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by 리사 제노바 (tistory.com)
기억은 기본적으로 4단계를 거쳐 형성.
1) 부호화(encoding) : 뇌가 인식하고 집중한 대상으로부터 시각 신호, 소리, 정보, 감정, 의미를 포착하고 이 모두를 신경 신호로 변환
2) 강화(consolidation) : 뇌가 이전까지 서로 무관하던 신경 활동들을 서로 연관성을 갖는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
3) 저장(storage) : 연결 패턴은 저장단계를 거치면서 신경세포들이 영구적인 구조 변화와 화학 변화를 겪으면서 지속성을 획득
4) 인출(retrieval) : 연결된 패턴을 활성화할 때마다 이전에 학습하고 경험한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회상하고, 알고, 인지할 수 있게 됨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기 위해 해마가 필요하지만 일단 형성된 기억은 더는 해마에 머무르지 않음. 기억은 한 곳에 저장되는 것은 아님. 최초의 경험을 접수한 뇌의 각 부위로 분배. 뇌에 담당 부위가 정해져 있는 인지나 운동과는 달리 기억은 저장을 전담하는 신경세포나 기억피질 같은 것이 따로 없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운동 등은 각각 전담하는 뇌 부위 표시가 가능. 하지만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기억은행 같은 곳에서 인출하는 것이 아님.
작업 기억의 보관용량은 1956년 조지 밀러가 처음 규명. 15초에서 30초 동안 5~9개까지 정보를 보관.
5~9개는 늘어날 수 있다. 기억하려는 정보를, 맥락을 갖춘 덩어리나 의미 단위로 나두면 됨. 가령 전화번호를 한꺼번에 이어서 01087314417라고 외우지 않고 010-89731-4417처럼 끊어 외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고 이 순간이 우리에게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면, 순간의 경험이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장기기억으로 강화될 수 있음. 장기기억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 1) 정보에 대한 기억 2) 사건에 대한 기억 3) 방법에 대한 기억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은 해마를 통해 강화되는 반면, 근육기억은 뇌의 기저 핵이라는 부위에서 연결. 하나하나의 물리적 동작들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면, 이것이 하나의 신경 활성 패턴으로 해석.
신체기능을 요구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고, 뇌의 더 많은 부분이 해당 근육기억에 할당된다는 이야기.
외우려는 내용을 반복해서 읽기만 한다면 정보를 수동적으로 보고 인지하는 행위만 반복할 뿐, 정보를 꺼내오지는 못함. 따라서 기억을 한 번 더 보강하는 추가 혜택은 누릴 수 없음. 반복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보다 효과적.
놀라운 기억력을 축복으로 여기지만 같은 이유로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이별, 죽음, 그동안의 실수들, 후회와 모멸의 매 순간을 비롯해 인생 최악의 시기.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을 괴로울 정도로 선명하고 상세하게 기억하기 때문. 이런 사람들에게 과잉 기억이라는 초능력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겪는 저주에 가까움.
기억은 언어로 옮겨지면서 처음 뇌에서 만들어질 때와는 많이 달라짐. 아이러니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적는 행위로 인해 오늘에 관한 기억은 우리가 기록하기로 선택한 정보들로 한정. 기억을 말로 옮기면 강화되는 동시에 왜곡. 하지만 전혀 반복하지도, 타인과 공유하지도 않고 방치한 기억은 십중팔구 사라진다. 지나간 일에 대해 우리 뇌는 기껏해야 불완전한 기억밖에 남기지 못함
뇌는 의미를 좋아함. 기억하고 싶은 정보들을 이미 알고 있는 지식, 평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과 연관 지어 하나의 이야기 안에 녹여 넣거나 인생 서사의 특별한 순간에 끼워 넣음으로써 기억을 오래 남길 수 있음. 또 나에게 의미 있는 기억이라면 더 자주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사용하고, 되돌아볼 것임. 그런 식으로 의미 있는 기억들은 자주 반복됨으로써 더 강력해짐.
