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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통일전선전술은 ‘상생’과 ‘정반합’ 변증법으로 위장된다
-화해 상생. 정반합 변증법의 98%이상은 친북반역성-
‘대한민국’의 호칭을 담은 ‘남한’이란 말 대신 ‘남측’이란 말을 최초로 쓴 자는 인하대 국문학과 최원식교수로서 [한국계몽주의 문학사론](소명출판, 2002)에 기록되어 있다. 최원식교수가 ‘창작과 비평’측 2인자요 백낙청교수에 줄을 선 사람이고, 백낙청교수가 김영삼 정부에 줄기차게 띄워진 사람인 것을 생각해보면, 우익이 김영삼에 사기 당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북한측의 통일론은 김일성의 통일론이다.
(1) 주체사상을 읽어본 사람(맑스주의에 헌신한 사람 포함)이 주체가 되어
(2) 이념 여부에 상관없이 통 크게 뭉치되(=얼뜨기 바보 많이 꼬시고)
(3) 대한민국 내 ‘통일세력’(우익 입장에서는 김일성세력이라 부르는 세력을 지칭)을 방해하는 반공세력(우익 입장에서 애국세력이라 부르는 대상을 지칭)의 궤멸을 기도한다.
대한민국 국민(6.25 전쟁시 아군이 보호해야 할 대상)을 우선시 생각하는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는 통일의 대변 주체가 아니다. 민족해방(북한의 관제 철학은 인민민주주의민족해방)노선을 따르는 ‘주체’는 (1)에 맞아야 한다.
이명박과 이재오가 (1)의 항목에 들어맞는다는 지적이 7.11 경선의 검증극의 핵심이었다. 이명박은 ‘빈둥빈둥’ 실언을 깨고자 ‘피아구분’을 깨며 “나도 민주화(=민족해방)세력”이라고 지칭했다. 황장엽을 통해서 ‘김일성의 통일론’은 완벽히 오픈되었다. 해볼 테면 해봐라 하면서, 김일성 통일론에 복무하고 있음을 ‘커밍아웃’하고 있는 셈이다. ‘극우’ ‘수구’ 등 다른 표현으로 지칭되나 결국은 김일성 통일론의 ‘반공친미사대세력’ 수준으로 지칭되는 바이다. (3) 지적도 많이 되었다. 이재오가 뻔질 나게 당내 세력을 비판하는 것이, 결국은 광의로 봐서 ‘김일성노선’이자 ‘親[한겨레]’노선이 아니겠는가 하는 차원의 지적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7.11 ‘당대표경선’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90년대 초반에 ‘맑스주의 닮은 보수’의 참신성을 주장했다. 우익은 전부 속았다. 군사정부에 충실자는 헌신성은 있되 ‘인문적 이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좌익의 문화전략에 퍽퍽 넘어졌다. 7.11 당대표 경선은 이재오등에 의해서 ‘은폐된 수준’으로서 작동되는 통일전선전술의 싹을 ‘한나라당 지지자’의 손으로 밟은 것이었다. 지방자치제가 곧 적화라고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무덤 속에서도 흐뭇할 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후의 조작적인 여론조사로 민심이 많이 왜곡되었다.
‘대한민국’을 남측으로 부르는 최원식교수의 머릿속은 우익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연구했다. 해설을 붙이지 못해서 출간 못한 논술교재에는 최원식교수의 ‘정반합변증법’이, 헤겔 판본도 맑스 판본도 아니고 리영희교수 판본임을 지문으로 드러낸 바 있다. ‘만화’로서도 헷갈리지 않게 ‘종교적’ 헤겔을 쉽고 헷갈리지 않게 바라보게 했다. 최초 신앙이 사단의 시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지된다는 가닥에 더도 덜도 아니다.
남과 북의 변증법이라고 하면 결국 ‘남’과 ‘북’ 이란 위의 상위 카테고리로 종합하는 술수가 있는 것이 안다. 대다수의 80년대 대학가 학번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양측 모두에 대해서 ‘지양’한다면서 나라다움을 폐기하는 조처를 취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 가닥이 ‘김일성의 통일론’ 가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묻혀졌다. 상위카데고리로 종합하는 일체의 공식이 없다. 있다고 위장해 온 식자층은 ‘지식인 신분’ 걸고 사기친 것이다. 있다고 우기는 학자가 있다면 지적 바란다. 그들은 논쟁을 졸라게 싫어한다. 왜냐하면, 지식 사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우익 내 퍼진 영삼이 자식들이 그들의 사기를 방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통일전선부의 ‘대화주체’는 ‘이재정씨’등 과거에 맑스주의와 주체사상등에 친숙(?)했다는 의혹을 가진 사람들로 제한된다. 그러한 주체들이 욕사발을 많이 하여 꽤 부정적으로 착색된 ‘정형근’ 등 비 맑스주의자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화 주체가 아니다. 여기서, 쉬운 개념임에도 고상한 말이면 쥐나게 못알아듣는 이들 때문에, 싼티 나는 표현 하자면 북괴는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면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식으로 길들었거나 북한을 이해할 좌파 아니면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바이다. 허수아비만 대화상대 하겠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이 정권 잡으면 온갖 부정적인 사태가 벌어진다는 북한의 궤변은 결국은 허수아비만 대화상대하겠다는 전제 조건의 궤면이라고 봐야 된다.
