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스며든 수필, 수필가
부울경포대는 대학이 아니다. 그러나 대학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부산, 울산, 경주, 포항, 대구 등지에서 모여든 수필가들의 모임이다. ‘2018년 부울경포대 수필축제’라는 행사명과 “수필! 숲으로 스며들다”라는 슬로건부터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밀려들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꼬불꼬불 돌아 도착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누가 창문을 열었고, 진한 나뭇잎들의 향기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처음 맛보는 시원함에 모두의 기분이 업되었다.
행사 장소에 도착하니 예쁘게 생긴 방갈로에는 이미 숙소가 배정되어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먼저 따뜻하게 우려낸 고운 빛의 차를 마시면서 등록을 하고 명찰을 받았다. 한쪽에서는 올해 행사의 주최 측인 울산 팀들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손님을 맞으면서 두 손으로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 국 그리고 갖가지 반찬이 뷔페식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도루묵과 가자미조림은 간이 딱 맞았고 식감도 좋았다. 밀가루에 찐 고추반찬은 원래 좋아하는 것이라 다이어트를 잊고 결국 너무 많이 먹게 되었다. 처음 보는 검정깨로 만든 묵은 고급지고 건강한 별미였다.
나름 미식가인지라 어지간해서 맛이 좋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맛났다. 특히, 식혜를 직접 만들어 얼려온 정성에 놀랐다. 식혜의 맛은 명장이 만들었다고 유통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섹시한 색으로 우려낸 오미자차도 목젖이 놀라 파르르 떨 정도로 훌륭했다. 울산이 이렇게 맛깔스러운 곳이었나 감탄하였다.
울산의 이서원 님의 사회로 식전 행사가 진행되었다. 같은 모자를 쓰고 각기 다른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고 여덟 명의 오카리나 연주가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Let it be me’, ‘조개껍질 묶어’, ‘보약 같은 친구’ 세 곡이 익어갈수록 청중의 엉덩이는 실룩댔다. 역시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두어야 해, 우리는 뭐하지, 멋지다 등 청중의 탄성, 반성, 자극이 이어졌다.
이어 포항의 공채영 님의 시낭송이 있었다. 마종기 님의 시 <물빛>이었다.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사람의 소리가 울려 물소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고, 가지산에서 다시 울려 메아리로 내려와 내 가슴을 쳤다. 낭송공부를 하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임의 추진위원장 도재환 님의 준비과정 소개, 에세이 울산 문학회의 김해자 회장님의 인사말과 참석 팀 소개, 울산문협 정은영 회장님의 축사, 홍 교수님의 인사까지 이어지는 개회식은 이 모임의 위력을 알게 하였다. 벌써 7년에 걸친 부울경포대 축제는 앞으로 더 창대해 질 것 같은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순서에 따라 대구 대표로 ‘나의 애수’를 발표했다. 급하게 준비하다보니 다른 분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다수가 모이는 자리이니 무궁화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무궁화’를 준비했는데 한 단락씩 읽기에 급급했다. 무궁화가 병과 벌레가 많은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일본이 조선의 단합을 분산시키고, 민족성을 말살하려 무궁화에 침을 뱉게 한 어린이들의 세뇌교육에 의한 것임을 다시 적어둔다.
대구의 수필아카데미 팀은 이 모임에서 막내인지라 이 축제의 장기자랑 수준을 예측하지 못하였다. 제 각각의 팀들의 준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 팀은 화려한 한삼자락을 길게 하고 종이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자는 몸빼바지, 남자는 한쪽 바지를 올리게 하여 <밀양아리랑>에 맞추어 막춤을 추는 것으로 기획하였다.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에서 3번 연습한 것이 고작이었다. 다행이 팀원이 장구를 준비해 왔기에 화려함을 더하기는 하였으나 다른 팀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주눅이 들었다. 첫 번째 발표였기에 천만다행이었다.
울산 1팀이 ‘개똥벌레’ 노래에 맞추어 함께 동작을 하는 기획은 단합에 좋았고, 경주수필 팀의 ‘앗사’ 연극은 부채에 적은 ‘포에버’처럼 영원하시기를 소망하여 크게 박수를 쳐드렸다. 오영수문학관 아카데미의 백계순 님의 설장고는 프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착실히 수학하고 있는 중임을 짐작케 하였다. 나도 예전에 배우려 하였던 장구였다. 너무 어렵다는 으름장에 멈춘 것이 후회되고 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구 알바트로스 팀의 ‘브라보, 마이라이프’ 연극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일반인들이 대사를 저렇게 찰지게 적었는가? 천연덕스럽게 연기도 하고 X현수막 배너도 준비하는 등 기획력에 놀랐다. 중간에 대사를 잊어버린 분이 부채에 적어둔 컨닝페이퍼를 봐야한다는 너스레가 더 웃겼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들어가야하는 다방 마담은 타이밍을 놓쳐 입장하지 못하고 객석에 앉아 있는 것도 작품이 되었다. 대사 순서가 꼬여 서로 차례 아니라고 에드립하는 것까지 짜릿짜릿하게 감동이었다. 이 팀에서는 곧 연예인이 탄생될 것 같았다.
