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센터로 한장의 팩스가 날아왔다.
발신자는 월드컵을 위해 편성된 일본 연합방송단.
내용은 특집 프로그램 기획.. 한국과 일본의 경기장과 주변 스케치..라는.
이미 일본의 축구 경기장 완공률 87 퍼센트. 그것도 유럽 수준의 최첨단 인프라 구축.
일본국민의 월드컵 관심도..? 국내 리그 관중석 매회 만석..!
한국.. 월드컵 조직위 발표 경기장 완성도..? 공식 발표 무..!
FIFA 공인 완공률..32 퍼센트..!
나의 '2002 한일 월드컵'은 이렇게 시작됐다.
비교 불가능.
그땐..그랬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일본은 우리가 영화관을 찾는 횟수만큼 축구장을 찾고,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몇시간을 마다않고 만화책을 보며 기다릴 줄도 안다.
일년전에 이미 경기장은 물론이고
통역, 숙박, 교통까지 문제없도록 만들어 낸 개미들이고 일벌들이다.
월드컵 안내책자에는
경기장 의자에 앉아 발을 뻗을 수 있는 길이, 관중석과 그라운드 사이의 거리,
비상구 위치, 우천시를 대비한 지붕의 객석 커버율, 평균온도, 화장실 위치,
화장실의 남녀 성비, 소화기 위치, 단수시 비상조치, 대중교통 연계방법,
환전소, 편의점 위치, 외국어 가능 상점, 코인락커와 병원은 물론
파출소와 각 나라 음식점, 공중전화 위치까지 5개국어로 번역돼 있었다.
과연..그랬다.
안내책자를 보고 찾아간 음식점에는
역시 5개국어로 번역된 메뉴판에 사진까지 상세했고,
중국어 통역을 부탁한다고 하자 제일 가까운 안내소에서 통역이 달려오는데
5분이 채 안걸렸다.
요코하마 종합경기장은
폐회식때가 장마철인 점을 감안해서 배수가 잘 되도록 설계됐고,
삿뽀로 경기장은 8300톤의 잔디마당이 공기압으로 이동을 한다.
시합이 없는 날은 외부로 나가 햇볕을 쏘인다나..
그러나, 돈을 들인 건 그정도가 전부라는..
나머지는
기존의 경기장을 개보수하거나 새로 짓더라도 월드컵 이후를 위해 종합경기장으로.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나라.. 충분히 안다.
그래서..나는 더욱 이 나라가 신경쓰이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석유 펑펑 쏟아지는 졸부나라였다면 그렇게 주눅들지는 않았을 것을..
끝없이 검소해서
사장이든 국회의원이든 샐러리맨들과 똑같이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시골 구멍가게에도 자동문과 에어컨을 설치한 부자 나라 아니던가.
게다가 대강대강이라는 걸 천부적으로 싫어하는 성실한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그들을 내 나이만큼 알아 왔기에
나는 그들이 월드컵 또한 그런 모범답안을 혼자 적어 낼 것만 같은..
일종의 피해망상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특집 로케이션은 당초기획의 1/4이 취소되었고 한국은 찬조출연이 돼 버렸다.
그것도 이태원이나 남대문의 쇼핑상가와 먹거리가 주요 아이템..도대체
그곳들이 월드컵과 무슨 상관인가 말이다.
공동개최국이 아니던가..
그러나.. 어차피 방송은 유희다.
미디어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구심점을 만들어 하나로 모아 들일 특권이 있으니
일본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한국을 조연으로 등장시킨다고 해서 탓할 사람은 없다.
비교우위..일본.
나는 열등감과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질병을 지닌 채
일본 미디어의 포커스에 맞춰져 일을 했다.
한국의 비교열위는 계속됐다.
개막식을 몇달 앞두고 식중독으로 관광객이 쓰러졌다.
한국에서는 입장권 확인이 허술해서 본인이 아니어도 입장할 수 있다는 소문때문에
조직위로 확인전화가 쇄도했고
FIFA의 경기장 최종점검에서는 물 안나오는 수도꼭지가 수도 없이 체크됐
다.
아..나의 애국심은 때로 벽을 만났다..
...중간생략...
개막 초읽기..
우리 감독은 말을 아꼈고,
카메라와 기자들은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D조 선수들 락커룸에 온 관심을 쏟았다.
