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김태희 짱, 쓰루노유 이치방데스요(최고예요)!"
여행온 지 나흘째입니다. 딱 절반이 지났네요. 일본에 도착할 때는 여행 기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날을 돌아보니 잠깐이네요. 남은 사흘도 금방 지나갈 것 같습니다. 승용차로 이동하는 중에 대화가 분산되니 2호차의 대화 내용도 궁금합니다. 저와 정형이가 바꿔 타기로 했습니다.
1호차에서는 제가 대화를 주도하긴 했지만 뒷자석의 동규와 태성이가 틈만 나면 소곤거리며 둘만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2호차를 타니 세 명 모두 제가 입을 열기만 기다리더군요. 그동안 꽤나 정형이가 심심했을 듯합니다.
쓰로노유 온천 입구.
호텔을 나와 아키타의 뉴토(乳頭) 온천마을로 향합니다. 이곳에는 특색 있는 7개의 온천여관이 있는데, 우리가 고른 곳은 김태희가 알몸을 담갔다는 쓰루노유(鶴の湯) 온천입니다. 두루미가 상처를 치료하려고 온천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사냥꾼이 목격하고 그런 이름을 붙였다네요.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다가 표지판을 보고 비포장도로로 들어선 뒤로도 한참을 들어갑니다. 주차장에 와 보니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더군요. 아늑한 주변 풍경에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 모습을 보고 나니 너도나도 “정형이 말을 따르기를 잘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쓰루노유 온천 정원의 단풍과 억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늘이 월요일이어서 청소하느라 혼탕으로 운영되는 노천탕이 문을 닫았다는 겁니다. 아뿔싸! 내일 또 올 수도 없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습니다. 지난해 스위스 원정 때 들어갔던 혼탕에는 젊은 여성도 여럿 보였는데 이번에는 여성이 별로 눈에 띄지 않으니 그렇게 애통해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릅니다.
쓰루노유 온천의 노천탕.
남탕에 들어가니 조그만 탈의실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시로유(白湯), 오른쪽은 구로유(黑湯)입니다. 물 빛깔은 둘 다 뿌연 녹색입니다. 욕조가 조그많고 노천도 아니어서 아쉽기는 한데 오랜 전통이 느껴져 비로소 일본 온천에 온 실감이 납니다.
목욕을 마치고 뽀얀 얼굴로 욕실을 나서는 동규 대원.
깨끗한 몸과 개운한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아키타(秋田)의 가을 밭을 지나 도착한 곳은 다자와코(田澤湖)입니다. 20년 전에도 제가 와본 곳이죠. 최대 수심이 423m로 일본에서 가장 깊습니다. 2일차에 들른 도와다코보다 100m 가까이 더 깊죠. 그래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치를 잘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바이칼호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데 예전에 그 위로 기차가 다닐 만큼 깡깡 얼거든요.
쓰루노유 온천에서 다자와코로 가는 길에 만난 꽃밭.
투명도도 1931년 조사에서 31m(바이칼호는 41m)로 매우 깨끗했다는데, 수력발전과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다른 곳으로 흐르던 인근의 산성 강줄기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물이 오염됐고 토착 어종도 멸종했다고 합니다. 이때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을 추모하기 위해 다쓰코히메(辰子姫) 관음상이 세워졌다네요.
다자와코의 아이콘인 다쓰코히메 동상.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쓰코히메 관음상이 아니라 황금빛으로 빛나는 다쓰코히메 동상 앞이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아이리스’의 한 대목이 촬영됐죠. 일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식당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이곳에도 우동집 말고는 이렇다 할 음식점이 눈에 띄지 않네요. 하는 수 없이 라면과 우동 등을 주문해 먹습니다. 여기서도 종업원 아주머니가 친절해 대화가 즐겁습니다. 우리가 서툰 일본어로 ‘오이시이’, ‘가와이’, ‘스바라시이’ 등 몇 안 되는 아는 일본어를 지껄이며 음식 맛과 아주머니 용모를 칭찬해주니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다자와코 인근 식당에서 맛본 덴푸라우동.
