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의 통정>
안개의 숨결이 목덜미에서 느껴졌어요.
서늘하고, 부드럽고, 잘 구운 비스킷이 바삭거리듯 건조하면서도
젖어있는 숨결이
내 목덜미를 간지르고, 귓볼을 핥고, 머리카락을 적셨어요.
안개를 유혹하려고 일어서기 전부터 이미......
창밖 안개의 몽혼주사로 감염된 나는......
의자 위로 끌어올린 두 다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을 거예요.
나의 몸은 안개를 위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을 거예요.
나를 마음대로 가져요.
난 거친 모래바람 속을
긴 시간 헤매다 온 듯 쉰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난 눈을 뜨면서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그 시각은 아무리 늦어도 5시 20분을 넘지 않았다고 확신했어요.
매일 5시 10분 이전에 눈을 뜨니까요.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내 뜻을 확실하게 짐작하는 당신처럼 나도 그 시각을 확신하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 느낌은 오랜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순간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섬광처럼 오기도 하더라구요.
남편의 와이셔츠 깃에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색깔의 립스틱이 묻어 있다고 해도,
낯선 향수 냄새가 배어 있어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옷깃이나 몸에 다른 여자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가지런한 빗살처럼 정돈된 일상이 아무 것도 흐트러지지 않아도
남편의 마음 속에 다른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채는 아내들.
그녀들도 그렇게 다가온 느낌으로 확신을 했을 걸요.
시계를 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눈 뜬 시간을 확신하는 나와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알아채는 당신처럼요.
나의 모든 아침이 그러하듯,
커피의 첫 방울이 유리 포트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베렌다로 나갔어요.
나의 새벽 혹은 아침을 맞을 시간이거든요.
내게는 늘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흐릿해요.
새벽이 아침보다 먼저 온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새벽과 아침을 구분할 수 없어요.
베렌다에서 나는 늘 창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이 도시의 새벽 혹은 아침보다 먼저 안개를 만난 거예요.
도시의 빈 여백을 안개는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뭐랄까요.
처음에 안개는 이 도시의 여백을 꽉 메꾸고 있었어요.
마치 성격이 찬찬한 아이가 크레파스로 도화지의 흰 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꼼꼼하게 바탕색을 칠한 것처럼 안개는 이 도시의 여백을 꽉 채우고 있었지요.
내 마음의 여백이란 여백을 모두 채워버린 당신에 대한 그리움처럼요.
안개가 그리움과 닮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나는 서늘해졌어요.
그러던 안개가 여백이 아닌 그림까지 점령하기 시작했어요.
도시의 건물들은 안개의 바탕칠에 점령당하면서 점점 희미해졌어요.
이미 색칠을 한 그림 위에 엷은 수채물감으로 덧칠을 한 것처럼 안개의 덧칠 아래서도
이 도시의 모습은 아직 희미하게 보였거든요.
내 마음의 여백에서 걸어나온 당신이
내 삶 속으로 발소리도 없이 섞어들었듯이요.
안개는 갈망과 닮았다는 사실을 난 또 처음으로 발견하고
목이 말랐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안개의 숨결이 거칠어지는가 했더니
그는 그만 이 도시를 유화물감으로 몇번이나 분탕칠을 하듯 덧칠을 해 버린 거예요.
이 도시는 그만 안개의 유화물감 덧칠 밑으로 숨어버렸어요.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온 당신이 나를 덮고,
내 영혼을 점령하고,
내 기쁨과 슬픔의 매순간들을..... 나의 모든 것을 먹어치워버렸듯이요.
그래요. 안개는 한 순간 이 도시를 삼켜 버린 거예요.
당신이 삼켜버린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어요.
이 도시도 이미 도시가 아니었어요.
도시는 존재하지 않고, 안개만 존재하고 있었어요.
안개가 삼켜 버린 도시는 바다가 되었어요.
모든 것을 삼켜버린 안개의 바다에서 살아있는 것은
가로등 불빛뿐.
긴 항해를 끝내고 이제 막 돌아와서 정박한 배에서,
혹은 먼 나라에서 이곳의 항구로 찾아든 외항선에서 새어나온 불빛처럼 외로운.
그랬어요.
안개에서는 먼 나라의 낯선 바람에 그을린 뱃사람의 손길이 느껴졌어요.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바다의 햇살 냄새가 났어요.
나는 한 번도 안겨 본 적이 없는 이국 사내의 체취가 안개의 냄새였을까요?
티테이블 의자에서 두 발을 가지런히 내려놓으면서 나는
안개의 몽혼주사라도 맞은 양 비틀거렸지요.
