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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다음에는 저도 그냥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유가장은 흑사맹과의 싸움에서 진 거나 다름없었다. 뇌룡 덕분에 멸문의 위기만 간신히 넘어갔을 뿐이지 실제로 가문의 위세가 엄청나게 위축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아남은 백여 명의 무사들은 무영 덕분에 모두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유가장은 몰락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간신히 면했다.
아직 사업장에 남아 있는 무사들도 다행히 멀쩡했다. 그들마저 잃었다면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유양벽은 침중한 표정으로 집무실에서 총관의 보고를 들었다. 총관은 담담하게 현재 유가장이 처한 상황을 읊었다. 하지만 마음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유양벽은 총관의 말을 모두 들은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흑사맹이 다시 달려들면 막아낼 여력이 없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끄응...... 골치 아프군."
유양벽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흑사맹이 가만있을 리 없다. 비록 하남지부장 마창관이 죽었지만 아직 혈수사 조양이 남아 있었다. 조양은 마창관보다 훨씬 위험한 자였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일단 정협맹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정협맹도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죽은 무가의 자제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유양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보통 사람이 아니지."
사실 이번 일 덕분에 정협맹의 몸집이 상당히 커졌다. 그동안 눈치만 살피고 있던 무가들이 속속 정협맹의 문을 두르리고 있었다.
"아마 정협맹에서도 우리 유가장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총관의 말에 유양벽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과연 그들이 우리를 위해 움직이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남은 힘이라고는 아무리 쥐어 짜봐야 중소 무가 정도밖에 안 되네. 그럼 우리를 위해 흑사맹과 싸우려 들겠는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중소 무가들은 효과적으로 아우르려면 반드시 우리 유가장을 지켜내야 합니다."
총관의 말에 유양벽이 눈을 빛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듯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직 저력이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사업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단 지켜내기만 하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정협맹의 입장에서도 꽤 매력적일 것입니다."
유양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 문제는 그 사업장을 지켜내는 일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총관이 말을 흐리자 유양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그리 뜸을 들이나? 말해 보게."
"그 약사가 필요합니다."
유양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약사?"
"앞으로 몇 번을 더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흑사맹도 전력을 낭비할 수 없으니 적절한 인원으로 사업장을 견제할 것입니다.
그때마다 부상을 입게 되면 결국 남아나는 무사가 없게 됩니다. 유양벽이 그제야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 약사만 있다면 우리는 죽지만 않으면 무사를 잃을 일이 없겠군. 반면 흑사맹은 계속 손실이 쌓일 것이고."
"그렇습니다."
유양벽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그 약사를 잡아두려 했네. 아마 얼마 가지 못했을 걸세. 서두르면 충분히 잡아올 수 있을 걸세."
유양벽의 말에 총관 또한 눈을 빛냈다.
"소문이 퍼지면 곤란합니다. 흑사맹에서 그 약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아마 죽이거나 자신들이 잡아다 쓸 것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거정할 필요 없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니까."
총관은 그제야 안도했다.
"장주님께서 나서 주신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지요."
"후후, 기대해도 좋네. 내 반드시 잡아오지."
유양벽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조양은 황송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은 그가 함부로 눈을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였다.
"어, 어르신을 뵙습니다."
고작 마흔 중반 쯤 됨직한 두 중년인은 차가운 눈으로 허리 숙인 조양의 등을 힐끗 쳐다봤다.
"네가 조양이라는 아이냐?"
"그, 그렇습니다. 어르신."
"일단 좀 쉬자."
조양은 그 말에 더없이 정중한 자세로 두 사람을 흑사맹 하남지부에서 가장 화려한 방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가자 알아서 몇몇 예쁜 기녀들을 불러 넣어 주고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거창하게 대접을 했다. 알아서 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조치하고 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설마 그들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수습이나 하라고 하더니....."
처음 중원을 요청했을 때 수습이나 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유가장을 몰아치면 낙양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 판단했지만 상부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두 노마가 나타난 것이다.
부르르.
조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본 두 사람의 정체를 아는 자는 흑사맹 내에서도 몇 없었다. 조양이 바로 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구대흉마라니......'
두 사람은 구대흉마였다. 하나만 와도 흑사맹 하남지부쯤은 박살을 낼 수 있다 알려진 구대흉마였다.
