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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엔간히라도 내용을 이해했다면 스스로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438페이지나 되는 책 분량도 분량이지만, ‘장하석’교수라는 저자에 대해 알았다는 것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겠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 ‘마운트 허만’고등학교로 전학해 수석으로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이공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스텐포드 대학원에서 ‘측정과 양자물리학의 비통일성’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postdoc)과정을 밟은 뒤에는 1995년 28세 나이로 런던대학교(UCL)교수로 임용되고, 2010년부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과학사-과학철학사를 가르치는 석좌교수로 재직 중으로, 런던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내용을 이 책으로 집필했다고 하므로,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를 자찬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첨단 현대과학은 문외한이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란 내용 자체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과학의 본질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했던 과학은 일반 사람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주제들은 일상생활과도 잘 연결됩니다. 자연은 변화무상하면서도 미묘한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옛날 과학에 나온 과학이 이제 다 쓸모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을 인류의 위대한 문화적 업적으로 여겨 아끼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개론서가 아닙니다. 과학철학자들이 흔히 하는 논의를 재해석하고 종합한 결과물입니다. 학술적인 이야기를 대중화한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나 정당이 아무리 훌륭해도 견제 없이 하나만 남으면 한계성이 드러나고 결국은 부패와 독재로 빠집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믿음과 생활방식을 가진 집단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에게 배우면서 잘살아갑니다. 과학도 인간을 초월하는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적으로 자연을 깨쳐나가는 문화적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루어내는 과학적 성공담은 놀라운 것으로 여겨 아끼게 되고, 우리가 조금만 더 있으면 자연의 가장 깊은 신비를 간단하게 해명하리라는 식의 오만은 삼가게 됩니다.”책 머리말에서 저자가 한 말이다.
【1장】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자는 권위를 누리거나 존경을 받는다. 과학적이라면 신뢰를 받고, 비과학적이라면 비난한다. 과학이 대체 뭐기에 그렇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와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평가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 것이 아니고 또 우리나라에 들어 온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과학이란 학문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싫든 좋든 배워야 한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과학이란 말도 몰랐다.
과학을 늦게 배워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느냐? 늦게라도 과학을 배웠기 때문에 경제발전도 하고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선 것이 아니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고, 외국에서도 과학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논쟁에서 항상 경제발전을 이야기한다. 원자폭탄, 인터넷, 유전공학, 우주탐험 등 과학이 없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경이로운 혜택을 누리고 또 잘살고있지 않느냐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더구나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기술이다. 물론 기술은 과학을 응용한 것이지만, 과학 자체와는 다르다. 기술을 위해 과학을 해야 한다면 과학의 문화적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적 응용을 위한 과학이라면 운동선수 양성하듯 선발해서 하면 되지 초등학교 때부터 고문스런 공부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과학 공부가 꼭 필요하고 아무리 훌륭한 학문이라 해도 재미가 없거나 흥미가 없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해도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산소의 발견, 물의 끓는 점, 전자의 발명’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과학의 결과물들을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면 과학에 흥미가 생길 것이다. 과학 공부라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주기율표를 지겹도록 외우고,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며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웠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공식을 외우는 것은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그런 지식은 전문분야로 굳어지지 않는 한,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고 만다.
과학과 종교는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세계관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며 그곳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떤지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런 심오한 진리를 다루는 종교와 과학은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종교끼리 싸우기도, 죽이기도 한다. 갈릴레오 이전에 ‘브르노’는 지동설을 포기하지 않아 결국 1600년 화형당했다. 로마에는 그가 화형당한 자리에 그의 동상이 있다. 과학은 비판하고 시험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결과를 비교해서 이론이 사실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이론이라도 버리는 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종교는 다르다. 신이 정말로 있는지 시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리에 의해 세상의 모든 일을 설명하고, 간절히 기도드린 일이 이루어지면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하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이고 내 믿음이 부족해서라거나 하느님이 시험하기 위해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느님은 존재하고 자애로운 분이라는 믿음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과학자들도 남은 잘 비판하지만, 자기비판은 그렇게 잘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질책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다윈의 ‘자연선택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 생물학뿐 아니라 물리학에서도 이런 현상은 있다.‘상대성이론’을 의심한다면 물리학계에서는 거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근대 이탈리아 물리학자들이 빛의 속도보다도 빨리 움직이는 ‘중성미자’를 검출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상대성이론은 ‘어떤 물체도 광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운동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그 실험은 뭔가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아울러 이끌면서 훌륭한 과학 전통을 수립한 인물이 ‘뉴튼’이다. 뉴튼 이후 ‘뉴튼스타일’로 과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패러다임(규범이 되는 본보기, 그것을 따라가는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뉴튼 당시에 설립된 영국의 ‘왕립학회’도 이에 한몫했다. 뉴튼 역학의 페러다임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뉴튼식 물리학 방식은 ‘모든 물체가 질량만 있고 부피는 없는 점과 같은 입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가정하에서 시작되었다.’이 뉴튼의 중력 법칙과 운동법칙을 적용해 입자들이 운동하는 궤도를 계산한 것이다. 이때 뉴튼이 계산할 목적으로 발명한 수학 체계가 ‘미적분’이다. 계산은 정밀하게 하되, 깊은 원인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남스타일?’과 다른 ‘뉴튼스타일’인 것이다.
