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생소하지만 경량 로드스터 카테고리는 언제나 재미있는 차들로 가득하다. 마쓰다 MX-5(미아타)의 형제차인 피아트 124 스파이더 역시 작고 재미있고 멋스러운 차다. 이번에 만난 124는 경량 로드스터 카테고리의 고질적 단점인 낮은 출력을 보완하기 위해 스마트 튜닝을 선택했다.
124 스파이더는 여전히 인기가 많은 차종이다. 고성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운전 재미가 쏠쏠한 차로 유명하다. 피아트는 다양한 버전의 124를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생산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모델이 124 스포츠 쿠페와 124 스포츠 스파이더다. 124 스포츠 스파이더는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다. 피아트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하다가 81년부터 85년까지는 피닌파리나에서 위탁했다. 피아트는 2016년 124 스파이더의 부활을 알렸다. 피닌파리나가 디자인을 담당한 124 스포츠 스파이더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몇 군데만 21세기에 맞게 손본 이 차는 마쓰다 MX-5와 섀시를 공유한다. 생산도 마쓰다 히로시마 공장에서 담당한다.
세미버킷 시트와 스트로크가 짧아 손맛이 좋은 시프트 노브는 이 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배기와 스마트 칩 튜닝으로 출력 보강
124 스파이더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운 차체와 반응이 빠른 엔진, 검증된 변속기를 꼽을 수 있다. 굴곡이 많이 들어간 디자인도 멋지지만 이 차의 속내는 운전하는 즐거움에 초점이 가득하다. 엔진은 피아트 멀티에어 1.4L 터보로 최고출력 140마력을 낸다. 특이한 점은 유럽 사양보다 북미 사양의 출력이 더 높다는 점인데, 그동안 유럽 메이커들의 행보와는 정반대이다. 아무래도 일본 생산에 주력 시장인 미국을 신경 쓴 요인이 작용한 듯하다.
섀시와 변속기를 공유한다고 하지만 124 스파이더는 MX-5와 성격이 약간 다르다. 스카이액티브 기반의 MX-5가 더 작은 차체에 무게가 더 가볍고 자연흡기 엔진만 제공되는 데 반해, 124 스파이더는 터보 엔진을 얹은 투어링 느낌이 강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124 스파이더는 아바르트를 제외하고 최고 사양인 루쏘 모델로 윈드 스크린 프레임의 색상과 몇몇 옵션이 다르다.
피아트 멀티에어 엔진은 최대한 보닛 뒤쪽으로 위치를 잡았다. 여기에 겐튜닝이 더해져 보다 민첩해지고 출력도 넉넉해 졌다
1.4L 터보 엔진은 생각보다 내구성에 중점을 둔 세팅이다. 가변 밸브 타이밍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으며 엔진의 크기가 작아 전체적인 무게 중심이 차체 중앙으로 향한다. 공차 중량도 1t 언저리라 기본 상태로도 충분히 민첩하고 날렵한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과 운전자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세미 버킷 시트, 스트로크가 짧은 기어까지 124 스파이더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로 가득하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딱 필요한 것들만 갖췄고, 속도계보다 타코미터를 키워 스포츠 감성을 강조했다
접이식 소프트톱은 요즘같이 화창한 날에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적합하다. 편의 장비가 넘쳐나는 시대에 124 스파이더는 모든 면에서 군더더기가 없다. 전통을 계승한 디자인, 심플한 실내 구성까지 운전에 딱 필요한 것들만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요즘 차들에 비해 시트 포지션이 현저히 낮아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버튼도 구성이 단순하고 직관성이 뛰어나다. 많은 차가 버튼을 터치패널로 대신하는 요즘, 오랜만에 만나는 물리 버튼에서 순수한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진다.
MGP에서 세팅한 가변배기 시스템은 정갈하고 예쁜 소리를 낸다
앱으로 조정 가능한 칩 튜닝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스마트 튜닝이다. 늘 300마력 이상 고출력 차를 타다 140마력짜리 차를 타려니 답답함이 밀려왔다는 이 차의 오너는 배기 튜닝과 칩 튜닝을 선택했다. 배기는 MGP에서 다듬은 가변 배기로 배기량에 비해 묵직하고 정갈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토크 밴드를 고려해 고출력에서 보다 원활한 배기로 세팅했다. 배기 밸브는 리모컨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밸브가 열렸을 때와 닫혔을 때의 사운드 차이는 큰 편이다.
운전이 즐겁긴 하지만 고출력에 익숙한 사람에게 140마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해외 포럼에서도 오너들의 출력에 대한 불만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튜닝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선택한 튜닝은 칩을 이용한 튜닝이다. 여기저기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찾은 회사가 독일의 겐 튜닝(GÄN Tuning). 한때 일반도로에서 가장 빠른 비결이 ‘간 튜닝’(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겁 없이 운전한다는 뜻)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물론 언어권이 달라 발음은 약간 다르지만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간’은 기계적인 특성보다 위에 있는 것 같다.
겐 튜닝의 구성은 간단하다.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센서, 센서를 제어하는 모듈 박스뿐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칩 튜닝과 비슷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운전자가 실시간으로 세팅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물론 내구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세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제한적이긴 해도 스포츠와 다이내믹, 에코 등 3가지 모드가 있으며 최대 40마력을 올려준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겐 튜닝 커스텀 모드와 운전자 커스텀 모드를 사용해 엔진 출력과 연비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
고속주행에서의 스트레스 줄여줘
최대 140마력 내에서 운전자가 원하는 세팅을 선택할 수 있는데, 고회전 영역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터보 엔진 특성상 최대 부스트를 사용하면 어느 시점 이후로 부스트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겐 튜닝 세팅은 이런 문제점을 최대한 방지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최대 1.2바까지 부스트압을 설정할 수 있어 고속주행에서 운전자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실제로 달리면서 비교해 보면 사용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 rpm에 따라 부스트 게이지 움직임에 큰 변화가 있다. 보다 낮은 rpm부터 부스트가 활성화되고, 고속영역에서도 최대 부스트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 출력 저하를 막아준다.
과거 124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뒷 모습은 암팡진 느낌이 가득하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튜닝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스마트 튜닝은 매우 생소하다. 예전에는 출력을 올리거나 성능을 향상 시키려면 하드웨어 튜닝이 당연했지만 자동차의 성능이 상향평준화되고 소재가 좋아짐에 따라 전자적인 튜닝이 한결 쉬워졌다. ECU 프로그램을 수정하려면 전문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고, 칩 튜닝이 인기를 끌면서 등장한 보조 ECU는 설정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스마트 튜닝은 사용자가 언제든 자신에게 맞는 세팅을 설정할 수 있으며 방법 또한 간단하다.
개인적으로도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래도 자동차 튜닝이 편해지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