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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6 : 17 - 21 일곱째 재앙 정리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 우리는 적그리스도 나라와 배교한 교회를 조심하자.
요한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은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징했다.
그 나라는 온 세계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독재 국가일 것이다.
또 두 번째 짐승은 거짓 선지자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배교한 교회를 상징했다고 본다.
특히 이 배교한 교회는 이적을 행하는 은사 주의 교회이다. 기적들을 행하는 은사 주의 목사들의 나타남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로 성경에 예언되었다.
* 마 24: 24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 살후 2: 9-12 –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배교한 은사 주의 목사들과 교회들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 바른 신앙, 속죄신앙, 옛 신앙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역사적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 바른 신앙, 속죄신앙, 옛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성경 말씀의 교훈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힘쓰는 것이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회개할 만한 때에 열심히 회개해야 한다.
사람이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가 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죄인들은 그런 때가 오기 전에 힘써 회개해야 한다.
* 사 55: 6-7 –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일곱 대접의 심판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5장을 생각할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제 우리가 생각하게 될 요한계시록 16장은 일곱 대접의 심판입니다. 이 땅에 임하려는 심판을 담은 대접을 손에 든 일곱 천사들은 이 무서운 심판의 대접을 쏟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 대접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 21절에서 말씀하신 “대환난”이라고 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환난기의 마지막 42개월 동안 일어날 일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일곱 심판 중에 네 가지는 애굽에 나타났던 열 가지 재앙과 같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유명한 성경학자들도 이것을 말씀 그대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심판 중 유브라데강이 마르고 개구리가 나오는 장면은 이스라엘 역사상에도 나타났던 일입니다. 개구리는 애굽에 내린 재앙의 하나였고, 홍해와 요단 강이 갈라져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유브라데강을 말리시면 동방에서 왕이 마른 땅으로 나오게 되는 일도 전혀 새로운 사건은 못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재앙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다면 이 무서운 심판도 쓰여진 말 그대로일 것이며 그보다 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심판에 대하여 하나씩 생각해 봅시다. 본문 1~2절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첫째 대접의 심판은 인간에게 나타난 종기 심판입니다.
이 첫째 대접은 인간들에게 나타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처입니다. 이것은 부스럼의 재앙입니다. 이 심판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누가 이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는 재앙을 당합니까?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한 사람”만이 이 헌데를 앓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놀라우신 은혜로 믿는 자들을 환난 시대 후반기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에 재앙이 내릴 때 고센 땅에 거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않은 것과도 같습니다.
둘째 대접의 심판은 바닷물이 피로 변하는 심판입니다.
본문 3절에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하였습니다. 이 짧은 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 이 땅에 나타나리라는 예견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나팔 심판 때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둘째 나팔로써 바다의 3분의 1을 피로 변하게 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둘째 대접은 바다 전체를 피로 변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표준판 성경 번역에는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더라”고 했습니다. 바다 전체가 썩어 그 안에 사는 생물 모두를 죽게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폐수 처리가 잘못되어서 공해로 말미암아 강의 고기나 오리떼가 죽은 모습을 TV에서 보신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 전체가 피로 변해 그 안에 서식하는 수족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어 피 위에 뜨게 되고 그것이 썩어 피와 더불어 냄새가 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무역선이 다닐 수 없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바다에 배가 다니기 어렵다면 당장 기름은 어떻게 공급하겠습니까? 기름이 없이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동차가 못 다니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공장이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고, 물건이 생산되지 못하게 되고, 전기가 부족하게 될 것이고, 사람이 거의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원시 사회로 돌아가 버리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사람은 문명한 생활을 하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단될 때 얼마나 불편합니까? 수세식 변소가 얼마나 깨끗하고 편합니까? 그러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 수세식 변소는 옛날 변소보다도 불편하고 더럽습니다. 바다의 물이 피로 변한다면 거기에서 생기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셋째 대접 심판은 강과 샘물이 피로 변하는 심판입니다.
본문 4절 이하의 말씀을 봅시다.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시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심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세 번째 대접은 두 번째 대접에 연속이 되어 왜 하나님이 이 일을 허락하셨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바다의 물을 피로 변하게 하신 하나님은 강과 샘물과 깊은 샘을 피로 변하게 하심으로 남아 있는 물의 근원을 멸하십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요사이 돈의 여유가 많은 사람은 몸을 보신하기 위해서 사슴의 피나 노루 피를 마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몸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피를 보약으로 먹습니다. 그런데 강과 샘이 모두가 피로 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서운 일입니다. 물이 피가 될 때 썩게 될 것이고, 썩은 피가 될 때 거기서 여러 가지 질병과 유행병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밥은 며칠 먹지 않아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은 하루만 마시지 못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근원을 통해서 물을 공급하시든가 다른 방법으로 주시지 않는 한 이 땅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찾느라 혼란과 소동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흥미롭게도 이 우주 안에서 행동하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을 수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천사는 물을 맡고 있습니다. 물이 피로 변할 때 이 천사는 이 무서운 이적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그토록 많은 천사들을 순교시켰으므로 자기가 행한 대로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환난 시대 초기에 흘린 성도들의 피를 되찾기 위해 그는 후반에 가서 모든 물의 근원을 피로 바꾸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살펴본 대로 계시록 6장에 기록된,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옛날부터 그때까지 당한 순교자들의 고난에 대한 보응인 것입니다.
