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가 동갑내기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처음 만난 것
은 아홉 살 때였다. 두 집안은 피렌체의 명문가였는데, 단테는 부모와 함께 베아트리체의 아버지가
주최한 성대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처음으로 베아트리체를 보게 되었다. 그 한 번의 만남으로 베아트
리체는 단테가 죽는 날까지 가슴속 깊은 곳에 불멸의 연인으로 남아 샘솟는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다.
단테는 시와 산문이 함께 수록된 저서 「새로운 삶」에서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베아트리체는 품위 있게 톤을 낮춘 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나더니 심하
게 떨리기 시작했다. 내 심장의 가장 은밀한 방에 숨어 있던 생명의 기운이 격렬하게 떨려서 모세혈
관까지 고동칠 정도였다.’
이후 단테는 먼발치에서라도 베아트리체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 주변을 맴돌았고, 그녀가 자주 지나
다니는 길목을 천천히 걷기도 했다. 기다림은 9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단테는 멀리서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나타나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심장뿐만 아니라 온 전신이 함께 후들거
렸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베아트리체가 낯익은 두 부인과 함께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단테의 심장
은 점점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매일 보는 사람에게 하듯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지나쳐 갔다.
‘너무나 고결한 자태의 인사여서 신의 축복을 받는 듯했다.’
역시 「새로운 삶」에 회상해놓은 구절이다. 그러나 황홀경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
서 꾼 꿈은 정반대였다. 사랑의 신이 기쁨에 찬 미소를 띤 채 단테에게 다가왔다. 사랑의 신은 한 팔
에는 낮에 보았던 베아트리체를 안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불타는 단테의 심장을 들고 있었다. 신은
불타는 단테의 심장을 베아트리체에게 먹으라며 주었고, 베아트리체는 두려운 표정으로 단테를 바라
보며 그 심장을 먹었다. 베아트리체가 단테의 심장을 다 먹자 사랑의 신은 그녀를 안고 하늘로 올라
가버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단테는 여전히 베아트리체가 나타날 거리를 배회하며 그녀를 기다렸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가벼운 인사 한 마디였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향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하필 그 장면을 목격한 이웃 부인이 심하게 과장
하여 베아트리체에게 전해주었다. 며칠 뒤, 단테가 그처럼 기다리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멀리서 나
타났다. 단테는 이번에도 걸음을 멈춘 채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지만, 좋지 않은 소문을 들은 베
아트리체는 단테를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그날 밤 나는 매 맞은 어린아이처럼 울고 또 울었다.’
베아트리체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단테는 시를 썼다. 진심을 담은 시였다. 베아트리체만 알아볼 수
있도록 은밀하게. 게다가 그 시조차 직접 전해주지 않고 마침 출간하는 시집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그 시를 봤는지 못 봤는지,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렸다. 그리고는 단테의 쓰라린 실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스물네 살에 베아트리체는 콜레라에 걸려 요절했다.
‘내 여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후, 나는 살아서도 죽어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명화독서」에서 저자 문소영이 빼먹은 얘기가 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짝사랑과 상관없
이 당시 피렌체의 관례에 따라 미리 언약이 되어 있는 명문가의 자제와 결혼했을 뿐이었다. 단테 역
시 스무 살에 명문가의 딸인 젬마와 결혼했었다. 문소영은 이 내용을 생략함으로써 단테와 베아트리
체의 러브스토리를 은근슬쩍 신비화하고 있다.
관능은 20대에 절정을 이룬다.
저도 모르게 관능의 극치를 드러낸 몸짓(사진 위)
단테는 불후의 명작인 『신곡』의 「천국」 편을 오직 베아트리체를 위해 썼다. 단테는 그녀를 아름
다움의 화신으로 그렸다. 「천국」에서 베아트리체는 인간이라기보다 성스러운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래서 베아트리체를 실존인물이 아니라 상상속의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단테 연구가들도 있다. 다만
베아트리체가 실제로 그처럼 아름답고 숭고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죽은 뒤 단테가 이상적인 여인
으로 미화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가들은 여전히 베아트리체를 궁극의 미녀로
그리고 있다.
분명 베아트리체보다 더 아름다운 배우 박민영
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여러 소설이나 수필에서 베아트리체를 매우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인이라고 예찬한 글을 읽어왔다. 그래서 이 냉엄한 사회비평가인 단테에게도 그런 로맨틱한 면이
있었던가 싶어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구체적인 러브스토리는 「명화독
서」가 처음이다. 단테의 순애보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우리
나라에도 망부석 전설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사랑얘기가 널려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낭군 중종을
그리워하며 인왕산 중턱에 다홍치마를 펼쳐놓았던 ‘7일의 왕비’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전설도 서구인
들은 상상도 못할 눈물겨운 순애보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우
리의 아름답고 전석적인 사랑얘기를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 데 좀 더 많은 작가들이 힘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한수회 105찬 산행, 처음 가보는 수리산 모임의 장소까지가 전철로 1시간30분이나 소요되는 먼거리 입니다.
옛처럼이 아닌 힘든 산행이 되겠지만 함께 얘기 나누며 근황을 묻는 소통이 늘 좋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