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즈드의 Amir Chakhmaq Complex>
이란 여행기 2
"테헤란에서 야즈드로"
<테헤란에서 야즈드로>
2013년 9월 26일 우리는 3인씩 조를 짜서 택시를 타고 오후 3시 20분, 테헤란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은 좀 한산했으며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 보니 외부와는 달리 전국 사방으로 가려는 승객으로 물 끓는 듯 붐볐다.
사실 처음 이란에 도착한 한국인이라면 이란의 검정 도포를 입은 여인들의 물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얼굴 또는 눈만을 남겨두고 온몸을 시커먼 두루마기로 뒤집어 쓴 여인들을 보면 어떤 때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기도 하다. 저런 복장으로 어떻게 평생을 살까, 라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여인이라면 무조건 뒤집어 써야 하는 저 검은 도포는 이미 습성이 되어 버린 저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종교, 관습, 인습 등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 웅변적으로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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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기차역>
기차 대합실에 들어갈 때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엑스선 투시 장치로 통과시켜야 한다. 그 다음 외국인은 대합실 한 곳에 위치한 경찰관에게 가서 기차표와 여권을 보여주고 기차표에 도장을 받는다. 그리고 한 없이 앉아서 기다린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이란 말을 알아 듣는 사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합실 내의 모든 게시물은 오로지 페르시아 말로만 기록이 되어 있어서 실로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는 아라비아 숫자도 사용하지 않고 페르시아 숫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란이라는 나라는 외국인에게 있어서 암흑천지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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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기차역 광장>
내가 한국에 있으면서 이란은 아랍어를 사용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도 큰 착각이었다. 아랍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준비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란이 페르시아어를 사용할 줄이야! 나는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이미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듯이, 당연히 페르시아어도 이미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죽은 언어(死語)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었다!
우리는 대합실에서 한 없이 기다렸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그저 꼬마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힐끗 바라보듯이, 이란 사람들도 신기하다는 듯 우리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보통 기차가 떠나기 전 30분 전이면 플랫폼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승무원에게 영어로 물어본 복만이의 말에 따르면, 기차 출발이 지연되었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지연되었나? 대답은 "인샬라(신께서 원하신다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였다.
시간이 더디 가고 있었다. 한 없이 기다리며 또 기다렸다. 우리의 기차는 오후 4:15분 기차였는데, 4:10분쯤 누군가가 우리를 찾는다고 했다. 기차가 떠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색이 다 된 어떤 이란 사람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해댔다. 또 어디선가 젊은이가 나타나더니 앞장을 서며, 빨리 뛰어오라고 죽는 시늉을 하며 손짓을 해댔다.
갑자기 빨리 떠나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난리법석도 그런 난리법석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어설픈 난리법석이라고 해야겠다. 20키로 큰 배낭을 등에 지고, 8키로 가방을 앞에 메고, 돈 가방을 옆에 차니, 6.25 때 피난민 생각이 났다. 걷는 것 자체가 힘든 판국에 뛰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배낭여행 7년째 다니지만 완전 군장에 육군 병장 연병장 돌 듯, 먼 이란 땅에서 구보를 한다? 내 신세가 세상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죽는 희생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오늘 미쳐 날뛰고 자빠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뒤퉁거리며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앞 사람의 뒷꿈치만 보고 달렸다. 한참을 뛰어 계단을 내려가는데 저 멀리 텅빈 플래트 폼에 기차가 떠나겠다고 꽥꽥 거리고 있었다. 다른 손님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처럼 차디찬 바람만이 테헤란 기차역을 휩쓸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 기차 차장의 손짓이 개미새끼가 더듬이 여기저기 찍어보는 것 같았다.
