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니나랑 폴이랑(cafe.daum.net/ninapaul)
글쓴이 : 니나 (tvpdlee@hanmail.net )
날짜:2002/05/15 05:20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사설은 빼고.... 얘기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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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시가 오다 보니 방송국도 자선이나 불우이웃 돕기 쪽으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맞추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아침마다 사장님의 주절거림은
계속 되었지만.... -_-
"어제 제가 은행에 갔더니 제 앞에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돈을
입금하시는데 영 매너가 없더군요. 일을 다 마쳤으면 얼른 옆으로
물러나서 다른 사람 차례가 돌아오게 해야지 그냥 창구 앞을 가로막고
서서 지갑에 영수증 넣는데 3초, 핸드폰 집어넣는데 5초.....
그러더니 지갑에서 껌은 찾아 씹는데 10초......
결국은 은행직원이 옆으로 물러서라구 하더군요.... 그랬더니 갑자기
"Bad Service!!!" 그러면서 메니저 불러오라는 겁니다.....
어이구, 우리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지 걱정입니다......"
그때 나와 부사장은 경제 뉴스를 보도하는 중이었다..... -_-
어수선한 가운데 방송을 마치고 나와보니 웬 아줌마가 와 계셨다......
얼굴이나 나이로 보기엔 분명 아줌마인데 왠지 분위기는 보통 아줌마가
아닌 이상한 아줌마....... 이제 나도 아줌마가 됐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의 아줌마가 서 계셨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유행하던 고리바지 같은 걸 입구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는 미스코리아 출연자들처럼 마구마구 부풀려 파마를 하구
화장은 키메라를 떠오르게 하는 광대같은 인물이었다.... -_-
이후부터 편의상 키메라라구 지칭하겠다......
보도부장이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소개를 해주는데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란다.....
보도부장: 이분은 결식아동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니나: 오~ 훌륭한 일을 하시네요......
말을 들어보니 식당 같은데서 자주 볼 수 있는 결식 아동 돕기 모금함이
바로 이 키메라가 설치하신 거란다.
연말연시이다 보니까 자선사업에 대한 방송을 해보려구 특별히 모신
것이었다.
전혀 자선사업과 안 어울리게 생겼는데 뜻밖이다.......
혹시 아이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려고 일부러 광대 복장을? -_-
보도부장: 저희가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출연해 주십사구....
키메라: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보도부장: 결식 아동을 위해 전화로 모금을 하려구요.....
흠, 보도부장이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생각을 했나보다.....
나도 첨으로 이 방송국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갑자기 잘 해야겠다는 정열이 불타올랐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해보자!!!! 마음먹고........
덕분에.... 특집 방송 멘트는 내가 다 쓰고 보도부장은 탱자탱자
놀았다...... -_-
전화 모금 방송이 있는 날.....
여기 저기서 결식아동에 대한 자료도 뽑구 기사도 준비하구 음악도
준비하구.....
스튜디오 밖에서는 직원들이 모여 모금하는 사람들 이름을 기록할
명단을 들고 전화기 앞에서 대기를 했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마지막으로 멘트를 읽고 있는데 보도부장이
스튜디오로 의자를 들고 들어간다..... 뭐여? 출연자가 늘었나....?
보도부장이랑 나랑 부사장님, 셋이서 하는 건데.....
니나: 누가 또 와요?
보도부장: 키메라가 시 낭송을 하시겠다네요.....
니나: 엥?????
웬 시 낭송?
보도부장: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셨다구.....
니나: ...... -_-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니까 뭐.... 하구 넘어가려 했지만 .....
초반에 썰렁한 시로 분위기 깨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내게 무슨 힘이 있으리요.....
방송이 시작됐구..... 키메라가 시를 읽었다.......
무슨 소린지 알 수는 없는 시였다... (-_-)
다만 키메라의 슬프고 비장한 얼굴 땜에.......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광대를 지워버리느라 바빴다......
시 낭송이 끝나고 결식 아동에 대해 조사한 내용과 기사를 인용해서
방송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전화가 차츰 오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뿌듯해졌다......
그리고 나서는 내가 편지 읽을 차례......
키메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한국의 결식 아동 한 명이 쓴 편지였다.......
지금 기억하기론 초등학교 5학년 쯤 되는 여자 아이었는데 글씨가
무척 이뻤다......
방송하기 전에 대충 본 내용이라 아주 낯선 편지도 아니었는데.....
이게 웬일이람........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_-
아, 안돼...... 이게 뭔 일이여...... 감정을 조절하자.....
계속 정신을 집중하며 편지를 읽으려는데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한다......
이, 이럴수가.... 나 별로 착한 사람 아닌데......
안간힘을 쓸수록 점점 더 눈물이 넘쳐났다...... 으아~ 미치겠다.......
결국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저는 하와이에 계신 분들의 도움으로...... 훌쩍....... 정말
고맙습니다..... 흑흑.......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꼭 보답..
.... 엉엉엉엉~."
통곡이 나왔다...... 편지는 고사하구 엎어져 울기 시작했다......
아, 쪽팔려...... 이 좁은 동네에서 마이크에 대고 울다니.......
그런 생각이 드는데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내 쪽팔림보다 편지 쓴 여학생의 가난이 훨씬 비참한 일이라는 게
떠오르자 오히려 더 슬퍼졌다...... 엉엉엉~
예기치 못한 방송사고인데도 부사장님이나 보도 부장이나 커버를
해주지 않고 조용히 있다......