새뜻한 기분으로 아침잠에서 깨어났던 나는
나른한 몸짓으로 베렌다의 창을 열었어요.
그리고 달콤하게 속삭였지요.
나를 가져요.
마음껏 나를 가져요.
나를 짓이겨 버려요.
마른 꽃잎처럼 젊음의 습기가 이미 오래 전에 증발해 버린 오십 대 후반의 삶을 살고 있는 여자가
마치......악마의 주술에 걸린,
단 한 번도 남자를 경험한 적 없는 純精한 처녀아이가
악마를 맞기 위해 위험한 교태를 지으면서 창문을 열듯 그렇게
안개에게 속삭였지요.
내 성대의 깊은 동굴을 울리며
갈증에 뜯기어 사막의 바람처럼 건조하게 갈라지면서 쉬어버린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왔어요.
나를 가져요.
마음껏 나를 가져요.
나를 짓이겨 버려요.
주술을 건 악마가 단 한 번도 남자를 자신의 육체 속으로 받아 들인 적 없는
순정한 처녀아이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안개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삼켰어요.
도시는 함부로 분탕칠한 안개의 유화물감 덧칠 속으로 숨고,
나는 안개의 품 속으로 숨어들다가 이내 도시와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요.
안개의 체취는
젖어 있었으며,
젖어있는 체취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메말랐어요.
젖어 있는 안개의 메마른 먼지 냄새는 슬펐어요.
밤을 저주하면서 은장도로 허벅지를 찌르는 열녀의 홍살문처럼,
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의 밤,
관능에 몸부림하면서 개와 통정한 후 담담하게 머리칼을 쓰다듬는
어느 여인의 목마름처럼( 최인훈선생의 소설 <광장> 내용의 아주 작은 부분).
갖고 싶은 사내를 품고 육신의 뜨거운 문을 열다가 닫힌.....
이미 질질 흘러나온 애액으로
번드르 젖은 사타구니를 도륙당한 주막집 여인의 욕망처럼.
주막집 여인이 갖고 싶었던 젊은 사내는 벗겨놓고 보니 문둥이였지요.
한껏 열렸던 여인의 사타구니는 경악하면서 닫히고,
여인이 욕망의 눈빛을 참기름처럼 바르면서 탐했던 사내는
여인의 사타구니 속에 숨어있는 음부를 도려내었다지요.
자신을 갖고싶어 하는 여인의 음부를 도려내는
그 잔혹한 사내의 칼질처럼(이청준선생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내용의 아주 작은 부분).
.
.
.
그리고......
아무리 그리워해도 닿을 수 없는 당신처럼.
내 갈망을 알면서도 돌아서는 당신의 눈빛.
아아, 절망하면서 돌아서는 당신의 그 눈빛처럼
안개의 체취는 슬펐어요.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시인명을 밝힌 뒤, 이지엽 시인의
<안개 속으로>란 시를 이 부분에 인용했으나
서일이란 필명을 가진 분의 항의가 있어서
시를 지웁니다.
시인은 자신의 시가 널리 익혀지기를 원하지 않나요?
인터넷 공간에서 숱한 시인들의 숱한 시가 출처를 밝히면서
글 속에 인용되는데......
그 시가 없어도 내용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어서
그 아름다운 시를 내립니다.
몽혼주사를 맞은 것처럼 취하여
안개의 몸을 마른 꽃잎처럼 메마른 육신의 구석구석 받아들인 날.
안개와의 통정을 끝낸 나는
빛나는 슬픔 하나.
안개 속에서 주워들고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지는 마른 꽃잎처럼
불지않는 바람에도 서걱이며 울었어요.
.
.
.
안개의 유화물감 덧칠을 지우면서 ,
수채물감의 덧칠을 지우면서 해가 뜨고 있네요.
밤의 먼 바다에 떠 있는 외항선의 불빛같은 가로등 불빛도 이미 사그러 들었네요.
이제......꼼꼼하고 빼곡하게 채워진 크레파스 바탕칠까지 벗겨지면서
해가 떳어요.
안개의 흔적은 아무 곳에도 없어요.
내 몸 속에 머물었던 당신의 흔적이 사라지듯이.
이미 늦어버린 아침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벌렸던 가랭이를 오무리며
난 창에서 등을 돌려요.
내 사타구니를 타고 가랭이로 미지근하게 흘러내리는...... 안개의 체액.
배릿하여 슬픈 안개의 몸비늘.
털어내면서
대청소를 하고, 목욕탕을 닦고, 며칠 전에 사둔.......
질 좋은 한우 갈비에서 안개의 몸비늘처럼 배릿하지만
안개의 몸비늘과 다른 배릿함.
