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니나랑 폴이랑(cafe.daum.net/ninapaul)
글쓴이 : 니나 (tvpdlee@hanmail.net )
날짜:2002/03/22 02:15
섬마을 방송국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을 쓴 것입니다.....
제가 그만둔 후 방송국 사장님과 직원들도 다 바뀌고
경영 체제도 바뀌어서 현재 하와이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인 라디오 방송국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실 방송국이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느게
진짜인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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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 6시에 사장님과 같이 출근하기 땜에 퇴근은 오후 2시나
3시 정도에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녁이랑 밤 시간 음악 프로그램을 맡은 DJ 들의 얼굴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첫날 퇴근하기 전에 소개를 받은 DJ는 5시부터 7시까지 사, 오십대
주부층을 겨냥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저씨였다.......
어떻게 된 게 모조리 아저씨 투성이구만.... -_-
도대체 젊은 인재는 어디에...... -_-
나이는 한 50쯤 되어 보였고 전체적으로 까무잡잡, 땅딸막했다.
근데 이 아저씨의 등장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방송국 문을 기운차게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번쩍 든다.....
"형님! 저 왔습니다!!!"
DJ 아저씨 뒤에는 덩치는 크고 눈은 황소처럼 순하게 생긴 아저씨가
무쟈게 큰 초록색 반지를 낀 손으로 (-_-) CD가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따라온다......
지금은 이 사람들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편의상
땅딸맨과 초록 반지라고 부르겠다.....
첨에는 사장님 친구나 동생쯤 되는 사람이 방송국에 CD 기증하러
온 줄 알았다.....
근데 그 아저씨가 DJ 란다......
그 동안 비어있던 내 책상을 자주 사용했었는지 옆에 있는 DJ용
책상을 놔두고 내 의자에 철퍼덕 앉으며 묻는다.....
"아가씬 누구야?"
뭐 이따우 재섭는 아저씨가 다 있남......
니나: 저는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이니나입니다.
땅딸맨: 그래? 그럼 물 좀 떠와.... 아, 목마르네.....
이 아저씬 뭐길래 첨보는 사람한테 반말로 이래저래야?
물을 떠주다니 내가 미쳤냐?
물을 통째로 얼굴에 부어버릴까 하고 째려주렸다......
그때 사장님이 소개를 한다.....
사장: 야, 인사해.... 이니나 기자야....
땅딸맨: 기자요? 언제 기자를 또 뽑았수?
땅딸맨이 사장님께 말하는 태도는 완전히 장난치는 동생처럼
까불까불이다.....
근데 사장님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사장: 너는 뉴스도 안 들어!!!!!????
땅딸맨: 예?
사장: 오늘 아침에 새 기자 소개할 때 뭐 들었어!!!!
우와, 사장님 무지 무섭다..... 땅딸맨 순식간에 깨갱이다.....
땅딸맨: 헤헤.... 형님.... 그게......
사장: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땅딸맨: 아이구, 형님.... 방송은 해야죠.....
사장: 오늘만 하구 다시는 오지마!!!!
사장님이 문을 쾅 닫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리자 땅딸맨과
초록반지,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이다.....
땅딸맨: 아이씨, 왜 기자라구 안 말했어요?
니나: 말할 시간이 있었나요?
땅딸맨: 말해줘야 나도 뉴스들은 척 했을 거 아뇨.....
방송국이 아니라 무슨 조폭 집단 같다......
열받은 땅딸맨 이번엔 초록 반지한테 시비를 건다.....
땅딸맨: 넌 뉴스 안 듣고 뭐했어?
초록반지: 난 여태 잤어요.......
땅딸맨: 에잇, 무식한 짜식.... 따라와!!!
땅딸맨과 초록반지가 사장님 사무실로 들어간다.......
사장님 사무실은 벽면이 큰 유리라서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기분 나쁘던
땅딸맨이 오히려 불쌍해진다......
뉴스 안 들은게 그렇게 큰 죄가 되나......?
퇴근할 때도 사장님이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오늘 일이 좀
많아져서 몇 시간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신다......
나야 뭐, 집에 가야 별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땅딸맨과 초록반지 하는 꼴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방송 준비라는 게 참 가관이다......
우선 초록반지가 스튜디오로 들어가더니 DJ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책상에 CD를 좌르르 쏟아놓는다.......
그리고는 CD 들을 초록반지만이 아는 순서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땅딸맨이 진행할 때 CD를 찾아주는 것이 초록반지의 임무라는
것이다......
CD가 한 상자라지만 100개도 안 되어 보이는데 신청곡이 뭐가
들어올 줄 알고 저러고 있는지......
아니나 다를까 방송을 들어보니 신청 들어오는 곡마다 CD가 없다구
딴 거 틀어주겠단다..... -_-
초록반지가 나름대로 CD 준비를 하고 있다면 DJ인 땅딸맨은 원고를
복습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탱자탱자 놀고 있다...... -_-
무슨 말을 할 건지 머릿속에 다 들어있나부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천재였었나....?
사장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땅딸맨의 방송을 들었다....
땅딸맨: 여보세요, 전화 연결 됐습니다.....
청취자: 안녕하세요, 호놀룰루에 사는 미세스 김인데요...
땅딸맨: 아, 반갑습니다......
청취자: 반갑습니다.....
땅딸맨: .......................
청취자: 여보세요?
땅딸맨: 아하하하........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하십니까?
청취자: 어..... 찌개랑..... 생선이요.....
땅딸맨: 아하, 그렇습니까? 남편분은 아직 안 오셨나요?
청취자: 네, 아직 퇴근 시간 아니네요.....
땅딸맨: 아, 그럼 댁에 혼자 계십니까?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
운전하다 말고 사장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니, 이 짜식이 여자보고 혼자 있냐고 물어보는 건 뭐야??!!!!!"
가뜩이나 험한 사장님 운전이 마구 헝클어진다.......
나만 죽어나겠다......
음악이 나오고 다른 청취자와 통화가 됐다.....
청취자: 안녕하세요, 전 미세스 박이에요
땅딸맨: 반갑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뭡니까.....? (-_-)
첩첩 산골 이장님 방송도 이거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겁에 질려 살짝 훔쳐본 사장님 얼굴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경력이 있다는데.... 괜히 겁난다.....
하지만 사장님은 알고 있을까.......
아침 뉴스 하다 말고 수퍼마켙에서 줄 잘못 서는 얘기 주절거리는
사장님이나 맨날 저녁 반찬은 뭐냐고 물어보는 땅딸맨이나 비슷한
수준이라는 거.......
퇴근할 때 쥐고 나온 신문 구인광고란을 소중히 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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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섬마을 방송국 (3)
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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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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