뉴튼은 운동의 법칙에서 얼마만큼의 힘을 받았을 때 물체의 움직임이 얼마나 가속되는지를 말하였고, 또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도 일컫는 중력 법칙으로 두 개의 물체 간에는 얼마나 큰 중력이 작용하는지를 알려준다. 이 두 법칙을 결합하면 여러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며 운동하는지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어느 한순간에 빅벵으로 생겨났다면 그 바로 전에는 어떤 상태였을까?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고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데, 정말 어떤 의미인가?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데, 그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캘리포니아 이공대학*에서 이런 질문을 하였을 때 참을성 있게 질문을 들어준 교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학부생 주제에 철학적인 소리는 지껄이지 말고 숙제나 하라는 반응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수금지화목토까지 밖에 몰랐다. 1780년 영국의 허셀이 망원경으로 천왕성을 발견하였고, 그 후에 오랫동안 천왕성은 뉴튼의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천왕성이 어떤 혜성과 충돌해 궤도를 이탈한 것인가? 천왕성 주변에 어떤 기체가 행성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가설을 과학자들이 내놓던 중에 천왕성 너머에 어떤 행성이 있어서 천왕성의 궤도가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1846년 독일의 ‘칼레’가 천왕성 밖에 해왕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뉴튼 역학은 실패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러나 뉴튼학파 과학자들은 끈질기게 이 문제를 연구하여 뉴튼 역학 페러다임의 화려한 승리로 돌려놓았다.
*캘리포니아 이공대학 : 빅벵이론의 무대로 1년에 학부생 200명만 받는 작은 과학·공학 학교지만, 역대 졸업생 중 31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2장】지식의 한계
1장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과학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또 과학적이란 것은 무엇이 그리 훌륭한가 등 질문에 답하고, 훌륭한 과학철학자 ‘포피’와‘쿤’의 견해도 들어보았지만, 의문만 더하고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가 말한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참을성’이라고 했는데, 책을 요약해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는 『제1철학에 대한 명상』(우리나라에서는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에서, 성경에 대한 권위, 성직자에 대한 권위, 고전의 권위, 전통적 관념에 대한 권위 등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데카르트 명상은 “적어도 내 자신이 직접, 뚜렷이 경험한 것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지 않을까에서 출발했다”그러나 곧바로 반론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잘못 보는 경우도 많고, 환각이나 환상도 겪는다. 또 확실하게 느끼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꿈일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의심에 의심을 더한 다음에 나온 말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였다. 이것은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인식론적 절망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모든 일에 다 속더라도 속아서 틀린 생각을 하는 그 주체인 나는 존재한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은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신은 자애롭고 선하기 때문에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이러한 인식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던 데카르트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신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 그런데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완벽하다. 고로 신은 존재한다. 그러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시시한 것은 신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데카르트’는 이름도 예쁘고 이름 외우기도 쉽지만 그의 말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주 경험하는 일에 버릇이 들어 방심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귀납적 추론의 근본이 된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도 경험하게 되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어느 날 한강을 잘 건너가고 있는데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그런 위험을 다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다. 아무 일 없던 동네에서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 귀납적 추론*에 의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귀납적 추론(歸納的 推論) : ‘전제가 결론을 개연적으로 뒷받침한다’ 라는 뜻으로, 반대인 연역적 논증(演繹的 論證)은 ‘만약 전제가 모두 참이라면, 결론도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그 결론이 거짓인 경우는 불가능하다)’다.
바닷물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밀물과 썰물이라고 하고 그것은 유명한 천문학자 채플러가 1609년에 그 원인이 달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게 사실일까? 달이 조수의 원인이라는 것은 뉴튼 이후의 현대과학에서 하는 이야기다. 뉴튼 이전에는 ‘정확한 이론은 대지 못했지만 채플러 역시 훌륭한 천문학자고 남다른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생각 된다. 동시대 천문학자로 거장 갈릴레오는 채플러의 조수 이론에 반대했다. 그는 달의 영향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달의 위치와 조수 사이에 규칙성이 있다해도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했다. 지동설을 믿은 동지로서 갈릴레오가 볼 때는 채플러는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구가 돌면서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것’이라고 했다. 자전과 공전이 복합되면서 물이 이리저리 쏠려다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론대로는 하루에 밀물, 썰물이 한 번밖에 안 나오는 모순이 있다. 결국 채플러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인데, 과학이란 이런 것인지 모른다.
【3장】자연의 수량화
‘과학은 측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물리학자 중에 스코틀랜드의 캘빈 경*이 있다. 그는 “내가 늘 말하지만, 우리가 논의하는 내용을 측정해서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면 뭔가를 아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지식은 변변치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떤 주재이건 간에 측정하지 못하고 논하는 것은 지식의 시작은 될지 몰라도, 과학적이 되려면 한참 먼 것이다”측정이 받쳐주지 않는 수학적 이론은 그저 수학일 뿐, 실증적 과학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수학과는 관계없는 자연사를 연구하더라도 그렇다. 화석으로 연대를 측정하는 것, 사학이나 정치학에서 통계자료를 모아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 것 등.
