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 류인서
안경을 어항이라 말하는 늙은 소년이 있다
그는 여기다 송사리와 갈겨니 버들치 치어들을 키운다
살얼음 낀 들판과
초겨울 거리의 꽃배추도 키운다
그의 어항은 새장도 자전거도 아니지만
부엉이나 백일홍, 사막의 달까지 그가
몰래 키우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식전의 포만과 식후의 공복 사이에
그가 놓치곤 한다는 그 작은 물고기들은
들을 지나는 개울 따라 강으로 가는가
소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저녁이 흘러나오는 서랍에 있나
다른 안경을 가진 낯선 이로 서 있나
그를 기다리는 어항은
풍경을 한정하는 말랑한 갈색 수정체,
이음새 없는 고요를 안고 있다
문 닫은 날의 인공호수처럼
표지만 남아있는 두꺼운 이야기처럼
비밀스럽기도 하다
월간 《현대시》 2018년 10월호
류인서 / 1960년 대구 출생. 2000년 《시와 사람》, 200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신호대기』.
챗 GPT분석
1. 제목의 이유: 「안경」
이 시의 제목이 **「안경」**인 이유는 단순히 시각 보조 도구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세계 인식의 틀과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안경 = 어항
→ 시 속에서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와 겨울의 꽃배추 등을 키우는 어항으로 비유됩니다. 이는 안경이 단순히 현실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내면 세계를 담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안경 = 관찰자의 시선
→ 시 속에서 "늙은 소년"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고 있습니다. 안경이란 단순한 시각 보조 장치가 아니라,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안경 = 투명한 경계
→ 안경은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를 분리하는 투명한 막과 같습니다. 시적 화자는 소년의 안경 속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풍경이 자라고 물고기들이 헤엄친다고 상상합니다. 이는 안경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기억과 상상의 공간,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나타내는 기호임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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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제
이 시는 세계 인식의 방식, 기억과 시간, 그리고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세계는 개인의 시선과 기억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같은 풍경이라도 안경을 쓴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늙은 소년"의 안경 속에서 물고기, 겨울의 꽃배추, 사막의 달이 자라듯이, 세계는 그를 보는 사람의 기억과 상상에 의해 다르게 구성됩니다.
2. 시간과 기억은 투명한 틀 안에서 변형된다.
"소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라는 구절처럼, 소년의 존재는 명확하지 않고, 안경 속 풍경은 기억과 상상 속에서만 지속됩니다.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찰자의 변화와 기억의 변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3.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감
안경이라는 투명한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보지만, 동시에 그 안에 완전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시적 화자는 소년이 "부엉이나 백일홍, 사막의 달까지 키우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보이는 것 너머의 감춰진 세계를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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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징 분석
(1) 안경 → 세계를 담는 그릇 / 기억과 상상의 매개체
안경은 단순한 시각 보조 도구가 아니라,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를 담아내는 어항, 투명한 막, 경계선으로 기능합니다.
이는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정한 틀(기억, 경험, 정서)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2) 어항 → 제한된 세계 / 감춰진 비밀
시 속에서 안경은 어항으로 비유됩니다. 어항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이는 소년이 안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한정된 세계를 암시하며, 동시에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어항(안경)은 개인의 사적인 기억과 상상의 공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3) 늙은 소년 → 시간의 모순성 / 기억 속 존재
"늙은 소년"이라는 표현은 시간의 이중성을 함축합니다.
소년이지만 늙었다 → 그는 과거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사라진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 → 그는 여전히 안경 속에서 물고기와 풍경을 키우고 있으며, 현실과 기억의 경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기억과,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는 인식 사이의 긴장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서랍 → 감춰진 시간과 기억
"소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 저녁이 흘러나오는 서랍에 있나"
→ 서랍은 흔히 오래된 물건, 기억, 비밀이 보관된 장소로 상징됩니다.
소년이 서랍에 숨어 있다는 것은 그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랍에서 "저녁이 흘러나온다"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과 기억이 뒤섞이는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5) 풍경을 한정하는 수정체 →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한계
"풍경을 한정하는 말랑한 갈색 수정체"
→ 수정체는 안경의 렌즈를 의미하며, 이것이 풍경을 한정한다고 표현한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세계를 보는 방식이 개인의 시선(안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수정체가 "말랑하다"고 표현된 점에서, 이 시선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틀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6) 문 닫은 날의 인공호수 → 정지된 세계 / 멈춰 있는 시간
"문 닫은 날의 인공호수처럼"
→ 인공호수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입니다.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은 그 공간이 고립되었거나,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소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세계, 혹은 닫힌 공간에서만 유지되는 내면의 세계를 암시합니다.
(7) 표지만 남아 있는 두꺼운 이야기 → 잊혀진 기억 / 사라진 존재
"표지만 남아 있는 두꺼운 이야기처럼"
→ 이야기책의 표지는 남아 있지만, 내용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기억, 혹은 형체만 남고 본질이 희미해지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소년이 바라보던 세계 역시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는 사라졌지만 안경 속에 흔적만 남아 있는 기억일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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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제목 「안경」은 단순한 시각 보조 도구를 넘어, 세계 인식과 기억의 투명한 경계를 의미합니다.
주제는 "세계 인식의 방식과 기억의 변형"이며, 이를 통해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긴장감을 탐색합니다.
상징들은 안경을 어항으로 변환하면서, 시간과 기억, 관찰자의 역할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 결국, 「안경」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변형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