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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스고이(무서워), 오소레산!"
오소레산 보다이지(菩提寺)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8명의 대원. 정형 상철 희용 갑표 태성 동규 병래 영수.
이튿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호텔에 차려진 조식 뷔페를 보니 종류가 많지 않은데도 알차게 구성돼 있고 하나같이 입맛에 맞습니다. 흰 쌀밥과 카레까지 있으니 가정식 백반도 부럽지 않네요. 스위스 원정 때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누룽지를 끓여 먹던 태성이도 흡족한 표정입니다.
여기서 하루 더 묵어야 하니 가볍게 행장을 꾸리고 길을 나섭니다. 도끼 모양으로 생긴 아오모리 북단 시모키타(下北) 반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빙 돌았다가 역방향으로 돌아나올 예정입니다.
아오모리 지도. 오른쪽 도끼 모양이 시모키타 반도, 왼쪽은 쓰가루 반도.
얼마 가지 않아 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받습니다. 1호차에 탄 태성 총무가 2호차 통행료까지 함께 지불합니다. 그 모양을 본 병래가 “통큰 형님이 기마에(氣前·선심) 쓰는 것처럼 멋져 보인다”고 감탄합니다. 태성이가 “부러우면 너도 다음에 해봐”라고 말하니 “그럴 것까지는 없고…”라며 금세 꼬리를 내립니다.
촬영 담당 민병래 대원이 모처럼 피사체가 됐다. 오소레산 보다이지를 배경으로 서 있다.
오늘의 첫 행선지는 도끼자루를 따라가다가 나오는 오소레산(恐山)입니다. 산 이름 자체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귀기(鬼氣)가 깃든 산이어서 일본 3대 영산(靈山)의 하나로 꼽힌답니다.
한 맹인 스님이 젊은 스님들을 데리고 오소레산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망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많은 이가 이름을 적어넣은 작은 돌로 추모탑을 쌓아두었습니다. 맹인 스님은 젊은 스님들에게 “여기 쌓아놓은 돌을 절대 갖고 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 스님은 반발심이 일어 속으로 “그까짓 작은 돌이 무슨 대수일까”라고 생각하며 작은 돌을 하나 주워 품에 넣었습니다.
사건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맹인 스님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여자 귀신이 무서운 모습으로 차를 뒤쫓아오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모두 뒤를 돌아보았지만 젊은 스님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맹인 스님의 얼굴은 점점 더 구겨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를 쫓아오는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냐?”
돌을 집어온 스님은 “설마 이것 때문에?”라고 반신반의하며 돌을 꺼내보았더니 뒷면에 여자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스님은 아무도 몰래 차창 밖으로 돌을 던져 버렸습니다. 돌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속으로 “이젠 괜찮겠지”라고 여기고 있는데, 맹인 스님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어떡하나! 이젠 그 여자 귀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달려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젊은 스님은 돌을 주워왔다가 창밖으로 버린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맹인 스님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를 돌려서 돌을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놓았으면 그나마 성난 원혼을 달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돌이 깨졌으니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네.” 그로부터 얼마 후 젊은 스님은 고열에 시달리다 맥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옛 전설만이 아니라 최근에도 으스스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오소레산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심령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자주 찾는 ‘심령 스팟’으로도 이름난 곳이라고 합니다.
오소레산 보다이지 입구에 봉안된 6구의 지장보살상.
산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걷는 코스는 보다이지(菩提寺)란 절을 중심으로 호숫가를 돌고 야트막한 산자락을 거쳐 돌아오는 길입니다. 거리로는 2㎞가 채 안 됩니다. 귀신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절 입구 왼쪽에 지장보살 좌상 여섯 구가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다 구제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이른바 지옥의 신입니다. 보통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육환장(六環杖)을 손에 든 채 염라대왕을 포함한 시왕(十王)을 거느리고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 등의 한가운데 앉아 있죠. 이곳의 지장보살은 수인(手印·부처나 보살상의 손 모양)과 지물(持物·부처나 보삻상이 들고 있는 물건)이 각기 달라 인상적입니다.
여기도 인당 500엔의 입장료가 비싸다 싶지만 불국사와 석굴암 입장료가 5천 원씩이고 법주사가 4천 원인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오소레산 보다이지에 늘어선 공양탑.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한 것이다.
