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NBA라는 세계에 입문하게된 동기는 다름아닌 게임때문이었습니다.
고1때인 99년 당시 피씨방에서 우연히 보았던 nba live 99를 보고 그래픽에 반해서 집에서 무작정 해보고싶어서 산것이
nba와의 첫대면이었습니다. 그렇게 재미로 하다가 선수이름을 알게되고 잘하는선수를 눈여겨보게되고 당시엔 간간히 방영하
는정도였던(사실상 유일하다시피한 시청경로였던) NHK나 Star Sports를 통해 게임상에서 보던 선수를 확인하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99년 앨튼브랜드가 1번으로 뽑혔다는 소식이 신문 스포츠면 구석에 가로 5cm 세로 8cm 가량의 토막기사로 났던걸
본기억이 납니다.
제가 NBA를 처음 보게된것은 불행히도 Michael Jordan의 은퇴직후인 99년부터 였습니다.
99년에 가장 눈에띄는 사건은 8번시드인 뉴욕의 파이널진출이 기억납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1번시드인 마이애미를 날려버린 앨런휴스턴의 통통슛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본격적으로 보게된건 2000년부터였죠. 당시 인천방송인 itv에서 김동연 아나운서와 김원, 장원구 해설위원의 해설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시청률 1%에 도전하는 비인기종목인 nba를 우리말로 시청할수있게된 획기적인 사건이었지요.
2000년때 특히 기억나는점을 몇가지 들어보자면 포틀랜드가 본격적으로 사기로스터를 구축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스타더마이어 - 스티브스미스 - 스카티피펜 - 라시드 월러스 - 사보니스.... 그렉 앤써니 - 반지 웰스 - 데틀램 슈렘프 -브라이언 그랜트 - 애송이었던 저메인오닐... 벤치조차 말도안되는 라인업이었는데 서부 컨파 7차전때 레이커스에게 아쉽게 역전패
하던모습이 기억납니다.
샤킬오닐이 본격적으로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한 해입니다. 28세가 된 오닐은 평균 29점 13리바운드 3블락으로 시즌 - 올스타전 - 파이널MVP라는 트리플크라운을 차지하며 완전히 리그를 독식했습니다.
파이널에서 레지밀러의 활약이 기억에 남습니다. 1,2차전을 내주고 홈에서 3차전을 잡은 페이서스..
4차전마저 잡는다면 시리즈의 향방은 안개속으로 갈수있는 판국에 레지는 작정한듯 연이은 득점포를 퍼부어 시종일관
레이커스와 시소게임을 주관했습니다. 3점슛 6개 포함해서 36점을 쏟아부으며 팀을 연장까지 이끌었지만 40-20을 기록한
샤킬오닐의 파울아웃이후 22세의 코비 브라이언의 클러치 활약속에 밀러 자신은 연장 마지막 클러치3점슛을 실패하며 팀은
1승 3패로 이때 승부의 추가 레이커스쪽으로 넘어갔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명경기로 남습니다.
당시 마크잭슨, 제일런로즈(아마 MIP였던걸로 기억납니다), 데일 데이비스, 릭스미츠
벤치에서 나오던 트레비스 베스트, 데릭 맥키, 오스틴 크로셔, 노장 샘 퍼킨스... 노련한 베테랑 위주의 라인업의 페이서스는
2002년 새크라멘토 킹스못지않게 제 기억속에 가장 멋진팀으로 남아있습니다.
2001년.. 시즌 시작후 76ers가 10연승을 달립니다. 놀랍게도 아이버슨의 평균득점은 22점대였죠. 매시즌 평균 28점은 기본으
로 해주던 아이버슨의 슛시도가 눈에띄게 줄고 턴오버역시 비약적으로 감소한반면 동료들의 성적이 나아진 결과였습니다.
공격은 약하지만 수비가 좋은 6-3의 에릭스노, 역시 수비가 강점이고 잡일을 도맡아하는 블루칼라워커인 타이론 힐과 죠지린치.. 신장은 작지만 블락만큼은 발군이었던 티오 래틀리프.. 그나마 아이버슨의 득점부담을 줄여주는듯 보였던 식스맨 애런 매키...(매키는 2001년 식스맨상 수상) 그리고 명장 래리브라운과 아이버슨의 화합...
아이버슨의 팬들에겐 2001년은 잊을수없는 해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2월 트레이드 데드라인무렵 단행된 애틀란타와의 트레이드 무톰보의 76ers입성..