*켈빈 경 : 귀족 출신이 아님에도 작위를 받았다. 10세에 글라스고우 대학에 진학해 22세에 그 대학 석좌교수가 되어 53년간 재임했다.
흔히 아는 광속(30만㎞/초)은 초속 2억 9,979만 2,458미터의 속도로 전파된다고 한다. 측정가가 항상 똑같다는 데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이렇게 숫자로 정의했을까 싶지만, 이보다 더 정밀한 측정량도 있다. ‘미세구조상수’는 전자가 지닌 전하의 양과 플랑크 상수와 빛의 속도, 세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 값이 137,035999074분의 1이다. 그걸 대강 137,0356 정도로 정하면 안 될까 싶기도 하지만 절대 안 된다고 한다. 현대과학에서는 이렇듯 정밀한 측정을 중요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같다.
현대는 수치의 시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간·길이·무게·온도는 말할 것도 없고, 주가지수, 인플레지수, 평균수명, 출산율, 이혼율 나아가 야구선수의 타율까지 온통 수치로 말한다. 우리가 사는데 1초, 1㎝, 1㎏가 왜 필요한가? 왜 점잖을 사람을 해괴망측하게 뛰게 하고, 학교에서는 100m를 얼마에 넌 몇 초에 들어왔다고 명단을 만들까? 외계인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이상한 종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영국도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가면 1부터 10까지 척도로 아픈 강도를 표시한다. 하다못해 행복까지 수량화한다. 부탄이 행복지수 1위라고 한다. 좋건 싫건 수량화는 과학이 여러 세기 동안 힘겹게 이루어 놓은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현대인들은 역사도 모르고 당연히 여기고 있는데, 그것이 대단한 과학적 업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길이·질량도 그렇지만, 시간을 측정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고대부터 해시계, 물시계를 사용해 왔으나 현대적 기준으로 볼 때 제대로 된 시계가 나온 것은 300년 남짓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도 시간을 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함으로 매일 매일 그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어느 바람 부는 날 교회에 들어갔는데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정기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데, 손목시계도 없던 그가 무엇으로 정기적으로 흔들린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맥막을 기준으로 했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은 후대에 발달 되어 추시계가 만들어지고 추시계는 해시계와 대립하였고, 결국 과학자들은 추시계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과학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정은 측정을 통해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측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인데, 측정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을 확립하기란 쉽지 않다. 자식은 부모보다 잘나고 싶어하고, 부모도 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식은 자신의 시작점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물려받은 것을 존중하면서 시작하고 더 잘해서 훌륭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과학발전에도 통한다는 말이다. 과학의 발전과정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융합인 것이다.
【4장】과학혁명
지식의 진보적 형태는 축적이나 점진적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을 코페니쿠스가 ‘모든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한 〈천동설〉을 뒤엎고,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로 바꾼 것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농업에도, 산업에도 혁명이 일어났듯이 과학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이 과학혁명을 ‘토마스 쿤’*은 「페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는데, 혁명은 헌법이나 왕정을 뒤엎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과학에서 ‘혁명’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토마스 쿤(1922∼1996) : 미국의 과학사학자, 철학자. 쿤 자신은 "철학을 위해 역사를 연구한 물리학자"라고 했다. 서양에서 학생들을 괴롭혀 온 ‘외국어 문법 암기 사항을 가리킬 때 쓰이던 단어’인 “패러다임(Paradigm)”에 새로운 뜻을 부여함으로써,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뀔 때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다. 반증주의를 내세운 ‘칼 포퍼’와 대립되는 입장이었고,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적 연구를 중요시했다.
쿤은 과학혁명을 정치혁명에다 비유했는데, 신·구 패러다임의 경쟁과 투쟁 관계로 표현한 뒤에 그 싸움은 중립적 입장에서 조절해 주거나 평가해 주는 심판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싸움은 논증이나 검증을 통해 결판날 수도 없다고 했으며, 그것은 설득의 문제라고 했다. 과학이 증명이 아니라 설득으로 논쟁이 결판난다니 조금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과학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패러다임을 갈아치우겠다는 과학자의 결심은 어떤 종교를 믿던 사람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종교를 바꾸듯이 ‘전향’하는 사람이 많으면 혁명이 이루어지는데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가 그 해답을 말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의 승리는 반대파를 설득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파가 다 죽고 나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진 새 세대가 자라나면서 이루어진다”라고.
한국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뭐가 이리 빨리 안 되나”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로 영국에서 외식을 하면 비싼 식당일수록 음식은 더 늦게 나온다. 비싼 돈 주고 기분 내며 외식을 즐기고 있는데, 빨리 갖다주면 빨리 먹고 나가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준이 다른 이런 현상으로 흔히 “우리나라가 제일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각자 자기 기준에 맞춰 사는데 서로를 보고 불쌍하게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사람은 영국의 음식이 맛없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 사람은 맛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것처럼, 누가 더 우월한지 판단이 잘 안 되는 일상생활과 달리 과학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금술(鍊金術)이란 게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행했고 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도 건재했다.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실험과 이론을 결합해 연구한 학문이 되었는데, 보통 바보나 사기꾼들이나 했던 것이 아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뉴튼이 죽은 후에 보니 연금술을 실험하고 공부해 써 놓은 엄청난 양의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연금술에 대한 자료 전부가 보존되어 있지는 못했다. 연금술이란 페러다임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 놓은 실험 결과, 이론적 논의는 폐기되어 버렸다. 물론 연구에서 발견된 화학물질, 실험기구와 기술은 보존된 것도 꽤 있지만,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는 확실히 그전 페러다임에서 이룬 업적이 유실된다. 이런 지식의 유실을 ‘쿤 로스’라고 부른다.