[북한의 충직한 허수아비, 어떻게 졸라 근사한 이미지로 위장하나?]
기본적으로 ‘민주’ 대 ‘독재’의 이분법을 쓴다. 그래서, 북한의 충직한 허수아비성이 아니라 ‘대중성’을 담는 민주성이고, 자신을 비판하는 자는 ‘독재성’이란 공식으로 몰아붙인다.
민주화운동 논거에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해석법이 끼어 있다. 프랑스혁명은 헤겔과 칸트의 후기 시대이고, 맑스가 도래 하기는 이전 시대이다. 그러나, 맑스의 공산주의 혁명 사상은 프랑스혁명을 전제로 도출한 바탕이다. ‘앙시엥 레짐’이란 말은 철저하게 프랑스혁명 이후에 솟아난 것이다. 친북좌파의 4.19 연구가 이승만 타도 의도가 있는 것으로 위장한 것은, 1987년 이후에 ‘전두환’을 몰아붙이는 사회분위기가 만든 ‘사후에 쓴 소설’일 뿐이다.
북한에 허수아비가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 그들은 과거사의 이미지를 조작하여 자신들은 무조건 선량하며 자기를 막는 것이 무조건 부당하다고 몰아붙인다. 북한에 허수아비가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한 전제란 바탕은 객관적으로 오픈되지 않는다. 이것을 밝히면 ‘색깔론지적’이라고 비난되나,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전제로서 이것을 깔고서 생각한다.
한나라당 집권은 역사의 후퇴라고 친북좌파가 당당하게 선언하는 배경에는 정치권력적으로 북한에 허수아비 역할이 아닌 이들에 대하여는, 역사평가가 반드시 낙인찍히듯 부정적이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권력을 통해서 무조건 관철하는 가닥이 존재하는 것이다. [교과서포럼]의 자진굴복. [교과서포럼]은 당연히 쪽팔려서 해체했겠지. 해체 안하면 간판 떼러 가겠다.
대한민국의 ‘과거 요소’를 약간 대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북한측 담당자와 ‘만담’속에서, 해체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리려는 의도가 ‘남북대화’의 실상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우파가 두려워 하는 의도는 명확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화가 아니라, ‘북한’과 ‘북한측 허수아비’의 대화라는 의혹 때문이다. 그러한 대화 속에서 강화되는 것은 북한이요 해체되는 것이 ‘대한민국’임은 논리적이다.
[화해 상생 빙자=친북좌파의 우익 영역 프락치 침투]
우익 영역에 와서 전직 좌파 경력자가 ‘좌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 말라고 한다. 그 순간에 좌익이 소통되는 영역은 전직 좌파 경력자의 영역 뿐만 아니라 그 상황에 속는 사람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조갑제는 ‘좌익 사상 와꾸(틀)’로 ‘반공우익’ 한다는 것이 은폐된 채 몰래 ‘친북 봉사’했다는 의혹에 해명해야 될 의무가 있다. 조갑제는 일관되게 김정일 반북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통일론이 사상이 무엇이냐를 별로 중요하게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게 없다. 궁극에서는 노무현을 능가할 정도로 ‘김영삼’ ‘김대중’의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만 논거가 왔다갔다 하고 있다.
조갑제가 김정일을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통일전선전술을 궁극적으로 잇도록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인민’이란 전제로서 주장한다. 변증법 논리상 열린당과 동일하게 해체대상에 대한민국을 넣고 있다. 계면쩍으니 ‘남북정권’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리영희’의 ‘남북’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반역적 변증법과 뭐가 다른가?
조갑제 기자.
조갑제 기자 하수인 김성욱기자.
조갑제기자를 따르는 자칭 반공목사들.
제발 대놓고 해명하기 바란다.
우리는 논쟁하기 위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리영희의 변증법의 차이를 드러내서 이야기할 이유가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내내 관통하는 철학은 좌파 경력자가 우파에 우두머리로 심겨져서, 좌익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 말라는 말과 ‘화해’ ‘상생’의 말의 강제적 복창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우익이 극단적으로 궁핍해져도 우익에 대해서 한번도 옹호적인 바 없다는 사실에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생----‘남북’변증법의 통일전선론 위장의 응용학습?]