절 입구로 들어선 뒤 금강역사 두 명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지키고 있는 금강문을 지나니 왼쪽 언덕에 즐비한 공양탑이 보입니다. 큰법당(주불전)보다는 호기심에 발길이 그쪽으로 먼저 향합니다. 나무를 깎아 세워놓은 공양탑이 늘어선 가운데 억새가 휘날립니다. 언덕 꼭대기에는 지장보살 입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관람로를 역순으로 돌다 보니 작은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발아래로는 우소리코(宇曾利湖)가 펼쳐져 있습니다. ‘오지여래(五智如來)’라는 이름이 적힌 불상 다섯 구가 두건과 가사를 걸친 채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불상 아래 누군가 바친 꽃다발이 있고 동전이 어지럽게 놓여 있습니다. 바람개비도 꽂혀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한 구가 더 있습니다. 함께 좌대에 모셔지지 못한 사연이 궁금합니다.
오지여래라고 명명된 꼬마 불상에 두건과 가사가 걸쳐져 있다. 그 옆에는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다.
오소레산 곳곳에는 화려한 빛깔의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바람으로 나타나 산 사람이 느낄 수 있다고 하죠.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양이 윤회를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절 입구 상점에 소원패(에마·繪馬) 말고도 바람개비를 많이 팔고 있더군요.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2003년 발표한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2001년 지하철의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의인 이수현 씨의 추모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2006년 개봉)에 쓰였고, 2009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취입해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널리 불렸습니다.
“플라스틱과 비닐로 만든 바람개비가 멋진 자연 경관을 망치고 있다”고 혀를 차는 병래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니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돌무더기 사이로 연기가 피어나고 있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호수로 가는 길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그 틈으로 유황 연기가 솟아납니다. 그앞에는 ‘수라왕지옥(修羅王地獄)’, ‘중죄지옥(重罪地獄)’, ‘금굴지옥(金堀地獄)’, ‘도박지옥(賭博地獄)’, ‘염옥지옥(鹽玉地獄)’, ‘무간지옥(無間地獄)’ 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큰 죄를 지은 것 없는 저도 왠지 모르게, 아니 무수히 많은 죄를 지은 탓인지 섬뜩한 기분이 듭니다. 가만히 속으로 지장보살을 불러봅니다. “지장보살님,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유황 연기를 뿜어내는 돌무더기에 중죄지옥이라고 적힌 나무패가 꽂혀 있다.
우소리코는 화산 분출로 생긴 칼데라호입니다. 화산석 틈으로 유황 연기를 뿜어내는 지옥과 대비해 극락으로도 불립니다. 물은 pH 3.5의 강산성인데도 황어란 물고기가 살고 있어 연구 대상이라고 합니다. 물은 맑지만 물가에는 유황 성분이 녹아 있어 누런 거품이 떠 있습니다.
희용 대장이 우소리코 수면을 응시하고 있다. 노란 유황 거품이 호수 가장자리에 떠 있고 백사장에도 묻어 있다.
병래가 우리더러 “호수를 배경으로 서봐. 일렬로 서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선은 각자 다른 데를 보고”라고 말하며 셔터를 누릅니다. 저마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합니다. 동규가 “BTN 같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인지 물으니 방탄소년단 BTS가 아니라 ‘방탕한 노년들’, 즉 ‘방탕노년단’의 영문약자라는군요. 글쎄요. 노년까진 아니고 방탕중년단, BTJ쯤 될 것 같습니다.
방탄소년단을 연상케 하는 7명의 방탕중년단이 우소리코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몇 개의 사당과 천수관음상, 산 중턱의 부동명왕(不動明王)상을 보고 난 뒤 본전인 지장전을 참배하려고 했더니 법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해놓았습니다.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눈으로 스캔하고 밖으로 향했습니다. 법당 앞에 양쪽으로 들어선 두 채의 목조 건물은 특이하게도 목욕탕입니다. 유황온천이라고 하는데 여름이라면 몰라도 여기서 목욕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호기심 많은 정형 대원이 유황 성분이 녹아 있는 실개천에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보고 있다.
제 나름대로 정리해본 일본 절과 한국 절의 차이입니다.
1. 한국 절은 대부분 산에 있는데 일본 절은 대부분 평지에 있다. (우리도 고려 이전에는 도시에도 절이 많았다가 조선시대 들어 대부분 없어졌습니다)
2. 한국 절은 수행과 예불의 공간인데 일본 절은 망자 축원과 소원 빌기가 중심이다. 일본 절에서는 법당 안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하기 어렵다. (한국 절에서도 망자 축원과 소원 빌기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3. 한국은 비구승이 주류인데 일본은 대처승이 주류다.
4. 한국의 전통사찰은 모두 조계종 소유의 공찰(公刹)인데 일본 절은 전통사찰이라도 대부분 개인, 혹은 가문의 소유다.
