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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일초
▣ 수월스님 전기 ▣
송림산에서
수월이 여덟 해 동안 머물다
열반에 든 산의 이름은 송림산(松林山)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이 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차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큰 솔 몇 그루와 이제 막 자란지 몇 해 안된 잔소나무가
옛 절터를 감싸안고 있을 뿐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다.
높아야 이백미터 될까 말까 한 작은 산이다.
그러나 이 산 위에 오르면 남쪽의 백두산과
북쪽의 병행산맥이 한껏 일으켜놓은 너른 언덕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웅혼하고 장중한 땅 힘을 느낄 수 있다.
참으로 이 풍경이란 살아 출렁이는 한 폭의 대비주의 바다
바로 그것이다.
수월은 소나무가 많은 산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살던 천장암,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백두산은
모두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이 송림산은 수월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월은 일이 없는 시간이면 늘 법당 앞에서
오른쪽으로 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대비주삼매에 들곤 했다고 한다.
이 삼매바위 위쪽에는 지팡이로 대충 써놓은 듯한
"松林山"이라는 주먹 만한 글씨가 새겨져있다.
돌이 단단하지 않고 깊이 새기지 않아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잘 알아 볼 수 없다.
바위 바로 곁에는 한 번도 손질해주지 않은
배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가지로 하늘을 덮어
임자 잃은 바위 위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 배나무 또한 수월이 심어 가꾼 나무였을 것이니
그 나이가 못 되어도 일흔은 되었을 것이다.
바위는 앉아 있는 황소만하고 엎어놓은 야구장갑처럼 생겼는데
그 엄지와 검지가 갈라지는 곳이 약간 앞으로 튀어나와
몸집이 작은사람이 가부좌하고 앉기에 딱 알맞게 되어 있다.
수월의 키가 백육십 센티미터쯤이었다고 하니
수월이 참선하는 자리로는 안성맞춤 이었을 터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수월이 앉아서 도를 닦던 엉덩이 자국이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지나친 상상이 아닐까.
아름드리 소나무가 꽉 찬 이 산에는
가지가지 꽃나무가 들어차고 숱한 날짐승이며 산짐승들이 모여 살았다 한다.
특히 이 산에는 호랑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어떤 호랑이는 법당 바로 곁에 있는 소나무 아래 살면서
수월과 아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산에 사는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경우는 없었다고 하니
수월이 머문 뒤로는 송림산도 해물지심이 사라져버린
자비도량이 되었으리라.
송림산은 흑룡강 부근에서 수백리를 내리 달려오던 산줄기가
남쪽을 향해 힘차게 맺힌 산인데 다시 이 산 봉우리에서
양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두 손으로 아이를 감싸듯
산기슭에 있는 사오백 평쯤 되어 보이는 화엄사 터를 슬쩍 감싸안고 있다.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자리다.
화엄사 터 양쪽으로는 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산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던 옛날에는
지금보다 물이 훨씬 맑고 더 깨끗했을 것이다.
수월은 절 왼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수월은 이 개울물에 몸을 씻고 이 개울가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개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수월이 심었음직한
보리수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고
생식거리로 잘 먹는 느릅나무며 씨사과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먹을거리는 대충 생식으로 때우고 살았다는
수월의 질박하고 자연스런 끼니 생활을
마치 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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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웅혼하고 장중한 땅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