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을 보내 드리며
어머니를 장지로 모시는 날 새벽,
흰 눈이 펄펄 내렸습니다.
눈이 하염없이 내렸다가는 진안 가는 길이 우려스러울 것 같아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싶어도 그치지 않고 퍼붓는 눈발을 헤치고
도착한 집, 며칠간 치우지 않아서 어수선한 책상을 정리하고
어머님을 위한 애사哀詞를 지었습니다.
사흘장을 마친 뒤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마지막 시간,
어머니를 위한 애사를 천천히 읽었습니다.
<어머니 정병례의 애사>
어머니의 이름은 병례요, 나주 정씨입니다. 정병례의 아들 신정일이 다음과 같이 제문을 지었습니다. 어머니 정병례는 스물한 살에 영산靈山 신씨辛氏 영철榮喆 에게 시집을 가서 아들 셋,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계사년(2013) 2월 초나흘 오전 아홉시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나이 여든 일곱이었습니다. 지아비의 고향이 진안인지라 장차 진안군 부귀면의 공원 묘원에 57세에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함께 장사 지내고자 합니다.
어머니 정병례는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면 봉암리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남리에 살고 있던 신영철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네 살 차이가 나는 남편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지만, 어지러운 세상 탓이라서 어머니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고단하기만 했습니다.
그 사이 큰 아들 신정일과 둘 째 아들 신성현, 셋째 아들 신형교와 고명딸 신미숙이를 낳아 길렀으나 살림은 펴질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과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과감하게 집을 나와 행상을 시작하였습니다.
모진 가난과 고통의 세월이었습니다. 그 세월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편 신영철이 1981년 12월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버리자 어머니는 아들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들딸이 저마다의 살길을 찾고 결혼을 하자 어머니는 자식들과 살림을 합했고,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애지중지하며 여덟 명의 손자를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옛 말이 빈말이 아닌지 어머니에게 병마가 찾아들었고, 결국 어머니는 원심원에서 계시다가 전주 일양병원으로 옮긴 뒤 며칠 만에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거나 비가 내리면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서 “눈 내리는 날은 답사 가지마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매년 년 초에는 불공을 드린 뒤, 신년 운을 보시고 와서 우리 가족 이름들을 일일이 부르면서 누구는 무엇이 좋고, 누구는 무엇이 좋다고 하시며 가족 구성원들의 기를 살려주셨지요.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그 따뜻한 말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자나 깨나 가족들 걱정, 가족들 자랑으로 사시던 어머니, 이제 다시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더없는 슬픔입니다.
어머니, 그 질곡의 세월을 사셨던 어머니는 봄이 온다는 그 입춘立春날에 봄은 온다는 그 진리를 일깨우고 돌아가셨고, 지금 이렇게 뜬 눈으로 지새는 새벽에 하연 백설기 같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꿈같기도 하고, 허깨비 같기도 하다고 하지만 당신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식에 대한 간곡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손수 가르쳐 주시고 가신 인생의 큰 스승 같은 삶을 사신 분입니다.
내세에서는 부디 세상일 다 내려놓으시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간곡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세상이 어렵고 삭막할 때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날이 갈수록 더 사무치게 그리울 테지요, 어머니, 어머니, 부르는 소리가 더 커져가는 이 시간, 가슴이 텅 빈듯, 무너져 내리는 듯, 더욱 망연하여 슬프기만 합니다. 아 슬프고 슬픕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으니 굽어 살피고 영원히 평안한 세상 어이가시길 간곡히 기원합니다.
계사년 이월 초엿새 .
상향,
애사를 읽다가 울지 않으려 했는데, 가다가 끊기고, 울먹이면서 애사를 다 끝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듣고 애도를 표해 주신 모든 분, 그 먼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오거나
조의금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과 이 땅의 어머니를 잃은 모든 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정을 보냅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왔다가 아무 것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다지만,
현대 생활에서는 돈이 없으면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곧 이어 민족의 큰 축제인 설과 대보름을 지나면, 봄이 성큼 다가올 테지요.
부디 그 날까지 건강하시고 길에서 만나 함께 걷기를 빕니다.
계사년 이월 초이레. 신정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