한달동안 방송단에 합류하게 된 일본인 타니무라 아저씨는,
한국에 배치됐다가 그냥 남게 된 동료 카메라맨에게 객지생활 안하게 돼 부럽다며
"운이 좋군" 이라는 메일을 날렸다.
그러면서 중순께 돌아갈테니 조금만 참겠단다.
도대체.. 우리팀이 중순께 사라질지 결승까지 갈지 어떻게 아는데..?
4일.
폴란드와 첫경기로 부산으로 가는 중계차 안에서 나는 내내 기도를 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선수들의 모습을, 축구공을, 응원의 함성을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준비로
나는 늘 배고팠고 졸음에 시달렸다.
열심히 뛰었으나 안타깝게도 더이상 할일은 없다.. 나머진
선수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가 찬 공이 골대에 들어가 주는 것이고,
붉은 악마의 함성이 월드컵 내내 끊이지 않는 것이니..
시작..!
초조했다.
그런데..
중계를 시작한 아나운서가 긴장한다. "달라졌다.." 한국 팀이 달라졌다 라고.
이제서야 히딩크가 보인다 라고.
공이 제갈길을 알고 날아 가고 있노라고.
나는 비로소 우리 선수들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
누가 축구장이 전쟁터와 같다고 했던가.
축구를 모르고 전쟁을 모르는 나도 그정도는 안다.
축구는 전쟁 그 이상이었으리라는 것을.
경기 내내 그들의 온몸에선 땀같은 피가 튀었고
신음을 토해낼때마다 나오는 쇳소리를 나는 들었다.
축구란, 사람이 공을 발로 차는 경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공은 그저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역할뿐..
발에 맞고 채이고 나뒹굴고 고꾸라지는 건 공이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선수'라고 부르는 그 사람들..
아..축구가 이런 것이었다니.. 차라리 처절함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함성! 눈을 떴다. 황선홍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온다.
공이 들어갔다! 아니, 내 눈엔
스물 세명이 모두 튀어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하마터면 나도 따라 들어갈 뻔했다.
27분 뒤. 또 한 번 출렁.. 유상철..
2:0..
아..축구가 이런 것이었다니..
나는 그날 몰랐던 두 가지를 알았다.
축구는 아름다운 경기라는 것..그리고 기적에게 귀가 있다는 것..!
우리는 부산에서 연이틀 동안 공짜로 밥을 먹었다.
한국이 모처럼 신이났다. 스텦들도 덩달아 신나했다. 나도 괜히 으쓱했다..
10일.
중계차는 대구로 향했다.
혹시.. 1승은 정말로 운이 좋아서였을까..
초조해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최후의 땀 한방울까지 연소시켜 버린 우리 선수들에게 매료돼서인지
스텦들은 모두 유니폼을 벗고 붉은 티셔츠를 입어 주었다.
미국의 낙승을 점치던 타니무라 아저씨만 빼고.
그러나 출발이 좋지 않았다.
짙은 안개때문에 부산 김해 공항에 도착하기로 한 비행기들이
그대로 일본으로 회항하고 있었다.
각 잡지사의 저널리스트들이며 기자, 친선대사가 된 배우들이
보도실과 귀빈석의 제자리를 비워둔채
두번째 착륙을 시도하는 비행기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결국 그들을 경기장에서 맞은 건 후반전 시작을 조금 지나서.
덕분에(?) 나도 미국에 당하는 아픈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다.
아팠으리라.. 많이 아팠으리라..
산기슭에 걸린 석양이 악마들을 더욱 붉게 물들일 즈음,
그들의 '대~한민국'이 시작됐다.
한번..두번..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집요한 공몰이처럼 응원은 그칠 줄 몰랐다.
그러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한국의 프리킥.
이번만은..
공은 안정환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더니 골대 안으로 직행했다. 76분경과..
애태워서 미안하다는 듯..동점골이다!
아..대한민국..!
직후, 미국이 프리킥을 얻자 관중석은 "오~노! 오~노!"를 합창했다.
아하, 쇼트트랙의 그..
그래..잘했어.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그날 밤 우리가 상대할 포루투칼이 폴란드를 4:0으로 이겼다며
타니무라 아저씨는 '역시 포루투칼'이란다.
오..제발.. 기적이시여.. 타니무라 아저씨에게 부디 붉은 옷을 입혀주시기를..
12일 새벽. NHK는 생방송으로 서울을 연결했다.
국제심판과 축구 해설자와 각계 패널들이 나와
지금까지의 '2002 한일 월드컵'을 얘기했다.
