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시즌이 저물어갈 무렵, 메이저리그에는 '명예의 전당급' 강타자 4명이 동시에 출현했다.
스콧 롤렌(세인트루이스) 앤드루 존스(애틀랜타) 노마 가르시아파라(보스턴) 블라디미르 게레로(몬트리올)가 바로 그들.
가장 먼저 스타덤에 오른 선수는 존스였다. 존스는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만 19세5개월의 나이로 2개의 홈런을 날려 미키 맨틀이 갖고 있던 월드시리즈 최연소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르시아파라와 롤렌도 이에 뒤질세라 이듬해 각자의 리그에서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했다.
출발은 게레로가 가장 늦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3명 모두를 따라잡았고 또 가장 앞서 달리고 있다.
게레로는 1976년 2월10일(이하 한국시간) 도미니카공화국 니자오에서 빈농의 9남매 중 한명으로 태어났다. 대부분의 도미니카 어린이들처럼 그에게도 유일한 희망은 야구였다. 게레로는 2살 위의 형 윌튼(현 신시내티), 동생 훌리오와 함께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며 자랐다.
17세이던 93년 게레로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입단했다. 몬트리올이 게레로에게 준 계약금은 단돈 2,000달러였다. 당시 몬트리올의 스카우트는 송구와 달리기만 보고 주저없이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게레로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팀은 형 윌튼의 소속팀인 LA 다저스였지만, 다저스는 게레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저스가 블라디미르 대신 윌튼을 고른 결정은 페드로 마르티네스(보스턴)의 트레이드 만큼이나 치명적인 실수였다. 게레로는 지금도 다저스에 대한 앙금을 풀지 않고 있다.
94년 루키리그 걸프코스트리그 MVP, 95년 싱글A 사우스애틀랜틱리그 타격왕, 96년 더블A 이스턴리그 MVP에 오르며 마이너리그를 초토화한 게레로는 96년 9월20일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스티브 에이버리-톰 글래빈-대니 네이글-존 스몰츠가 차례대로 출격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4연전에서 17타수4안타를 기록했으며, 강속구 마무리투수 마크 월러스를 상대로 첫 홈런을 뽑아냈다.
게레로는 97시즌 스프링캠프에서 타율 .358 4홈런 11타점의 맹타를 휘둘러 내셔널리그 신인왕 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개막 직전 왼쪽 발등에 금이 가는 부상을 시작으로 무려 3차례나 부상자명단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게레로는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90경기에 출장, 타율 .302 22 2루타 11홈런 40타점의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실질적인 풀타임 첫 시즌인 98년. 비로소 게레로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역대 오른손타자 최다홈런(38)과 홈구장 최다홈런기록(23)을 세웠으며, 팀 역사상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최연소 선수(만 22세)가 됐다. 시즌 후 몬트리올은 게레로에게 5년간 2,800만달러라는 역대 최고액 계약을 선물했다. 98년 당시 몬트리올의 팀연봉은 831만달러였다.
99년 게레로는 131타점으로 팀 최다타점 신기록을 세웠으며, 2년 연속 '30-100'을 기록한 최초의 몬트리올 선수가 됐다. 또한 37개의 2루타와 42홈런으로 장타율 6할을 넘어섰고, 31경기 연속안타로 90년대 이후 최고기록을 세웠다. '불꽃타'는 계속 이어져 게레로는 2000년 생애 최고타율(.345)과 최다홈런(44홈런)을 마크하면서, 지미 팍스-조 디마지오-테드 윌리엄스에 이어 데뷔 후 첫 3년간 '30-100'을 달성한 4번째 선수가 됐다.
2001년 자신을 '제2의 로베르토 클레멘테'라며 아껴주었던 펠리페 알루(현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퇴진하면서, 게레로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새 감독 제프 톨버그는 알루와는 달리 게레로에게 적극적인 베이스런닝을 요구했다. 97년의 발부상 이후 심지어 슬라이딩조차 안하려 했던 게레로도 비로소 빠른 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 몬트리올 타자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이듬해인 2002년 게레로는 알폰소 소리아노(뉴욕 양키스)와 함께 역대 4번째 40홈런-40도루에 도전했다. 무려 20번의 실패를 감수하며 40도루에 성공한 게레로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40호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심판진이 홈런타구를 2루타로 인정하는 오심을 범하면서 아쉽게 대기록에 실패했다.
게레로의 타격은 거포이면서도 홈런에 집착하지 않는 매니 라미레스(보스턴)와 닮아 있다. 그는 지난 5년간 982안타를 날린 '안타제조기'이기도 하다. 또한 타석에서 가르시아파라를 능가하는 적극성을 선보인다. 지난해 게레로는 메이저리그 최다인 10개의 초구홈런을 날렸다. 게레로를 상대로 초구에 직구를 던지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게레로는 지나친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뛰어난 인내심과 선구안을 갖고 있다. 이미 '출루율 4할타자'로 올라선 게레로가 지난 5년간 당한 389개의 삼진은 새미 소사(시카고 컵스)의 2.5년치에 불과하다. 또한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볼을 가장 잘 치는 타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자신감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스몰츠조차도 "도무지 던질 곳이 없다"며 길고 강력한 팔로 볼도 펑펑 쳐내는 게레로에게 혀를 내두른 바 있다.
우익수인 게레로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견을 자랑한다. 그의 '빨랫줄 송구'는 데뷔 초기 방향을 가리지 않고 날라갔지만, 99시즌 후반기부터는 완벽히 제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게레로는 1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내셔널리그 1위에 올랐다.
올시즌 게레로는 등부상으로 50여경기를 결장, 6년 연속 30홈런-100타점 달성이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18일 현재 74경기에서 타율 .315 15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변하지 않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지금까지 게레로가 쌓아온 명성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 이룬 것이다. 팀의 전력은 언제나 바닥권이었으며, 타선에서 자신의 짐을 덜어줄 파트너를 얻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또한 몬트리올의 홈구장 올림픽스타디움은 내셔널리그에서 홈런을 뽑아내기가 가장 어려운 곳이다.
게레로는 올시즌을 끝으로 FA자격을 얻게 된다. 몬트리올에게는 그를 눌러 앉힐 능력이 없다. 게레로는 2001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매니 라미레스 이후 FA시장에 등장한 최고의 선수다. 전문가들은 올시즌 후 게레로가 좀 더 좋은 전력, 좀 더 타자 지향의 구장을 가진 팀으로 이적한다면 역대 5번째 '200안타-50홈런'과 리그 MVP, '트리플 크라운'까지도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과연 '예언자(Miqueas)'를 차지하는 행운은 누구의 몫이 될까.
첫댓글 게레로,,,2001년도에는 배리본즈을 누르고 올스타에 뽑히기도 헸지요!! 정말 잘 티는 타자입니다,, 올시즌이 끝나고 이 선수를 얼마에 어느팀이 데리고 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과연 어느팀에서 데리고 갈까요?...연봉은 얼마가 될련지 궁금해지네요..^^ 1800-2000만 달러에 5년계약 이상은 될듯 싶은데...부러버라...게레로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친구하자 그럼 해줄라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