에세이 울산의 체장수 노인” 연극은 아이, 엄마, 노인의 복장, 축약된 대사가 수준급이었다. 그런데 장면이 바뀔 때마다 눈 스프레이를 뿌리는 스텝 두 분과 장막을 걷었다 쳤다하는 스 텝 두 분의 엉킨 박자 때문에 모두가 책상을 두드려가며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박장대소해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들 팀이 1등을 수상할 수 밖에 없었다.
행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인 방갈로로 돌아온 일백 명의 인원은 알콜의 힘을 빌어 조금 더 용감해졌다. 마주앉은 낯선 선후배들은 뽈또그리해진 볼과 입술로 각자의 살아온 각가지 지혜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 감탄하였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밤하늘에는 아직 구름의 속도가 빨랐고, 그 속에서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늦여름 달빛, 별빛은 수필을 사랑하는 이들의 감성을 충분히 녹여내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아침밥을 먹고, 살티성소, 언양성당까지 이어지는 축제는 울산 팀들의 훌륭한 가이드 속에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마지막 잔치국수집에서 차려놓은 깻잎,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무침까지 맛이 좋아 울산을 앞으로 맛도시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쑥 홍 교수님이 “용숙이, 낭송 하나 해 봐라”하셨다. 그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청마 유치환의 “행복”을 줄줄 읊어내려 갔다. 대군이 들어서서 방안이 후덥지근했는데도 나의 양팔에 소름이 와르르 돋았다. 천사의 목소리가 되어 너희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듯하였다. 행복의 싯구절을 오물오물 입 안에서 버무려 새로운 맛으로 굴려내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이었다. 전국 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 당연한 수상이었을 것이다.
넘치는 끼, 가득찬 지혜, 아름다운 배려들로 행복 가득한 축제는 울산 큰애기들의 단합으로 더 빛이 난 것이리라. 전원 참석, 전원 업무분담, 전원 협찬, 전원 행동이라는 에울의 기획, 추진력은 카리스마 있는 회장님의 존재 때문이리라. 그리고 함께 충성, 단결의 행동으로 따른 팀원들의 역량이 더 값진 힘이었다. 이들의 “의리”가 너무 멋져보였다.
앞으로 그 어느 팀이 해도 이보다 잘 할 수는 없다. 특급, 최상으로 박수쳐 주고, 모두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마지막까지 인사하고 동동거려가며 챙겨주시는 윤 국장님의 뱃살, 엉덩이 살은 애교만점이었다. 수고하신 분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초보 참석자는 이 엄청난 에울의 저력과 맛, 멋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홍 교수님의 열정만큼 뜨겁고 아름다운 한여름 축제는 숲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숲이 되었다. 모두 행복하다고 아우성치는 잔치가 되었다. 어디 인생이 퍼즐조각처럼 딱딱 맞춰지던가. 어디 인생이 계획표 대로 딱딱 이어지던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실, 순수는 언제나 제 자리를 지킨다. 부울경포대는 스승의 그늘에 힘입어 큰 산으로 더욱 넓어지고 높아지리라 믿는다. 이제 그 2018년의 축제는 모두의 가슴 속에서 더 크게 여운되어 일렁일 것이다.
변미순 / 한국수필문학관 수필아카데미 회장
첫댓글 후기 글 감사합니다.
우와~~ 놀래라~~~~!!
그날의 감동을 넘어서는 또 다른 후기의 힘입니다.
변선생님, 우찌 이러쿠롬 멋지게 표현을 하셨는지요.
여타 수필을 압도하는 가슴 울리는 명문장들로 꽉 채웠네요.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자알 썻어요~
그날의 감동이
다시 느껴집니다.
수고했습니다.
변미순님, 후기 멋집니다^6^
그날의 정경이 사진 찍은 듯 선하네요.
못뵈어서
아쉬웠습니다.
잘지내시죠
변미순 선생님~^^
어찌 이리 맛깔나는 후기를
적으셨습니까. 생생한 후기를
읽다보니 그날의 추억이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고맙습니다~~
변미순 선생님
행사에 참석치 못했지만 이 글을 읽으니
그날의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변미순님,
활달함이 남다르다 느꼈습니다.
맛깔난 행사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변미순 선생님
후기글에 감동입니다.
구절 구절 표현이 너무 멋지네요.
행복한 잔치였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울경포대 축제가 엊그제같는데 벌써 한주가 지났군요
역시 한국수필의 본고장은 대군가 봅니다.
변선생니의 깨알같은 후기가 없었으면 누가 어디서 무슨행사를 했는지 기억이나 하겠어요
정말 즉시안타 아니 장외홈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