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단상 몇 가지 - 김상윤

[김진수]

<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까실쑥부쟁이

‘5·18’ 단상 몇 가지

김상윤(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대관세찰(大觀細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게 보고 섬세하게 살피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큰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인류 문명의 대전환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고, 세계 정치의 지형도 대전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5·18 단상 몇 가지’에 앞서 두 가지 큰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의 소리가 높습니다. 인류는 몇 백 년에 걸쳐 지구를 약탈하여 풍요를 누렸습니다. 약탈이 지나쳐 이제는 지구라는 생명체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구 역시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겠지요. 태풍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날씨는 더워지고 있으며, 북극과 남극이 녹아 육지에는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동토가 녹으니 오랜 세월 파묻혀 있던 유기체들이 썩어 메탄가스들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곳곳에 거대한 싱크홀들이 생겨나고 있고, 수만 년 동안 동토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나 무서운 세균들이 언제 지구를 덮칠지 알 수 없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회생 가능한 시간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고 아우성입니다.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욕망’을 토대로 세워진 문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문명은 ‘소비가 미덕’인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멋대로 욕망을 추구해야 자본주의는 활발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욕망을 토대로 세워진 문명을 끝장내지 않으면, 인류의 삶이 끝장날 것입니다. 지금은 문명의 대전환기입니다. 시급히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대재앙에 빠질 수도 있다는 자각을 일상화해야 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입니다. 그러나 많은 관측자들은 이 전쟁은 대리전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활용하여 대륙세력의 한 축인 러시아를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자기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고 자기 국민들을 싸움터로 내몰면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대리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활용하여 러시아를 굴복시킨 후, 대륙세력의 또 한 축인 중국과 대결할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는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합니다. 서방 언론들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보도하고 있으나, 다른 소식통들은 이 전쟁이 미국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대륙세력의 협조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해양세력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을 묶어 중국을 봉쇄하려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인도 역시 그 울타리에 속합니다. 미국은 한국도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잡아두기 위해 그동안 매우 큰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국제정치 상황 속에서 그런대로 균형을 잘 잡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대항해시대’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 그리고 일본 등 해양세력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세계를 좌지우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이 다시 일어서면 해양세력은 더 이상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해양세력의 한 축이 되리라던 사우디나 인도는 이미 해양세력권을 벗어났습니다. 해양세력이 세계를 주도하던 시대는 곧 끝장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동북아에서 맞부딪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만큼 전쟁의 위험이 크게 도사리고 있는 곳이지요. 미국과 일본은 어떻게든 한국을 미일 동맹의 틀 속에 잡아두려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처신을 잘못하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성과가 한꺼번에 붕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 셈이지요. 6·25동란으로 재미를 본 일본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크게 환영할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은 다시 전쟁특수로 ‘잃어버린 20년’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재규에게 박정희가 암살당한 후,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될지, 다시 군부독재의 길을 걷게 될지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광주가 그때 외롭게 고립된 상태에서라도 쿠데타 무리와 맞섰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5·18’을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5·18 단상 몇 가지’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민주화운동’인가 ‘민중항쟁’인가?

1980년 5월18일 아침, 전남대 정문에서부터 시작된 대학생들의 시위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말미암아 처절한 항쟁으로 불붙게 됩니다. 이 항쟁은 급기야 전라남도 일대로 확대되었고, 시민군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탈취한 무기를 들고 봉기합니다. ‘광주사태’로 명명된 이 봉기는 (폭도들이 북한군의 사주를 받아 일으킨 것이고,) 김대중 중심의 내란음모에 의해 획책된 것으로 단죄 받았습니다.

‘전두환 반란군’ 일당의 무자비한 학살 만행으로 시작된 이 항쟁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공식적으로 승화되었고, 그 타협의 산물로 광주항쟁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 이라는 용어는 80년 5월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 5월은 광주의 모든 시민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지만, 운동의 주체는 민중지향적인 청년 운동권과 기층 민중들이었습니다. 또한 운동의 성격은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민중들이 들고일어나(Uprising) 항거하였기 때문에 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518 광주 민중 항쟁’ 이라는 용어는 때와 장소 그리고 운동의 주체와 성격을 포괄하는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항쟁이므로 ‘광주’라는 이름을 넣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광주’란 광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광주 일대의 모든 항쟁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2. ‘광주정신’은 ‘민주·인권·평화’인가?