5. 한국은 돌탑이 많은데 일본은 목탑이 많다. (중국은 벽돌을 구워 쌓은 전탑이 많습니다)
6. 한국 절의 전각에는 단청을 입히는데 일본은 단청을 하지 않거나 단색으로만 칠한다.
이밖에도 불상 모습이나 승복 등도 서로 다릅니다. 전각의 기와와 처마와 창살 등도 구별되는데, 이건 한옥과일본식 전통 목조가옥의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오소레산을 산책하는 도중 병래가 태성이에게 사진 촬영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산책과 참배를 마치고 절 앞의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성의 있게 주문을 받습니다. 비단 서비스업 종사자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짜증내지 않고 어떻게든 소통하려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어 실력은 우리가 일본보다 나을지 몰라도 소통하려는 자세만큼은 일본인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도 어제 점심처럼 메뉴는 라면, 우동, 소바가 고작입니다. 오뎅은 없는 대신 카레라이스가 있더군요. 공기밥도 따로 시킬 수 있는데 김치나 단무지가 없어 아쉽습니다. 다 먹고 나도 허전한 기분입니다.
혼슈 최북단 오마자키에서 쓰가루 해협을 등지고 선 영수 대원. 등대 너머로 홋카이도가 보인다.
다음 행선지는 일본 혼슈의 최북단 오마자키(大間崎)입니다. 도낏자루 꼭대기죠. 시원스레 뻗은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더 달리니 바다가 나타납니다. 쓰가루(津輕) 해협 너머로 홋카이도(北海道)가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건너편 하코다테(函館)와의 거리는 불과 17.5㎞입니다.
혼슈 최북단 석탑 옆에 선 희용 대장. 꼭대기에 갈매기가 않아 있다.
전망공원에는 최북단 표석과 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닥에는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혼슈 섬의 동서남북 땅끝마을, 일본 전체 영토의 사방 땅끝마을이 모두 표시돼 있습니다.
일본 영토의 동서남북 땅끝 지점을 표시한 지도. 그림자의 주인공은 희용 대장과 정형 대원이다.
이곳은 참치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아오모리 최북단 오마 항의 어선이 낚은 참치는 ‘오마 마구로(大間鮪)’라고 해서 특별히 값을 더 쳐준답니다. 오마 마구로는 ‘도쿄(東京)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쓰키지(築地) 수산시장의 신년 첫 경매에서 늘 최고가로 낙찰돼 ‘참치의 지존’으로 꼽힙니다. 사상 최고가는 2013년 19억2천325만 원에 팔린 222㎏짜리였습니다. 1㎏에 866만 원꼴이니 최상급 한우보다 수백 배나 더 비쌉니다.
공원에는 역대 최대급(400㎏) 혼마구로(참다랑어) 조각상이 실물 크기로 조성돼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이 거대한 물고기를 낚싯줄로 건져 올린 어부의 억센 팔뚝 형상이 놓여 있습니다.
'시모키타 반도 국정공원' 오마자키에 조성된 초대형 참치와 어부의 팔뚝 조각상.
바로 앞 기념품점에도 참치를 소재로 한 열쇠고리, 자석, 인형, 베개 등이 많습니다. 참치 모양의 과자와 참치포 등도 잔뜩 진열돼 있습니다. 여기 온 것을 기념해 수집용과 선물용으로 자석과 과자를 삽니다. 태성 총무는 친구들의 성화에 떼밀려 저녁에 안주로 먹을 참치포를 구입합니다.
호토케가우라 앞에 선 상철 대원
꼬불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차를 모니 절경이 나타납니다. 도끼날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곳이죠. 진녹색 해안단구와 감청색 바다 사이로 황갈색 기암들이 약 2㎞에 걸쳐 늘어서 있더군요. 해저 화산의 활동으로 생겨난 응회암 덩어리들이 불상을 닮아 호토케가우라(佛ケ浦)라고 이름 지었답니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토케가우라의 절경.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불상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제는 가까이서 보고 싶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가파른 길을 20여 분 내려갑니다. 올라올 일이 걱정되는데도 비경이 차츰 눈앞에 다가오니 입은 점점 벌어지고 발걸음은 자꾸 빨라집니다.
대원들이 각기 흩어져서 호토케가우라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다.
바닷가에 당도해 저마다 눈과 카메라에 비경을 담습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해안 절경이 많지만 이곳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에 횟집 하나 보이지 않고 멍게나 번데기 파는 행상 한 명 눈에 안 띄는 것이 이상합니다. 더구나 오늘이 토요일인데도 관광객이 양손에 꼽고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입니다.