내가 기차에 올라타고 시계를 보니 4: 16분, 맨 마지막에 탄 사람이 4:17분, 4:17분 27초에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굴이 핼쑥해진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숨만 헐떡거리다가 문방구 앞에 있는 장난감 두더지가 망치 한대 얻어맞고 푹 들어가듯 의자에 털석 주저 앉으며 "아이고 내 팔자야, 이이잉~",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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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내에서 구입한 도시락>
한 바탕의 생쑈를 하고나니 우습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옛날 시골 아이가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고 나서 울다가, 또 울다가 배가 고파 퍼뜩 일어나 먹을 것을 찾아나는 심정이랄까? 시간만큼 묘약이 또 있을까? 몇 분 지나니 금방 겪었던 고통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고 또 다시 기분은 즐거워졌다. 여행 중 술을 마시지 않고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잠시 뒤 승무원이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3-4천원 하는 종이 박스 안에는 빵과, 여러 가지 곡식과 채소를 볶은 반찬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물건이 함께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수건이 따라 나왔다. 처음에는 신발을 벗고 발을 올려 놓을 신문지 대신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밀가루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것도 먹는 것인가보다 생각하고 조금 뜯어 먹었다.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으나, 왜 그런지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주인에게 두들겨 맞은 검은 개가 주인에게 분풀이로 죄없는 검은 고무신 물어 대듯 죽기살기로 이빨로 물었다. 여전히 먹기는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먹나 힐끗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도 일 주일 동안 고뿔 걸렸다가 일어난 이빨 빠진 노인네처럼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깨작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후로 이 음식을 "발판, 발닦개, 빨래판, 개껌"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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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배급된 저녁 도시락>
빨래판을 먹는 중, "아이고, 낚였다!"라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모든 승객에게 무료 도시락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먼저 나왔다면 아무도 돈을 내고 도시락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도시락을 사는 이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생각이 떠 올랐다. 나누어준 도시락을 열어보니 시시 껄렁한 과자류와 주스가 들어있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저녁으로 때울 만한 음식은 되었다.
얼마 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야즈드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영어를 못하는지 내가 못하는지, 둘 다 못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야즈드는 볼거리가 풍성한 역사도시임을 자랑하는 듯 싶었다.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자, 그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뒤 그는 어떤 다른 남자의 손목을 잡고 왔다. 불려온 남자는 근엄한 표정에 안경을 낀 사람이었는데, 오히려 영어를 더 할 줄 몰랐다. 입은 열려있어 영어 비슷한 소리는 내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페르시아말에 가끔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것 같았다. 신내린 선무당처럼 무슨 말인가를 한참 동안이나 입에 거품을 품고 하던 그는, 제풀에 꺾여 녹초가 되어, 입가의 흰 거품 자국을 손등으로 씩 닦더니, 빈자리를 찾아가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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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밖의 풍경>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중국 티벳의 경치와 거의 흡사했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없는 끝없는 황야, 가끔 나타나는 검은 산이 시야에 펼쳐졌다. 가끔 도시가 나타날 때마다 도시 주위에 물과 풀이 더러 보였지만, 그저 달나라를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그런 광경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강이나 내가 없는데, 어디서 물이 나와서 사람들이 먹고 살까 궁금했다. 아마도 그런 곳은 땅을 파면 석유대신 물이 나올 것이라고 짐작할 도리밖에 없었다. 뭐 이런 삭막한 땅을 차지하려고 수 없는 전쟁을 치룬 옛 사람들이 한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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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야즈드까지는 680키로, 야즈드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30분이었다. 우리가 묵을 Silk Road Hotel 미니 버스가 기차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10분만에 도착한 Silk Road Hotel은 Lonely Planet에 등재된 호텔이어서 그런지 외국인이 여러 명 보였다. 사람들이 마당에 놓여진 평상에 앉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나라 여성이건, 여성들은 팔자에 없는 히잡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못해서 그런지 매가리 없이 다른 평상의 사람들만 거지 빈 동전 통 구경하듯 촛점 없는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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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원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 있었으며 불빛을 받아 아름다운 오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정원 가운데 있는 조그만 연못에는 물고기는 없었으나 붉은 꽃잎이 떠서 북두칠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에는 보라색 꽃이 가을 밤을 노래하고 있었고, 또 그 옆에는 갈색 도자기가 꽃잎 뚜껑을 머리에 이고 밤으로의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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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로드 호텔 마당에 있는 꽃>
