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의 문화산책- 화맥 3대로 이어가는 신창호, 신홍직, 신종훈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임전-허재,허천등 5대로
부산은 서양화 신창호, 신홍직 조각에 신종훈 3대로
화업 3대, 창의적인 작품세계로 작품성 발전적 승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은 소설가인 부친 한승원(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딸이다.
화단에서는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51호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의 주인장인 5대 직계 화맥(畵脈)이 200여년 동안 이어지는 산실이다.
운림산방의 주인장은 양천 허씨의 가문이며 남종화의 거봉인 소치(小痴) 허련(許鍊·1808~ 1893)의 화실이다. 소치는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에게서 불화와 시서화를 익혔으며 추사 김정희에게 화풍과 붓끝의 정신적 심성을 익혔다.
이후 넷째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1861~1938)으로 이어졌는데 미산은 63세의 나이에 선전(鮮展)에 입선한다. 미산의 두 아들인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과 임인(林人) 허림(許林·1917~1942)으로 3대로 이어진다.
동양화의 추상화기법(토점화,황토흙)을 최초로 도입하여 미래가 점쳐지던 허림은 요절하였고 남농은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1982년 운림산방을 복원해 국가에 헌납했다.
직계로는 소치-미산-남농으로 3대째 이어지지만 남농은 요절한 동생 임인의 아들 임전(林田) 허문(許文·1941-)에게 4대 화맥을 맡겼다. 임전은 운무산수화라는 독창성을 펼쳤다. 이후 현재 5대 화맥은 남농의 손자인 허재,허천, 임전의 자식인 허청규,허은등으로 이어진다.
1898년 9월1일 ‘여권통문’ 발표 121년을 기념하는 ‘한국여성미술인 모녀지간전’이 2019년 열리기도 했다. 여권통문은 1898년에 발표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서로 300여명의 여성들이 교육권, 참정권을 주장한 글이다.
모녀지간전에는 강태화-박혜영/홍기자-이보라/장혜용-최예빈/허계-박소연등 16쌍의 모녀가 작품을 선보였다.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초록의 서양화가- 신창호
운림산방이 직계 3대, 친족으로 5대째 화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부산 기장군 기장해안로에는 신홍직 작업실이 있다. 부친 신창호(1928-2003년), 신홍직(1960- 현), 그리고 신홍직의 아들 신종훈(1984년-현) 3대가 어제, 오늘, 내일의 대표적 화맥을 이어가고 있다.
평산 신씨 신재갑의 차남으로 태어난 신창호 화가는 계성고 미술반에서 학교 선배인 김우조, 김창락, 서진달 선생에게 소묘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은 경북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꿈꿔오던 미술세계로 접어든다.
신창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주제가 주어진 ‘국가 재건회의’ 가 주최한 제1회 영남재건예술제에 ’어촌전경‘으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이다.(1961년) 이후 신창호 미술연구소를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을 결행한다. 이후 국전에 ’잔영‘ ’선‘ ’강촌‘등이 연이어 입선(1973년,74년,75년)하면서 화단계에도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1985년 첫 개인전(로타리화랑)을 시작으로 5회 개인전(열린화랑,2000년)을 열게된다.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부산일보 연재 소설 삽화와 국제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타계 후 신창호 추모전(현대아트홀)이 열렸으며 신창호 화집이 간행되었다,(2005년)
해방, 전쟁, 도시화등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서 여전히 아늑하면서 어머니 같은 동네 언저리의 자연풍경을 잔잔하면서도 소박한 초록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다.
1세대 신창호(서양화가) 의 작품은 자연이 던져주는 넉넉함속에 사람들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따스한 바람이 부는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이다. 자화상, 정물 등 연필 드로잉에서는 섬세함과 날까로움이 베여있다,
역동적이면서 원색의 물결이 넘치는 서양화가 -신홍직
현재 국내화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신홍직은 1960년 경부 상주에서 신창호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신홍직은 붓대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역동적이면서 원색의 물결이 두툼하게 묻어나는 화풍으로 애호가들이 많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조화로운 색감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신홍직(1960~,SHIN HONG JIK)화가는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창작의 세계에 몰입했지만 그의 작품성은 20여년이 지난 50대가 돼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부친 신창호 화가가 40대에서 50대에서 중흥기를 맞은듯한 비슷한 시차를 보여준다.
부산의 롯데화랑, 맥화랑, 공간화랑, 해운대 아트갤러리와 마산현대미술관 등에서 30회 개인전을 가졌다. 제7회 오늘의 작가상 본상(부산미술협회, 2008), 제24회 봉생문화상(2012), 송혜수미술상(2022)을 수상했다. 부산시립미술관, 일본나가사키현 청사, 부산시장관사, 삼성전자, 동아대학병원, 부산시청, 동서위생, 대한금속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2세대 신홍직(서양화가)은 원색의 격정속에 피어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구사하고 있다. 모든 그림이 정체되어 있지 않다, 화려한 원색의 물감들이 형상을 유지하면서 산과 들판보다는 도심에서의 일상을 끄집어 낸다. 거리의 간판들도 소재로 재탄생한다. 바다도 춤추고 하늘도 춤춘다.
” 질감과 원색을 통해 빠른 속도의 격정적인 화풍이 흥분마저 자아낸다. 붓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손으로 섬세함마저 표출된다, 희망과 열정을 선사하고 있다.“<환경경영신문,2019년 12월22일자>
생체를 다이내믹한 물성으로 구현한 3세대 조각가- 신종훈
신씨 화맥의 3대로 이어지는 신종훈 (1984년생-현)조각가는 침체되어 있는 국내 조각계에 새로운 돌풍을 예고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화단은 동양화를 제외하고는 1백여년의 화역을 지녔을 뿐이다. 1대 신창호 화가는 비전공 비주류 화가의 길을 걸었다면 2대 신홍직 화가는 우리나라 양대 산맥인 서울대, 홍대를 벗어나 동국대에서 학업을 하고 지역 미술계에서 발판을 굳혔다, 반면 3대 신종훈 조각가는 서울대에서 조소과 학, 석사를 하였으며 대학을 졸업한 다음해 한국조각가협회로부터 신진작가상을 받으며 일찍부터 조명을 받았다.
서정적이며 자연주의의 풍경화의 할아버지 신창호, 율동적이며 걸죽하게 손으로 물감을 유희하며 화려한 색감으로 도시풍경에 자연을 연계한 아버지 신홍직, 그리고 섬세하면서 새로운 소재로 생체적 공생을 추구하는 내일의 조각가 신종훈으로 이어진다.
신종훈 조각가는 <사라지다>(2014년)와, <기다리는 사람들>(2018년)을 주제로 2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면서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김세종미술관, MOA미술관등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서울에서 펼쳤다. 현재는 서울대 조소, 동국대에서는 조소와 해부학을, 덕원예술고등에 출강하고 있다.
학창시절의 흉상 작품에서는 놀랍도록 섬세함으로 핏줄이 살아서 움직이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30대의 나이임에도 우리나라 조각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져주고 있다. 사람이나 말이나 어떤 사물도 그의 손을 거치면 형상은 사람이지만 형체는 내면마저 투시되는 작품으로 형성화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쳐지는 소재들은 실,얼음,연기등 일상의 모든 도구들이 새로운 형태로 제2의 작품이 탄생된다.
신창호, 신홍직, 신종훈 3대에 걸쳐 미술계의 발전적 도약을 하는 모습은 침울한 화단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