민주 인권 평화라는 가치는 아주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 규정하는 점에 대해 한 번 따져보려고 하는 것은 정말 진정한 광주정신에 꼭 포함되어야 할 가치가 누락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광주는 스스로 ‘민주·인권·평화’를 자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광주가 스스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를 자처하게 된 것은 518광주민중항쟁 20주년 때라고 합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규정하였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나 아직 그 근거를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20주년 이전에 ‘민족·민주운동’의 기치는 ‘민주·자주·통일’이었습니다. 이 기치는 당시 우리운동이 나아가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외세의 영향을 배제하여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념들이 모두 ‘광주오월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80년 오월에 무슨 통일이냐’고 반론을 제기하였으나, 오월정신은 80년 오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80년 오월 이후 계속된 운동을 통해 ‘계승’되는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기치는 당시 매우 통절하게 민족의 염원을 외치는 구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5·18광주민중항쟁 20주년이 되는 2000년은 민족적 염원보다는 시민운동적 가치가 전면에 대두되었을 때입니다. 일정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자, 운동은 체제내적 운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시민운동가들은 세계적 보편성에 주목하였고, 그들에게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라는 가치가 매우 소중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5·18광주민중항쟁의 가치가 ’민주·인권·평화‘로 규정된 것은 당시 시민운동적 가치가 반영된 것이라는 말이지요. 물론 외부에서 보기에 광주가 지나치게 ‘저항의 이미지’로만 알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부드럽고 포괄적인 용어를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자주·통일’이나 ‘민주·인권·평화’ 모두 5·18광주민중항쟁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냈다기보다는 당시 운동의 가치를 5·18광주민중항쟁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거의 모든 식민지들은 독립하였습니다. 그러나 독립한 나라들은 또 다시 ‘개발독재’라는 혹독한 시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독재자들은 장기집권을 위해 특정한 ‘계급’을 차별하고 특정한 ‘지역’을 차별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특정한 지역이 나라에 따라 특정한 종교나 특정한 인종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특정한 계급과 특정한 지역을 차별하는 것은 제3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적 현상이었습니다.

유신체제의 붕괴를 전후하여 일어난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은 제3세계의 일반적인 현상들이 표출된 것입니다. 부마항쟁은 계급적 모순이 폭발한 측면이 강하고 광주항쟁은 지역적 모순이 폭발한 측면이 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은 유신체제가 만들어낸 쌍생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30년 넘게 지속된 지역차별 때문에 폭발한 것입니다. 그 차별을 철폐할 가능성이 김대중에게 다시 말해 민주화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었던 지역민들이 그 가능성이 무참히 꺾이자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혹한 차별에 대한 저항정신’은 5·18광주민중항쟁의 빼놓을 수 없는 가치가 되는 것이지요. 보다 추상화하여 표현하면 평등이나 정의 같은 말로 다듬을 수 있겠지요. 옛날부터 광주 스스로 ‘의향’으로 자처해 왔던 대로 ‘정의’라는 가치를 제외하고 5·18광주민중항쟁의 가치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전남대학교는 교정 안에 ‘민주길’을 만들었습니다. ‘민주길’은 ‘정의길’과 ‘인권길’ 그리고 ‘평화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민주길 인권길 평화길이라는 명칭으로 정했으나, 여러 논의를 거쳐 다시 정의길 인권길 평화길로 명명하고, 이 세 길을 묶어 민주길로 명명했습니다. 매우 훌륭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왜 광주가 정의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두환 반란군 세력이 정권을 잡고 만든 정당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습니다. 천주교에는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같은 좋은 조직도 있습니다. 광주는 옛날부터 자신들을 ‘예향’과 ‘의향’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의향’은 바로 ‘정의의 도시’라는 뜻이 아닐까요? 5·18광주정신을 말하면서 ‘정의’를 뺀다면 정말 안 된다는 말씀을 간절히 드립니다.

3. 종합계획이 필요하다

아시아문화전당에는 원래 ‘민주평화교류원’을 설립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김영삼 정부는 구 도청을 ‘5·18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타협안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을 위해 아시아문화전당을 만들되, 구 도청은 ‘민주평화교류원’을 만들어 5·18의 상징 공간 역할을 하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 민주평화교류원은 5·18기념관의 역할과 동시에 5·18이 세계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부에서는 민주평화교류원이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내용을 확정하기도 전에, 구 도청 공간에 5·18을 상징하는 기념 조형물 만드는 일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민주평화교류원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하려면 이런 기념 조형물이 필요하다’고 해야 순서가 맞는데, 우선 기념 조형물부터 만드는 일을 하다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지요. 결국 ‘왜 이 장소에 이 기념 조형물이 있어야 되는지’ 그 이유를 확실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념 조형물의 형태가 전면에 부각되어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만 것이지요.

결국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들어진 조형물은 해체되고, ‘도청 원형 복원’이라는 원론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아시아문화전당 조성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이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자체가 새로운 조정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라와 지역이 입은 손실은 참으로 막대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민주평화교류원의 기능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민주평화교류원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아직도 계획은 세워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민주평화교류원 계획을 시급히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런 의욕은 있나요?

광주시는 구 광주교도소에 (명칭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광주민주콤플렉스’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 계획이 변경되는 통에 광주민주컴플렉스 계획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광주시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만드는 ‘한국민주주의전당’을 유치하기 위해 유치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아 국회에서 토론회도 했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정성헌 이사장 때는 서울 광주 마산 삼각축으로 한국민주주의전당을 만들기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광주민주컴플렉스에 한국민주주의전당의 기능을 포함시킨다는 전제 아래 한국민주주의전당은 서울에 건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용섭 시장은 휴보 시절 공약으로 ‘광주민주평화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광주민주재단은 아무런 진척도 없습니다. 광주민주재단은 ‘광주가 너무 5·18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광주는 5·18 이전에도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5·18 이후에도 민주화운동이 힘차게 진행되었는데도 모든 운동이 5·18로 수렴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광주에서는 5·18기념재단과 광주민주재단이라는 쌍두마차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대표하게 만들자는 취지인 셈이지요. 그런데 이 일도 지지부진합니다. 왜 이럴까요?