이미 강화되어 장기기억으로 들어간 기억을 잊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정보를 인출하는 계기가 될 만한 단서와 맥락에 되도록 노출되지 말아야 함. 그런 곳에 가지도 말고, 그런 기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입에 담지도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그런 기억을 되뇌어서도 안 됨. 나도 모르게 거슬리는 광고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 즉시 노래를 멈춰라. 생각을 전환해라. 원하지 않는 기억의 신경 회로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저항해라. 기억은 내버려둘수록 약해지고 잊힌다.
활발한 정신 활동이 노후의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될까? 활발한 인지 활동이 알츠하이머병에 강환 뇌를 만드는 데 유용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노화에 따른 기억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예방하거나 늦춘다는 것을 입증할 확실한 데이터는 없다. 뛰어난 체스 선수, 교수, 비행사, 의사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 모두 계속 뇌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기억을 인출하는 기능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억의 기능이 나이와 함께 저해. 건축가와 일반인 모두 10년 단위로 종이접기의 정확도가 4% 감소.
시험공부를 하거나 발표 준비를 할 때 배고프고, 덥고,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목이 말랐는가? 처음 정보를 학습할 때와 같은 상태에 놓일 때 공부하고 준비한 정보가 더 잘 떠오름. 마찬가지로 카페인을 섭취한 상태에서 뭔가를 외웠다면 역시 카페인을 섭취한 상태에서 외운 것들이 최고로 잘 떠오름.
왜 그럴까? 지금 보고 있는 숫자만 기억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숫자를 외우는 동안 경험하는 것은 모두 잠재적 기억으로 한데 묶임. 외적・내적 맥락 모두 기억의 일부가 되고 그중 어떤 부분이건 활성화되면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기억도 촉발.
잠을 자고 나서는 같은 시간을 깨어서 보낸 후보다 목록, 연상관계, 패턴, 교과서 지식, 오늘 있었던 일 등을 회상하는 능력이 20~40% 증가. 오늘 만들어진 의미기억과 일화기억은 숙면을 취한 다음 훨씬 더 잘 떠오름.
잠들기 직전에 커피를 마시고 20분간 낮잠.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기억들 다수가 장기기억으로 안전하게 저장. 꼭대기까지 꽉 찼던 해마를 정리해, 이제부터 기억할 정보를 저장할 여유 공간이 생김. 카페인이 혈류로 들어가기까지 약 25분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하면 자기 전에 마신 카페인도 서서히 효력을 띠기 시작하면서 전두피질의 신경세포가 깨어나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손실은 65세 미만의 연령에서는 드물지만, 65세를 기점으로 급증. 65세 미국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알츠하이머병 환자. 85세가 되면 셋 중 하나가 환자가 되고, 곧바로 둘 중 하나에 근접. 절반이 환자가 되는 셈.
알츠하이머병이 이미 진행된 상태라도 아직 손상되지 않은 신경경로로 우회함으로써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 아울러 이런 예비 경로, 즉 인지적 비축 분은 새로운 것을 학습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음. 기왕 새로운 것을 학습한다면 시각, 청각, 연상, 감정을 모두 자극할 수 있도록 최대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한 것들을 학습하는 것이 좋다.
낱말 퍼즐을 푼다고 인지적 비축분이 쌓이지는 않는다. 퍼즐이나 소위 두뇌 게임 등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낮춘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퍼즐을 많이 하면 퍼즐을 잘 풀게는 되겠지만 그렇다고 뇌가 커지지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지도 않는다. 이미 학습한 정보를 단순히 인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식의 정신 활동은 오래전부터 익숙한 거리를 여행하고, 이미 알고 있는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새로운 신경경로를 만들어야 함. 피아노를 배우고, 새 친구를 사귀고, 안 가본 도시를 여행하는 것 등을 의미.
노화에 대해 부정적인 단어들, 예컨대 ‘노쇠한’, ‘노망난’, ‘온전치 못한’, ‘기력 없는’ 등의 단어를 미리 접한 노인들은 긍정적 단어들, 즉 ‘현명한’, ‘활동적인’, ‘경험이 많은’ 등의 단어를 접한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보다 기억능력과 신체능력 테스트에서 저조한 결과를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