동부 1위를 차지한 식서스는 8번시드인 페이서스를 제압.. 2라운드에서 빈스카터가 이끄는 토론토 랩터스와 역사에 남을 명경기들을 만들어냅니다. 서로 50득점씩 찍어대며 라이벌전을 벌이던 두 선수의 쇼다운은 지금 다시봐도 절대 질리지 않습니다.
7차전 카터의 마지막샷이 실패한후 기뻐하는 아이버슨과 허탈해하던 카터의 대조적인 모습이 기억납니다. 정말 누가 이겨도 이상할것이 없는 시리즈였다고 생각합니다.
동부 파이널 상대는 샘카셀 - 레이앨런 - 글렌 로빈슨 원조 빅3라 불리던 3명에다 식스맨 팀토마스. 비약적으로 성장한 마이클레드가 버틴 밀워키벅스... 사실상 76er의 유일한 스코어러였던 앤써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집중견제, 피지컬한 파울..
수없이 부딪혀 쓰러지고 또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76ers의 3번의 모습은 지금도 제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열정과 투혼으로 싸운 7차전끝에 무적 LA레이커스와의 1차전은 지금도 두고두고 명경기로 회자되고 있죠. 워낙 유명한 경기라
다들 아실것이라 생각합니다.
레이커스는 글렌라이스가 나가고 피셔 - 코비 - 팍스 - 사마키(H 그랜트) - 오닐의 우리가 알던 그 3핏 시절의 레이커스왕조때
라인업을 갖추었던걸로 기억납니다. 당시 라이스대신 아이재아 라이더가 온것도 기억나는데 그게 01년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샤크 코비 듀오가 정말 무서웠던점은 두선수 개개인이 워낙 출중한 기량의 소유자였기도 했지만 상대팀에 따라 1,2옵션을
서로 바꿔가며 빅맨이 약한팀은 샤크가.. 골밑수비가 좋은팀은 코비가 아웃사이드를 개박살내며 29개팀중에 단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01년 그랜트힐과 트레이시맥그레디가 드디어 올랜도로 둥지를 틀었습니다. 디트를 떠난 힐은 부상으로 팬들의 예상처럼 티맥과 듀오를 이루진 못했지만 토론토에서 카터에 가려져 빛을 보지못했던 티맥은 물만난 고기마냥 본격적으로 활개치기 시작한 시즌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올랜도시절의 티맥의 모습의 시작이었던 것이죠.
2002년... 시즌이 시작되기전 빅트레이드가 성사됩니다. 페니 하더웨이와 함께 백코트 2000을 이루던 피닉스의 제이슨키드와
뉴저지에서 포인트가드로서 동료들에게조차 원성듣는 스코어링리더였던 스테판 매버리의 1대1 트레이드가 단행됬습니다.
당시 알럽에서도 이 트레이드의 윈-루즈 논쟁이 뜨거웠었던게 기억납니다. 지금과는 매우 다르게 당시엔 매버리가 아깝다는
말도 적지않게 나왔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키드 효과는 당장 드러나 부상에서 돌아온 키틀스, 마틴... 그리고 루키 리차드 제퍼슨등을 이끌고 02년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100%라고는 할수없지만 kidd effect가 크게 작용했음은 부인할수없는게 사실입니다.
시즌전인지 중반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역시나 팀의 두 주전포인트가드인 킹스의 제이슨 윌리엄스와 밴쿠버의 마이크비비의
트레이드가 이뤄졌습니다. 이로써 이뤄진 비비 - 크리스티 - 페이쟈 스토야코비치- 전성기의 크리스웨버 - 블라디 디바치의
브래드밀러 - 로렌스 펀더버크 - 콜리슨 윌리엄슨 - 존 배리 - 바비 잭슨... 벤치맙이라고도 불리던 이 팀은 정말.. 저 뿐만이
아니라 초창기의 농구를 열성적으로 보셨던 많은 분들께 정말 잊혀지지 않는 팀일것이라 생각합니다. 5명 모두가 공을 만져서
돌아가는 유기적인 패싱농구... 정말 매력적인 팀이었고 중계방송도 자주탔던 기억이 나는군요...
킹스팬들로서는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 로버트오리의 꽥샷은 죽어도 못잊을것 같습니다. 사실상 킹스가 우승할수있었던
가장 최적의 기회이기도 했는데... 운명의 신은 그렇게 한번(또 한번은 2004년의 데릭피셔의 0.4초 어부샷) 레이커스의 손을 들어줬었습니다.