그 역겨움을 견디면서 핏물을 뽑아낸 뒤, 양념장에 절이기 위해서요.
휴일이라고 어미에게 다녀 간다는 두 아들을 위한 저녁을,
그 따뜻한 향연을 준비하자면 한참 늦어버린 시간이네요.
서둘러야 할 거예요.
.
.
.
아, 커피는 이미 오래 전에 유리포트로 가득 내려 왔네요.
알맞은 온도와
알맞은 향기와
알맞은 농도.
눅진하고 서늘하여 더욱 슬픈 정사를 끝낸 여인의 핏톨 속에 번진 안개의 물비란내......
아아..... 陰謀처럼 불안하여 피를 말려가던,
메마르면서도 젖어있는 안개의 체액을 씻어내며
커피냄새 향기로워요.
나는 오늘 서둘러 저녁 향연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당신, 오늘도 안녕시기를.
위의 모든 사진은 미국의 야후 이미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맨 위 사진 Rein Nomm 作
두번째 사진 Marialuisa Wiltlim 作
첫댓글 2년 전, 딱 이맘때 전원 주택으로 이사 왔어요.
그러니까 2년 전 딱 이맘 때 쓴 일기예요.
이사 오기 전 아파트의 10층에 살았는데..... 이 작은 도시의 반 이상이 보였죠.
아파트에 살 때는 황혼과 안개를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가끔은 아파트의 생활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답니다.
@서일 네, 글을 이렇게 쓴 것이 아니라 하셨는데
그 이전 전에 쓴 일기를 개작하여 딱 2년 전 이맘 때 다시 나의 수첩에 올렸습니다.
그날도 안개가 짙었으니까요.
전 제 수첩에 적힌 그대로를 베껴 왔구요.
두 글을 비교해 보시면 많은 부분이 삭제되거나 바뀌었을 겝니다.
이 개작일기가 아파트 생활에서 마지막 글이었지요.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서일님께서 한 번 올려보시지요.
한 수 배웁시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사모님과 손을 잡고 거닐던 안개길, 숲향 그윽했던 시간.
그런데 사모님께서는 유명을 달리 하셨군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서른 여섯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여자도 있답니다.
터질 듯 농염한 나이인지라
긴밤 허벅지에 송곳을 찌르는 심경으로 삶을 걸어온 여자도 있답니다.
떠난 뒤에도 사랑하는 이의 가슴 깊이에 살아있는 여인이야 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요?
같은 한글을 사용하면서도 한줄 한줄을 읽을때마다 탄성이 저절로
육감을 촉촉히 적셔주는 별꽃님의 글에 그만 마취가 되었는지
갑자기 정신이 혼미 해집니다.
새벽과 아침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가 뭘까?
언어의 마술사에게 새로운 어휘를 자주 발견해서 좋습니다.
방장님 답게 칭찬에 너그러운 우리 낭주 방장님.
칭찬.
감사합니다.
낭주님은 살아있는 글을 쓰시고, 저는 감성을 덧칠한
유려한 글을 쓰고......
사람마다 글향이 다르겠지요.
낭주님의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퍼득거리는 글이야 말로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살아있는 글이겠지요.
이토록 감각적이고 사실적인 회화를 창작할 수 있는 건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문학을 사랑한 결과물이라 여겨집니다.
도시를 엄습한 안개에 비빈 재료 하나 하나가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더욱 더 글 속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침 삼키는 소리 들리나요.
꼴깍 ~ ^^
참 살아있는 맛난 글 입니다.
새벽안개와 그리움. 커피, 외항선원의 체취.
그리고 보통으로 목마른 어느 여인의 슬픈노래...
떨릴듯 아름다운 곡조에 가까이가 다시 읽어야 제가 더 건강해 질 거 같습니다.
제 글을 그렇게 생각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제 글이 지나치게 감각적인데, 때론 감각이야 말로
깨어 있는 의식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댓글이 본문글보다 더 아름다운 곡조를 담고 있네요.
안개 깊숙이 손을 넣으니 자궁은 사라지고 바다로 빠져 듬을 봅니다.
경계 없는 四圍에 썰물에도 배를 띄워야 하는 외항선원이 거기에 서 있고.
여인의 작고 빛나는 수첩에 바람의 색채가 메마른 것은 가을향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치명적인 여인의 안개 속 迷失(미실)이 言語와 隱語의 교집합을 이루는데 황홀한 失神이 널 부러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속에 대대로 대물림하는 交尾와 通情의 눈부신 향연의 자축연이
여인의 욕망으로 덧칠되어
질퍽한 액체 용암의 점성처럼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관능의 희열이,
안개처럼 스물 거리고 피어나는 삶의 궤적에
性과 섹스에 대한 대담하고 솔직한 담론에서부터
나이 들어감에 대한 쓸쓸함, 외딴 섬 등이 다양한 감성들로 투영되어 있음도 또한 가을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되겠지요.