그러나 원고엔 앞으로의 경기결과를 전망하는 질문이 일체 삭제되었다.
모두 한결같이 '예측불허'라고 입을 모았으니.. 다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은 일본에도 있지만
그 말은 이제 적어도 월드컵에서 만큼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젠
아무리 '용'이라 해도 약해지면
강한 '뱀'에게 먹히게 된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는 월드컵이라고.
프랑스가 세네갈에게 먹혔고, 이탈리아가 크루아티아에게 먹혔고,
러시아가 일본에게 그랬듯이.
유기적으로 단합하지 못한 프랑스가 지단 한사람때문에 침몰해 버렸으니
포루투칼이 한국에게 지고 튀니지가 일본을 이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 앵커는 이렇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말씀, 농담이라도 끔찍하군요.."
14일.
그 앵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농담이라도 끔찍하다는 가설이 현실로 이루어진 날.
포루투칼에 승리!
우리 선수들은 지지 않을 작정인 듯 했다.
강한 뱀이라고 했던가.
이대로 가다간 그대로 용이 돼 붉은 불 내뿜으며 승천할지도..승천해 버릴지도..
보도실은 흥분했다. 보도실 뿐이랴. 대한민국이 온통 제정신이 아닌데..
기자는 기사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버릴 것이 없다!'라고.
단 1분도 쉬지 않는 붉은 악마.. 단 1초도 걷지 않는 붉은 선수들..
오늘 만큼은 한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다..라고.
아나운서들은 제대로 발음도 안되는 '파쿠치송'(박지성)을 연신 읊어댔다.
바빠졌다.
방송단은 프로그램 편성표를 전격 수정했다.
이미 시청앞 광장엔 집채만한 중계차가 따로 배정됐고
'길거리 응원'이라는 전대미문의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젊은 일본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폴란드전이 열리던 날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 '길거리 응원'에 대해
일본은 조용히 FIFA에 심의 요청서를 보냈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시도됐던 'closed circuit'라는 관전형태..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축구팬을 위해,
길거리 스크린으로 경기를 관전할 수 있게 해 주자는 의도로,
일본도 이번에 FIFA에 공식 요청했지만 '방영권의 2차 사용'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바.
그렇다면 한국의 길거리 응원도..라며 이이를 제기했으나.. FIFA의 대답은
"관전이 아니라 응원이니 괜찮소..'였다. 후후.
우리는 밤샘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몇차례의 시범경기때마다 찍어둔 한국의 경기장이
제대로 편성된 프로그램안에서 빛을 발하게 됐으니..
몰랐을 걸.
우린 축구 전용 경기장이 일곱개나 된다는 걸..
트랙이 없으니 그라운드에서 관중석까지 평균 11미터.
선수의 눈에 선 핏발까지 볼 수 있는 경기장..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의 제일 뒷자리에서 그라운드까지의 거리가 아마 70미터였을걸.
그 거리에선 선수가 그야말로 콩만하다.
게다가 육중한 기둥이 가로막혀 제대로 볼 수 없는 사각석까지.
월드컵이 끝나면 어쩔 셈이냐고..? 그런 것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월드컵이라니까..라는 이유 하나에만 매달려 온 우리나라의 순박한 열정을
나는.. 이제.. 사랑한다.
상암경기장.
휠체어가 지하철 역에서부터 경기장 착석까지 한번의 장애도 없는 배려가 훌륭한..
그라운드를 향해서 왼쪽으론 바다가 오른쪽으론 한라산이 보이는 제주 경기장은
FIFA의 어르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이라고 격찬한.. 작품이다.
지난 겨울 찾은 그곳에선 잔디 영양상태가 어찌나 좋던지 버섯이 자라고 있어
혼자 살며시 미소짓기도..
인천 문학 경기장은 또 어떠한가.
문학산 자리에 7년이나 걸려 만든..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범선이 컨셉이라고.
철근 사용을 최소화한 대신 독특한 케이블 구조라서
시야를 가리는 기둥따위 있을 턱이 없고, 특히 돛모양의 지붕은 공중에 떠 있어
그 틈새로 내비치는 야간조명은 또 얼마나 장관이던지..
그외에도
대전,수원,대구,전주,광주,울산,부산 모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기장들이다.
그 어느 곳도 두번째라 할 수 없을만큼 특별한...
이제 곧 아침이 밝아오면
우리의 강산과, 경기장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작품들에 세상이 넋을 잃겠지..