게다가 둘만 온 것이 아니라 백 명이나 되는 무사들을 이끌고 왔다. 그들도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한 정예무사였다.
"아무리 뇌룡이라 해도 이젠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군."
조양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뇌룡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구대흉마 둘을 한꺼번에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백 명이나 되는 정예무사가 있다. 그들은 하남지부의 무사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유가장은 끝이다."
조양은 더 이상 유가장은 없다고 자신했다.
조양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하들의 보고를 들었다.
"모두 멀쩡히 살아났다고?"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입니다."
조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유가장에 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많아봐야 스무 명이 한계라 생각했는데 이건 예상을 지나치게 벗어났다.
"사업장에 있던 무사들을 불러들인 것도 아니라 했지?"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날 우리와 싸웠던 그 무사들입니다."
"불가능하다. 그들 중 절반은 절대 회생 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족히 몇 달은 정양해야 간시히 몸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였다.
조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하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제대로 확인을 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도 알아봤느냐?"
"확실치는 않지만 대단한 약사가 개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약사?"
"그렇습니다. 어찌나 대단한지 그 약사가 준 약을 먹고 다 죽어가던 무사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고 합니다."
조양의 피식 웃었다.
"그런 허황된 소문을 믿는 거냐?"
"소문이 아닙니다. 소문은 유가장에서 최대한 차단하고 있어서 제대로 돌지 않습니다."
조양은 그제야 표정이 변했다. 유가장에서 일부러 소문을 차단시킬 정도라면 정말로 뭔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대단한 약사가 지금 유가장에 있다는 말이냐?"
"며칠 전에 떠났다 합니다."
조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소식은 없느냐? 그런 정보를 들었으면 당연히 행적을 수소문했겠지?"
"물론입니다. 낙양 빈민촌에서 이틀간 약을 파고 어디론가 떠났다 합니다."
조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빈민촌에서 약을 팔아?"
"예. 그들이 그 약사를 약선이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조양의 눈이 커졌다. 이건 확실히 확인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 약사를 찾아서 무조건 내 앞에 데려와라.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조양의 말에 그의 수하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존명."
수하가 사라지자 조양은 눈을 빛냈다.
"정말로 흥미롭군. 만일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 될 거야. 본맹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어."
물론 모두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금 들은 말의 절반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성과도 있단 말이지."
조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왠지 일이 지나칠 정도로 잘 풀려나간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본맹으로 돌아가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조양이 눈앞에 흑사맹의 거대한 모습이 아른거렸다.
"혹시 이곳에서도 약을 파실 건가요?"
서하린의 물음에 무영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하루 쉬고 바로 떠날 거야."
서하린과 모용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약을 만들어 팔겠다고 하면 또 산에 올라 무영을 도와야 하는데 그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여기는 그래도 꽤 평화롭네."
무영은 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정주의 한 객잔이었다. 정주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에 방을 잡았고, 그때부터 무영은 계속 창 밖만 내다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요?"
서하린의 질문에 무영은 그녀를 살짝 바라봤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들."
"어떤 건데요?"
서하린의 집요한 질문에 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려 근처 의자에 앉았다. 서하린과 모용혜의 호기심어린 눈이 무영에게로 향했다.
"그냥 스승님 생각. 그리고 사형 생각."
무영의 말에 두 여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형도 있었어요?"
무영에게 사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무영과 같거나 비슷한 능력자가 한 명 더 있다는 뜻 아닌가.
"한 번도 본 적은 없어. 내가 스승님께 들어가기 전에 하산했다고 하니까."
두 여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께서 스승님께 십 년을 배우셨다 했으니 사형은 훨씬 나이가 많겠군요."
모용혜는 은글슬쩍 무영을 보르는 호칭을 공자님으로 바꿨다. 서하린은 그것에 민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무영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군요. 저도 그저 스승님께서 남기신 서찰을 읽고 아는 것뿐이라서."
모용혜와 서하린은 정말로 구금해졌다. 과연 무영의 사형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영과 같은 사람을 키워낸 그의 스승이 누구인지 말이다.
