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4.3.1(금)12;30-16;30
★장소;종로구 탑골공원, 운현궁
★참가; 여의도포럼 회원 12명을 포함하여 28명
-탑골공원-
바야흐로 봄이다. 봄이 되면 누구나 할 것없이 신바람난다. 3월은 독립을 위해 뜻을 굽히지 않고 투쟁한 애국지사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여의도포럼은 3.1절 기념일을 맞이하여 탑골공원(파고다공원)을 탐방한 후 3.1절 기념식에 참가하는데 있다. 모임장소는 종로3가역 15번 출입구 부근 나주곰탕집(12시30분)이다. 여의도포럼 회원 12명을 포함하여 동기생 28명이 참석하였다.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웃음꽃을 피우면서 갈비탕으로 식보한 후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약 5분 남짓 거리다.
탑골공원은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조선왕조때에는 원각사가 있던 곳을 1897년 대한제국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탑골공원 삼일문을 통과하면 정면 소나무숲 사이로 팔각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유서깊은 곳이다.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구청 주관으로 행사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팔각정에 이르는 도로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있었으며, 도로 양 옆으로 조선시대 깃발을 들고 도열연습을 하고 있었다. 행사 준비로 먼발치에서 팔각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상황을 재현해 본다. 민족대표 33인은 당초 독립선언서를 탑골공원에서 오후 2시경에 거행키로 했다가 흥분한 학생과 시민들이 일경과 맞부딪치게 되면 희생자가 많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인근 태화관 별실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행하였다. 비밀조직을 통해 탑골공원으로 모인 4천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은 예정시간이 되어도 민족대표들이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혼란에 빠졌다. 오후 2시경 희색 중절모에 흰두루마기를 입은 한 청년(정재용,33세)이 팔각정 단상에 오르며
호주머니 속에서 선언서를 꺼내 큰소리로 거침없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자 군중들은 감격해 함성으로 장내를 진동시켰고 만세소리를 높이 외쳤다. 약 10분만에 38자 46행 8소절의 본문과 공약 3장을 일사천리로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했다. 학생들은 계속 모자를 벗어 하늘에 날렸고 서로 부등켜 안으며 독립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자칫 3.1 혁명은 태화관 선언으로 그쳤는지도 모른다. 이렇게하여 3.1혁명의 횃불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해외거주 동포사회에서도 적극 동참하였다.
3.1운동은 침체한 독립운동에 불을 지피고 이전의 투쟁세력을 모아 체계적인 독립운동으로 변화시킨 기점이었다. 임정수립(1919.4.11)의 계기가 되었고 독립군의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3.1운동은 민족 모두가 대한독립이라는 하나의 염원과 목표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이다. 3.1운동은 민족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결코 굴하지않고 당당히 맞선 투쟁의 역사라는 사실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독립군의 희생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고 그 고귀한 희생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호국영령들께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삼일절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1886-1976)은 해방후 정부에서 3.1절 기념행사 때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정재용은 노후에 신앙과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1976년 12월31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정부에서 건국포장, 애국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3.1절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105년전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3.1절 기념 행사장으로 향한다.
탑골공원 밖 낙원상가 방향 도로 한편에 좌석의자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행사에 참가한 그룹은 육사, 해사 그리고 서울지역 고등학교 등이다. 행사는 오후 2시에 거행하였다. 선열들의 고귀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그 넋을 위로하는 거룩한 기념식이다. 식순은 개회선언,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 순국선열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독립선언서 낭독, 기념사, 시낭송(광야/이육사), 전군연합 성명서, 삼일절 노래, 만세삼창, 폐회선언 순으로 1시간 20분간 진행하였다. 살을 에이는 듯한 삭풍이 불어도 자세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면서 자리를 굳게 지켰다.
노병들이 왜 이렇게 구국활동에 발벗고 나서야만 하는가. 답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미래세대들에게 자유의 가치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종북좌파들이 아직도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자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겼다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조국은 본인 스스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얘기하고 있는가 하면 이재명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국정원 및 30대재벌 해체시켜야 한다는 등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으며,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명령을 내린 통진당 세력들을 끌어모아 의회로 진출시키려 하고있다.
정말 꿈찍하고 미친짓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매우 중요해지는 이유다. 국민의힘이 과반수 이상 반드시 승리해서 더불어민주당 좌파들이 헌법을 제 입맛대로 뜯어 고친 것을 원래대로 뒤돌려 놓아야 한다. 예를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검찰 수사권 축소, 문재인 때 설립한 공수처 등이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그리고 튼튼한 국방과 경제력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면서 나라가 번영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좌파세력들과는 함께 걸어갈 수 없다.
이자들은 이땅에서 살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자유가 없는 북한공산사회주의체제하에서 살면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바짝 차릴지 모른다. 이자들이 있는 한 대열구국동지회 활동은 연연히 이어갈 것이다. 졸수 가까이 되는 육사 17기 선배님 17명을 비롯하여 39기에 이르기까지 400여명이 동참하였다. 17기 선배님은 10년 후 우리들의 미래 모습이었다. 정말 존경스럽고 자랑스런 선배님이다. 기념행사를 종료하고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2,6km)하는 대신 해설사와 함께 운현궁을 둘러보았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과 그의 부인 민씨가 기거했던 사가이다. 나는 집에서 호출하여 운현궁은 생략하였다. 105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독립시키겠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헌신한 그 기상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동기생들과 함께 항일운동 유적지를 둘러보고 3.1절 기념행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가슴이 뿌듯하였다. 여의도포럼 브라보!
종로3가역 15번출구 부근 나주곰탕집에서 오찬(갈비탕)
탑골공원 삼일문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종로구청 주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오후 2시에 거행
105주년 3.1절 기념행사 준비
대열구국동지회 탑골공원 입장
대열구국동지회 회장(전인구) '삼일운동 역사 설명'
민족 33인의 대표 손병희 선생 동상
독립선언서
3.1정신 찬양비
3.1운동을 기념한 독립운동 부조판
원각사지 십층석탑(유리각으로 보존)은 구한말까지 한양성 어디서도 보이던 전통 마천루였다,
대원각사비(보물제3호), 조선 성종 2년(1471)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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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념 행사장
자랑스런 대열구국동지회 회원들
해설사와 함께 운현궁 답사(여의도포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