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29]아름다운 사람(49)-신학철 화백
신학철 화백님, 이 신새벽에 선생님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제가 편지 아닌 편지를 쓰는 것은, 엊그제(25일) 대학로 <백기완 마당집>에 전시된 선생님의 그림들을 감상한 후 圖錄을 한 권 사왔기 때문입니다. 소위 ‘민중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선생님의 尊姓大名이야 1988년 ‘모내기’그림 사건(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는지요)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뵌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음악, 미술 등 예술부문은 門外漢입니다. 그런 제가 선생님께 언감생심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쓰다니요?
전시회 제목이 <신학철, 백기완을 부르다>이더군요. 어느새 지난 15일이 백 선생님 4주기였습니다. 잘못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나라 상황이 엉망진창인 이때, 선생님이 역시 ‘평생 친구’답게 백 선생님을 그림으로나마 불러내 주신 게 개인적으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예술(그림)을 통한 ‘아름다운 友情’이 부러웠습니다. 11살 차이가 나지만, 두 분은 틀림없는 우정을 30여년 동안 나누었지요. 촛불혁명 집회 참여를 한번도 거르지 않은 백 선생님 부축을 ‘전담’한 분이 선생님였다지요. <통일문제연구소>가 <백기완 마당집>으로 換骨奪胎하여 선을 보인 것은, 백 선생님의 불굴의 투쟁정신을 잊지 말자는 것이겠지요. ‘백기완 노나메기재단법인’의 이사장직을 흔쾌히 맡으신 것도 그 까닭이겠지요. 낙향거사, 시골 촌놈이 어쩌다 대학로에 올 때마다 든든한 마음이 들면서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 ‘백기완 마당집’입니다. 마당집에는 또다른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 지킴이'(재단 사무차장 채원희)가 반겨주고 백선생님의 香薰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유리 쌍문동에 문익환 목사 <통일의 집>과 <함석헌 선생 기념관>이 있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맨먼저 마당집 2층 전면에 내건 걸개 현수막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라고 백선생님이 썼다지요. 백 선생님의 그 글에 선생님은 멋진 그림으로 和答을 했더군요. 그렇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당연히 앞장서야지요. 블랙리스트 같은 것 얼마든지 작성하라지요.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찐진보’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솔직히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예술가가 아니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고교 미술선생님을 하다 ‘졸지에’ 민중미술의 가시밭길을 힘들고 외롭게 걸은 것이겠지요.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89]아름다운 사람(24)-‘백기완마당집’ 채원희 - Daum 카페
선생님의 사진콜라주 <백두산 호랑이> 작품은 너무 좋았습니다. 영원한 민중후보 백 선생님의 獅子吼가 귀가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같더군요. 백 선생님은 천국에서도 우리 한민족의 미래만을 걱정하며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 한 줄 한 줄 적어내려갈 것같더군요. 특유의 말갈기머리를 손으로 쓰윽 빗어넘기며, 울먹울먹 유행가를 불러주시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백 선생님의 ‘자화상’에 다름 아닐 ‘부심이(백 선생님의 덧이름)’ 그림과 <장산곶매> <새뚝이> 그리고 경향신문에 연재한 <하얀 종이배>의 삽화 40장이었습니다. 백 선생님이 ‘무리한’ 그림 요구를 해도 한번도 거절하거나 작품값을 받은 적도 없었다지요. 그러기에 선생님이 그린 <국수 먹는 어머니> 그림을, 백 선생님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억만금을 준대도 팔지 않겠다 했겠지요.
우리 시대에 ‘영원한 청년’ 백 선생님처럼 百折不屈의 기백을 가진 ‘어른’이 없는 게 참 딱한 현실입니다. 한편으로는 말년에 ‘내란’ 어쩌고 하는 얼토당토 않은 사건을 보지 않고 돌아가신 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계시다가도 그 뉴스를 보셨으면 벌떡 일어나 炯炯한 눈을 부라리셨을 것이고,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을 것같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그래서 더욱 백 선생님이 그리워 그림으로 불러내신 것이겠지요. 선생님이 그린 역사적인 그림 <모내기>를 찬찬히 뜯어봅니다. 原作은 국가로부터 돌려받으셨나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인 ‘노나메기’를 그린 것이지요? 그 그림 한 점이 두 분을 그대로 ‘以心傳心’ 和通하게 했을 터이니, 그림 한 점이지만 어마어마한 威力을 발휘한 것이겠지요. 광주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조만간 잠깐이라도 뵐 수 있다면 榮光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藝術魂 만세입니다. 선생님의 無限平康을 기원합니다. 未知의 팬 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