혁명이 진보의 형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그전 체제에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은 어느 정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다음 혁명이 일어나면 어느 부분이 허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혁명은 단 한 번만 하면 된다. 김일성도, 데카르트도 다시는 고칠 필요가 없는 혁명을 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에서 영원한 토대를 만들어 놓은 혁명은 없었다.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동설을 확립했을 때 갈릴레오와 뉴튼은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나와 ‘절대적으로 무엇이 정해져 있고, 무엇이 움직인다는 기준은 없으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상대성이론(운동학적으로 절대적 개념이 될 수 없는) 이후에 또 어떤 이론이 나와서 상황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을지는 모른다. 쿤은 과학혁명은 끝없이 계속 일어난다고 했다. 페러다임을 바꿔가면서 전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잘 몰라서 허튼 것을 믿다가 뒤집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쿤도 혁명이 무한정 일어날 것이라고 증명한 것은 아니니까 과학은 또 진리와 싸우게 될 것이다.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이 제시되면 그 방향으로 새로운 페러다임이 형성되어 기존 페러다임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과학은 혁명을 통해서 전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늘려가며 진보한다’고 한 쿤의 결론이 무서운 것 같다. 하지만 과학의 다원주의가 그 무서움을 없애 줄 것이다.
【5장】과학적 진리
과학의 목표는 무엇인가? 실재론적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진리의 발견이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서는 진리는 얻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 타령하지 말고 그저 유용한 지식을 얻으면 된다고 한다. 진리를 얻으면 좋겠지만 관측이 안 되는 내용이라면 과학이 거기에 접근할 수 없다. 이것은 회의주의가 아니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추구해야지, 되지도 않을 허망한 꿈을 좇으며 사는 것은 비이성적이라는 말이다. 추상적으로 들리는 이 논쟁은 과연 탁상공론에 불과할까?
과학지식 중에는 많은 내용이 관측 불가능한 것을 다루고 있다. 과학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관측이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경험한다는 말인가? 너무나 작아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나 세포 등도 있고, 너무 큰 은하계는 그것을 볼 수 있는 천체 밖으로 벗어날 수 없어서 그것을 볼 수 없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말하지 않고, 감각기관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도 포함된다. 너무 차갑거나 너무 뜨거운 상황에서는 우리 몸이 그것을 지각하지 못한다. 또 빛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기 중의 먼지와 만나 빛이 산란 되는 모양을 보고 빛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이 진공이었다면 빛은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지구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이렇겠구나’하고 판단할 뿐이지 관측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 가득 차 있는 석조 건물인 ‘대성당’은 트럭도 크레인도 없는 당시에 어떻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씩 걸린 그것은 엄청난 신앙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국가 권력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성전을 한답시고 중동과 인도까지 쳐들어가고, 이단자를 고문하고 처형하는 등 악랄하기도 했지만 유럽의 과학적 문명은 그 역사에서 보면 경건하기도, 광신적이기도 했다. 유럽의 과학자들도 그런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뉴튼은 궁극적으로 우주를 창조한 신의 섭리를 알아내고자 했고, 데카르트·라이프니츠의 주장 역시 ‘운동보존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신이 창조한 것이니, 더 이상 늘지도 파괴될 수도 없다고 했다. 또 신을 그렇게 믿지는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신이 정해준 것이므로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과학에서는 이러한 진리 추구는 많이 사라졌다. 몇몇 학자들을 빼고는 그들은 ‘진리’같은 것에 걱정하지 않고 ‘모델링’을 하고 있다. 과학자는 사실을 배우고 밝혀낸 사실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을 넘는 진리를 꿈꾸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고 진리가 궁극적인 것이라면 ‘과학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겨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진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면 석연찮고 불안해 한다. 그것은 종교적 이유기도 하나 거짓과 오류를 무슨 수로 막느냐는 이유기도 하다. 어떤 일이 생기면 ‘진상규명’하고 싶어 하고 과학에게 그 역할을 바라는 이유기도 하다.
