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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bing Special
스네이크 코리아와 함께하는 한국의 壁
해벽등반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작열하는 태양,
희살대는 파도 속으로…
김철규씨가 단독으로 부산 가덕도에 개척한 50여 개의 해벽 루트
글|임성묵 기자 사진|주민욱 기자 협찬|스네이크
배낭에 로프를 넣고 하얀 파도 부서지는 바다로 간다.
일렁이는 파도 머리를 발판삼아 해벽을 오른다.
때로는 푸른 물살 희살대는 바다에 “풍덩!” 빠져보기도 한다.
올여름 폭염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보, 평년보다 빨리 개장한 해운대에 수십 만의 인파가 몰렸다는 뉴스. “삼복더위를 또 어떻게 나나?”걱정하던 차에 부산 가덕도 해식애(海蝕崖)에 새 길이 났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눈치 빠른 이라면 “가덕도! 그럼 배 타고 가야겠네…”라고 미루어 짐작할 터. 하지만 천만의 말씀. 얼마 전 개통한 거가대교 덕에 부산 출발 1시간 남짓이면 일렁이는 파도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의 오름짓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임덕용 본지 편집주간을 위시해서 해벽등반의 강자 이주석(스노우라인)씨로 긴급 취재팀을 꾸린 우리, 6월 중순 부산을 향해 Go! Go! 씨이잉~!
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자 노량진 수산시장과는 격이 다른 비릿한 바닷내음이 가슴을 쿵쾅이게 하는 곳, 주민욱 기자가 고향 입성을 실감한다.
“언제 왔는교?” 차정호(부산빅월클럽)씨가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하는 말. 온천장 인근에서 짐을 푼 우리는 불타오르는 해벽등반에 대한 등반욕을 밤새 소주로 달래며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거짓말처럼 열린 다음날 아침….
“오늘 콘셉트는 머리에 두를 스카프예요.” 임 주간이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는 스카프를 들어 보이자 자칭 ‘미스 부산’이고 닉네임이 ‘수미코리아’인 오수미(부산빅월클럽)씨 왈. “미인대회에서도 안 써봤는데 오늘에서야 써 보네요”라며 상큼한 조크를 날린다.
거제도까지 뚫린 새 길을 따라 1시간 남짓 달려 아담한 어촌 가덕도에 들었다. “해벽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그랬다. 온통 주위가 육산이라 도대체 어느 곳에 바위 벼랑이 숨어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쪽입니다.” 때마침 만난 ‘가덕도 해벽’ 개척의 주역 김철규(57세)씨. 그를 따라 오르막길을 15분 정도 오르자 어설프게 “저기쯤이겠지!”라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하더니, 10분 정도 급경사를 내려서자 “우와~!”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전국의 해벽을 거의 다 다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바다를 향해 직각으로 내리꽂힌 80미터 벽을 대면한 취재팀은 모두 까무룩해지는 표정이었다.
7월 말이 등반 적기
가덕도 해벽은 좌벽, 중앙벽, 우벽으로 나뉘는데 이중 압권은 좌벽이었다. 로프를 잡고 20미터 정도 트래버스를 해야 등반할 수 있는 이곳은 ‘딥 워터 솔로(deep water solo, 로프 없이 하는 해벽등반)’ 등반이 가능할 정도로 각 쌘 벽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몸으로 생각해야 할 벽이었다.
너럭바위에 짐을 부린 일행들의 변신은 큰 바위 뒤에서였다. 코디네이터로 나선 이는 당연히 임덕용 주간. “자! 나와 보세요.” 큰 바위 뒤에서 옷을 갈아입은 그녀들의 변신을 화려했다. 오씨의 몸에 딱 붙는 뱀 무늬 흰색 타이츠가 압권이었는데 그녀는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재킷을 허리춤에 둘렀다.
“준비됐나요? 자! 그럼 출발합시다.” 좌벽 등반을 위해 고정로프를 따라 20미터 정도 왼쪽으로 트래버스 하자 수면 위로 치솟은 크랙과 페이스가 위협적으로 뻗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해안지대 바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암질.