<실크로드 호텔 식당>
Lonely Planet에 나와 있듯 호텔 음식은 깔끔하고 정갈하며 맛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호텔 방은 비좁고 퀴퀴한 냄새가 났고, 모기는 밤새도록 내 피를 뽑아 그들만의 만찬을 즐겼다. 모기에게 물릴 때마다 불을 다시 켜고 잡다잡다 날이 훤히 밝고 말았다. 아침에 벽을 보니 여기저기 모기 핏자국이 벽에 널려있었다. 누군가가 토마토 캐찹을 한 줌 방바닥에 놓고 손바닥으로 힘차게 내려쳐서 사방 방벽에 튀어 벽에다가 꽃단장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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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코로드 호텔 아침 식사>
<실크로드 호텔 식당 위에 비둘기 비슷한 새가 있었다. 비둘기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울음 소리가 신기해서 녹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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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새를 클릭하세요.>
<야즈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Masjed-e Jameh Mosque>
모기에 물리건 말건, 다음날 새벽 일찍 K님과 함께 동네 구경을 나갔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구시가지의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서 이 일대를 둘러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Lonely Planet 지도에 표시를 하여 책을 지참하고, 안내대로 걸어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리 지도 대로 가려고 해도 엉뚱한 길로 접어 들었다. 중간에 새벽 청소부에게 물었으나 그의 말을 따라 걸어도 역시 엉뚱한 길만 나타났다. 결국은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고 발길 닿는대로 바람부는 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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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에 걸어가보도록 안내된 페이지>
<우리 호텔 바로 앞에 있는 Amir Chakhmaq Complex>
여기저기 길거리를 걸었다. 어느 곳은 정말로 오래된 골목 그대로였고, 또 어느 곳은 깨끗하게 벽돌로 지어져 아치를 이룬 현대식 건물처럼 보였다. 가끔 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기도 하고, 한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멈추고 손가락으로 V를 나타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다가와 "헬로"하고는 마법사에 쫓기는 귀신처럼 도망치기도 했다. 무너진 담 너머에는 폐가가 보이기도 하고, 노인이 혼자 사는 듯, 신발 한 켤레와 지팡이 하나가 보이는 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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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흙으로만 쌓아 올린 것도 있었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듯 짚을 섞어서 만든 벽도 있었다. 언젠가 KBS에서 벽에다 짚을 섞어 짓는 한옥은 한국 고유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란에도 이런 것이 있는 것을 보면, 세계의 또 다른 곳에도 이런 방식의 짚과 진흙을 섞어 만든 벽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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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 집의 대문. 이 집의 방문자 중, 남자는 왼쪽의 막대기를 흔들어야 하고, 여자는 오른쪽의 고리를 흔들어 노크하여 자신이 왔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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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아침 식사 후, 단체로 찾아간 곳이 조로아터교의 불의 사원이다. 겉보기에 아담하고 조용하고 단정해 보였다. 이렇게 조그만 사원이 온갖 안내 책자에서 반드시 가 보아야 할 명소로 기재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기야 사찰이건 교회건 정갈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지, 누군지도 모르는 몇 만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외쳐댄다고 해서 기도가 더 잘된다는 보장은 없을 지도 모른다. 외로운 군중이란 말이 있듯이, 수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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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
건물 전면부에는 조로아스터의 상징이 크게 붙어 있다. Lonely Planet에 따르면, 이것은 Fravashi라고 하는데, 그의 머리는 경험과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오른 손은 신의 찬양을 나타내며, 왼손의 고리는 단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큰 원은 영원과 자신의 행동을 나타낸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꼬리 날개는 생각의 순수함과 말 그리고 행동을 나타낸다. 거기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줄이 있는데, 한 줄은 선을 나타내고 다른 줄은 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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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의 한 장면>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오늘날 예언자로 불리는 조로아스터(Zoroaster)에 의해 창시된 종교로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며,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은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는다 하여 스스로를 마즈다 예배교(마즈다야스나 : Mazdayasna)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라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를 일컬어 배화교(拜火敎), 즉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제례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작은 제단 앞에서 제례를 치른다.