포틀랜드의 구단주인 폴 앨런은 그렇게도 선수사재기를 했는데도 번번히 샤킬오닐을 막지못해 우승에 실패하자 아예 대놓고
대 샤크 용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합니다. 저메인오닐을 인디애나로 보내고 데일 데이비스를 데려오는가하면 숀켐프를 영입하기도 했죠. 당시 아비다스 사보니스와 브라이언 그랜트는 샤크를 꽤 잘막았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어렴풋이 나마 기억하고있는 2000년대 초반의 기억의 잔상들입니다. 제가 가장 열성적으로 NBA를 시청했고
또 알럽도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상당수가 기억에 의존해 쓴거라 사실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기억하시는 그 시절의 기억들은 어떤것들이 있으신지요?
분명 지금 못지않게 흥미있었던 기억들이 많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아... 02년때 MJ의 복귀소식을 빠트렸군요... 그치만 02년이 끝나고 군대를 가는바람에 조던의 복귀도 역시 몇경기 접하지 못했습니다. 조던과 저는 별로 인연이 안닿았는가봐요
2000년대 저는 중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해서 친구들과 농구를 시작했죠 ^^;; 중거리 45도 뱅크슛으로 학교를 평정했답니다.. 물론 같은 학년 내에서 이야기지만 ㅋㅋ
요즘 농구의 인기가 줄어들었다니 아쉽네요. 92-97년이 인기 절정이었는데 말이죠. 그때 텔레비젼에서는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 드라마도 하고, 슬램덩크 만화도 한참 연재되었고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농구 코트가 무려 11개였는데도 농구 자리 맡기 위해 죽자사자 뛰어가고 서로 밀어내기 시합도 하던 기억이 있네요. NBA농구도 조던대 드렉슬러 - 조던대 바클리로 이어지다가 마이클 조던의 은퇴후 하킴 올라주원이 플레이오프에서 7피트 조던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당시 조던의 I'm Back !! 은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죠.
조던 컴백후 시카고 불스의 72승도 감격적이었습니다. 참 그리고 그 이전에 매직존슨이 에이즈 때문에 은퇴할 당시 조던과 매직 중 누가 최고냐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92년까지만 해도 매직이 그래도 한수위다라는 분위기 였던것 같습니다.
현재 농구의 인기가 아쉬운 분들은 76년생-80년생들과 얘기해 보시면 예전의 향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거에요. 이 사람들이 요즘의 농구는 잘 모를지라도 한때 광이었던 사람이 많은지라 대부분 농구 얘기하면 좋아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댈라스가 빠진게 아쉽군요. 노비 내쉬 핀리 3각편대와 다혈질감독님의 미친듯한공격농구가 정말 잼났는데말이죠. 킹스와의 미친공격대결도 잼났는데.. 샌안에게 맨날 좌절을 겪었는데.. 노비와 내쉬는 지금도 샌안파워에... 2000년동부에서 다이나믹듀오와 배산적의 크레이지활약도 빠지면 아쉽죠.
저랑 엇비슷하게 보기 시작하셨네요. 저는 1년전인 98년에 던컨을 보면서 엔비에이를 보기 시작했죠.(솔직히 왜 멋대가리없는 던컨을 보고 팬이 되었는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사장님의 마지막 우승을 어렴풋이 봤고 던컨의 루키시즌부터 10년차인 지금까지 지켜본 팬이 되었네요.
94년때부터 봤지만 2000년대 초반이야기는 잘 몰랐었는데 님의 정리덕분에 많은 도움됐습니다.. 밀워키가 파이널에 올라간적도 있엇군요 ㅎㅎ
제가생각나는 2000년대초반의잔상은 오닐&코비의 무차별한 레이커스왕조의폭격.. 정말 ㅎㄷㄷ 했음..
당시의 킹스는 정말 대단했지요.. 팀을 둘로 나눠도 플옵팀이라는 애기도 있었고, 당시 평가는 la보다 킹스의 우위를 보이는 견해가 지배적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킹스팬과 샌안팬, 포틀팬들이 한결같이 beat LA!! 를 외쳤죠 ^^ 개인적으론 제이슨 윌리엄스와 비비의 트레이드를 굉장히 서운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ㅋ 하지만 이 트레이드를 계기로 킹스가 진정한 강자로 도약할수 있었죠 쇼타임은 전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팀의 짜임세는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변신을 했죠.. 그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전율이 ^^;;
저 7살때 하던 마지막 승부는 맨날 봤던 기억이... 심은하, 장동건, 이종원, 손지창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