과학의 목표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실재론자에 따르면, 현대과학이 어느 정도 목표를 성취했고, 그것의 증거는 지금까지의 과학이론이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반실재론자에 따르면 과학의 임무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만 추구하는 것이고, 관측이 불가능한 것에 관한 것은 영원히 가설이거나, 편리한 사고의 도구일 뿐이라는 견해다. 그러나 과학의 성공은 과장되어 있으며 성공적인 이론도 나중에 폐기되는 역사를 보면 성공과 진리 간에는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6장】과학의 진보
과학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튼(1884∼1956)은 1927년에 출간된 저서 『과학사 입문』에서 “인간이 하는 활동 중 정말로 축적되고 진보하는 것은 과학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역사·사상사를 연구하던 학자들도 과학사에 대한 내용은 빼놓고 다루지 않았는데, 사튼의 주장은 우리 사회가 과학의 영향으로 진보해왔다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는 1757년 프랑스에서 처형당한 ‘다미앵’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했으므로 당연히 사형당했다. 그런데 처형방식이 좀 특이했다. 고문해 손을 뜨거운 유황으로 지지고 다음에는 상처에 납을 녹여 부었다. 정신을 잃으면 기다렸다가 다시 깨워서 고문한 뒤에는 네 마리의 말에 몸을 묶어 끌게 한 ‘능지처참’을 하고도 남은 몸통은 화형에 처했다. 대신들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은 계몽주의 사상이 퍼지기 시작한 프랑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튼은 그런 처참한 이야기를 하바드 학생들에게 들려준 뒤에“여러분, 우리는 진보했습니다!”하고 낙관적 선언을 했다. 그의 진보는 어떤 의미인가? 과학은 확실히 진보해온 것인가? 과학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과학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어떤 토대 위에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토대는 단단해 어떤 충격을 주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위에 집을 지을 수가 있다. 그런데 과학은 그런 토대가 없다. 과학지식은 근거가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포퍼*’는 “지식의 정당화도 완전히 확실한 명제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건물의 경우 아래층은 기초 노릇을 하지만,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 아래층은 제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에펠탑도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포퍼(1902∼1994) : 독일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차세계대전은 당연히 자기들이 이겨야 했는데, 패배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혼란기 사회를 이해하고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반증주의, 귀납주의, 실증주의를 주장했다.
둥근 지구에 집을 짓는 비유적 이미지는 토대주의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인식론적 입장을 제시한다. 구형(球形)으로 된 지구가 어떻게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지구는 어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공간에 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중요한 건 중력인데 지구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인간과 돌과 콘크리트 등 모든 것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구 표면에 붙어서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지구는 딱딱하고 중력으로 인해 토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데카르트가 찾으려 했던 절대적 기초는 아니다. 하지만 절대적 기초가 없기 때문에 지식을, 과학을 올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양철학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것만 지식이라는 관념이 깊숙이 박혀 있다. 과학의 역사와 과학의 실체는 확실한 것만이 과학은 아니다. 확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면 어떻게 지식을 쌓고 좀 더 개량할 수 있는지 하는 유연성이 생긴다. 확실한 것만 찾다 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기가 의문을 가지고 말을 배우지 않고, 나는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가 말해주는 날을 생일로 기억하는 것처럼 확실성을 포기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지식으로도 미래의 지식을 쌓아 올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과학의 진보를 이야기할 때 흔히 굳건한 토대 위에 지식을 쌓아간다는‘토대주의’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런 토대 노릇을 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기본지식이란 과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식은 물이 약간 새지만 떠다니는 배와 같다. 과학자들은 그 배를 타고 가면서 조금씩 고쳐서 더 짜임새 있고 물이 새지 않게 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확실하지 않은 토대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지식의 체계를 더 크게 늘려가고 정합성 있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7장】산소와 플로지스톤
이번 장부터 10장까지는 과학사의 일화를 소개한다고 하는데,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사건을 주로 다룬다고 한다. 첫 번째가 산소의 발견인데, 18세기 말 프랑스 화학자 ‘라봐지에’(1743∼1794)에 의한 ‘화학혁명’에서 시작된다. 라봐지에는 물질이 타는 것은 그것이 산소와 결합하는 것, 즉 산화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아가 모든 생물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리작용이 화학적인 것이고, 거기에 산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밝혔다. 우리는 섭취한 음식을 산화시켜서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 음식에 포함된 탄소가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로 변한다는 것과 동물이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것까지 안다. 연소, 녹슬음, 호흡 등이 모두 통일된 한 가지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라봐지에의 이런 업적을 왜 ‘화학 혁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혁명은 무엇을 발전시켰거나 기존의 체계를 뒤집어엎었다는 것을 말한다. 아무것도 없을 때 나와서 훌륭한 일을 했다면 창시나 창작이라고 해야지 혁명은 아니다. 라봐지에는 무엇을 뒤엎었다는 것인가? 라봐지에는 현대화학의 아버지로 간주 되는데, 그는 정량적인 분석을 통해서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을 화학 세계에서 박멸시켰다. 라봐지에 이전의 페러다임은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의 화학이었다. 플로지스톤은 그리스어 ‘태운다’는 말을 어원으로 하는데, 우리말로 ‘타는 기운’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종이와 나무 등 가연성 물질에는 가연을 일으키는 어떤 물질이 잠복 되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플로지스톤 이론의 핵심이다.
