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가 종류가 많다고요?
네, 우리가 먹는 장어는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갯장어, 뱀장어, 붕장어, 꼼장어. 바다장어와 민물장어로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이들 장어 중에서 민물장어로 불리는 건 뱀장어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세 종류 장어를 모두 바다장어라 통칭하기도 하고, 붕장어만 콕 집어 바다장어라 부르기도 합니다. 붕장어가 바다장어 중에서 제일 흔한 종이어서입니다.
왜 뱀장어만 민물장어라고 하나요?
뱀장어만 민물에서 살아서입니다. 다른 장어들은 바다에서 평생을 살다 죽습니다. 뱀장어도 바다에서 살긴 삽니다. 강에서 쭉 살다가 알을 낳을 때면 꼭 깊은 바다로 나갑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새끼 장어도 제가 알아서 강으로 올라옵니다. 연어랑 정반대라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요즘 장어 값이 많이 내렸다고 합니다. 양식에 성공해서입니다. 요즘엔 이름난 장어 고장에서도 치어를 잡아다 갯벌에서 키운 뱀장어를 내놓습니다. 먹이를 따로 주는 게 아니므로 양식이 아니라고 합니다만, 자연산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요즘엔 ‘국내산’이라고 씁니다. [뉴스원샷]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자신이 직접 잡은 게 아니면 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게 속 편하다고요. 한때는 정말 귀했던 국내산 장어를 이렇게라도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갯장어는 뭔가요?
손암 정약전 선생이 『자산어보』에서 묘사한 갯장어입니다. 갯장어는 ‘개’와 ‘장어’의 합성어입니다. 갯벌에 사는 장어가 아니라 개처럼 생긴 장어란 뜻입니다. 막상 대가리를 보면 개보다 돼지와 가깝습니다. 코가 뭉툭합니다. 대신 이빨이 날카롭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손암 선생의 묘사는 참으로 꼼꼼합니다.
하모는 갯장어의 일본어식 표기입니다. ‘물다’는 뜻의 ‘하무(はむ)’에서 왔습니다. 갯장어가 사람을 물긴 잘 무나 봅니다. 일본의 장어 사랑은 유별납니다. 그래서 우리네 갯마을에선 아직도 장어를 말할 때 일본어 표기를 자주 씁니다. 갯장어를 하모라 하는 것처럼, 뱀장어는 우나기(うなぎ), 붕장어는 아나고(アナゴ)라 하지요. 다들 익숙한 표현일 겁니다.
갯장어가 최고 장어라고요?
사실 우리는 갯장어를 잘 안 먹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먹고 싶어도 못 먹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갯장어 대부분이 일본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요즘은 아닙니다. 국내 소비량이 일본 수출량보다 훨씬 더 많답니다. 남해안 갯마을에선 갯장어를 ‘참장어’라고 따로 부릅니다. ‘참’ 자는 아무 데나 붙이는 접두어가 아니지요. 참기름·참문어 같은 용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갯장어는 장어 중에서 제일 비쌉니다. 요즘 같은 복중에는 1㎏에 5만원 선까지 가격이 올라갑니다. 같은 바다장어인 붕장어보다 두 배 이상 비쌉니다. 일부 못된 상인이 붕장어를 갯장어로 속여서 팔기도 합니다.
갯장어는 뱀장어와 달리 회로 먹습니다. 복어회처럼 얇게 뜨기도 하고, 뼈째 썬 ‘세꼬시’로도 먹습니다. 샤부샤부로도 먹습니다. 일본 요리 ‘유비키(湯引)’를 따라 한 요리라 할 수 있는데요. 장어로 낸 육수에 부추·버섯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다음 갯장어 살을 담가 살짝 익힌 다음 양파를 곁들여 먹습니다. 갯장어 맛이 어땠나고요? 음, 저는 여느 장어보다 달다고 느꼈습니다.
갯장어가 여름 별미인 건 여느 장어와 달리 여름에만 잡혀서입니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살다가 여름이면 산란을 위해 올라온다 하지요. 전남 여수 경도와 전남 고흥 하도 사이 바다가 이름난 갯장어 어장입니다. 남해 갯마을에서 여름은, 갯장어가 왔다 가는 계절입니다.
붕장어는 또 뭔가요?
