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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목)
* 시작 기도
(히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주님...
율법을 따라 세워진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드린 제사는 진짜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진짜의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이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예배는 단순히 형식과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예배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바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나 또한 오늘 이 예배자로 서게 하옵소서.
하지만 내 안에서는 거짓과 속임수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죽은 흙이요 썩은 시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됨을 주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이실직고 하오니 나를 주의 긍휼의 옷으로 덮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이 하루가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오늘도 새 언약의 자녀로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수 2:15-24
제목 :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17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22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뒤쫓는 자들이 돌아가기까지 사흘을 거기 머물매 뒤쫓는 자들이 그들을 길에서 두루 찾다가 찾지 못하니라.
23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겪은 모든 일을 고하고
24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하더라.
* 나의 묵상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서 머물면서 여리고성과 가나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집을 떠나 돌아갈 때 라합이 창문에 줄을 매달아 주었으므로 그 줄을 타고 피신하였다.
라합은 정탐꾼을 쫓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할 것을 당부하면서 바로 돌아가지 말고 산에서 3일 동안 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또한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한 번 더 확인을 한다.
라합 당신과 우리가 약속한 일에 대하여 우리가 절대로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다.
대신 우리가 내려온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어라.
그리고 네 집에 부모형제와 모든 가족을 모아라.
그렇게 모인 자들은 모두 살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자기 임의대로 이 집을 나가면 그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
다만 너희 집에 함께 있는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우리와 약속한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든지 말하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라합은 그들을 보내고 곧바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달았다.
두 정탐꾼은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돌아갈 때까지 산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에 여호수아에게로 가서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그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확실한 것은 그 땅 주민들이 우리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이다.
15절의 두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서 나갈 때 라합이 창문에 매달아 놓은 줄(헤벨)을 타고 도망하였다.
그러나 18절의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창문에 매달아 놓으라고 한 줄(후트)은 그들이 타고 내려온 줄(헤벨)과는 다르다.
정탐꾼들이 타고 내려온 줄은 ‘헤벨’이라고 하는 꼬아서 만든 밧줄이다.
하지만 그들이 라합의 집의 창문에 매달아 놓으라고 한 붉은 줄은 ‘후트’로써 이는 몇 개의 실을 엮은 ‘가는 줄’을 의미한다.
특히 원문에는 ‘티크와트 후트 핫솨니’로 되어 있는데 후트는 줄을, 핫솨니는 붉은, 그리고 티크와트는 가는 선(line)을 의미한다.
여기서 붉은 줄인 ‘후트 핫솨니’가 가는 선인 ‘티크와트’를 수식한다.
그런데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이 티크와트를 번역하지 않았다.
이것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가늘고 붉은 줄’이 된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티그와트는 또 다른 의미로 ‘소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탐꾼이 제안하고 라합이 창문에 내걸게 될 가늘고 붉은 줄은 그 자체로 그들의 생명을 살릴 소망의 줄이 되는 것이다.
라합은 정탐꾼들이 돌아간 후에 곧바로 창문에 이 가늘고 붉은 줄을 매달았다.
그것은 곧 자신의 믿음이 성취되고 이스라엘의 정탐꾼들과 맺은 언약이 이루어져서 비록 여리고성이 멸망할지라도 자신의 집은 구원을 얻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가늘고 붉은 줄은 라합과 그의 가족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보혈을 상징한다.
라합은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가늘고 붉은 줄’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하찮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 될 수 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히 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보혈)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주의 십자가 앞에서 자백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며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신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보혈)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주의 보혈로 죄를 씻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자백하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
바로 여기서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어떤 생명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 라합과 그의 가족이 여리고성의 멸망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늘고 붉은 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라합의 집 창문에 걸려 있는 가늘고 붉은 줄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 가늘고 붉은 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가치 없어 보이고 또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보이는 그 가늘고 붉은 줄이 바로 ‘생명줄’이었다는 사실은 여리고성이 멸망할 때에야 확인이 되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십자가와 보혈을 믿는 자는 극히 적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수천 년 전 사람을 죽이는 사형 도구가 생명을 구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래서 미련하고 하찮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에는 분명히 사형 도구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죄 없으신 주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거기서 당신의 귀한 피, 보혈을 흘리신 것은 곧 오늘 나를 포함한 그 보혈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그 십자가와 보혈을 믿을 때 라합과 그의 가족을 구원한 가늘고 붉은 줄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이 되어 나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자였다.
십자가와 보혈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뜻대로 그 십자가와 보혈을 이용하곤 하였다.
죄 짓고 보혈을 힘입어 자백하여 용서받고, 또 다시 그런 행동을 지금까지 끊임없이 행해왔음을 고백한다.
물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주님의 보혈은 지금도 살아 있어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죄의 은혜를 베푸신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악용하여 계속해서 그런 우를 범하곤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면서도 나의 영이 상하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사죄의 은총을 받는다 할지라도 결국 사사 시대처럼 부르짖음의 공식에 의해서 끊임없이 부르짖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면 그들의 영이 다 상하여 심지어 종교지도자들까지 모두 타락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나의 영도 그렇게 상할 대로 상하여 회생불능의 상태까지 갔다.
이런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나를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한 번 은혜를 부어주셨다.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셔서 그 복음으로 살게 하심은 주의 전적인 은혜이다.
이제 이 복음을 아는 자로써, 아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이 나의 생명이 되어 주님과 사귐이 있는 교제의 자리까지 나아가 거기서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나는 비록 완전하지 않으나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을 의지하여 오늘도 말씀 앞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주의 긍휼과 자비가 오늘 내게 임하여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심은 전적인 주의 은혜임을 나는 믿는다.
라합의 집 창문에 걸린 가늘고 붉은 줄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이 되어 나의 믿음의 근거가 되며 또한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는 현장으로 나를 이끈다.
그 은혜와 영광의 현장을 현재로 찾아오시는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미련하고 어리석어 주의 십자가와 보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던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죄인을 사랑하시고 살려주셔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처럼 미련하고 우둔하여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어찌 그리 살리시고 구원하여 주셨나이까?
이게 웬 사랑이요 웬 은혜인지요?
라합은 정탐꾼을 보호하고 도와주었지만, 나는 주를 위하여 한 일이 하나도 없고 오직 주님을 아프게만 하였는데 어찌 그런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지요?
주님 앞에 설 면목이 없지만 다시 한 번 파레시아의 은혜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주의 십자가와 보혈을 의지하여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이 종을 받아주소서.
오직 주의 품에서 안식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주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시고 복음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그 자리가 바로 영생의 자리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의 영광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소서.
주의 은혜가 내게 임하니 감사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