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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by 재레드 다이아몬드 (tistory.com)
수자원의 관리 체계는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과 관련. 인도 아대륙의 인더스 강 유역, 중국 황하 양자강 유역,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저지대, 페루의 해안 사막 등이 포함. 그러나 상세한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정교한 관개시설은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와 병행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차를 두고 전해졌음이 밝혀졌다. 정치적 중앙 집권화는 어떤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고, 그로 인해 비로소 정교한 관개 시설이 건설.
예를 들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식량 생산과 취락 생활은 강변 저지대가 아니라 언덕이나 산지에서 먼저 시작. 나일 강 유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구릉지에서 식량 생산이 한창 번성하기 시작하고 나서 약 3000년이 지날 때까지 여전히 문화적으로 낙후 상태. 미국 서남부의 강 유역들도 결국에는 관개농업과 복잡한 사회를 뒷받침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사회들의 기반이 되는 많은 문물들이 멕시코로부터 유입된 후.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의 여러 강 유역에는 끝까지 농업을 갖지 못한 부족 사회밖에 없었다.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연구를 의미.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됨. 이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 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조건. 그러므로 가축화와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궁극적 원인.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 시기가 크게 달랐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그 같은 핵심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웠고 기타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으며 역시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일부 지역의 사람들은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적합한 곳인데도 선사 시대에 농업을 시작하지도 습득하지도 못했다. 근대에 와서도 바깥세상의 물결에 휩쓸릴 때까지 수렵 채집민 생활을 고수. 그리하여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일찍 출발. 그 결과는 역사의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수많은 충돌.
식량 생산의 도입은 이른바 ‘자가 촉매 작용(일단 시작된 후에는 스스로 촉매 작용을 되풀이하여 점점 더 가속화되는 현상)’이라는 것의 한 예. 인구 밀도가 차츰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더 먹거리를 구해야 했다. 어쩌다가 식량을 생산하는 쪽으로 나아간 사람들은 대가를 얻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식량을 생산하고 정주하기 시작하자 산아 간격을 단축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생기면서 다시 더 많은 음식이 필요. 식량 생산과 인구 밀도 사이의 양 방향 관계는, 식량 생산이 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식품 열량의 양을 증가시켰는데도 식량 생산자들은 자기들이 교체한 수렵 채집민보다 오히려 영양 상태가 더 나빴다는 모순을 설명. 그 모순은 인구 밀도가 먹거리의 증가에 비해 좀 더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
총 20만 종의 야생 식물 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 그중에서 다소나마 현재까지 작물화된 것은 고작 수백 종. 더구나 몇 백가지 농작물도 대부분 식단을 약간 보완하는 정도일 뿐 문명의 발생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 현대 세계 모든 농작물을 통틀어 연평균 총생산량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농작물은 겨우 12종에 불과. 12종중에는 곡물로는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류로는 메주콩. 뿌리 또는 덩이줄기 작물로는 감자, 마니오크, 고구마. 설탕 공급원으로는 사탕수수, 사탕무. 과일로는 바나나.
이 중 곡류만 따지더라도 전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총열량의 절반을 넘는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이점은, 그 지역이 겨울은 온난 다습하여 여름은 길고 덥고 건조한, 이른바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는 점. 그 같은 기구는 긴 건조기에도 살아남았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재빨리 성장을 재재할 수 있는 식물 종을 선택.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많은 식물, 특히 곡류와 콩류는 인간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적응. 한해살이 식물은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초본의 크기가 작다. 이 종자들은 건조기 동안 휴면기에 들어갔다가 비가 내리면 발아. 따라서 한해살이 식물은 나무나 관목처럼 먹을 수도 없는 목질이나 섬유질의 줄기를 만들기 위해 낭비하는 에너지가 거의 없다. 특히 종자가 큰 한해살이 곡류와 콩류의 종자는 인간이 먹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현대의 주요 12작물 중 6종이나 포함.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최초로 작물화된 8종의 중요 농작물은 모두 제꽃가루받이 식물. 제꽃가루받이 곡류 중 외톨밀, 에머밀, 보리 중에서 두 종류의 밀에는 단백질 함량이 높다(8~14%). 그와 대조적으로 동아시아와 신세계에서 각각 중요한 곡류 농작물인 벼와 옥수수는 단백질 함량이 낮다는 것이 영양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은 몇 마디만 바꾸면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첫 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향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요소들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
가축화 실패의 원인 6가지 : 식성, 성장 속도, 감금 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골치 아픈 성격, 겁먹는 버릇, 사회적 구조
근대에 와서 문자는 무기, 세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등과 나란히 행진하면서 정복을 조력. 군주나 상인들이 식민지 개척을 위한 선단을 조직할 때에도 문서로 명령을 시달. 선단은 종전의 원정에서 작성된 해도와 항해 지시서에 의거해 항로. 원정에 대한 보고서들은 정복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기름진 땅과 풍요로움을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원정 동기가 되었고, 그 이후 탐험가들에게 어떤 상황을 예상해야 하는지 경고. 이 같은 정보는 문자를 모르는 사회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전달할 수는 있었지만 문자가 있음으로 인해 쉽고, 자세하게, 정확하게, 더욱 솔깃하게 전달 가능.