넷째 대접 심판은 해의 강한 열기 심판입니다.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8~9절). 아침이면 틀림없이 동편에 떠서 저녁이면 서산에 지는 태양, 계절에 따라 인간에게 열과 빛을 제공해 주는 태양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생물에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환난기에 넷째 대접이 땅에 쏟아지면 사람들은 여태껏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는, 해에서 나온 강한 빛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지금 지구가 해와의 거리가 꼭 맞아서 여름에는 덥고, 봄에는 따뜻하고, 가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적도에 위치한 곳은 일년 내내 덥게 지냅니다. 반면에 북극이나 남극은 일년 내내 어름과 추위뿐입니다. 남극 탐험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보고를 들어보아도 거기는 사철 영하 40도의 추위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서식하는 물개나 펭귄이나 그밖에 여러 가지 생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햇빛이 너무 강해서 “큰 불로” 사람을 태우게 되는 일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때에 따라 직사광선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것은 밤이면 조금씩 이 세상의 사물이 식어가기 때문에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뜨거운 계절도 지나고 시원한 계절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모두가 꽁꽁 얼어붙는 겨울철이 있는가 하면, 3월 초순이 되면 틀림없이 해동이 되고, 4월이 되면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여름 한 철에는 더워서 심장병이나 일사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적지 아니합니다. 중동에 가서 건설 사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더위에 고생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환난 때에는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그때에는 물이 말라붙어 강바닥에서 나오는 열기로 더욱 지독하게 되어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갈증을 축일 물도 없는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되면 이 고통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세 가지 중 첫 번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9절). 이것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역과 적의를 나타내 주는 예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사람은 보통의 경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병이 난다든지, 실패를 한다든지, 고통이 심해지면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던 사람도 그 마음이 열리며 창조주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강퍅하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항하며 저주합니다. 이것 자체가 사실은 심판입니다.
이 심판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해 주고 있는 구절이 구약 말라기 선지자의 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1~2).
다섯째 대접 심판은 어두움입니다.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10~11절). 다섯째 대접의 심판이 어두움을 몰고 온다는 사실은 환난 때에 이 땅에 사는 반역의 무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냅니다. 넷째 대접 심판에서 나온 강한 열기에 이어서 이것은 인간의 육체에 평안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은 짐승의 보좌에만 내려 그의 나라가 어두움에 가득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본부 일대에만 내리는 특별한 심판입니다. 이 짐승이 앉은 보좌는 환난 때에 재건된 바벨론 성읍으로 세계 무역과 종교, 모든 악과 정치의 중심지입니다. 이 어두움이 얼마 동안 땅을 덮으리라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 재앙은 애굽에 내린 바 있는 아홉 번째 재앙의 재현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아모스서 5장 18절에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의 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나훔서 1장 6, 8절에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였습니다. 스바냐서 1장 15절에는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4절에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이와 같은 환난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은 어떠합니까? 10절에 “고통으로 혀를 깨문다”고 했습니다. 뜨거움으로부터 해방되자 절망적이고도 힘을 빼앗는 어두움 때문입니다. 어두움처럼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앞을 보지 못하는 이처럼 불쌍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심판은 너무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는커녕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훼방할 뿐만 아니라 자기 길에서 떠나려 하지 아니합니다.
인간이 주님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철학적인 회의나 알 수 없는 물질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의 완고함과 죄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재앙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한 사람에게 비가 내리면 비옥한 땅이 되어 열매를 맺게 하지만 굳은 땅에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굳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되면 큰일입니다.
여섯째 대접 심판은 유브라데강이 마르는 심판입니다.
본문 12~16절을 보세요.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섯째 대접의 심판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 하나는 유브라데강물이 말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전쟁을 준비하게 하며 다른 하나는 세상의 거역하는 군대들이 주를 반대하러 므깃도 골짜기에 집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강 중에 유명한 유브라데강은 인간 역사의 여명기부터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자연적인 경계가 되어 왔습니다. 서쪽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휘장 속에 가리워 있는 존재였지만 언제나 그들은 숫자적으로도 서방 사람들을 앞질러 왔습니다.
유브라데강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강은 크고 넓고 깊었기 때문에 세상 나라 군대에 대항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경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강이 로마제국의 동쪽 경계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대접의 심판은 이 강을 말려서 동방으로부터 오는 왕의 길을 예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왕들은 적그리스도 편에 가담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대접의 두 번째 부분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온 천하 임금들 앞에 이적을 보임으로 그들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싸움”을 준비하도록 속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은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세상 군대들이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벌이는 최종 격전입니다.이와 같은 격전 속에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격려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른 말로 하면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일곱째 대접 심판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입니다.
일곱째 대접을 쏟을 때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큰 음성이 들립니다. “되었다(끝났도다).” 이것은 환난 시대의 고통이 끝나고 하나님의 진노가 끝난 것을 알리는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아주 무서운 지진이었습니다. “사람이 땅에 있어 이렇게 큰 지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 그러니까 사람의 몸무게만한(135파운드) 우박이 인간에게 내려옵니다. 그런 우박이 이 땅에 내리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상상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큰 재앙 속에서도 하나님께 거역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환난 시대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을 섬기는 대신에 적그리스도를 섬긴 탓으로 온 것입니다.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는 커녕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절하였습니다. 말로써 경배하는 대신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인간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환난 시대의 사람을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영원히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이 들어오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죄를 회개할 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강퍅한 자리에 있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심판을 보여주셨습니까? 경고입니다. 미리 보고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돌아서면 살고 악을 향해 그대로 나아가면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고 바른 길을 감으로 예비하신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주님을 영접합시다.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심판해서 멸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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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