에너지 개념이 전혀 없었던 18세기 화학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은 설득력을 가진 최고의 이론이었다. 그런데 라봐지에가 보기에 이 이론은 문제가 있었다. 금속이 녹 쓰는 것도 연소와 같은 작용이고,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과정인데, 금속은 녹이 슬면 왜 더 무거워지냐는 것이었다. 또한 인과 유황도 태우면 질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소할 때 무언가 빠지는 것이라면, 후에 질량이 줄어야지 늘어난다는 것에서 라봐지에는 기발한 창의성을 발휘한다. “물질이 탈 때 질량이 늘어난다면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처음에는 공기가 더해지는 것이라고 하다가 산소가 발견된 후에는 더 정확하게, 연소란 플로지스톤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산소를 얻는 것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라봐지에는 고대 철학에서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원소로 간주되었던 물이 원소가 아니라 산소와 가연성 공기가 합쳐서 생기는 화합물이라는 아주 대담한 주장을 했다. 그리고 가연성 공기를 수소라고 명명했다. 수소의 수는 물, 소는 그냥 원소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영어로는 무엇을 낳거나 만든다는 뜻으로 ‘무엇을 낳는 자’를 말한다. 어쨌든 라봐지에는 물을 산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라는 것을 관중들을 모아놓고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 영국의 ‘프리스틀리’와 프랑스의 ‘캐븐다쉬’등과 경쟁하기도 협력하기도 했는데, 그들 이야기는 여기서는 생략한다.
사랑만큼 흔한 산소는 라봐지에가 지은 이름인데, 산(酸)이 산소와 무슨 상관일까? 산소는 수소와 비슷한 식으로 지은 신조어였다. 수소가 물을 낳은 자를 뜻하듯이 산소는 ‘산을 낳은 자’를 뜻한다. 프랑스어 옥시는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으로 ‘날카롭다. 시다’또는 산성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황을 태우면 황산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플로지스톤을 태워면 산성이 된다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는 염산을 산화시켜서 뭔가를 만들 수도 없고, 거기서 산소를 추출해 낼 수도 없었지만, 아직 기술을 터득하지 못해서 그렇지 염산에 산소가 절대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우겼으며, 그것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것을 모르는 우리는 라봐지에를 산소 발견자로 칭송하고 있다. 산소에는 라봐지에의 약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쓰고 좋아하는 산소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었던 라봐지에는 1794년 프랑스 혁명 와중에 장인과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세금징수를 사영 업체에 맡겼는데, 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라봐지에를 민중의 적으로 규정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다면 국가를 위해 유익한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가 집요하게 자신의 이론을 내세우면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박멸한 것에 비추어보면 똑같은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역사에도 그렇듯, 승자의 관점에서만 쓰는 과학사는 진실성도 재미도 별로 없고 그리 유익하지도 않다”는 것이 저자가 보는 시각이다.
【8장】H2O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많은 과학지식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유전은 DNA 분자를 통해 이루어지고, 공룡은 오래전에 살다가 멸종하였고…, 이런 상식에 가까운 것을 모르면 웃음거리가 되거나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인류가 다른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려 52%가 모른다고 한다. 제법 유식하다는 사람들도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도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반 사람들이 그렇듯 과학자들도 과학상식 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 물은 H2O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냥 주입된 상식이지 삼척동자가 원리를 알아낸 것은 아니다. 종교도 아닌데 무조건 믿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물은 정말로 H2O인가? 물이 H2O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과정과 많은 과학자들을 거쳐 1860년대 원자의 개념이 정립되면서 물분자는 H2O라는 ‘원자가’로 설명되었다. 산소의 원자가가 2, 수소의 원자가가 1이라고 하면 물의 분자구조는 H2O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소는 막대기가 두 개, 수소는 하나밖에 없다면 이 둘이 결합하는 구조는 H2O이지 HO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돌튼’이라는 잉글랜드 학자가 1808년 원자이론을 발표한 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 물의 원자구조가 정립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주입식 교육은 누구나 아는 과학적 상식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 대신 진정한 탐구를 통해 과학적 상각을 깨치도록 하면 아마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승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위험한 과학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교육에서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승자의 관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 아닐 수 없다. 창조교육, 탐구교육을 하더라도 학생들은 그 뒤에 정답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다 안다. 결국 물이 H2O라는 등의 정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학생들이 정말로 독립적으로 뭔가를 생각해 볼 동기를 갖기란 힘들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9장】물은 항상 100도에서 끓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의 원자가 H2O라는 것을 알아낸다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간단하다고 생각되는 자연현상까지도 그렇다. 우리가 물은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는다고 알고 있으나, 이것이 사실일까?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던 1776년 그해 영국 왕립학회는 온도계의 고정점을 확실히 정하는 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물이 끓는 온도는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에 고정점을 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온도계를 만든 사람은 조지 3세가 황태자 시절에 임명한 ‘아담스’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황실의 과학기기 제조자였다.