이명박과 손학규는 6.3 동지회 회원이다. 6.3 동지회는 세계적 반공 블록 형성에 동의한 국민이 허락한 지지의 권한을 초월하여, 반제 용공 공산 사회주의 혁명까지 동의했다는 차원으로서이다. 더도 덜도 아닌 오늘의 ‘민노당 학생위’에서 이념 학습이 최고 수준인 수준을 보면 된다.
이명박과 손학규가 한쪽이 산업화요 한쪽이 민주화랜다.
북한과 북한 허수아비가 북측과 남측을 대변하고 서로간에 화해 상생 주장하는 변증법 용법의 응용 학습임이 떠오른다.
산업화를 해체 지양 무효화시키고 민주화(친북좌파) 논거에 변증법적으로 흡수 통합 시키고자 하는 계책인 것이다. 어렵다면 신앙의 첫 마음에 사단의 유혹이 무릅꿇고 흡수통합된다는 가닥과 비슷할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헤겔이 졸라 딱딱한 표현 썼어도 이 수준을 결코 오버하지 않았다. 두 명은 유감스럽게도 심히 졸라게 젓같게도 둘이 장로다. 한국 교회는 장로 직분을 너무 남발해왔다고 여겨진다.
이 상에서 지켜보면 김영삼계의 ‘거짓말’은 상대에게 ‘거짓말친다’하는 그 순간에 거짓말을 하는 수준이다. 불량보수 이동복씨가 김대중의 거짓말을 질책하는 순간이면, 김영삼계가 어떻게 거짓말 칠라고 사전작업 거나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상대에 거짓말 친다고 주의력을 집중시키고는 룰루랄라 말장난 거짓말을 즐겨온 게 여태껏 김영삼 계의 습관성 일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인 신분이 거짓말 안한다는 선입관은 ‘상도동 세력’에 대하여만큼은 예외로 봐야 된다는 것이 성립된다. 아니, ‘상도동세력’과 ‘동교동세력’은 기독교 불교 어떠한 종교가 있어도 북한식 맑스주의 바탕에 흡수통합되고 종교로서의 독자성이 없다고 봐야 마땅하다.
통일전선전술로 꽉 짜여져서 대한민국 해체 방향으로 가는 것에서 풀려지는 것을 조갑제가 한번도 우선시 한 적 없다. 헌법은 1조 기반으로 솟아난다. 대한민국 국민 기반으로 나온다. 국민의 4대 의무를 지지않는 북한주민을 국민으로 넣고서 어떻게든 변증적 고리를 넣는 이유는, 마침내 친북좌파 주사파와 대한민국 해체하는 날 만나고 잡은 일 때문일 것이다. 조갑제 세력은 늘 좌익과 만날 날을 중시한다. 그러나, 우익은 그렇지 않다. ‘뉴라이트’는 왜 ‘뉴레프트’와 만나야 하나? 왜, 좌익을 못 섬겨 안달이 났느냐? 우익을 독자적 실체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독자적 실체로 두지 않고, 북한(북한정권이든 북한인민이든)에 종속적으로 바라보고, 우익을 독자적 실체로 두지 않고, 좌익에 종속적으로 바라보는 자는 궁극적으로 한 패이다.
김진홍과 조갑제가 손잡는다는 사실은, 김동길교수가 노무현 칭찬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전부가 눈에 보인 게 ‘정치사기단’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김영삼지지세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인 신분을 위장하여 사기극을 진실로 위장해온 권력이다.
그들은 반북적으로 북한에 더 얽히게 하지 않는 사고의 박근혜에 아쉬움을 던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쪽 저쪽에서 짜고 치면서 통일전선전술을 얽기 위해서이다.
‘화해’ ‘상생’이란 말로 우익권력이 앞서면서 우익내부가 촘촘짜여지면 어느 순간에 좌익이 엎어 버릴 것이다. 화해 상생은 좌익이 우익 손발 묶을 때 쓰는 표현이다.
첫댓글 허 허 허 참! 꼭이렇게 튀어보겠다고 발부둥 쳐야하나? 불쌍하기도 하고..... 미친놈으로 취급하자니 난 절대로 미친놈 아니요! 하고 더 지랄을하니 때려죽일수도없고... 허 허 허 이런 거지같은것들이 설쳐대어 만약에.. 만약에... 우리 박대표님께서 한나라당 대권주자로 선정되지 못했을땐 이런 저질 인간들이 훼방놓아 잘못됐다고 원망 안할수가 없습니다. 오-- 주여!!
글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줄기차게 반복한 주제입니다. 조갑제는 반역자 리영희와 똑같은 사상 와꾸 가지고 반공한다고 용쓰나, 실제적으로는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따는 주제입니다. 특히, 조선닷컴과 데일리안에 보도된 것은 '북한의 통일전선전술로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기를 관통한 좌파세력의 18번 메뉴입니다. 잘 보면 보입니다. '꼬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