마치 ‘라우젠’이라는 여인이 “뭉크”의 ‘절규’를 낳게 했던 것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고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묘한 생명의 아이러니 같음에 치어스~!!
@지적성숙 성숙님, 별꽃님~ 더블 브라보 꼼바니아 치어스~
문리버님.
본문 글보다 더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는군요.
댓글을 읽다가 어휘의 아름다움에
제가 혼절하겠습니다.
댓글을 이렇게 아름다운 시처럼 쓰실 수 있는
문리버님의 글재에 감탄합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문리버 1 감사합니다.
지적성숙님. 문리버님의 치어스 선창에 우리 셋.
잔을 부딪혀요.
브라보 꼼빠니아!
치어스!
@문리버 1 뭉크를 좋아하기 때문에 뭉크의 많은 부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뭉크가 창녀의 사생아라든가, 정신병을 앓았다던가
친정부모 돌아가신 해는 손가락으로 짚어보고 계산을 해 보아야 하는데
뭉크가 죽은 해는 대번에 1944년이라고 떠 오르는 등.......
뭉크의 화집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뭉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라우젠이라는 여인에 대하여서는 처음 알았습니다.
문리버 선생님을 통해서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우는군요.
@지적성숙 그래요, 지적성숙님.
우리 삶의 같은 부분을 위하여 무조건 치어스!
브라보 꼼빠니아!
@구봉 안녕하세요, 구봉님. 라우젠을 말하려 하려면 뭉크의 여인관을 설해야 하는데 자그마한 지면으론 부족합니다.
별도의 코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욕지도.
저도 참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욕지도에 계시는 분이 아마 시어머님이신가 봅니다.
스물 두살 겨울에 욕지도에서 긴 시간 머물었던 적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며칠을 머물었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안개 속 같다면 포기하신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린..... 모험을 하기엔 너무 많은 세월을 살았을 겝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낀펠리체 셈프레..(Ah ch'infelice sempre..)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하지 않는 것인가?
...왜 끊임없이 가련한 눈물을 흐르게 하는 것인가?
비발디의 칸타타에 나오는 대사 중에 나오는 한 대목이지요.
욕지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추억 깊은 섬입니다.
이십여년 전, 욕지도에서 섬마을 선생님을 하던 지인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인터넷에 들어 갔더니 자기 남편이 광어와 돔을 방금 잡아 놓았으니 빨리 와서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랬지요, 야~ 이놈에 가스나야, 여기가 너의 옆집이니? 그래도 리버님은 회를 좋아하시잖아요~, 어서 오세요. 신랑이 빨리오래요~내려 올때 까지 냉장고에 보관
@문리버 1 할테니 어서오래요.
그 말을 듣고 견딜 수 없어 곧바로 밤 9시에 달렸지요.
그때 대전-진주간의 고속도로가 뚫린지 얼마되지ㅡ 않을 때였기에 차도 별로 없었지요.
자동차 넘버에는 테프코팅을 한채, 3시간만에 주파했지요.
통영항구 앞에 있는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침 일찍 욕지도에 들어갔지요.
그리고 감성돔과 광어 보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그 아이가 직접 요리했던 아구요리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아구찜도 아니고 탕도 아닌...아구 수육이었습니다. 참으로 맛있는, 서울에선 맛 볼 수 없었던 너무 맛있었던 요리였는데 지금도 욕지도가 생각납니다.
모딜리아니가 잔느를 그렸듯이
안개를 걷고 사랑했던 여인의 전부를 그려 달라는 말씀에 공갑합니다.
베싸메 무쵸.
키스를 막 퍼부어 주세요.
그러나 키스한 뒤에 안녕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지적 성숙님의 마음을 이해하겠습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문리버 1 전 사실 시엠프라 셈프레 뜻을 몰랐습니다.
문리버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서야 이해를 했습니다.
비발디의 칸타타에 나오는 대사중 한 대목이군요.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하지 않는 것인가?
왜 끊임없이 가련한 눈물을 흐르게 하는 것인가?
문리버 선생님.
참으로 박학다식하십니다.
감탄에 감탄을 합니다.
@문리버 1 참으로 대단한 친구입니다.
욕지도에서 섬마을 선생님을 하던 친구.
제 친구도 욕지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어느 해 겨울 방학 한 달 가까이 머물었던 적 있습니다.