민주평화교류원, 광주민주컴플렉스, 광주민주재단 등 말만 무성하지 단 하나도 제대로 진행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5·18기념관’을 반드시 건립할 계획이라면 또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걱정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계획된 기구마다 내용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서로 중복된 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민주평화교류원이 하는 일을 광주민주재단에서도 할 수 있고, 광주민주컴플렉스가 하는 일을 광주민주재단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시는 비록 국가사업이기는 하지만 민주평화교류원을 포함하여 민주화기념사업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종합계획이 확정되면 일이 좀 더디더라도 결국 모든 계획이 서서히 집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4. 연대의 길

광주는 인류사회를 위해 ‘해야 할 몫’이 있는 도시입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광주가 ‘해야 할 몫’에 상응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목표를 세 가지로 상정합니다.

첫째, 광주문화수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 중심의 현 체제는 대한민국을 망친다고 보았습니다. 국가가 균형을 찾으려면 수도권의 힘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된다고 보았지요.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정책이 등장하는 배경입니다.

수도권은 이미 ‘경제수도’이고, 경상도는 ‘물류수도’, 충청도는 ‘행정수도’, 호남을 대표하는 광주는 ‘문화수도’로 만들겠다는 개념은 그야말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제시한 큰 그림이지요. 당연히 광주문화수도는 충청도의 행정수도와 마찬가지의 비중으로 호남 일대에 큰 파급효과를 내야 하는 밑그림인 셈이지요.

그런데 광주는 스스로 광주문화수도가 호남을 경제적 낙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문화를 통해 어떻게 ‘호남 30년 경제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지 지혜’를 짜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경제적’인 접근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조성하려는 아주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수익모델은 별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을 통해 광주가 호남의 경제적 낙후를 극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광주문화수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호남은 국가균형발전 정책 때문에 더욱 소외되는 현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광주문화수도를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둘째, 한국문화산업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광주 특히 광주 문화계가 ‘문화경제적’인 접근을 못하고 있었던 반면, 과학계의 접근은 달랐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의 우운택 교수는 문화컨텐츠기술연구소(CT연구소)를 광주에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문광부 김종민 장관은 ‘3만 평의 부지에 1,300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박사급 연구원 400명 행정요원 100명, 1년 경상비 1,000억 원의 CT연구원을 광주에 설립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이 CT연구원 설립을 위해 광주과학기술원에 CT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이어서 CT연구원은 2017년에 개원하기로 확정되었습니다. CT연구원이 설립되어 가동된다면 광주는 명실 공히 한국 문화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CT연구원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이런 문제를 광주시가 차분하고 끈덕지게 대응하기 위해 ‘문화부시장’ 또는 ‘문화경제부시장’ 제도를 두어야 한다고 저는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문화경제부시장은 상당히 독립된 체제를 가지고 시장이 바뀌는 것에 상관없이 ‘광주가 문화로 먹고 살고’, 그 파급효과가 호남일대에 퍼져나가도록 하는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광주시의 문화경제부시장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혹시 경제 부처에 연줄을 이용해 예산이나 많이 가져오는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셋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세 번째 목표는 광주가 명실 공히 아시아인권의 중심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 민주평화교류원이 활발히 움직여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아시아인권위원회’ 같은 국제적 기구도 광주로 옮겨올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평화교류원이 적어도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 평화를 위해 제 역할을 다 하면, 광주의 최대 자산이자 가치인 구 도청은 5·18과 함께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홍콩에 있는 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본부를 광주로 옮기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잘된 결정입니다. 대환영입니다.

그러나 ‘민주 성지’이자 정의 평화의 도시인 광주가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는 보다 크게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노벨상은 대단히 훌륭한 상이지만, 강대국들의 잔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급히 제3세계라 불리는 주변부 국가들을 위해 국제적인 큰 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광주’라는 정의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강대국의 노벨상 못지않은 국제적 상을 만들 수 있는 나라입니다. 국가는 나중에 참여하더라도 광주가 먼저 제3세계 노벨상에 해당하는 ‘광주평화상’과 ‘광주예술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상금도 노벨상보다 더 많아야 합니다.

광주평화상이나 광주예술상은 오래 전부터 광주가 ‘의향’과 ’예향‘의 도시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릴 것이며, 5·18광주정신을 통해 세계와 연대하는 큰 통로가 될 것입니다.

지동차와 AI 그리고 에너지 등은 우리의 먹고사는 수단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5·18이 있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있으니, 광주의 미래는 역사와 문화라는 두 축으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와 문화는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의향과 예향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