"스승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무영은 그 질문에 잠시 눈을 감았다. 서하린은 눈을 빛내며 무영의 답을 기다렸다. 예전에 신선과 같은 분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더 자세한 것을 원했다.
그것은 모용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영처럼 대단한 사람을 키워낸 스승이 평범할 리 없었다.
분명히 뭔가 대단한 정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듣다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무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신선 같은 분이셨어. 때로는 영락없이 떠돌이 약장수셨고."
"공자님처럼요?"
모용혜의 질문에 무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전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영의 말에 모용혜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공자님, 이제 슬슬 제게 말을 좀 편하게 하시면 안 될까요? 저도 고작 스무 살이랍니다."
무영은 모용혜의 갑작스런 말에 약간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함부로 모용혜에게 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와 그만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영이 당황하자 서하린이 얼른 나섰다.
"그건 좀 그렇죠. 저처럼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죠? 오라버니?"
서하린의 말에 모용혜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눈으로 무영를 똑바로 바라봤다. 무영은 그녀의 눈빛에 더 당황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저도 오라버니라고 부를 거예요. 괜찮죠"
모용혜의 말에 서하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멍하게 벌렸다.
"오라버니! 뭐라고 말씀 좀 하세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
서하린의 말에 무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하린과 모용혜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건 하린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직 그럴 단계는......"
무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용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게 말을 편하게 하세요. 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일단 양보할 테니까요."
모용혜는 그렇게 말하며 무영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무영은 그녀의 태도에 또 당황해 버렸다.
서하린이 분한 표정으로 모용혜를 쏘아봤다. 하지만 모용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영만을 또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정주의 밤이 깊어갔다.
세 사람은 결국 한 방에서 자야 했다. 서하린도 모용혜도 전혀 물러나지 않고 무영과 함꼐 있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무영만 잠을 설치고 말았다. 두 여인은 침상에서 함께 잠을 잤는데, 무영은 바닥에 앉아 가끔 그녀들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그렇게 하루 지나고 나니 모용혜와 서하린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무영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
무영은 한숨을 한 번 쉬고 짐을 대충 챙겼다. 사실 챙길 짐은 거의 없었다.
좌판이야 그때그때 만들어 조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낙양에서 쓴 좌판은 벌써 잘게 쪼개 불쏘시개로 써 버렸다.
무영은 두 여인을 뒤에 달고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정주를 벗어났다.
정주를 막 벗어날 무렵 무영은 걸음을 멈췄다. 기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모용혜의 물음에 무영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무영의 감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요."
무영의 말에 모용혜가 아미를 살짝 찡그렸다.
"말씀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공자님."
모용혜의 말에 무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아마 앞으로 말을 할 때마다 이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았다. 모용혜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무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렇게 하죠. 어쩔 수 없는 것 같으니......"
"호호, 고마워요. 공자님."
모용혜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만족감이 웃음지었다. 서하린은 약간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하지만 크게 기분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주변으로 감각을 퍼트렸다.
"그런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정말인가요?"
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용혜와 서하린도 감각을 집중해 주변을 살폈다.
그녀들의 내력은 이미 웬만한 고수들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감각 또한 탁월했다. 어떤 면으로는 무영보다 더 대단했다.
먼저 알아챈 것은 놀랍게도 서하린이었다.
"응? 정말로 누가 있네요?"
서하린의 말에 모용혜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감각에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도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살기도 없고......"
모용혜는 기척이 느껴진 쪽을 쳐다봤다. 기척은 두 군데서 오고 있었다. 둘 중 한 쪽은 뭔가 기척이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다른 쪽은 은은한 적의가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요?"
모용혜는 별다른 위협을 느껴지 못했다. 서하린의 실력이 예상 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양쪽이 모두 덤벼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모용혜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왜 쫒아온 건지는 물어봐야지."
무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용혜가 한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뒤를 이어 서하린이 남은 쪽으로 향했다.
두 여인의 속도로 너무나 쾌속했다. 덕분에 몰래 숨어서 뒤쫓던 무리는 크게 당황하며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크윽! 쳐라!"
모용혜가 달려간 쪽의 반응은 일단 공격이었다. 그들은 열 명이었다. 열 명은 각자 검을 들고 모용혜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채채채채챙!