그 밤에 서울에 계신 친구분도 대단하시지만
달려가신 문리버 선생님도 대단하십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시온 ^^...시온님의 재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
너무 가을을 깊이 앓지 말고 힘내세요, 중장년의 홀든님.
@시온 홀든의 꿈님.
시온님의 말씀처럼 닉을 바꾸셔서 그러신다면
다시 돌아가시는 것도......
@홀든의 꿈 휘리릭 도망가시지 말아요, 홀든의 꿈님!.
저도 처음엔 글 읽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온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서요.
제가 귀가 이리 얇답니다.
어린 아해였을때 새벽안개가 자욱히 깔린 숲속을 산책한적이 있었다.
앞이 않보일정도...그래도 아해는 엄마의 자궁속에 들어가 있는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냥 그자리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6살때였다...
아......6살 때.
가슴이 턱 미어집니다.
안개 속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엄마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6살의 어린아이.
이 짧은 댓글이 절 울리는군요.
@하얀별꽃 5 살 어느 초여름..!! 엄마가 죽자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는 아해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고향 시골에서 얼굴과 생식기가 팅팅 붓는 영양실조로 고생을 한다.
6 살 초여름 어느날...!! 새벽안개가 자욱한 논길과 밭길을 거쳐 아해의 주먹만한 조그마한 오이를 따먹으며
들어간 숲속에서 아해는 편안함을 느꼈다. 배고픔도 잊어버리고,,통증이 오는 생식기도 잊고
팅팅부은 얼굴에 엄마의 손길같은 새벽안개가 내려앉으며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
엄마 ~ 엄마 ~ 그냥 부르며 너무 편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니 시름도 깊어가나 봅니다.
이제 계속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가을을 하나씩 더 만날 때마다
시름도 깊어지겠지요.
찾아 주시어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래요.
안개 속..... 길이 보이는 곳까지만 갔다가
안개 속으로 숨어버린 그곳이 어떤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
끝까지 가봐야 하겠지요.
어떤 길이 열릴지 최선을 다해 가봐야 하겠지요.
고개를 주억거리고, 깊이 새기면서 댓글을 읽었습니다.
글의 배경을 그림을 그리듯 풀어내는 하늘별꽃님..
글맵씨가 어찌 이리 가슴뭉클하게 그려 내질까요..'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화의 투명한 기법을 묘사하다가 ...
결국은 유화로 덕지덕지 풍경을 그려 내시는 님..
그리고 제자리로 모두를 하나씩 차분히 지워내시는 글..
아!~~~정말 감동이 밀려오는 글이네요..
오늘 문득 뿌연 안개가 그리운 날입니다..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시라
글 속에 담긴 그림을 분석하셨군요.
전공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미술선생님.
맞으시지요?
제가 잘못 짚었나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음의 부도에 대한 구봉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카페에 들어오셔서 생을 관조하시면서 글도 쓰시는 여유.
현자의 모습입니다.
빠른 시일내 부도 어음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별꽃님 방글 ~
어디선가 읽은듯한 글풍들
안개에 영혼을 동화시켜 감미로운 안개와의 정사의 표현은 역시 최고 입니다 ~ ㅋㅋ
어머, 불종이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계시었지요?
가끔 소식 궁금했답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얀별꽃 ㅎㅎ 낮달이 되어 지켜만 보고 있읍니다
혜애아님.
칭찬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혜애아님의 풍부한 감성의 맑은 내음이
짧은 댓글에도 잔뜩 배여 있습니다.
지금은 달콤한 잠에 취해 계실 시간.
혜애아님의 감성에 맞게 순정한 꿈 꾸시기를요.
색다른 감을 안겨주는 내용과 문체입니다. 적절한 주제가 있다면 소설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유포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토, 일요일 서일이란 필명을 가지신 분께서 이 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더군요.
첫번째 문제점에 대한 답변
-이 글은 제 글이 맞습니다.
저작권이니 도용이니 그런 말씀마세요.
서일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앞으로는 신중하게 알아 보시고, 댓글 올려 주세요.
두 번째 문제점의 답변.
이지엽 시인의 연락처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잘 아신다니까요.
제가 이 글을 이시인님께 그대로 직접 보내드리겠습니다.
서일님으로 인해 인용한 시가 적혀 있는 부분을 지웠다는 내용이 적힌 그대로요.
@지적성숙 지적정숙님.
고맙습니다.
걱정하셨군요.
고맙습니다.
후훗.
지적성숙님.
오히려 지적성숙님의 세계가 기품있고, 화려하면서도 고운꽃이 늘어져
그윽한 향기 가득한 식물원 같으세요.
애장품인 찻잔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