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서북쪽 끄트머리에는 고잔지(高山寺)라는 오래된 절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절은 한국과 매우 인연이 깊은 곳이라, 한국 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승 원효와 의상의 일화가 담겨있는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이 소장돼 있다. 그리고 의상을 사랑한 선묘라는 여인이 보살로 모셔져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
화엄종조사회전 중 일부. 용이 된 선묘가 의상을 실은 배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
고구려∙백제∙신라의 국경지대에 전쟁이 끊이질 않던 시절, 진리에 대한 일념으로 목숨을 건 당 유학길에 오른 두 승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밤 무덤가에서 일박을 한 뒤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물이 해골 물인 줄 모르고 맛있게 먹은 원효가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는 진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원효는 그 길로 신라로 돌아가 일승(一乘)사상을 정립해, 동아시아 불교의 최대난제인 중관과 유식의 공․유(空有) 대립과 갈등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원효와 함께 길을 나선 신라의 천재승려 의상은 원효의 중도 포기와 상관없이 자신의 중국유학을 강행했다. 원효의 깨달음을 눈앞에서 목격했지만, 자신의 열정을 포기하기에 의상은 너무 젊었다. 홀로 유학을 강행한 의상의 꼿꼿한 기개와 열정은 중국땅에서 더욱 버거운 난관을 만나게 된다.
의상은 그 길로 중국 등주땅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잠시 한 상인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 집에는 선묘라는 단아하고 아리따운 규수가 있었다.
의상의 청아하고 도도한 모습을 본 선묘는 그가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사랑에 빠졌다. 의상 또한 그녀의 아름답고 고상한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의상은 선묘에게 “나는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며 신명은 그 다음으로 했다”는 말을 남기고 종남산을 향해 떠났다. 의상의 굳은 의지를 본 선묘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보살도를 성취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후 지상사로 올라간 의상은 지엄대사의 문하에서 일승법계(一乘法界)를 성취하였고, 지엄의 수제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 선묘는 의상이 신라로 돌아갈 때 바칠 법의와 발우를 담은 법구 상자를 정성스럽게 마련하며 의상에 대한 사모의 정을 보살에 대한 서원으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그 세월이 무려 10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묘는 의상이 이미 신라를 향해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의상이 갑작스레 신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치기 위해 10만대군을 파병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비밀리에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인들에게 안부를 전할 틈도 없이 부랴부랴 귀국길에 오른 의상. 그를 좇아 바닷가로 달려간 선묘는 의상을 실은 배가 저 먼 바다를 향해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선묘는 자신의 법구상자를 바다에 던졌다. 그러자 법구 상자가 파도를 가르고 의상의 품에 가 닿는 것이 아닌가. 이를 바라보던 선묘는 “저는 내세를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의 몸으로 법사의 대원을 돕는 몸이 되게 하소서”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에 뛰어들었고, 용으로 변하여 의상의 귀국길을 수호했다.
|
화엄종조사회전 권3. 의상이 떠난 바다를 향해 선묘가 몸을 던지고 있다. |
이상의 이야기는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된 두루마리 그림을 통해 전해져왔다.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화엄종조사회전’이라는 긴 두루마리 그림에는 원효의 해골바가지 이야기, 의상의 유학길, 선묘와의 만남 등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삼국유사나 해동고승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전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그림들 덕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선묘의 모습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조상이 소장돼 있는데, 이 또한 일본의 국보이다.
원효와 의상의 사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이 절을 중창한 묘에(明惠, 1173〜1232)라는 스님은 신라 화엄사상에 깊이 심취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묘에는 호넨, 신란 등에 의해 정
토신앙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시절, 석가모니 신앙을 강조한 구불교 개혁파로 꼽힌다.
묘에는 호넨의 『선택본원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이 간행되자 그 가르침이 석가모니 본래의 가르침을 저버렸다고 크게 분노하여 『최사륜(摧邪輪)』(삿됨을 꺾는 수레바퀴라는 뜻)을 지어 비판했다.
묘에의 입장에서 보리심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며 보리심이 있고서야 비로소, 불도 수행을 할 수 있게 되는 불교의 근본이었다. 그런데 호넨은 보리심이 없어도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만 하면 구제될 수 있다고 했으니, 묘에의 눈에 비친 호넨의 주장은 삿된 선동에 불과했던 것이다.
묘에는 불도를 수행하는 자는 석가모니의 근본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화엄사상에 깊이 심취했는데, 그 중에서도 원효와 의상의 화엄을 깊이 연구했다.
묘에는 의상과 원효의 일대기를 길다란 그림첩으로 만들었다. 이 화첩의 글은 묘에가 직접 썼고, 그림은 묘에의 벗인 혜일방성인(惠日房成忍)이 그렸다는 것이 일본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의상을 짝사랑한 설화 속 인물에 불과한 선묘라는 여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보살, 나아가 신(神)으로까지 추앙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
이는 묘에 스님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묘에 스님이 고잔지를 중창할 당시 일본에서는 ‘조큐의 난’이라는 전란이 발생했다.
조큐의 난이란 1221년 고토바 상황 등이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당시 최고 권력자인 호조 요시토기(北條義時)를 중심으로 한 막부군에게 진압된 사건을 말한다.
이때 고토바 상황에게 동조한 이들이 막부의 처벌을 피해 교토 인근의 산간으로 도망쳤고,묘에 스님의 절로 찾아들었다. 가마쿠라 막부의 처벌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스님은 이들을 자신의 절에 숨겨주었다. 스님은 이로 인해 결국 막부의 교토 거점인 육바라로 끌려갔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도 도망자들을 감싸주는 스님의 모습에 막부의 권력자 호조 야스토기(北條泰時)는 큰 감복을 받아 스님을 무죄로 풀어주었다.
그런데 묘에 스님에게로 온 도망자 중에는 조큐의 난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묘에 스님이 상당한 미남이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온 여인들이 스님을 연모하는 정을 주체하지 못하자, 보다 못한 묘에 스님은 자신의 귀를 잘라 그들의 애심을 물리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스님이 선묘를 보살로 추앙한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의상 스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원력으로 승화시킨 선묘처럼 그대들도 수행정진하여 보살의 도를 이루라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선묘를 여인들의 표상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여인들을 위해 고잔지 인근에 선묘니사라는 절을 세우고 이곳에 선묘의 조각상을 만들어 안치했다.
|
고산지에 있는 부처님의 발자국. 묘에 스님은 이 절의 본존을 석가모니불로 삼고 석가모니 신앙을 강조했다. |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우 훌륭한 여인이 될 수도, 너무도 불쌍한 여인이 될 수도 있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로, 절망을 삼키며 십여년을 지새운, 그리고 끝내는 사랑하는 남자가 떠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 가련한 중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묘에는 선묘의 삶 속에서 인내와 희생, 그리고 불국토를 향한 원력을 보았다.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애욕은 포기할 줄 아는 희생이 바로 그녀의 사랑을 완성시켰다는 이야기다.
묘에는 의상도의 말미 화기에 “재가의 애심(愛心)은 용맹한 신심(信心)을 일으켰다. 공경에 의하여 사랑을 이루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날마다 좋은날^^.....인드라망 부처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날마다 좋은날^^.....인드라망 부처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날마다 좋은날^^.....인드라망 부처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