가장 흔한 장어입니다. ‘아나고’로 더 익숙하지요. 이를테면 번듯한 횟집에서 정식을 주문하면 기본 반찬으로 깔리는 장어, 포장마차에서 초장에 찍어 먹는 장어, 남해안 식당에서 떠먹는 장어탕의 장어가 모두 붕장어입니다. 붕장어는 사계절 모든 바다에서 잡힙니다. 보통 통발 어선이 잡지만, 갯바위 낚시에도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먹을 것도 많습니다. 뱀장어보다 몸통이 두껍고 살집이 실합니다.
붕장어는 갯장어와 함께 회로도 먹는 장어입니다. 붕장어회는 세꼬시로 먹는데, 살을 잘게 썬 다음 물기를 꼭 짭니다. 핏속에 있는 안 좋은 성분을 빼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탈수기에 돌려 물기를 뺐다는데, 아무튼 저는 붕장어회의 꼬들꼬들한 식감을 좋아합니다.
장어탕은 남도 갯마을의 보양 음식이었습니다. 한여름이면 가마솥에 어른 종아리 굵기만 한 붕장어를 때려 넣고 살이 풀어질 때까지 푹 끓여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었다고 하지요. 여수에서 먹은 장어탕은 덩어리 살이 있었는데, 목포에서 먹은 장어탕은 하도 끓여 살이 없었습니다. 통영에선 장어 대가리와 뼈로 육수를 낸 ‘시락국’을 먹었지요. 남도 갯마을에선 말린 장어를 탕으로 끓입니다.동네마다 식당마다 조리법이 다른 건, 붕장어가 그만큼 흔해서이겠지요. 포항에 ‘검은돌장어’라 불리는 바다장어가 있다는데, 아직 이건 못 먹어봤습니다. 그렇게 맛있다는데….
‘꼼장어’도 있는데요?
물론이지요. 꼼장어를 빼먹을 순 없지요. 표기부터 정리합니다. 꼼장어, 곰장어, 먹장어, 묵장어, 꾀장어, 푸장어 등등 이름이 참 많습니다.원래는 ‘먹장어’만 맞는 표기였으나, 다들 꼼장어라 하니 ‘곰장어’도 바른 표기로 인정받았습니다. 여기에선 곰장어로 쓰겠습니다.
곰장어는 장어라 부르지만, 장어가 아닙니다. 기생 어류입니다. 다른 물고기의 살을 파먹고 들어갑니다. 곰장어는 턱이 없습니다. 대가리에 둥근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게 입이자 항문입니다. 이런 동물을 원구류(圓口類)라 한다지요. 언뜻 해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장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본인이라지만, 일본에선 곰장어를 잘 안 먹습니다. 빨판처럼 생긴 주둥이가 영 괴상하고, 거무튀튀한 몸통도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있어서입니다.
이 괴상한 걸 어쩌다 먹게 됐을까요?
일제 강점기 일본인은 부산 앞바다에서 올라온 곰장어의 가죽을 벗겨 지갑이나 구두를 만드는 데 썼습니다. 일본인이 가죽을 벗겨 가면, 자갈치 아지매들이 남은 곰장어를 매운 양념 바르고 연탄불에 구워 팔았습니다. ‘부산 꼼장어’의 명성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겪으며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고요. 지금도 자갈치시장 곰장어 골목엔 식당과 노점 100여 곳이 모여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내력 30∼40년을 헤아리지요. 이 집을 찾는 손님도 어지간하면30∼40년 단골입니다. 곰장어 구이는 고단한 현대사가 낳은 설움과 애환의 음식입니다.
내력이 어찌 됐든, 곰장어 구이는 맛있습니다. 특히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습니다. 식으면 냄새가 납니다. 연탄불에 올린 뜨겁고 매운 곰장어를 상춧잎에 싸서 한입에 삼킨 다음 소주 한 잔 홀짝. 곰장어 구이를 즐기는 올바른 방법입니다. 짚불에 구워 먹는 곰장어도 있습니다. 부산 기장이 짚불구이 곰장어로 유명하지요. 짚불에 곰장어를 구우면 가죽은 새까맣게 타고 속살만 하얗게 익습니다.껍질은 문질러 벗겨내고 속살을 기름장에 찍어 먹습니다. 이 또한 소주를 부르는 맛이지요.
우리 선조는 가족이 배앓이를 하면 장어 끓인 국물을 먹였다지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장어즙을 입에 달고 산다는 얘기도 있고요. 몸에 좋아서라기보단 맛이 좋아서 찾아 먹는 게 장어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다 보니 이야기도 많네요. 갯장어는 여수까지 가야 하니, 오늘은 동네 마트에 붕장어라도 사러 가야겠습니다.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