날카로운 소음이 연달아 울렸다. 모용혜는 열 명의 사내들 틈으로 파고들어 사방으로 검기를 뿌려댔다.
모용혜가 그렇게 열 명의 사내들을 상대하는 동안 서하린은 역시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들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반응은 모용혜가 상대하는 사내들과는 좀 달랐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들 역시 열 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하린과 검을 섞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서하린은 왠지 그들의 얼굴이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설마 유가장?"
서하린의 놀란 외침에 사내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유가장에서 무영을 잡기 위해 나선 무사들이었다. 서하린은 놀란 눈을 그들 중 한 명을 쳐다봤다.
"자, 장주님!"
유양벽이 그곳에 서 있었다. 유양벽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하린과 모용혜를 번갈아 쳐다봤다. 행적을 뒤쫓기에 바빠 모용혜가 함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다시 보게 되는군."
유양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하린 뒤로 보이는 무영을 똑바로 쳐다봤다. 무영은 유양벽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일단 저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인 듯하군."
유양벽은 그렇게 말하며 모용혜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모용혜는 열 명이나 되는 사내들 틈에서 화려하게 검무를 추고 있었다. 열 명의 사내들은 수적 우위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계속 밀리기만 했다.
서하린은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쉬아악!
서하린의 검에서 날카로운 검풍이 일었다.
펑!
모용혜 옆에서 검을 휘두르려던 사내 하나가 등에 검풍을 정통으로 맞고 나뒹굴었다. 그의 등짝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모두 놀란 틈을 타서 서하린이 싸움에 난입했다.
쉬가가가각!
날카로운 검기가 쏟아졌다. 모용혜도 그저 지켜보기만 하지 않고 사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두 여인이 열 명의 사내를 제압하는데 촌각도 걸리지 않았다.
열 명의 사내가 바닥을 뒹굴고 그 한가운데 오연히 서 있는 아름다운 두 여인의 모습은 마치 그림 같았다.
모용혜는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의 혈도를 일일이 짚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유양벽을 바라봤다.
"유가장주님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가요?"
모용혜의 질문에 유양벽이 또 쓴웃음을 지었다.
"얻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직접 찾아왔네."
유양벽의 말은 들은 모용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유가장의 입장이라도 무영을 잡으려 할 것이다. 무영이 유가장에서 보여준 능력은 엄청났으니까. 물론 상처 입은 무사들은 괴로웠겠지만.
유양벽은 속이 타들어갔다. 사실 강제로라도 무영을 끌고 가려고 했는데 모용혜가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유양벽이라 하더라도 모용세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실 한순간 악독한 마음을 먹었다. 모용혜를 죽인 후 모든 것을 흑사맹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마침 흑사맹도 무영을 쫓아왔으니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모용혜와 서하린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 계획은 깨끗이 접었다.
'모용혜는 청령환을 먹었으니 그렇다 치고 서가장의 저 아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모용혜 하나라면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하린은 모용혜보다 더 대단해 보였다.
유양벽이 이끌고 온 무사들만으로는 상당히 벅차다. 그 와중에 무영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그럼 장주님은 볼일을 보세요. 전 이들에게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요."
모용혜의 말에 유양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아내고 싶은 건지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답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흑사맹에서도 알았군. 하긴 다른 놈도 아니고 혈수사라면......'
모용혜까 쓰러진 사내들을 심문하는 사이 유양벽은 조금 서둘러 무영에게 다가갔다. 아직 모용혜와 서하린이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사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잠시 얘기를 좀 할 수 있겠나?"
유양벽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투도 정중했다.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리를 좀 옮겼으면 좋겠는데, 괜찮은가?"
무영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양벽은 눈을 빛내며 걸음을 옮겼다. 일행과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유양벽은 슬슬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이동 속도가 빠르더군. 설마 벌써 정주에 도착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유양벽의 말에 무영은 별달리 할 말이 없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유양벽도 굳이 대답을 원하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무영 일행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정주까지 오긴 했지만 그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덕분에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지만.
"이쯤이면 괜찮겠군."
유양벽은 한참을 걸어와서야 멈춰 섰다. 일행과 상당히 떨어졌기에 아무리 모용혜나 서하린이라도 둘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을 듯했다. 유양벽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유가장에 몸을 담게. 대접은 섭섭지 않게 해주지."