동상과 신사 옆에서 기념촬영을 합니다. 운치는 있는데 호수를 몇 차례 봐서 그런지 감흥이 크게 일지 않습니다. 변치 않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간직하려고 호수의 물을 다 들이마시다가 용으로 변했다는 다자와코 수호신 다쓰코히메의 전설도 마음에 잘 와닿지 않네요. 더욱이 트레일이 아스팔트 도로와 상당 부분 겹쳐 있는 데다 내일 또 호숫가를 트레킹할 예정이어서 이만 자리를 뜨기로 합니다.
아키타 무사의 집에서 희용 대장이 사색에 잠겨 있다.
대신 들른 곳은 17세기 에도(江戶) 시대 무사들이 살던 마을을 보존해놓은 ‘가쿠노다테(角館) 역사촌’으로 일종의 민속촌이자 박물관입니다. 당시의 건축 양식과 정원이 잘 남아 있어 도호쿠 지방의 작은 교토(京都)로 불리기도 하죠. 일본에 처음 온 대원들도 있는데, 자연 경관만이 아니라 일본 전통이 느껴지는 마을도 구경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에 20년 전 제가 돌아본 기억을 떠올려 즉석에서 제안한 겁니다.
이런 제 충정도 몰라주고 나중에 듣자 하니 정형과 태성이는 “희용이는 자기가 가본 곳을 꼭 가자고 하더라. 아는 척, 잘난 척하려고 그러는 것 같애.”라고 쑥덕거렸다고 하더군요.
월요일이어서 일부 문을 닫은 곳은 있지만 그래도 몇 군데는 문을 열었습니다. 길을 돌아 보니 일본인들의 깔끔하고 꼼꼼하고 세심한 성정이 잘 드러납니다.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집으로 들어섭니다. 집안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듯 덩치 큰 고목의 가지가 담장 밖으로까지 늘어져 있네요. 문패엔 ‘靑流家(아오야기케)’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키타현 지정사옥이라고 적힌 아오야기케 푯말.
인당 입장료는 500엔이어서 비싸다 싶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입장료와 똑같은데, 거긴 여러 집을 다 둘러볼 수 있거든요.그래도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덜 들도록 다양한 물품을 전시해놓고 아기자기한 체험 코너를 꾸며놓았습니다. 입구에 호객용으로 적어놓은 ‘3만 점’이라는 자랑이 허풍이 아닙니다.
맨 처음 만나는 곳은 무기고입니다. 무사들이 쓰던 투구와 갑옷, 창칼과 총포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관람객이 칼과 창의 무게를 느껴 보라고 유리 진열장 안으로 손을 넣도록 만든 코너도 있네요. 생각보다 많이 무겁지는 않지만 막상 이걸 휘두르며 싸우다 보면 금방 지칠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싸움 기술 못지않게 힘을 중시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키타 무사의 집에 갑옷과 투구 등이 전시돼 있다.
본채에는 그림, 책, 생활용품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옛날식 SP레코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무사와 음반이라니 어딘지 모르게 안 어울리는 느낌이네요.
본채 옆에는 이 가문에 배출한 서양화가 오다노 나오타케(小田野直武)의 흉상이 서 있고 별채에는 그가 그린 란가(蘭畵)와 그의 유품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徳川) 막부가 서양인 가운데 유일하게 네덜란드 상인에게만 일본과의 교역을 허용해 네덜란드를 통해 많은 서양 문물이 전래됐죠. 이를 배우는 것을 네덜란드의 한자식 이름 화란(和蘭)의 뒷글자를 따서 란가쿠(蘭學)라 한 것처럼 그림을 란가라고 부른 겁니다. 1774년 그린 인체해부도 ‘해체신서(解體新書)’를 비롯해 서양식 원근법을 이용해 그린 그림 등이 걸려 있습니다.
희용 대장과 태성 상철 대원이 각각 사무라이, 아키타 처녀, 개 그림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뒤로 돌아 가니 일본식 과자를 구워 파는 곳도 나오고 전통식 농기구와 주방기구 전시관도 있습니다. 마쓰리(祭り)에 쓰인 대형 퍼레이드카도 볼 수 있고 나무판 뒤로 얼굴을 내밀고 사진을 찍도록 꾸며놓은 포토존도 꾸며놓았네요. 병래가 “희용이는 얼굴이 커서 구멍에 다 안 들어간다”고 놀립니다.
