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궁리
윤옥여
아이는 자꾸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낮에는 새빨간 에나멜구두로 딸깍 달깍 소리를 내며 긴 복도를 뛰어다니던 아이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무슨 연유에서인지 내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입구를 밝히는 전등들이 유난히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온 곳은 아이의 엄마가 잠들어 있는 장례식장. 문득, 환한 저 입구가 죽은 영혼들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넘나들이를 위해서라도 입구는 환해야 마땅할 터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저 지하의 공간처럼 큰 혼자만의 방을 가져본 이가 있을까. 한 사람을 위해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준 경험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저 안의 누구도 큰 방을 차지했노라 좋아하지도 많은 사람들을 반겨 맞이하지도 않을 터였다. 아이가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듯, 방의 주인들도 저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물음들처럼 장례식장 모퉁이를 돌아서자 발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장례식장 제일 끝, 제일 넓은 방에 아이의 엄마가 있다.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주검이 되어 커다란 방을 차지하고 누운 여자, 내 조카다. 새벽녘 배가 몹시 아프다며 전화를 해 온 딸아이를 데리고 큰언니는 지역의 꽤 큰 병원으로 갔다. 응급의에게 맹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날이 밝는 대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문자는 아침, 문안인사처럼 도착했다. ‘이모, 나 이제 수술하러 들어가.’ ‘야, 의사선생님한테 비키니 입을 수 있게 수술 예쁘게 해 달라 해.’ 그렇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는데, 1시간 만에 조카는 생을 달리했다.
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하얀 시트를 가슴께까지 두르고 누워있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것 같은 하얀 어깨가 추워보였다. 여자는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떤 기계적 도움도 받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아직 도착하지 못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살면서 어쩔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을 테지만 죽음만한 게 또 있을까. 이런 상황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눕혔다. 곡소리로 가득 찬 다른 빈소와는 달리 향 연기만 운해처럼 낮게 깔려 있다. 가끔 큰언니의 쉭쉭거리는 울음소리만 침묵을 가를 뿐이다. 어처구니없게 자식을 잃은 어미는 삼일 내내 울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죽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라도 울어주는 일 뿐. 찾아오는 조문객의 발길도 끊겼다.
한 쪽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조카사위가 보였다. 그가 잠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옆을 지키고 있는 안사돈은 연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헛 곡을 하던 안사돈에게는 그녀의 죽음보다 아들의 안부가 더 걱정인 듯 했다. 몇 몇 친척들은 잠이 들었고, 상조회사에서 파견된 아줌마들도 음식을 담아 쌓아 놓은 쟁반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아침나절, 병원장이라는 사람이 의사 두 명과 함께 찾아왔다. 그들은 간단한 조의를 마치기 무섭게 합의에 관한 애기를 꺼냈다. 병원 측에서는 빠른 합의를 통한 조용한 해결을 원했다. 병원 측의 바람과 죽은 이의 미래 가치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았다.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저울질은 주변의 공기마저 긴장시키고 있었다. 조카를 부검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득, 죽은 자의 배를 갈라 헤집는 부검이 그녀를 위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죽은 이를 위해’라며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어쩌면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고해성사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삶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녔다. 합의금 이야기가 나왔다. 완벽한 ‘삶’이 아니고 무엇인가. 유가족을 대표해 오빠가 병원 측과 몇 시간에 걸친 실랑이가 오고 갔다고 했다.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합의금으로 ‘몇 억’을 받을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니, 무슨 장사 할래? 고깃집 하까?”
아이를 눕히고 한쪽 구석에 앉아 잠깐 몸을 쉬고 있는데, 넌지시 아들에게 건네는 안사돈의 한 마디가 침묵처럼 들렸다. 그 말은 낮게 깔린 향 연기와 함께 깊숙이 사람들의 폐를 찔러왔다. 아무리 혼자 된 아들의 살 궁리를 해 주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라지만, 아직 관에도 들어가지 못한 그녀는 고깃집과 견줄만한 활용가치가 되어 있었다. 불과 4일 만에 그녀의 죽음은 ‘현실’이라는 베옷을 입고 살 궁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녀의 죽음은 과거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늘 살 궁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냥 살아갈 뿐, 사실 살 궁리를 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갑자기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나 혹은 큰돈이 생겼을 때처럼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제야 살아갈 이런 저런 궁리를 한다. 4일간의 장례는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살 궁리 할 일 없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날, 많은 살 궁리들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이 그 어떤 살 궁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딸아이를 잃은 나의 큰 언니. 후회와 원망과 자책으로 얼룩진 나흘을 보낸 언니는 그저 울고 또 울 뿐이었다. 쉭쉭, 쉰 곡소리가 빨간 에나멜구두를 신고 밖을 향해 달려 나가는 듯 했다.
☞윤옥여 - 《에세이 포레》수필 신인상 당선(2012), 김포문인협회 부회장,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제1회 예천 전국시낭송대회 은상 수상, 토마토TV 주최 제1회 전국시낭송페스티벌 금상 수상,
제1회 서정주 전국시낭송대회 금상 수상, <달詩> 동인 공저 『꽃을 매장하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