유양벽의 말에 무영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유양벽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마음속에선 분노가 들끓었지만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단호히 자르지 말고 조금 생각을 해보게. 자네도 이렇게 떠돌아다니느니 한곳에 정착한는 것이 훨씬 낫지 않나."
무영은 그 말에도 생각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착을 하려면 벌써 했습니다."
유양벽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 스승님도 우리 유가장과 인연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나?"
유양벽은 사실 아직까지도 확신은 못했다. 무영이 예전 유가장에 청령환을 만들어 주던 그 신선의 제자인지 마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층분했기에 한 번 말을 던져봤다.
"스승님과의 인연은 끝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무영의 말에 유양벽이 품에서 청령환을 거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가 이 청령환을 만든 겐가?"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명이셨습니다."
유양벽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다.
정말로 멍청하게도 굴러온 복을 걷어 차버린 셈이엇다. 하지만 일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유양벽은 무영의 몸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듯했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무영은 뜬금없는 유양벽의 질문에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유양벽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스물셋입니다."
유양벽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단하군.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대단한 약을 만들 수 있다니 말이야."
"십 년 동안 잠도 거의 못 자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무영의 말에 유양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이런 실력을 가지려면 사실 십 년으로도 모자라다.
그리고 그 십 년동안 오로지 약만 파고들어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역시 무공을 익힐 시간은 없었겠군.'
아버지인 유경환의 말을 빌면 청령환을 만든 그 신선 같은 노인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권하지. 유가장으로 오게."
"싫습니다."
무영의 단호한 대답에 유양벽이 빙긋 웃었다. 그의 웃음은 지금까지와는 달제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어딘가 섬뜩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군."
유양벽은 그렇게 말하며 무영에게 한 발 다가갔다. 무영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안색이 굳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자네가 말을 안 들으니 어쩌겠나. 강제로라도 데려 가야지."
유양벽의 말에 무영은 가믓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약을 만드는데 다리가 필요한 건 아니겠지?"
유양벽이 섬뜩한 눈으로 무영의 다리를 쳐다봤다. 어느새 검을 뽑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지혈은 잘 해주지. 아, 지혈에 좋은 약을 들고 다니나?"
유양벽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슈각!
유양벽의 검이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무영이 오른쪽 허벅지를 향했다. 유양벽은 허벅지가 말끔히 잘릴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검이 무영의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다. 유양벽의 눈이 커다래졌다. 분명 갈랐는데 손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순간 무영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무영은 어느새 유양벽 옆에 서 있었다. 뇌전이 바직거리는 주먹을 들어올린 채.
"헉! 이, 이형환위?"
빠지직!
무영의 주먹이 유양벽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뻐억!
유양벽은 그 일격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른 직후라 균형이 미묘하게 흐트러진 상태였다. 게다가 주먹이 너무 빨랐다.
"커어어!"
유양벽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맞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옆구리를 중심으로 온몸을 뒤덮는 뇌전의 기운 때문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유양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무영을 쳐다봤다.
"다음에는 저도 그냥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무영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 휘적휘적 걸어갔다.
유양벽은 허리를 구부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끄어어어."
유양벽은 그렇게 한 시진이나 바닥을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일행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무영은 유가장 무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그들의 눈은 의아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장주와 함께 사라졌는데 무영만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우리는 이만 가자."
무영의 말에 모용혜와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붙었다. 두 여인의 표정은 심각했다.
세 사람이
떠나려 할 때 유가장 무사 하나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기다리시오!"
무영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았다. 유가장 무사는 무여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장주님은 어디 계시는 거요? 왜 당신 혼자서 온 거요?"
유가장 무사의 말에 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오시면 직접 물어보시죠."
무영은 그렇게 말하고 되돌아 걸음을 옮겼다. 유가장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대체 스승님은 이런 자들에게 왜 ......'
스승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자들에게 왜 신선단을 주라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열흘간이나 온 정성을 다해서 만든 신선단이었다.
무영의 열흘은 다른 사람의 열흘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스승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 확실했다.
만일 무영이 보통 사람이어다면 즉, 몸에 벼락을 가두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정도 신선단을 연단하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린다.