나는 이날 열 곳의 우리 경기장을 새삼 구경하느라 아주 오랜 꿈을 꾸었으리라..
기억 나진 않아도..
18일.
2승 1무, 7점으로 똑같이 1차 리그를 통과한 두 나라..
만약 한국과 일본이 결승에서 만난다면 나는 어느쪽을 응원해야 할까..
당연히 한국이겠으나 소속은 일본..
우리 중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금기 아닌 금기..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는 몰래 욕심내 왔다. 일본을.. 이겨보고 싶었다..
아주 힘 센 친구가 있어,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를 혼내 주라고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
태극 전사가 아니라 태극 해결사처럼 느껴졌기에..
그렇게 마냥 믿음직스러웠기에..
대전으로 가는 중계차 안에서 우리보다 앞서 터키와 싸울 일본 스타팅 멤버를 받았다
전과 동.
스텦중 한명이 중얼 거렸다.
"트루시에는 소심하거든..불안해.."
같은 멤버에 뻔한 전술은 참패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안돼.. 우리와도 싸워 줘.. 달라진 우리를 느껴 줘..
그날 일본은 엄청난 비였다.
경기가 열릴 미야기 경기장은
초승달 모양의 지붕이 아름답긴 하지만 비가 오면 대책이 없다고 했었지.
한시간 전.
모니터는 미야기의 관중석을 불렀다.
아..그런데..
아무리 대책이 없다고는 하지만..
저 사람들이 정말 8강을 눈앞에 둔 응원단..맞나..?
파랗게 물결치고 있어야 할 관중석이 뿌옇다.
모두 우비를..
미국과의 시합이 있던 날 한국도 비였다. 꽤 거센..
하지만, 시청앞 광장은 아랑곳 없이 빨갰고 누구 한사람 우산을 펴든 이는 없었다.
우산때문에 뒷사람이 화면을 볼 수 없을까봐..
모니터를 지켜보던 타니무라 아저씨는 내뱉듯 "다메다나 고랴..!"한다. 틀렸단다.
앞선 실망.. 모니터 저쪽은 빗줄기가 더욱 강해졌다.
경기시작. 그러나..
친해진 아사히신문의 사와기 기자는 결국 한번도 미간을 펴지 않았다.
일년 성공했다더니 담배를 피워물었다.
90분간 그가 끄적거린 짧은 문장들이 일본인의 심정 그대로였으리라.
실수가 실점을 불렀다.. 자신감이 없어진다.. 이렇게 끝나는가..
어쨋든 한점을 만회하라니까.. 너희들 강해졌잖아.. 그걸 보여달라니까..
아..이 비가 슬픈 비가 되지 말았으면..
경기가 끝났다. 슬픈 비..
그런데..
일본 선수들이..그들의 얼굴이 냉정했다. 정말 아쉬워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저토록..
예를들어, 세네갈에게 골든골로 패한 스웨덴 선수는
세네갈이 그라운드에서 춤을 추는 동안에도 그대로 주저앉은채 일어설 줄 몰랐고
스페인의 PK로 무릎꿇은 아일랜드도 그랬다.
전력질주였다면.. 적어도 걸을 힘조차 없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그라운드를 한바퀴 다 돌았다.
타니무라 아저씨가 또 한마디 한다 "치쿠쇼..!"(제길..)
결국 따 내지 못한 1점은 컸다.
그들이 자랑하던 '조직'과 '규율'만으론 세계의 벽은 높았단 말인가.
어차피.. 미디어는 유희다. 슬픔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그 의무가 방송에 있으니..이젠 한국이다.
다른 날보다 우린 방송준비에 숨이 찼다.
중계차가 경기장에 들어온 시간은 이미 다른 나라 방송사들이 송출 세팅을 끝내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시간이었으니..
어이없이.. 늘 그래왔듯 어이없는 이유로
(사실은 한국사람들의 나태와 무책임과 무성의가 이유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하마터면 일본의 프라임 타임을 하얀 공화면만 내보낼 뻔 했다.
나는 다시 서울로 다시 대전으로 두시간 반만에 날았고 피가 말랐다.
겨우 중계차 반입 허가.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경기시작.
난 이미 녹초였다. 미안했다. 선수들에게.. 국민들에게.. 약해지지 말자..
오늘도 우리를 힘들게 한,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한국사람들이지만
멋진 대한국민이 더 많다는 걸 꼭..꼭.. 보여 줘..
