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에 힘 보탠다고 가정 파탄? 우리 동네 한 누님의 일갈(一喝) “에라이 못난 놈아. 부모님의 밥상을 이고 다니는 게 뭐가 부끄럽나? 그러고도 남자라 할래?” 무학산(회원)
<함부로 쓴 기사로 남의 가정이 파탄나겠다> 다음은 조선일보의 한 기사 제목이다.《구인난 자영업자들 “알바 못 구해 가족과 일하다 가정 파탄날 판”》요사이 어린 사람들의 행실이 더러운 것과 이따위 기사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국민의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농사는 온 가족이 달려들어 짓는 것이지 아버지 혼자서 짓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느 자식 하나 불평하지는 않았고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집에서 장사를 해도 그렇다. 온가족이 그 장사에 매달렸던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털끝만한 거짓도 없고 보탠 것도 없는 사실상의 이야기이다. 지금도 동네 누나 한 명이 생각난다. 그 누나는 마산여자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마산여고는 그 당시 전국 7대 명문 여고였고 김영삼 대통령의 부인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모가 마산 부림시장 입구에서 건어물을 파는 노점상을 했다. 이 여학생이 일요일에는 교복을 입은 채로 십리길이나 되는 길을 부모의 점심밥 저녁밥을 머리에 이고 가져다 주었다. 평일에는 하교 길에 한쪽 손에는 책가방을 든 채로, 아버지 어머니가 먹었던 밥상을 이고 집에 왔다. 그런 모습으로 동네에 들어서면 중학교에 다니던 우리는 “누나. 그런 차림으로 시내를 다니면 부끄럽지 않소?”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러면 그 누나가 “에라이 못난 놈아. 부모님의 밥상을 이고 다니는 게 뭐가 부끄럽나? 그러고도 남자라 할래?” 하면서 우리를 나무라곤 했다. 그렇다. 성격이 활달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부도 못하고 못난 놈이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못났기에 부끄럼을 타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글을 읽으면 부모가 오랜 병 끝에 위독한 순간을 맞아 자기 손가락을 칼로 베어 흐르는 피를 부모의 입에 넣어 주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그렇게 해서인지 부모가 하루 이틀 더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저런 일이 놀라운 일도 아니고 귀한 일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부모가 산다면 누가 그렇게 아니 하겠나. 그리고 양반이 괜히 양반이었겠나. 상놈이 못하는 일을 하니까 양반이었을 것이다. 잠시 알바를 못 구해 마누라와 딸이 아버지의 가게 일을 거드는 것을 갖고 가정이 파탄날 지경이란다 그 장사는 누구를 위해 하는가? 아버지 혼자서 호의호식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한데 가족의 호구지책에 힘을 조금 보태는 것을 갖고 가정이 파탄날 지경이라니? 그런 일에 파탄이 날 가정이라면 다른 사소한 일에도 파탄이 난다. 그러니 저런 가정은 하루라도 속히 파탄이 나버리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나. 저 기사를 쓴 기자의 가정부터 그럴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