등반 시작점인 테라스에 앉자 “처얼썩~!” 파도가 벽을 때리는 청량한 소리가 귀를 맑게 했다. 며칠을 두고 오르고 싶은 해벽, 또 며칠을 두고 바라보고 싶은 바다였다. 그러나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주석씨가 등반을 시작했다. 루트는 ‘어낭대(5.12b)’. 첫 등반부터 고난도 루트를 선택한 그,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듯 크럭스인 오버행을 넘어서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를 지켜본 취재팀. “5.12급 맞아? 짜다!”라는 이구동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악!” 소리와 함께 오버행을 넘어선 그, 조금 수월해진 벽을 따라올라 등반을 마무리했다.
“아마 저 위에서 잉크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 뛰어내리고 싶겠죠.” 등반자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그러자 “그래 그거 좋네. 우리도 등반 마치고 ‘딥 워터 솔로’ 등반 한번 하자고.” 임덕용 주간의 긴급 제안, 얼떨결에 모두 동의했다.
패션 감각만큼 등반 감각도 좋은 임 주간이 등반을 시작했다. 암벽을 무대 삼은 그의 오름 퍼포먼스는 화려했다. 그걸 지켜보자니 오십 중반에 끝없이 폭발하는 그의 에너지원이 궁금해졌다. 더할 수 없는 호기심이 팽창할 대로 팽창할 때쯤 그 답을 찾았다. “열정!” 낮은 소리로 대뇌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는 임덕용 주간 못지않은 열정을 간직한 이가 또 있었다. 예순이 내일모레인 가덕도 해벽 개척의 주역인 김철규씨. 그는 근 10년 동안 단독으로 이곳에 50여 개의 루트를 만든 장본인이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해벽 개척을 위해 그가 쏟아 부은 노력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국 여성 그룹 뱅글스의 노래 ‘이터널 프레임(eternal flame)’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등반 열정이었다. 갯바위에 앉아 취재팀의 등반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이, 바로 그 였다.
겁먹지 말고 “뛰어!”
스카프를 머리에 동여 맨 ‘미스 부산’의 등반은 임 주간의 확보로 시작되었다.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인 그녀의 오름짓은 마치 암벽 위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듯 강렬했다. “눈을 더 크게 치켜뜨세요.” 순간의 강렬함을 기록하려는 임덕용 주간과 주 기자의 주문, “이렇게요?” “아니 그건 성인영화 포스고, 도전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이렇게요?” “그렇지! 이제 표정 좀 되네.”
한쪽에서는 일단의 클라이머들이 낚싯대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준비됐나요?” 상의 탈의를 마친 임덕용 주간이 두 명의 여인들과 함께 ‘딥 워터 솔로’ 등반을 준비했다. “제법 높네요!” 일행들이 떨어질 거리를 가늠하는 사이 그는 이미 벽에 붙었다. 악착같이 오르려는 마음보다는 적당한 높이에서 시원한 다이빙을 원하는 것 같았다.
“자! 뜁니다. 하나, 둘, 셋….” “풍덩!” 소리를 기대했건만 그의 손은 여전히 바위를 붙들고 있었다. 부담이 됐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 DNA는 불가능에의 도전>의 저자가 아니던가!
다시 “하나, 둘, 셋!” 잠시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허공을 날았다. 이번에는 “풍덩!”소리가 났으니 말이다. 다음 차례는 오수미씨. 그녀 역시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어?”라는 배짱으로 포말을 일으켰다. 대미는 김유리씨가 장식했다. “뛸까요!” “네!” “허걱!”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다이빙 선수처럼 허공을 날았다. 대단한 배짱의 소유자, 주민욱 기자의 와이프였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한동안 물놀이에 정신을 뺏긴 일행들이 뭍으로 나왔다. 그리고 각자의 난도에 맞추어 다시 등반에 나섰다. 김철규씨도 ‘하롱베이(5.11d)’에 붙었다. 손가락 반 마디만 걸려도 여지없이 몸을 당기는 그, 어둠에 잠기는 바다를 뒤로하고 어느새 종료지점에 도착했다.
웃고 떠들며 오르는 사이 회색빛을 담아낸 바다에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을 두고 올라도 모자랄 아름다운 바다와 벽을 오늘은 뒤로한다. 하지만 올여름 일렁이는 파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 힘찬 오름짓을 꿈꾸는 클라이머라면 가덕도를 기억할 일이다. 그곳에선 높아진 만큼 바다가 넓어진다.
첫댓글 출처/사람과山.
우리도 다음에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