그런데..
힘이 들었다. 보는 나도..싸우는 그들도..
골망이 출렁거렸다. 우리 골대다. 애가 탔다.
마치 수시간 전의 일본전이 재현되는 것만 같았다.
안돼..! 이겨야 해..! 오늘은 꼭 이겨야 할 이유가 있는 걸..나는 자꾸 시계를 봤다
스텦들도 입이 타는지 연신 물을 찾는다.
일본전의 아쉬움은 고스란히 우리 선수들의 어깨위에 올려져 있는 듯 했다.
시간이 없다.. 눈을 감았다..
그때 함성이 올랐다. 일순 숨이 멎었다. 감독의 손이 힘있게 올라갔다.
88분. 설기현의 동점골..!
아아.. 그렇게 오래 뜸을 들이다니..난 속이 다 타버리는 줄 았았잖아..
다시..질풍과도 같은 공격이 시작됐다. 반격이다.
사력을 다한다는 건 바로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일게다.
악마들은 진짜 악마가 된 듯 응원이 아니라 차라리 신기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댔다
대전이 흔들렸다. 아니, 온 천지간이 붉었을리라..
103분 경과..오..이런..토티퇴장!
기적이 아직 떠나지 않고 우리 편에 있나보다.
떠나지 않고 있기는 일본 미야기도 마찬가지. 그들도.. 이미..우리였다.
117분. 이 길고도 뜨거운 시합에 마침내 끝이 보였다. 또 한번의 기적.
성공!! 안정환.. 해 냈구나.. 다행이야..정말 다행이야..
날 살려 줬으니..우릴 살렸으니.. 대한민국이.. 아시아가 살아났으니..!!!
목이 탔다. 처음으로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었다.
낮동안의 형편없었던 한국을 잊고 자랑스런 한국만 기억할 수 있다면...
불성실하다고..? 무성의하다고..?
만약, 우리가 연장전에서 졌더라면
우리 선수들은 아마 그라운드에 쓰러진채 꼼짝도 못했을 걸..너희와는 달라..
그게..우리거든..
대한민국이거든..!!
22일.
나는 그날 TV밖으로 나와 그들을 응원했다.
도무지 이젠 우리가 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태극전사들이 우리모두를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광주로 떠나는 스텦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여유있게 웃어 줄 작정이었으나
아마도 난 한껏 거만해져 있었것 같다.
타니무라 아저씨가 웃으며 그런다.
"열심히 응원하고 있어야 돼. 쉬지 말고..!" 후후 어느새..우리편..?
무더위 탓이었는지.. 기운이 떨어진건지..아니면 둘 다인지.. 무승부.
그리고 연장전. 그리고..
내 응원이 부족했나.... 승부차기라니..
오히려 경기장 밖에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어 다행이라 생각됐다.
차마.. 볼 수 없어.. 보지 않고 있다가..
아.. 이런.. 역사에 길이 남을 이운재의 선방을 놓치고 말다니..
함성이 터졌다.
막았단다.
슬로우비디오..이래서 TV가 좋다니까.. 와..! 정말.. 막았네..
이제 한 골만 넣으면.. 어쩐다지 나 숨막혀 버리면 어떡하지..
홍명보의 자신에 찬 발길질..
슛!
...
일본에서 발간된 그 어떤 사진에서도 웃지 않던 그가
두 팔을 활짝 펴고 마음껏 웃으며 달려 온다.
내게로.. 우리에게로..
나도 활짝 웃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눈에 선한 경기장..
관중석 앞에 있을 ENG카메라 교포 스텦이 전화기 저쪽 엄청난 굉음속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경기장이.. 모두..울어요..!"
"그래.. 나도..운단다.."
25일.
길거리 응원단 숫자는 연일 기록을 갱신했다.
프라임 타임의 한국 시청앞 길거리 응원단 보도는
뉴스보다 높은 시청률에 일본식 표현으로 '노른자'!
이미 반 이상이 돌아가 듬성듬성인 보도실이었지만
남아있는 방송인들 모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 그전보다 꽉 차보였다.
독일.
이젠 지구상 그 어느 나라와도 맞붙을 자신이 있었다.
이 신뢰감은 도대체..어디서 오는 걸까.
이기기만 해 왔기 때문일까... 과연 그럴까..
경기에 앞서 일본 민방은 미니 다큐를 편성했다.
히딩크의 흔치 않은 인터뷰..