아담스가 만든 온도계에는 ‘물이 끓기 시작하는 점’과 ‘팔팔 끓는 점’두 개의 표시가 있었다. 그가 무식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착각한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실험으로도 알 수가 있다. 물을 끓일 때는 보통 유리그릇은 깨지기 때문에 비커나 요리지구인 파이렉스로 물을 끓이는데, 온도계도 100도 이상 표시된 것이어야 한다. 물은 끓으면 처음에 작은 거품이 생긴다. 이때가 90도 정도이고, 작은 거품이 일다가 큰 거품이 일면서 뚜껑을 밀어낸다. 거품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온도가 95도 정도가 된다. 그리고 맹렬하게 끓다가 100가 되고 계속 끓이면 101까지 올라간다. 19세기 프랑스 대표 물리학자 ‘게이 뤄삭’의 실험에 따르면 흔한 금속으로 만든 그릇에서는 100도에서 끓고, 유리그릇에 담긴 물은 101.2도까지 올라간다고 하였다. 그리니 그릇에 따라 비등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은 물을 넣고 끓이는 그릇의 재질, 열 공급원 온도, 물에 녹아 있는 기체의 양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끓는 형태와 온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고 정답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슬픈 일이고, 알면서도 진실하지 않게 가르친다면 분개할 일이다. 앵무새처럼 ‘1기압 하에서 물은 항상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고 하고, 특히 전문가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신봉하는 일은 극복되어야 한다. 과학의 전부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최소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현상은 전문가에게 넘겨야 할 필요도 없고, 진짜 전문가도 아니면서 권위만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맡겨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10장】전기화학
물이 끓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물이 끓는 상태의 변화는 중요한 과학의 주재인 것은 분명하다. 전기화학은 어떨까? 이는 더욱 넓은 주재다. 전지(電池)는 이탈리아의 파비아 대학 실험물리학 교수였던 ‘볼타(1745∼1827)가 ‘전지(밧테리)’로 기술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 유럽 과학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데, 그전까지는 전기라면 번개와 정전기뿐이었다. 전지를 모아 전선에 흘리면 전류가 자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볼타가 전지를 발명한 지 20년 후에 발견한 것이다. 전지가 없어도 자석으로 전류를 만들게 되었는데, 흔히 말하는 발전이 그것이다. 지금은 전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시계·컴퓨터·휴대전화·냉난방 조절기·TV리모콘…, 안 들어가는 데가 없을 정도다.
볼타가 만든 전지는 집에서도 실험 삼아 만들 수 있는데, 구리판 위에 아연판을 놓는 식으로 ‘금속1+금속2+전해질’순으로 모아놓으면 볼타식 전지가 만들어진다. 전해질은 산이나 묽은 염산으로, 그렇게 탑처럼 쌓아 올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볼타 전지를 영어로 ‘볼타 파일’이라고 했다. 지금도 불어로 Pile은 건전지를 말한다. 구리와 아연 한 쌍에서 0.75볼트 전압이 나오는데, 이렇게 5겹 정도 쌓으면 3볼트 이상이 나온다. 볼타가 살던 시대부터 더 센 전지를 만드는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당시는 전압과 전류를 확인할 수 있는 ‘전기미터’가 없었다. 어떻게 전지에서 전류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정전기를 아는 방식대로 자기 몸에 충격을 주는 것이 가장 명백한 방법이었다. 어린이 과학 교실에서 하는 방식대로 감자에 구멍 2개를 내고 한곳에 구리 철사를 다른 쪽에 아연 철사를 꽂으면 전지가 나오는데, 거기서 0.75볼트 가량의 전압이 나와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감자 대신에 레몬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구리와 아연판을 엄지손가락에 끼우면 0.44볼트의 전압이 나온다. 이것을 두고 현대에는 아연과 손가락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전지를 발명할 당시는 손가락이 전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전기가 무엇인지 개념이 확실치 않았고 전기를 어떤 미지의 유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볼타는 전해질로 소금물을 썼는데 어떻게 소금물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소금물은 원칙적으로 전자를 받을 수 있는 양이온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나트륨이온으로 나트륨이온은 전자를 받으면, 나트륨 금속이 되고 그러면 폭발적으로 불이 일어난다.
이런 수많은 실험과 과학사 이야기가 이 장에는 아주 많지만, 제대로 요약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든다. 과학이 그렇게 어렵게 진행되어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철학자가 뭐라고 하건 말건 자기 생각대로 과학지식을 추구해 왔다. 과학자는 ‘지식이란 무엇인가?’하는 기본적 입장을 기반으로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정책과 과학교육’이라는 두 가지 제도가 사회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결합하면 어떤 생각들이 나올까?
【11장】창조와 탐구
창의성은 동물을 사육하듯이 ‘기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생님이 마련해 준 문제를 아무리 잘 풀어도 예측불허 미래에 대비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다. 남다르고 색다른 생각을 하려면 색다르게 살아야 한다. 괴짜를 아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생각이란 궁극적으로 자기가 살아가는 생활과 경험 속에서 나 올 수밖에 없는데, 자전거를 배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지도해 줘도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조금씩 실력이 늘고 지도가 필요 없이 된다. 이론적으론 넘어지려 할 때 핸들을 그쪽으로 틀면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원심력을 발동시킬 수 있고 그래서 넘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힘이 어느 정도쯤이 되는지 계산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계산하려 들면 오히려 더 넘어질 것이다.