어쩌란 말여..... 울면서 내가 다시 수습하란 말여...?
보도부장은 원래 띠벙하지만 부사장님까지 가만히 있음 어떡하나.......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부사장님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_-
이, 이런.... 왜 다들 우는 거야.......
아니다..... 보도부장은 말똥말똥 부사장님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_-
근데 수습할 생각은 안 하구 뭐하는 거람 .......
갑자기 콰당하면서 요란하게 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방송 도중 저따우로 시끄럽게
문여는 사람은 사장뿐..... -_-..... 이제 죽었구나.......
보도부장도, 부사장님도 수습을 하지 않으니까 사장이 대신 주절대러
들어온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살금살금 다가와서 보도부장에게
쪽지를 건내준다.......
올려다보니......
사장도 철철 눈물을 흘리고 있다..... -_-
살금살금 다가와서 쪽지를 건내준 사장은 다시 쾅! 소리가 나도록 (-_-)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뭣하러 살금살금 걸어다닐까.....?
수습할 방도를 몰라 쩔쩔매던 보도부장이 사장의 쪽지를 읽기 시작한다.....
보도부장: 성원을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모금의 합계는....
전화로 성금 낸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적은 쪽지다......
그런데 명단을 다 읽은 보도부장이 하는 말,
보도부장: 저희 라디오에서도 300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엥? 사장이 웬 일이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오호라~ 내 눈물이 오히려 전화위복...???
음하하하하~ 만세다.......
수많은 청취자들이 보내준 성금도 감격적이었지만 사장 같은 사기꾼이
개과천선을 했는지 어쨌는지 300 달러를 냈다는 게 너무도 놀라웠다........
흑, 드디어 방송의 보람을 느껴보는구나......
방송이 끝난 후..... 모금 집계를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다.....
게 중에는..... 이니나 기자가 정말로 운거냐, 아님 연기냐..... 는
짜증난 질문을 해주신 분들도 계셨구......
이니나가 원래 눈물이 많은 청순가련형이냐..... 목소리랑 정말 안
어울린다, 라는 확인 전화를 해주신 분들도..... -_-
그런 전화들을 빼더라도 그날은 이 방송국에 들어와서 가장 뿌듯했던
날이었다........
보도부장과 키메라의 대화만 안 들었으면 하루 정도는 온전하게
기쁠 수 있었을텐데.......
키메라: 라디오에서도 300 달러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보도부장: 별 말씀을.... 그건 그렇구 스튜디오 사용료를 내셔야....
사용료라니?
키메라가 광고를 냈나, 스튜디오에서 음반 작업을 했나?
보도부장이 부탁해서 불러 놓구 이제와서 사용료?
보도부장: 사장님께서 스튜디오랑 전파료를 합해서 싸게 해주신다는...
키메라: 그런 말씀 없었쟎아요.....
보도부장: 근데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키메라: 왜요?
보도부장: 300 달러 밖에 안 되거든요.....
키메라: ????
보도부장: 어차피 라디오 이름으로 300달러 기부할 거니까 ......
퍼억~~~~~~~~~!!! -_-
그럼 그렇지...... 사장의 개과천선을 믿은 나의 실수로다.......
결식 아동을 위해 라디오 이름으로 기부했다고 자랑은 하고 싶고
진짜 돈을 내긴 싫으니까 어거지로 방송료라는 걸 만들어서 금액을
상쇄시키는.......
돈 한푼 안내고도 졸지에 자선가가 되다니.....
그러고도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떠들겠지......
내년 봄에는 어쩜 세금 보고 하면서 기부금 낸 걸로 기록하구 세금
혜택도 받을지 몰라........ -_-
지난번 외국인에게 광고비 사기치려던 수작을 보며 절실히 느꼈지만
이번에는 마이크에다 대구 울며 불며 난리판을 친 뒤끝이라 정말로
기운 빠졌다........
밥 굶고 있는 불쌍한 얼라들을 이용하다니.....
결국...........
사표를 쓰기로 하고.......
컴퓨터를 켰다......
근데 사표는 어케 쓰는 거지....... -_-
미국식으로 그냥 사장한테 가서 말할까.....?
고민하다가.......
사표 대신......
섬마을 방송국을 쓰기로 했다...... -_-
연말 연시에는 지출이 많다우........ -_-
아, 나는 왜 이렇게 용감하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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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때문에 기분이 팍 깨지긴 했어도 이틀 동안 진행했던 결식아동
돕기 모금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불쌍한 아이들이 덕분에 한끼라도 잘 먹었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그리구 키메라는...... 훌륭한 일을 했던 분은 맞았던 것 같은데......
요즘도 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시 광대같은 인상에서 느낄 수 있듯이.... 좀 엽기적인 인물더군요.......
마지막으로 키메라의 소식을 들은 건 한인 업소록....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들 광고 나온 책......
oo신녀라는 이름으로 키메라의 사진이 나와있더군요......
미래를 확실히 보여준다, 인생이 안 풀리는 건 마가 껴서 그렇다는
둥의 점쟁이 용어들과 함께...... -_-
결식 아동들의 가난도 해결해주는 점쟁이는.......
아닐 거라구 생각합니다.......
담번엔 점쟁이 얘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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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0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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