폴란드전을 끝내고 감독은 이례적으로 락커룸에 카메라를 허용했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곧게 뻗은 길이라고 했었다.
끝이 보이니 두려울 게 없다고도 했다.
일본은 비로소 아꼈던 이 인터뷰를 내보냈다.
일본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었던 한국의 자신감을,
승리감을 대리만족 시켜줄 대상으로 승화시키는 일도 방송의 힘.
거스 히딩크..
눈빛이 유난히 맑았던.. 그래서일까..
눈빛이 맑은 감독과 순수한 열정으로 축구을 사랑하는 선수들은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들이었잖은가.
아들들은
골을 성공시키고는 그대로 감독에게로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품에 안기곤 했다.
그는 네덜란드인임에도 완전한 한국사람으로 500일을 살았고, 그러면서
선수들을 모두 그의 자식으로 보듬어 안았던 것이다.
바로..그것이 아니었을까..
히딩크 군단에 대한 강한 신뢰감의 모처는..
히딩크의 한국사람 되기..!
미니다큐의 끝부분, 아나운서와 패널은 이렇게 주고 받았다.
"한국이 16강만으로 끝을 맺었다면 관중석은 썰렁하고 일찌감치 열기가 식어 그야말로 개최국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경기를 다시 한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랬다. 세상 모르는 사이 달라져 있던 한국축구를 세상이 다 인정했기에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었지만..
독일은 만만치 않았고 선수들은 너무 지쳤다.
이젠..그만 욕심을 부리라는 휘슬..
그러나.. 끝이라니.. 거짓말..
이봐요, 다들..그렇게 주저앉아 있지 말고 조금만 더..
이길 작정 아니었나요? 난 아직 질 준비를 하지 못했는데..
그러나 목구멍 밖으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돼 우뢰가 된 박수소리와 울먹이며 부르짖는 '대~~한 민! 국!'..
우리는 아무도.. 아무도 카메라의 빨간불을 끄지 못했다.
앵글은 계속 돌아갔고, 나는 "연장전..드라마.."라는 자막을 조심스레 조종실로 보냈다.
PD는 큐사인 대신 빨개진 눈을 찡끗해 보였다.
타니무라 아저씨는 아예 카메라와 함께 관중석에 꽂혀버렸다.
모니터는 대한민국 곳곳의 뜨거운 대한국민을 차례차례 확인했다.
축포와 함성과 격려와 사랑..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내 피는 붉은 악마와 같은 온도로 다시 끓었고
뜨거운 대한민국은 일본 열도에 그렇게 오래오래 비쳐졌다.
아..
이겼다!
역전이다!
나는 일본에게 이겼다!
순위..? 그건 중요치 않다.
이렇게 모두가 온통 빨강인 걸..
나의 자존심도.. 나의 애국심도.. 그리고 일본인 당신들까지도.
보란 말이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구!!!
나머지 3,4위전이 대구에서 열렸다.
예전 프랑스에게 5:0으로 패한..그리고 미국에 힘겹게 비겼던..그리고
불방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모면한 경험이 있는.. 그래서
느낌이 좋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붉은 옷을 입은 걸 후회했다.
팔딱이를 입었어야..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잘 했는 걸..!
3,4위전과 시상식을 잔치처럼 마치고 우리는 오늘 폐단식을 가졌다.
스텦들은, 한국이 이길때마다 내가 입고 있던 팔딱이를,
4년뒤 꼭 입고 응원 하겠다며 유니폼처럼 다들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붉은 티셔츠와 태극기와 시뻘건 김치를 소중하게 챙겨들고..
타니무라 아저씨는 끝내 입지 않았던 붉은 티셔츠를 오늘 입고 돌아갔다.
한국에 온 건 행운이었다며..
...나의 '2002 한일 월드컵'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일년동안..
몇번인가의 커트로 내 머리는 많이 짧아졌고 기도는 길어졌다.
유난히 견뎌야 할 일이 많았고 한숨은 깊어졌지만 그래서 더욱 많이 웃었다.
나는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일본편에 서서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일 할 것이다.
조금 더 뜨겁고 자랑스런 애국심을 심장에 묻고..
히딩크, 그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 화이팅!
보리 화이팅!!
-후기-
돌아보면
참으로 숨가쁘게 지나 온 일년이었습니다.
그동안 포근히 쉴 곳이었던 이곳 카페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다향기 대장님과
힘이 돼 준 한 사람에게 나의 자랑스런 일년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