이 종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Spitama Zarathustra)이며, ’조로아스터’는 자라투스트라의 그리스식 발음이다. 그의 출생 연대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주장들이 있는데, BC 660년 경이라고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BC 1500년 경, 혹은 BC 6000년 경으로 보기도 한다. 그의 출생지는 학자들의 추측과 자료에 따라 두 곳 정도로 예상되는데, 한 곳은 아프칸니스탄이며, 다른 한 곳은 지금의 이란 동부 국경의 옥수스 강 유역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알려진 것도 거의 없다. 후대의 사람들이 전승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으로, 대개 현명하고 선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윗 부분: 인터넷에서 발췌하여 필자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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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 영원한 불: 유리 관 속에 있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형상이 보인다. Lonely planet에 따르면, AD 470년부터 불을 밝히고 있으며, 야즈드에 이 불이 들어온 것은 1474년, 현재 이곳에서 타고 있는 불은 1940년에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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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벽에 걸려있는 조로아스터교 성서의 일부>
"그대가 진리를 알고 싶은가? 그러면 물어라(Ask)! 그대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믿어라(Believe)." 이것은 니체의 말이다. 니체는 현대 세계를 바꾸어 놓은 세계 3대 위대한 인물(다윈, 프로이드, 니체) 중의 하나다. 니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짜라투스트라가 말한 듯이 비유적으로 쓴 책이 바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오늘 그 책의 일 부분을 인용함으로써 이란 여행기 2부를 마친다.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하는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꿈은 과거의 일이었다며, 또한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 올려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다른 사람이나 젊은이를 비웃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
그렇다! 아무리 힘든 역경이라도, 아무리 늙어 기어다닐 힘조차 없어도, 이상과 꿈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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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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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악...또 첫 댓글이다....
중국에서 기차역에서 자다가 갑자기 기차를 타셨다고 실크로드길에서
본 것 같은데....ㅎ
아마도 약간의 팔자가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예정설 같은?...
오미자님도 또 같이 움직이셨잖아요?...
한 회에 한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기대됩니다...
흙집은 이란 남쪽 예맨의
천년도시 싸나가 생각납니다...시원할 듯...
이벤트 없는 여행이 어디 있겠어요?
이란이 영어가 안 통한다니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은 우찌하나 걱정되네요.
아들이 내년 여름에 이란을 거쳐서 육로로 귀국하겠다 해서 이란은 혼자가기 힘들거라 했더니
학교 유학생 중에 의외로 이란인이 3명이나 있어서 원주민 덕 좀 보려고 그런다 그러더라구요.
소통이 그리 힘들어서 미리 걱정됩니다요.
흙벽돌은 짚이 없으면 갈대라도 섞기도 하고...
실크로드 같이 식물이 귀한 곳에서는 그냥 흙만으로도 벽돌을 만드나 봅니다.
또 재미난 여행기 땜에 들락거리는 재미가 기대됩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많겠지요.
우리 나라도 아무나 잡고 말하명 어디 영어 하겠어요?
선생님 덕분에 이란여행 잘하고 있습니다..
마스짇이 인상적입니다..
모양이 우즈벡하고 비슷하군요..
혹시 마스짇 내부 모습 찍으셨으면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덕분에 좋은 여행을 느낄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담편기대.
내부는 공사중이었습니다.
다른 분 찍은사람 있으면 올려주세요.
사진이 말을 합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사진이 말을 한다!!!
감동적인 여행후기 잘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역시 알바트로스님의 후기는 예상할수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ㅎㅎ
클레어님 요즘 사무실에 나가요?
요즘은 온라인에서 열심히 눈팅중입니다.ㅎㅎㅎ
곽샘의 여행후기를 사진과 함께 즐감하고 있으며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모습으로 8주년 여행에서 만나도록 하지요.
예, 그때 뵙겠습니다.
영어가 안 통하고 술이 없는것이 좀 문제군요,,ㅎㅎㅎ
파키에서는 뽕술이 있어 좋았는데요,,,복마니가 훈자서는 훈자 왕자인데 페르시아 왕자는 아닌가 보네요,,,ㅎㅎ
술이 없어도 그냥 지낼만합니다. 닥치면 되는 대로 사는 겁니다.
ㅋㅋㅋ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ㅎㅎ 그래도 우루무치에서 훈자로 올때 달린것 보다는 낳잖아요... ㅋㅋ 글구요... ㅎㅎ 진짜로 내가 그날 4번을 물어 봤는데요.. 기다리라고 자기네들이 알려 주겠다고 했어요....ㅜ.ㅜ 사진 멋집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ㅋㅋ
하여튼 그날 뒈지는 줄 알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