초기 문자 체계는 모호함 때문에 문자 기능의 제한되었고 소수 필경사들만 사용. 초기 문자의 의도적인 사용 제한은 덜 모호한 문자 체계를 고안하려는 의욕을 적극적으로 막는 작용. 고대 수메르의 왕이나 사제들은 전문적인 필경사들이 거둬들여야 할양의 수를 기록하는 데 문자사용을 바랐을 뿐 일반 대중이 시를 쓰거나 음모를 꾸미는 데 사용을 원치 않음.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가 말했듯 고대 문자의 주된 기능은 ‘타인의 예속화를 돕는 일’
초기 문자의 쓰임새와 사용자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문자가 그토록 늦게 나타난 이유를 설명. 독립적으로 발명되었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 문자들(수메르, 멕시코, 중국. 이집트 문자)과 그 같은 문자 체계를 고쳐 만든 문자들(크레타, 이란, 터키, 인더스 강 유역, 마야 문자)은 모두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복잡한 중앙 집권적 정치 제도를 갖추고 있던 사회에서 탄생.
우리는 중요한 발명품들이 모두 필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 사실 수많은 발명품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 그들이 염두에 둔 제품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상당 시간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됨. 또 어떤 물건은 어느 한 가지 용도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결국 오히려 예기치 못한 다른 용도에 더 많이 쓰이게 됨. 비행기, 자동차, 내역기관, 전구, 축음기, 트랜지스터 등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
토머스 에디슨의 축음기는 1877년 최초로 발명되었을 때 이것이 소용될 만한 열 가지 용도를 제시.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을 보존하는 일, 시각 장애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책을 녹음하는 일, 시간을 알려주는 일, 철자법을 가르치는 일 등이 포함. 음악을 재생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미포함. 몇 년 후 에디슨은 조수에게 상업적 가치가 없다고 말했음. 그러나 다시 몇 년 후 축음기 판매 시작. 용도는 사무용 구술 기계. 다른 기업가들이 축음기를 이용하여 동전을 넣으면 대중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크 박스를 만들었을 때 자기 발명품이 사무용이라는 중요한 용도에서 벗어나서 전락하는 것에 반대. 그 후 20년이 흐른 후에야 음악 재생하는 일에 마지못해 동의.
결론은, 기술이란 어느 영웅의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된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는 것.
발명가가 어떤 새로운 기술의 용도를 발견하면 그 다음 단계는 사회가 그 기술을 채택하도록 설득하는 일. 단순히 어떤 일을 하는데 더욱 크고 빠르고 강력한 수단이라고 해서 당장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기술 중에서도 끝까지 채택되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저항을 겪은 후 간신히 채택된 기술이 무수히 많다.
각 사회마다 발명품 수용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
평균 수명. 기술적 지식을 축적할 시간이 넉넉히 확보되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장기간의 개발 계획에도 안심하고 뛰어들 수 있는 인내심을 갖게 되기 때문.
다음 다섯 가지는 경제 또는 사회 조직 관련
1) 고대에는 노예들의 값싼 노동력이 당시의 기술혁신을 방해했다고 추정되는 반면 오늘날에는 고임금이나 노동력 부족 현상 때문에 기술 방면에서 해결책 탐구
2) 현대 서양에서는 발명가들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특허권을 비롯 재산권에 대한 각종 법률이 기술 혁신에 합당한 보상.
3) 기술 훈련을 받을 기회
4)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기술 발전에 투자했을 때 보상을 얻을 잠재적 가능성 존재.
