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따리샤바라의 클론 강원래씨, 대중앞에 서다
국내 정상급의 가수로 활동하던 클론의 맴버 강원래씨,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의 삶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털어놓았다.
"꿍따리샤바라"로 선풍적 인기를 끌던 클론의 강원래가 다시 대중앞에 섰다. 그러나 이번 모습은 화려한 조명과 음향시설이 있는 무대가 아닌 한 장애인단체의 교육과정에 강사로 나선 것이다.
지난 4일(금) 저녁 방배동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강의실에는 '참 좋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라는 주제로 클론의 맴버였던 강원래씨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명 가수에서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현재의 모습을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두시간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이번 강의는 일반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장애문제를 바라보는 왜곡된 관점과 편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난 91년부터 12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장애우대학' 24기의 과정중의 한 과목이기도 하다.
"저는 강원래입니다. 클론의 강원래입니다. ... 저는 전교꼴등도 한적이 있습니다. ...."
강씨는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과거 유명 가수에서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들을 솔직하게 격의 없이 토해냈다. 그는 자격은 없지만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선다며 장애인으로서는 2년정도 되는 초보 장애인인데 장애인 선배(?) 앞에서 말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오토바이 사고 억울하다. 난 폭주족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일부의 오해에 대해서는 강력한 어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우리 사회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중에 일부의 '폭주족'이 있으나 자신이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을 폭주족으로 몰아가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고 안타까움을 말하며 자신은 어려서부터 춤과 오토바이를 좋아했고 돈을 벌어 오토바이를 사고자 하는 꿈이 있었는데 유명가수가 되어 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당시 정당한 면허소지와 헬멧착용, 안전운전중에 상대편 차량의 문제로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하여 편견이 심했다고 밝혔다. 사고의 반응은 불쌍하다는 동정이 40%, 강원래가 누구야! 하는 식의 비꼬는 반응 20%, 나머지 40%는 욕을 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치료를 하던 의사는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보인 반응을 보고 혹시 마약을 한 것 같다는 발언을 기자들에게 하는 등 아직도 억울함과 서운함이 있다고 말했다.
사고후 그에게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사기꾼, 점쟁이, 침, 초능력자, 심지어 효과가 있다고 닭발을 모아온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잠시 의지해 보았지만 결국 시간낭비였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동권 운동,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 참가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나 메일을 통해 장애인이동권 운동을 안하냐는 질문을 한다고 하며 지금까지 자가용으로 생활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거의 없는 자신이 이동권 운동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기억에는 지하철 요금이 170원일 때의 경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비판의 소리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것을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장애인이 되어 울기도 많이 했다는 강씨는 그러나 장애에 대해 적응하기 쉬웠던 부분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연예인의 특성이 있었기 때문임을 말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민감하고 난폭한 반응을 보였지만 점점 순화되었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장애 극복을 위하여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한 장애인들과의 새로운 만남
병원에서 퇴원 후 외부 활동을 시작했으나 한 패션쇼에 참가했다가 대소변이 조절 안되는 마비장애인으로 수치를 경험한 후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고 칩거 생활중에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늘빛 사랑'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예전의 친구들보다 장애인들과 같이하는 생활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때 한적한 곳에 휠체어카페를 만들어서 휠체어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장애인이 모두 착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동호회의 활동과정중에 장애인 안에서도 장애유형별로 차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장애인이 자신의 화풀이를 도우미에게 하는 것을 보고 차별을 없애는 일과 착한 장애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강연 중간 중간에 착한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은 통하여 장애인도 인간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롭게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그 후 자신이 착해지면 남도 착해지리라는 생각으로 착해지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의 장애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
"원래형, 형에게 장애를 준 것은 형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준거야"라는 말을 재활치료중에 만난 한 장애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며 충격적인 말이지만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노력을 한다고 밝혔다. 최소한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 어려운 병간호와 지금까지 함께한 아내 김송씨 만이라도 감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고 밝혔다.
장애인이 되니까 하루가 대소변의 처리로 지나갈 정도로 불편과 불만도 많았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었고 사실 돈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적응을 한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 힘든 장애인들이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 힘든 것과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경제적 약자로 살아가며 장애를 이기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을 강원래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보험금 관련한 기사에 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비장애인들은 건강을 행복으로 생각하며 조심하고 잘 지키고 장애인들은 합병증을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모든 장애인이 거리로 나갈 때 장애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는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유형의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 우리 사회에도 장애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면 사회는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쓰러지며 장애인들이 얼마나 불편하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장애인들도 서로의 장애에 대하여 서로 돕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휠체어 장애인은 주차를 못해서 거리를 헤매야 하는데 약미한 장애거나, 장애인의 가족이 장애인 주차장을 버젓이 이용하는 현실에서 장애인과 장애인의 협력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강연에 이어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이어졌는데 회중들의 질문은 결혼과 출산, 장애인 운동의 참여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강씨는 김송씨와의 결혼에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지만 양가의 축복가운데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고 현재 시험관아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교생활에 관해서는 어릴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고 부모님도 기독교인들인데 마침 사고도 예전에 다니던 교회 앞에서 나서 퇴원후 새로운 신앙생활을 결심하고 다시 찾아갔으나 교회가 3층에 위치하고 편의시설이 없어서 항상 4명이 도와야 하는 현실에 미안해서 현재는 다니지 못한다고 교회의 편의시설의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다.
장애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에 그는 한사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 장애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때가 될 때 일을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질문자는 과거 장애인이 아니었을 때 장애체험 행사를 방송사를 통해 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지금 장애인이 되니 어떠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다시는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드시 재기하겠다. 나머지 50%를 보여주겠다.
| 강원래씨의 부인 김송씨는 강연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
| 끝으로 그는 다시 재기할 것을 밝혔다.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재기해서 아직 보여주지 않은 강원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전에 보여준 모습은 50%도 안되는 것이어서 나머지를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강원래씨는 2000년 11월 9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불법유턴하던 자동차와 충돌을 해서 장애인이 되었고 그 후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던 김송씨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날 강연내내 뒤에서는 김송씨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팬들 몇 명도 성원을 아끼지 않으며 강연회에 함께 했다.
** 강연과 관련된 동영상은 월요일(7일)중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동영상은 강의중 일부만 서비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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