화산과 파도가 빚어낸 호토케가우라의 멋진 자태.
워낙 외지고 먼 곳이어서 그럴까요? 일본 사람이 우리보다 여행을 덜 다니는 탓일까요? 아무튼 우리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호토케가우라를 배경으로 8명의 대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대원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혹시 없을까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젊은 여인 두 명이 나타납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손짓과 눈빛으로 하는 대화는 막힘이 없습니다. 오사카(大阪)에서 왔다는군요. 지도상으로 언뜻 봐도 서울~부산 거리의 세 배는 될 만큼 먼 거리입니다. 모처럼 젊은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즐겁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동규는 오마자키에서도 이들을 봤다는군요. 우연히 우리와 행로가 겹쳤다는 거죠. 역시 동규는 여성에게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호토케가우라 앞바다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이윽고 해가 바다로 떨어집니다. 구름이 끼어 있긴 하지만 수평선 윗부분이 붉고 노랗게 물들며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기암의 윤곽이 실루엣으로 변해가며 화폭은 구상(具象)에서 추상(抽象)으로, 수채화에서 수묵화로 바뀝니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합니다. 휴대전화에 플래시가 있긴 하지만 더 캄캄해지기 전에 차로 돌아가야 합니다.
호토케가우라의 낙조 풍경. 두 명의 여인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주차장에 오니 우리 차 말고도 다른 차가 한 대 보입니다. 오사카에서 온 두 여인이 타고 온 모양입니다. 대원들은 이 여성들이 왜 아직 안 올라오는지, 저녁은 어디서 먹을 건지, 숙소는 잡았는지 등을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혹시 말을 또 걸어올까 봐 우리가 먼저 떠나길 기다리며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련 없이 서둘러 출발합니다.
이제 우리는 무쓰(陸奥) 만을 끼고 도끼날에서 도끼머리로 갔다가 자루를 따라 손잡이 쪽으로 빙 돌아가야 합니다. 시간이 늦어져 저녁은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좀처럼 식당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마을이 나타나도 편의점만 눈에 띌 뿐입니다.
초조한 마음에 영수가 “정 안되면 편의점에서라도 먹어야겠다”고 말하니 동규는 “우리가 뭐 ‘한끼 줍쇼’ 프로그램 출연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냐? 일본까지 여행 와서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지”라고 말합니다.
한참을 가니 뒷차에서도 배고프다는 신호를 카톡으로 보냅니다. 더는 시장기를 참지 못하고 대형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네 마트처럼 푸드코트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죠. 그러나 즉석식품은 팔아도 조리된 상태로 파는 음식은 없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 패밀리마트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합니다. 저는 그 틈에 아내와 딸이 부탁한 청량과자(민티아)와 컵유부우동을 재빨리 마트에서 삽니다.
시골이라 그런지 편의점 음식의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김밥도 없고 스시나 컵라면도 수량이 모자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대원이 많습니다. 저는 늦게 도착해 돈까스 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습니다.
일본 원정에서 미식 여행까진 아니어도 식도락을 기대한 대원도 적지 않았을 텐데 점심 두 끼 연속 라면과 우동, 그리고 저녁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려니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꼼짝없이 ‘한끼 줍쇼’ 출연자 신세가 된 거죠. 말이 씨가 된 걸까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한참 만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우리끼리 다니는 여행이니 늦어도 걱정이 없긴 합니다. 이튿날 조금 늦게 출발하면 되니까요. 호텔 1층 편의점에서 오뎅과 떡 등을 삽니다. 이틀째 술판이 벌어집니다. 오늘은 동규가 사온 싱글몰트 위스키 달모어가 비워집니다. 술이 약간 모자라는 듯한 느낌이 들자 영수가 한국에서 공수한 소주를 꺼냅니다.
대학에 입학해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에게 포섭된 사연이 나오고 동료 여학생들과의 연애담도 펼쳐집니다. 술 먹고 벌인 해프닝, 경찰들에게 쫓기고 맞은 기억 등 끝날 줄 모릅니다. 소재가 빵(감옥)에서의 일화로 넘어가자 경찰서 유치장 경험은 있어도 구치소와 교도소 경력이 없는 나머지 네 명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듭니다. 다시 듣는 얘기여도 들을 때마다 흥미진진하지만 이튿날 트레킹을 위해 그만 자리를 파하기로 합니다. (계속)
첫댓글 중간쯤에 댓글을 다는 것이 좋을 듯 싶어서 답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만 추억할 순 있지요. 행복한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기 자체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네요..ㅎ
댓글이 없어서 서운했는데, 세심한 배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