과학에도 솜씨가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에게 지팡이는 솜씨로 사용하는 관측기구와 같다. 과학기구의 사용은 더 고도의 솜씨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관측에 필요한 솜씨는 기구 사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르치기 어려운 솜씨는 우리가 사는데도 과학에도 필요하다. 과학의 연구는 일상생활에서 하는 여러 가지 실행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에 우선 일상생활에 필요한 솜씨가 들어가고, 거기 추가해 과학에만 필요한 특별한 솜씨인 실험 솜씨로부터 공식을 푸는 솜씨까지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지식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배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과학에도 은유 기법이 쓰인다. 문학에서 은유법은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일, 대상을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에, 상대에게 대상을 낯설게 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했듯이 흔히 쓰는 ‘귀가 어둡다’거나 ‘알아들었냐?’는 말에서 영어에는 귀가 어둡다는 표현은 없고, 알아들었냐는 ‘보이냐?’로 묻는다. 미래를 ‘앞으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팽배한 은유다. 신제품이 출시되었을 때는 ‘나왔다’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왔다는 것일까? 과학에서 더없이 중요한 수량화도 은유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태풍과 지진, 기온까지 수량화하고 은유로 하는 것인데, 은유가 필수적이냐 아니냐는 쉽게 결판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과학의 역사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개념들이 생겨났다. 본성이 지식을 늘려가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풀어보면 1). 이미 성취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려는 진취적 충동이다. 뉴튼은 태양계의 움직임을 훌륭히 설명하고도 자신이 밝힌 법칙을 ‘만유인력’이라면서 전 우주에 적용하겠다고 포부를 펼쳤고, 2). 이론의 발달 없이도 마구 튀어나오는 현상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고, 퀴리 부부와 베르켈이 방사능을 발견할 때도, 이론으로 예측한 것도 아니고, 막말로 원하지 않던 현상이었다. 3). 과학자는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상상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내가 빛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면 그 빛이 어떻게 보일까?’하고 상상했다. 경험과 상관없는 이론이 발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가 생겼을 때 발휘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일하면서,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해결하고자 할 때 진정한 창의력을 발휘하고 배울 수 있다. ‘다 돌봐주고 뒷받침해 줄 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은 창의성을 죽이는 것이다. 언젠가 빨리 창의력 학원에나 열심히 다니라고 하는 말이 나올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이제 1980년대 사회와는 달라졌다. 학생운동을 할 만큼 사회가 불안하지 않다. 아마도 극적인 위험은 막아 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인생의 진짜 문제들과 부딪히게 해 주고, 자생적으로 솟아나는 창의력을 찍어 누르지 않는다면 과학적 창의력도 확장되고 진보할 것이 분명하다.
【12장】다원주의적 과학
다원주의적 과학이라는 주제는 저자의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주장이다. 다원주의는 일원주의나 환원주의 반대개념으로 저자는 이런 예를 들었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 대회를 했다. 주제인 〈우리 집 강아지〉로 학생이 써낸 글을 보고 선생이 말했다. “이거 너희 누나가 낸 글과 한 자도 안 틀리고 똑같아, 그대로 베꼈지?”그러자 학생이 말했다. “아뇨, 같은 개거든요”우리가 과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결국은 하나뿐인 우주니까 옳은 이론은 단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 대개 고개를 끄덕끄덕이겠지만, 이제는 “역시, 똑똑한 분들이라 농담도 잘하십니다”하고 웃어줄 문화적 역량이 생겼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사에서도, 과학사에서도 처음에는 말이 안 되게 들렸던 이론들이 나중에는 정설이 되곤 한다. 지동설, 원자론, 대륙이동설, 진화론이 그랬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빅벵이론, 초끈이론…, 전부 기묘한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 정설이 되고 있다. 지금 현재 판단할 때 가장 훌륭해 보이는 이론이 유일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하고 미숙한 생각으로 경직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경직성을 막기 위해서는 다원주의가 꼭 필요하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워 우주의 작동원리를 정립하고자 했던 뉴튼의 꿈은 20세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깨졌다. 그러나 그의 역학이론은 팽개쳐진 것이 아니다. 스캐일이 작아지면 양자역학을 쓰고, 커지면 일반상대론을 쓰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상대론적 양자역학 이론을 잘 세우면 필요한 모든 내용을 표현할 수가 있다.
일원주의가 꼭 독단적으로 흐른다는 법은 없지만, 그런 위험은 충분하다. 진리가 하나라고 가정하면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집단이 있을 때, 그 집단이 이것이 진리라고 외히면 그 진리를 수용하지 않을 대안은 잘 나오지 않는다. 과학이 경직되고 오만하게 되면 과학이 갖는 정치적·문화적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자신만의 특유한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다원주의다. 각자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신이 나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철학은 깊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대신하는 철학자, 과학자가 많아야 하는 이유다.
자연은 무궁무진한 듯하고 인간은 분명히 한정된 존재이다. 인도에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설화가 전한다. 장님은 우리 인간을 말하는 것일 테고, 인간은 장님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도 관측 불가능으로 남을 전 우주를 그대로 보고 알고,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과학이다. 상황을 그렇게 보면 자연 앞에 더욱 겸허해진다. 이에 대해 우리가 배울 교훈은 가장 쉬운 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회의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모두가 장님이라면 장님이라도 여러 명을 동원해서 협력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3차원적 물건을 2차원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특정한 각도에서 그릴 수밖에 없고, 단면만을 보는 X레이 사진 대신에 CT촬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