그런 귀한 약을 두 개씩이나 전해 주었는데 돌아오는 보답이 고작 이런 거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무영이 만드는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는지 서하린과 모용혜는 그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무영의 몸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기세 때문에 두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반 각 정도 걸어갔을 대 무영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몇 번 숨을 들이켰다 내뱉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직 마음의 수양이 모자랐다.
고작 십 년 밖에 수행하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몸에 품고 있는 기운이 너무 강렬해서 그 힘이 마음에 반영될 때가 많았다.
사실 벼락의 힘을 품고 살며서 무영처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좀 괜찮으세요?"
서하린이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영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아서 용기를 낸 것이다.
무영은 빙긋 우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참, 뭐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어?"
무영의 물음에 이번에는 모용혜가 나섰다.
"흑사맹이었어요."
"흑사맹?"
모용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사맹에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원래는 공자님을 데려가려고 왔는데, 제가 있어서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고 하더군요."
모용혜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그들을 한껏 비웃었다.
감히 누가 누굴 데려간다는 것인가. 무영이 얼마나 강한지 겪어 봤을 텐데도 이런 일을 계획했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웠다.
사실 아직 흑사맹에서는 무영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조양이 조금 더 심혈을 기울여 당시 상황을 조사햇다면 충분히 무영이 뇌룡이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조양이 받은 보고는 뇌룡으로 추측되는 자가 모용혜를 굴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조양이라도 뇌룡이 무영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흑사맹에서 공자님을 노리기 시작했을 거예요."
모용혜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더 말을 덧붙였다.
"상황을 보니 혈수사 조양이 단독으로 벌인 일 같아요. 하지만 만일 흑사맹주가 모든 걸 알게 된다면 정말로 문제가 심각해질 거예요."
아무리 뇌룡이라도 흑사맹 전체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그런 일은 미연에 막아야만 한다. 모용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정협맹에 몸을 의탁하시는 게 어때요? 조만간 흑사맹과 정협맹이 큰 싸움을 벌일지도 몰라요.
아마 흑사맹에서 공자님을 찾고 있다는 걸 알면 정협맹에서도 도움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모용혜의 말에 서하린이 나섰다.
"오라버니를 정협맹에 팔아넘기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오라버니의 힘을 이용해 흑사맹과의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요?"
서하린의 말에 모용혜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공자님이 뇌룡이라는 사실은 숨기면 그만이에요. 공자님 혼자서 흑사맹과 싸우실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정협맹의 힘을 조금만 빌리시라는 거예요."
모용혜는 말이 끝난 후 무영을 바라봤다 서하린과 모용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영이다. 서하린도 그것을 알기에 무영을 바라봤다.
무영은 두 여인의 눈길을 받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림에 얽히면 골치가 아플 거라는 스승님의 말씀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후우, 쉽지 않은 문제로군. 그래도 일단 소주에는 가야 해. 하린을 서가장에 데려다 주려면 가야지."
무영의 말에 서하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또 떠나시려는 건 아니죠? 그렇죠?"
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없이 떠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무영의 말에 서하린은 그제야 안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조그마한 불안의 불씨가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후우...... 정말 답답하네요. 정협맹이 역시 먼 것도 아닌데......"
모용혜는 정말로 답답했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무영은 지금 정협맹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흑사맹이 정협맹과 정말로 크게 싸움을 벌인다면 무영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용혜는 그렇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공자님의 존재만으로 얼마나 큰 힘이 될텐데......'
그 어떤 무림 단체건 무영의 능력이 더해진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상처나 내상도 치유해 버리는 어마어마한 약을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잇으니 아무리 싸움을 해도 전력이 줄어들지 않을 것 아닌가.
'위험해. 정말 위험해.'
모용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드러운 눈으로 서하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용혜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한숨이 새 나왔다.
"뇌룡인지 뭔지는 아직 멀었느냐?"
조양은 진득한 살기를 뿌리며 앉아 있는 두 사람 앞에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무, 무시무시하다.'
조양은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내뿜는 기세는 조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허, 대답을 않다니, 죽고 싶은가 보구나."
"아, 아, 아닙니다!"
조양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정말로 간신히 힘을 끌어내서 입을 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조양이 숨을 헐떡이자 두 사람이 피식 웃으며 살기를 거뒀다.
