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1) 상해임시정부최초청사를 찾아야 한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은 유치원 수준이면 다 알고 있다.
이런 내용에 걸맞은 국가보훈처를 소개하고자 한다.
속담의 뜻에는 무지한 사람을 일컬어 사용하는 말이지만 제3자를 기망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다시한번 생각 해 보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보낸 민원이 국가보훈처에 이첩 되어 보훈처의 답변에서 속담에 걸맞은 회신을 보고 정말로 한심하기
앞서 令(영) 이 서지 않은 정부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보훈처장의 직인은 보훈처를 대표하는 기관의 도장이
무책임하고, 고의성과 의도성을 가지고 허위내용에 사용하고 있다면, 감찰
대상이거나 최소한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대신하여 민원인의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이라 허위 내용이라 생각하기 대문이다
2019년 신년 초하루부터 상해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필자는 임시정부수립을 선포한 장소가 어디인지 모른다는 어느 학자의 기고문을 보고,
오래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졸업논문으로 상해임시정부최초청사 고증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작성한 논문이 우수논문으로 학회지에 등록된 바
있어, 중국 상해 ‘보창로 329호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였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보훈처의 답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편)과 현순자사, 독립기념관(2004년)의 학술용역보고서(일부
생략)등 현재까지 알려진 다수의 1차 자료를 통해
볼 때 보창로 329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2019년 1월16일자.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의 답변 내용 동일하며, 답변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고의성을 가진 허위 문건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오래전부터 임시정부를 연구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질의 답변으로 2회에 걸쳐
요청하여 받은 회신내용이다.
1) 1994년, 상해 불조계 보창로
329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사무소등으로 사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1998년, 상해 법계 보창로
329호는 상해임시정부최초청사로 이용되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 같이 답변이 을 가지고 있다.
보훈처가 근거로 제시하는 독립기념관의 학술용역보고서(2004년) 38쪽 상단에는 보창로 모처가 보창로 329호를 말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는 설명이 있다.
현순목사의 자사를 보면 은 “4월
초순경 (생략), 두번째,
보창로 모처에서 이상 인사외 다수의 청년들과 협동하여 우선
임시의정원을 조직하고 원장으로 이동녕이 당선되었으며, 임시정부는 통령 제를 피하고 총리제를 채용하기로
했다.” 와 같이 현순목사가 일기체의 연보에도
임시정부최초청사가 보창로 청사임에 확인할 수 있다.
다시 표현하면 보창로 모처는 보창로 329호청사라 쓰고, 읽을
때는 청사가 아니다 라 고 읽고 있는 보훈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연구소)의 공무원과 연구원이다.
앞의 내용처럼 국사편찬위원회와 독립기념관, 현순자사의 내용를 조합해 보아도
보창로 329호가 임시정부청사가 아니다는 내용은 없다.
보훈처가 제시한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내용을 보더라도
임시정부최초청사임이 분명한데 왜 이러한 억지를 써가며 임정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인천세관에 보관된 보창로 329호 청사가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서이다.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이 자신들의 특권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허위 맹랑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죽기 살기로
반복된 거짓이 감추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싶어 쓴 웃음이 저절로 나오지만 정부의 공직자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반복된 거짓을 연재할까 한다.
가끔 대형서점을 찾아 김철, 도산 안창호, 조소항, 여운형, 조동호, 현순 등 임정요인으로 참여한 분들의 연구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그러나 공 통적으로 지번은 보창로 329호를 표현하고
있다. 즉, 김신부로는 보창로 329호를 표현하고 있다.
상해임시정부의정원 제1회
회의록의 장소는 상해 조계 김신부로 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현희 성심여대 교수는 현순목사의 숙소가 김신부로22호라는 상해경찰문건을 인용하며 김신부로 22호가 임시정부최초청사라는
연구논문으로 발표했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학계에도 인용하여 왔다, 이후 김신부로22호가 지번 변천으로 서금2로22호등으로 학계의 전공서적과 학자들의 참고 문헌의 자료에 인용하여
다수가 기록하고 있다.
일부학자의 연구서를 인용하고 있다 보니 일부전문서적의
내용이 잘못 전달되고 있다
필자의 연구는 제1회
의정원 회의록의 장소인 김신부로는 도로명(지명)이다. 김신부로 22호, 이후
지명 변천에 따른 서금22호, 서금2로22호등의 표현은 이현희 교수의 잘못된 연구이다.
독립운동가 이강훈 선생님의 표현처럼 “적의 경계를 피하기 위하여 선택한 그와 같은 시간과 장소는 당연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강훈 선생님 글 “밤10시가 조금 지나서 상해 프랑스 조계내의 보창로 329호에 자리 잡은
한 허술한 셋집에 때아닌 방문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생략), 예정대로
회의는 진행되었으나 두 갈래의 의견이 대립되어 난산에 부딪쳤다. 하나는 33인을 중심으로 임시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수반과 관련해서 통치문제로 격론을 벌이도 하였다.”
“마침내 1919년 4월 10일 과
11일 양일에 걸쳐 상해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에서 열렸는데 의원명단은 다음과 같다(생략), 개회벽두 본회의 명칭을 임시의정원으로 하자는 조소앙의 동의와
신석우의 재청으로 가결되었다.” 등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한 사실을 일기체 형태로 기록하고 있다.
한일관계사료집(4권), 이광수, 현순자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이강훈등의 기록은 일기체를
뛴 글표현이 다수를 이루다 보니 날짜 기록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임시정부를 선포 한 장소가 보창로 329호임을
알 수 있다.
정부와 유관단체는 상해임시정부수립100주년 행사를
하기 위한 기초사업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한 장소를 찾아 기념하여야 한다. 최소한의 순국선열에
대한 예의이다. 한국사의 숙제라는 학자의 넉두리는 잘못된 연구와 독립기념관(보훈처)와 관련된 연구자가 동조한 결과이다.
그 이유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독립기념관(2004년) 학술용역보고서에 보창로329호는
임정청사가 아니다 라는 보고서가 문제이다. 내용을 보면 참고문헌이 제한적으로 일부분 참고하는 등 학문적
연구가 부족하였거나, 아니면 조사보조원이 대필하였다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학계는 동료학자의 권위에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상해임시정부최초청사를 주장 못하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
맞이한 보훈처는 일부학자의 명예와 학자의 고명함을 믿고 있으며,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엎질러진 물처럼 바라보고 있듯 하다.
그들의 행태는 최종적으로 문재가 되면 모든 책임을 학자에게
전가시킬 것이 뻔한 사실이다.
동료학자, 제자
등 다양한 인과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현실속에 학자들은 함구하고 있으며, 필자의 주장은 인의 장벽과
보훈처의 허위 공문서에 가려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언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최근 학계와 보훈처(독립기념과)의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국민청원(상해임시정부 최초청사를
찾아주세요)을 올렸지만 빙상연맹의 사건에 가려 지금은 자신도 어느 구석에 있는지 찾기 어렵게 뒤로 밀려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상해임시정부수립100주년의 정당성과 법통성을 주장하려면, 기본이 바로선 국가, 국민의 눈 높이에 걸맞게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4월 11일이 오기전에 용감한 공직자와 언론의 역할이 커 보인다.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공정하고, 편견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그런 사람과 정부를 지지한다.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 있게 주장한다.
상해임시정부최초청사는 보창로 329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