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 대청봉 ~ 오색 탐방코스지도
내가 살고있는 속초의 뒷동산..
과거에 산 좀 타고 다녔으나
오랜세월 술독에 빠져있던 관계로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해 산에 오르기로 한다.
한계령휴게소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저만치 옆에서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산에오를 준비하던 여성등반객에게
악산 별거 아니라며 자신만만한 미소도 던지고
콧노래 부르며 탐방소 계단을 오른다.
위성 지도를 보니 조금 긴장도 되지만
내가 누구인가 703특공대 출신 아니던가
비록 30년 전의 일이지만
가리산 700미터 고지를 축지법 써가며 옮겨다니던 전사에게
산행거리 10 Km, 소요시간 10시간 코스에 위축될 수 있나..
앞서 걷는 여성등반객에게
초반부터 무리하면 쉬이 지치니
페이스를 지켜야 한다고 조언도 해가며 걷는다.
10여분 지나 숨이차 오르지만
옛 특공병의 명성을 곧 되찾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사기충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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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 걸어 한계삼거리
나무그늘에 앉아 말뚝에 걸린 이정표를 보며
내 삶을 되돌아본다.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정상에 오르고
집도얻고 차도얻고 권위도얻고 성취감도 얻고
그러다 되돌아 가고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정상에 도달해야만
능사가 아님을 체험적으로 안다.
한계령휴게소에 뭔가 빠뜨리고 온거같기도 하고..
되돌아 간들 뭐~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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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등반객이 앞서 걷는다.
나도 배낭을 둘러메고 묵묵히 따른다.
여성등반객이 간간히 멈춰서서 경치를 둘러본다.
나는 물한모금 마시고 노오란 하늘을 본다.
여성등반객이 쉴때마다 냉차를 마시고
냉장 상태의 사과조각, 바나나를 먹는다.
나도 똑같은 양만큼 넙죽넙죽 받아 먹는다.
한번도 앞서 걷지 못해 거시기 했으나
힘쓰는 일에도 남녀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에
존심 상할 일이 무어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목숨을 함께 나누는 산악 동료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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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610m 끝청에 도달.. 아!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지도를 펼쳐보니 되돌아 갈수도 없는 위치다.
시간을 벌자. 밥을 먹기로 하고
조난을 당하면 추울까봐서 챙겨온 겨울잠바와
비를 만나면 뒤집어쓸 판쵸의와
시원한 계곡 나무그늘에 앉아 읽을거라고 챙겨온
무라카미의 소설책 아래 깔려있는 전투식량을 꺼낸다.
특공연대에서 특공병으로 복무하면서
특수한 임무를 띠고 훈련을 받을때 먹는 특별한 음식인 전투식량을
여성등반객에게도 권한다.
혹, 민방위출신 아니냐고 묻는 표정이지만
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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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더라도 근거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등반객이 전문가 수준의 카메라를 꺼내든다.
꽤나 무거울텐데..
배낭 뒤쪽이 대청봉 이라며 힘을 내라고 해서 한 컷 더..
어찌어찌하여 중청
천불동과 구름능선 넘어 태평양..
웃고 있지만..
한계령~소공원 코스를 선택한 여성등반객에게
전생에 만들어진 억겁의 인연을 들추며
하산 후 시원한 전복물회를 대접하기로 약속하여
오색탐방소로 하산하기로 한다.
유사시, 가이드 및 조난구조대원으로
활용할 생각 할 정도로 나는 몰염치하지 않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특수부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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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0미터 간격으로 조성된 쉼터마다 빠짐없이 들러 쉰다.
화재보험 들기를 잘했다. 부러지면 좋겠다.
구조대원하는 지인 얼굴도 떠오르고
어느정도 망가지면 구조헬기가 뜨는가
잔머리를 굴리면서
오색탐방소에 도달하니 1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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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문을 박차고 들어가 청량한 피로회복제를 달라하니
여성 약사님이 응급실 가라고 한다.
내꼴이 어디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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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산에 왜 오르느냐 물으면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라고..
히말라야 등정했던 사람이 한 말 멋스러워 도용하곤 했는데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아! 설악영산
또다시 볼 수 있을까
특수부대 병사의 자존심을 뭉개버린 대청봉이여 안녕히..
추신 : 한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꼿꼿히 걷던 여성등반객이 잠시 얄밉기도 했으나
나는 알고 있다. 끝까지 나의 보폭에 맞춰 산행한 것을 .. 그날 결국 물회를 대접하지 못하고 실신했으나 훗날 반드시 약속 지킬것이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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