바로 옆 건물은 투구를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든 부스입니다. 우리나라 전투경찰의 방석모(防石帽)를 닮았습니다. 투구가 작아 제 머리에는 잘 안 맞습니다. 태성이는 수월하게 머리가 들어가네요. 병래가 또 저를 놀리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두대왈장군 족대왈도적(頭大曰將軍 足大曰盜賊)’, 다시 말해 머리가 크면 장군이고 발이 크면 도둑이라는데, 일본 장군들은 머리가 작았나 봅니다.
희용 대장(왼쪽)과 태성 대원이 사무라이 투구를 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관람이 다 끝났나 싶었는데 하이카라(ハイカラ)관이라고 쓰인 곳이 또 있습니다. 하이카라, 즉 하이칼라(high collar)는 양복의 높은 옷깃을 일컫는 말이지만 메이지(明治) 시대 서양인들의 패션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서양식 남자의 헤어스타일을 지칭하기도 했죠. 아래층은 기념품과 다과를 파는 곳이고 위층은 사진기, 시계, 축음기 전시장으로 꾸몄습니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병래가 골동품 카메라들을 관심 깊게 감상합니다.
아오야기케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고 길거리음식을 파는 행상도 눈에 띕니다. 구운 밤을 사서 나눠 먹습니다. 일본에서 노점 음식을 사 먹는 건 처음이네요.
우리가 4일째 밤을 보낼 아키타 뷰 호텔은 아키타 역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형 쇼핑몰도 바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 가운데 가장 번화가에 있네요. 오늘과 내일 숙소는 1인1실입니다. 방이 비좁아 2인용 침대를 놓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튿날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오늘 이 방은 큰 편이더군요.
아키타 향토 요리 기리탄포를 알리는 X배너 광고판.
오늘 저녁에는 아키타의 명물 기리탄포를 먹기로 했습니다. 쌀밥을 으깨 어묵처럼 만든 뒤 닭고기와 채소 등을 냄비에 넣고 국물과 함께 끓인 향토 요리죠. 기리탄포를 꼬치에 꽂아 구워 먹기도 합니다. 영수가 검색한 기리탄포 전문식당을 찾아나섰습니다. 기리탄포 간판이 보여 들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집이었습니다.
냄비에 담겨 나온 기리탄포.
아무튼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기리탄포와 몇 가지 다른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일본 소주도 주문해 얼음을 섞어 마셨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식당에서는 배불리, 그리고 취하도록 먹고 마시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명색이 원정대장이니 2차를 쏘겠다고 말합니다.
스탠드바처럼 주방과 객석 사이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마담 언니 오카상과 대화를 나누며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원이 많은 탓도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 방에 모여 앉고 젊은 남자 점원이 서빙하는 곳에 들어가 꼬치와 오뎅 등을 시켜놓고 술잔을 비웠습니다.
아키타 밤거리에서 동규 대원이 2차로 적당해 보이는 술집을 가리키고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동규가 넌지시 제게 말합니다. “민주동문회 80 산악대장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조짐이 보였는데 네가 2차를 쏘면서 그런 목소리가 쑥 들어갔어. 당분간 연임 굳히기에 들어가는 분위기인 것 같아.”
2차를 했다고 해서 호텔 방에서 양주를 비우지 않고 잘 수는 없는 일이죠. 갑표의 글렌피딕 마개를 땁니다. 영수가 가져온 쪼끄만 중국 백주도 등장합니다. 술은 계획대로 착착 소비되는데 가져온 라면과 햇반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방에 들어가 자려는데 상철이가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열어주고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오늘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 갖고 있니?” “아니, 그냥 다 쓰고 난 뒤 남는 돈 내게 주면 된다니까.” “그래도 총무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봐. 확실히 계산해놓고 자려는 모양이야.” “영수증은 어디 뒀는지 모르겠고, 아마 두 번째 통행료는 550엔씩일 걸?” 태성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