앞으로 5년, 10년 지나면 전남 교육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독서 토론 교육으로 교육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는 차원이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거예요. 이게 전남 교육의 소리 없는 변화이고 큰 물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창의 : 전남 교육이 “꿈을 키우는 교실, 행복한 전남 교육”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목표를 내세우게 된 배경이 있을 텐데요.
장만채 :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니 더불어 사는 인간을 만들어야 됩니다.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이지요. 결국 사람은 다른 생명체들과 공존해서 가는 거예요. 그게 인성입니다. 전남 교육의 핵심은 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자기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자기 역량은 자기 판단력이에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게 전남 교육의 목표입니다. 어떻게 인성과 역량을 기르겠느냐고 했을 때 그 구체 방안이 독서 토론이고요.
최창의 : 말씀하신 대로 전남은 독서 토론 수업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청소년들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서 독서하고 토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만채 : 우리가 독서 토론에 수업 시간의 10퍼센트를 쓰게끔 하고 있어요. 국어를 1년에 200시간 한다면 20시간 정도는 토론 수업을 할 수 있게 합니다. 3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치며 실제로 여러 방식을 해 보았어요. 시범으로 해 보고, 수업에서도 했는데 올해 안에는 교육과정 답안을 만들어 내려고 해요. 올해 답안이 만들어지면 내년부터 정규수업화 과정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서 토론을 하는 것은 학생들한테 동기부여를 하는 측면이 있고요. 또 시베리아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스며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민족의식, 역사의식을 갖게 하고, 그다음에 극한 상황을 이겨 나간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2주 동안 열차를 타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극기이고 협동입니다. 그리고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보면서 큰 뜻을 키우라는 뜻도 있습니다.
최창의 : 여러 시도에서 혁신학교를 추진하고 있는데, 전남의 경우는 ‘무지개학교’를 지난 임기 때부터 운영해 오셨지요. 무지개학교는 어떤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까?
장만채 : 현재와 같은 주입식 교실 수업은 학생들이 지식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요.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인생을 가르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학교는 직접 경험 위주의 여러 가지 농촌 체험이나 직업 체험 또는 자기 숨은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특기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해 봄으로써 지식이 아닌 지혜를 쌓을 수 있게끔 합니다. 다양성을 갖고 저마다 꿈을 키워 주자고 해서 무지개학교라고 했어요. 큰 틀에서 미래 사회를 대비하고 학생들의 꿈이나 끼, 역량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교육이 가야 된다는 뜻에서 혁신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창의 : 전남에는 작은 농어촌 학교와 다문화가정 학교도 많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지역 나름의 특별한 교육정책도 갖고 있을 것 같은데요.
장만채 : 사실 농어촌에 있는 작은 학교들 가운데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아니면 유지가 안 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학교가 많아요. 다문화 학생이 70퍼센트가 넘는 학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학생들이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전남 학생으로서 잘 적응하고 숨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 학생들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체험할 수 있는 동아리를 국악, 합창, 뮤지컬, 오케스트라, 황실공예 들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창의 : 정부가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을 내세우면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가속화시킨다는 발표를 했어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건가요?
장만채 : 농어촌의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사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농어촌 학교가 소규모라고 해서 폐교를 시키면 학생들이 다시 도시로 가게 돼요. 지금과 같은 상태로 수도권 인구 과밀이 지속된다면 우리 나라는 동맥경화처럼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릴 거예요.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려면 농어촌 학교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초·중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입니다. 의무교육은 국가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학교에 학생이 적고 많고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학교통폐합을 초·중등교육에 일방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런데 고등학교는 문제가 다릅니다. 고등학교는 정부에서 인재 육성 차원에서 제안이 들어온다면 여러 가지 검토를 해 보려고 합니다.
최창의: 요즘 누리과정 무상보육비 문제로 정부와 갈등이 매우 뜨겁습니다. 현실적으로 시도교육청이 유치원과 어린이집 양쪽 모두 무상보육비를 부담하기가 어려운 상황 아닌가요?
장만채: 지금 교육부는 무상보육비 부족에 대한 내막을 다 알아요. 대통령은 교육감들한테 돈을 내려보냈다 그러는데 실제로 돈 준 건 없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한 거예요. 그럼 누가 거짓말을 한 건가를 놓고 얘기를 해 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얘기해 보자 그러면 안 해요. 왜? 자기들도 아니까요. 누리과정 무상보육비는 아이들에 관한 일이니까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교육감들과 학부모들하고 논의해서 타결해 가는 게 좋습니다. 누리과정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대통령 공약으로 들어온 정책을 제도 정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행부터 먼저 했기 때문이에요. 정책, 법률, 예산, 행정에 관한 부분을 정비하고 누리과정이 시행됐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최창의: 전남은 누리과정 예산을 몇 개월분 편성하였나요?
장만채: 저희는 유치원하고 어린이집에 5개월분 편성했습니다. 왜 그러냐면 전남은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못살아요. 그러니까 전남의 어린이집들은 생계형이에요.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 열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예산을 안 주면 숨이 넘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연명을 한 겁니다. 제가 어린이집 대표들하고 얘기할 때 그랬어요. “5개월 뒤에는 이제 없습니다.” 저희가 초·중·고등학교 예산 인센티브로 받은 81억 원까지 다 썼어요. 나중에 초·중·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와서 따지면 할 말이 없는 상태입니다.
최창의: 학생들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여러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있는데 전남은 어떤가요?
장만채: 저희 전남에서는 학생인권조례라 하지 않고 교육공동체인권조례라고 해요. 선생님과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 책임을 규정하는 거죠. 교육 활동이 우선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학생들 권리에 대해 찬반이 엇갈려 의회에서 부결됐어요. 이번 회기에 의원들이 이 조례를 일부 수정해 다시 발의한다고 합니다.
최창의: 재선교육감으로 지난 5년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역점을 두어 할 일이 무엇인지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만채: 제가 볼 때 모두들 너무 급해요. 너무나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얻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저는 제 다음다음 교육감이 꽃을 피울 수 있게끔 땅을 일구는 작업만 하겠다고 얘길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정책의 핵심이 독서 토론이에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른 것 안 하고 책 읽고 서로 토론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낫거든요. 독서 토론을 인성 교육, 무지개학교, 모든 교육 활동에 다 접목을 시키는 거죠. 처음엔 오해도 하고 반대도 했던 우리 전남의 학부모님들과 도민들이 지금은 기다려 주고 인정해 주는 것에 보람과 고마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