5) 미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강하므로 성공적 발명가들이 자기 소득을 가질 수 있음.
다음 네 가지는 관념에 관련된 요인
1) 일부 사회는 모험 정신을 다른 사회보다 많이 보유.
2) 현대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난 공헌을 한 과학적 사고방식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 사회의 특징.
3) 다양한 의견과 이단자들을 용납하는 분위기.
4) 기술 혁신에 대한 종교의 태도. 유대교 및 기독교 일부 교파는 기술 혁신에 호의적인 반면, 이슬람, 힌두교, 브라만교 일부 유파는 적대적.
정부와 종교의 탄생 배경
무리와 부족은 이미 현대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추자연적 신앙을 보유. 그러나 무리와 부족의 초자연적 신앙은 중앙 집권적 권위체나 부의 이동을 정당화하거나 서로 무관한 개인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었다. 초자연적 신앙이 기능을 획득하고 제도화되었을 때 비로소 종교라 부르는 것으로 바뀜. 추장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하거나 신의 혈통을 내세웠으며 신들과의 직통 전화가 개설되어 있다고 단언. 추장은 인간과 신의 중재역할을 하고 정해진 의식을 거행하여 비, 풍년, 풍어 등을 부름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주장. 추장 사회의 특징은 추장의 권위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이것은 제도화된 종교의 선행 형태. 추장은 스스로 정치적 지도자와 사제의 지위를 한 몸에 지니기도 했고 추장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기능을 하는 도독 정치가(즉 사제)들을 따로 두기도 했다. 추장 사회는 거둬들인 공물의 많은 부분을 신전 건설을 비롯한 공공 토목 공사에 소비했고 그것들은 곧 공인된 종교의 중심지이면서 추장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 역할.
제도화된 종교는 사제들에게 부가 이동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중앙 집권적 사회에 두 가지 중요한 이득.
1)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공유하면 친인척이 아닌 서로 무관한 개인들이 서로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데 보탬.
2)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사람들에게 유전적인 이기심을 떠나서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동기 부여. 사회 구성원 몇 명이 싸움터에서 전사함으로써 전체 사회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다른 사회를 정복.
유라시아의 문물 확산을 도운 동서 축 방향
다른 대륙보다 유라시아가 앞선 출발을 하고 야생 동식물과 더불어 발전이 가속화된 이유는 아메리카에 비해 동물, 아이디어, 기술, 사람 등의 확산이 용이했다는 점. 아메리카의 남북 축과 달리 유라시아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이므로 위도 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 변화를 겪지 않고도 각종 문물이 확산. 더구나 아메리카는 식량 생산이나 조밀한 인구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어서 분열이 더 심화.
아프리카의 발전이 유라시아에 비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토종 동식물이 적었고 토착적인 식량 생산에 알맞은 지역이 훨씬 좁았으며 남북 축 때문에 식량 생산과 발명품의 전파가 지연되어 식량 생산이 유라시아에 비해 지연되었으며 기술, 문자보급, 정치 조직 등 탐험과 정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점이 부족.
첫 번째, 야생 동물이 가축화되려면 충분히 온순, 사람에게 복종, 먹이가 저렴, 질병에 면역성, 빠른 성장, 감금 상태에서도 번식해야 한다. 유라시아의 소, 양, 염소, 말, 돼지 등은 그 시험을 통화. 반면 아프리카 동물들(아프리카들소, 얼룩말, 강돼지, 코뿔소, 하마 등)은 현대에 들어서도 끝내 가축화되지 못함.
두 번째, 작물화된 식물의 차이. 사헬 지대, 에티오피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는 토종 농작물이 만들어졌으나 유라시아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에 비해 종류가 훨씬 적었음.
세 번째, 아프리카 면적을 유라시아의 절반 정도에 불과. 더구나 그 면적 중 B.C. 1000년 이전부터 농경민과 목축민이 살고 있던 사하라 이남 적도 이북 지역은 약 3분의 1뿐.
네 번째. 아프리카의 주요 축은 아메리카와 같은 남북 축. 기후, 생식지, 강우량, 낮의 길이, 농작물 및 가축의 질병 등이 크게 달라짐. 따라서 어느 한 지역에서 가축화, 작물화되거나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가축 및 농작물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 지리적 우연(특히 두 대력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