"아, 아직 못 찾았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큭큭큭큭. 그놈은 우리 막내를 죽인 놈이다. 난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조양은 간신히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조양은 두 사람이 머무는 전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는 수하들을 찾아갔다.
"어떻게 되었느냐?"
조양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 유가장으로 들어간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곳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 이후로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역시 유가장에서 끌어들인 인물이었다. 그런 막강한 고수를 숨겨두고도 이렇게 처참하게 박살난 것을 보면 둘 사이의 관계가 예상했던 것만큼 가깝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럴 확률이 큽니다."
뇌룡이 유가장이나 정협맹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면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흑사맹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기라도 하면 정말로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끄응,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다. 뇌룡을 처리하라는 상부의 명이 떨어졌고, 그리고 조양으로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존재가 둘이나 개입했으니까.
"찾아라. 무조건 찾아. 이번 일에 우리 모두의 목숨이 걸렸다."
"예."
수하들이 고개를 숙이자 조양은 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건 그렇고 그 약장수는 어떻게 되었느냐?"
"실패했습니다."
"뭐라고? 실패? 고작 약장수 하나 잡는 걸 실패해?"
"투입한 인원이 모두 제압되어 유가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유가장이라고?"
조양은 놀란 눈으로 수하를 쳐다봤다.
"그 약장수가 모용혜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용혜에게 당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침 근처에 있던 유가장 놈들에게......"
조양은 사태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유가장에서도 그 약장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유가장 무사들과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은 놈들이군."
"잡힌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요?"
"일단 상황을 주시해야지. 조만간 유가장을 칠 테니 그때 구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그 약장수는 그런 유가장으로 간 것이냐?"
수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약장수는 지금 개봉에 있습니다."
"개봉? 거긴 왜?"
"그쪽을 거쳐 강소성으로 들어갈 모양입니다. 지금 소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소주, 소주라......"
조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희들은 이만 물러가라. 일단 뇌룡을 찾아내는 걸 최우선으로 해라."
"예."
수하들이 고개를 숙인 후 재빨리 흩어졌다. 잠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조양은 사라지는 수하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힐끗 돌려 두 사람이 머무는 전각을 쳐다봤다.
"헉!"
조양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두 사람이 전각에서 나와 조양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입을 연 사람은 빼빼 마른 사내였다. 그는 구대흉마 중 여섯째인 고루흑마였다. 그리고 고루흑마 옆에 선 사내는 눈이 피처럼 붉었다. 구대흉마의 다섯째 혈영귀마였다.
"일단 유가장을 박살내고 시작하면 되는 건가?"
혈영귀마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혈영귀마의 눈에서 혈광이 흘러나오자 주변이 순식간에 자욱한 살기로 뒤덮였다.
"크으윽."
조양은 그 지독한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고루흑마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혈영귀마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난 유가장보다 그 약장수 쪽이 더 흥미로운데? 대체 그놈을 쫓는 이유가 뭐냐?"
고루흑마의 눈이 사이하게 빛났다. 조양은 그 눈빛을 보자 온모에 소름이 돋았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아, 아직 확인된 바는 없지만 뛰어난 약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조양이 황급히 대답했다.
고루흑무의 눈에 살기가 어리자 조양은 소문으로 들었던 것들과 자신의 생각을 알아서 모조리 쏟아냈다. 고루흑마와 혈영귀마는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조양의 얘기가 모두 끝나자 고루흑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군. 일단 유가장을 박살낸 다음 그 약장수도 잡는다. 너는 그 동안 무조건 뇌룡을 찾아내라."
"예. 아, 아, 알겠습니다."
조양은 그렇게 대답을 하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고루흑마는 시한을 정해 준 것이다.
유가장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하더라도 박살내는 데 최소한 몇 시진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낙양에서 개봉까지 달려가는 데도 며칠은 걸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치일 정도 시간이 있는 것인가? 아니지, 만약의 사태도 대비해야 해. 닷새. 그래 닷새로 잡자.'
조양이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동안 고루흑마와 혈영귀마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두 사람의 주위로 무겁게 살기가 내려앉았다. 그 살기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사납게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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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잘읽고감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점점 재밌네요^^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즐감
즐감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