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화) 복음 묵상 (루카 8,19-21) (이근상 신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8,19-21)
가족, 핏줄로 연결된 관계는 이를테면 어떤 기준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마다 관계의 깊이를 가늠하는 줄자가 있다면 가족관계는 그 줄자의 눈금같은 것이 아닐까. 가족간의 관계가 하나의 눈금이 되어서 누군가와 관계를 세 눈금만큼의 거리, 또 누군가와는 백 눈금만큼의 거리... 이렇게 가늠하는게 아닐까. 그만큼 가족간의 거리는 가장 기초적인 근본적인 관계이리라 짐작한다. 그건 다른 이의 눈금과 같을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지문같은 것. 좋고 싫음, 마음의 움직임같은 것. 그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은 그 눈금, 그러니까 기준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지만, 그리 바꾸었다해서 마음의 움직임도, 지문처럼 박힌 관계, 끌림 따위도 다 지울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님, 아마도 정이 많고, 마음이 많고,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은 이가 아니었을까. 모른다. 그러나 그의 연민, 사람들을 향한 그의 따뜻함을 미루어볼 때 가족을 향한 애틋함이야...
그러니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 관계를 핏줄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눈금만으로 가늠한다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 매 순간의 결단, 매 순간의 회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참 힘겨운 참 무너지기 쉬운, 그러나 매 순간 다시 또 다시 선택하는 자유가 아닐까.
그에게 사랑이란 참 사랑하고픈 이에게 질주하는 본능이 아닐 것 같아. 애잔하지만, 그의 사랑에는 수 많은 이들이, 그와 참 먼 이들이, 나같은 이들이 깃들여도 떨리는 그의 선택안에서 귀하게 안길 수 있을 것같아...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31YE6bA3jfvxRuxA8LEVxcE97tU42Rh5ZruA8LUWnSDMnBVhAedQY7K41gMmjnkuG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