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 간쯔현 '난즈루' -민족의 긴밀한 통합을 반영한 한자 표기판 발견
川:甘孜州“南丝路”科考——新发现汉字题记木板反映民族紧密融合
출처: 화하경위망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관제묘 유적지의 잔벽 기자는 9월 2일 쓰촨성 간쯔현 '난즈루' 과학고사단에서 다오푸현 허더향에서 '만가생복(萬家生福)'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잔목 여러 개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실물의 발견은 '남실로' 한-티베트 민족의 융합 요소를 풍부하게 했습니다.
▲ 훼손된 만가생복(萬家生福) 한자 목판. 과학 시험단은 쓰촨성 사회과학원, 베이징사범대학, 쓰촨대학 및 다양한 학문과 분야의 전문가, 학자, 교수로 구성된 '난실로' 과학 시험단을 제공하고 다오푸현 허더향 타이닝 고성에 진입했습니다.
고요한 고성의 거리마을에 새겨진 '관제묘(關帝廟)'라는 팻말은 일반 흙담처럼 보이는 곳에 청나라 초에 이곳에 와서 장사를 하던 산시(山陕) 출신 상인들이 지은 중국식 건물인 관제묘(關帝廟)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목판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의사, 사신, 회식 등의 행사를 치르고, 관제묘 안의 무대에서는 천희장희(川戏藏劇) 등의 공연이 펼쳐졌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무너진 토담 두 개가 남아 있는 관제묘 유적과 고목은 과학고단 전문가들을 오랫동안 머물게 했습니다.
▲ 관제묘 나무기둥에 새겨진 어룡무늬. 전문가들이 관제묘에 더 이상의 유적이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워하자, 관제묘 옆에 살던 티베트 여성이 급히 집으로 달려가 썩은 장목 여섯 조각과 짧은 나무 기둥을 끌어안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긴 널빤지로 '만가생복(萬家生福)'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판 왼쪽에는 '은헌서옹공조대인무덕군문노대인진(恩憲西翁公祖大人武德軍門老大人陳)'이라는 몇 줄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는 '13년 4월 초파일(四月初八日)'이라는 글씨가 모자라 '중거리민등고건(衆街民等叩建)'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글씨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글씨와 짧은 나무기둥에 새겨진 물고기, 용 등의 문신은 관제묘의 역사와 당시 고진가촌에서 일어난 '은헌(恩憲)'의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혜원사에 보존되어 있는 비석. 과학 연구단은 지역 인문 및 역사, 지리 및 무형 유산 프로젝트의 발굴 및 보호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말을 제공했으며, 타이닝 댐은 상품 흐름과 주둔군이 국경을 지키는 민족 이동으로 인한 민족 통합의 축소판입니다.
관제묘 유적은 한지의 규정에 따라 건설되었음을 보여주지만, 게살 왕의 전설과 이미지를 차용하여 관공과 게살과 융합하여 민간 무역 교류와 민족 이동 흐름의 현지 적응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한장 문화의 융합을 보여줍니다.
관제묘 벽체의 다져진 흙의 형태와 구성이 토지묘와 달라 건축연대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지묘는 관제묘보다 일찍 등장한 것으로 추측되며, 연대는 연나라와 요나라 군대가 성을 쌓은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제묘는 훨씬 늦었고, 상인들과 나중에 이곳에 정착한 한족들이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 과학고 전문가들은 관제사 터의 잔벽 고목 앞에서 토론을 벌였습니다. 과학 연구단은 과학 연구단의 지역 역사와 티베트 및 강이 회랑을 연구하는 전문가를 제공하여 타이닝이 캉딩 서래의 첫 번째 도시로서 원나라와 명나라 시대에 중요한 군사 및 경제적 요충지였다고 추측합니다.
산시 사람들은 원나라 때 쿠빌라이 군대를 따라 티베트에 들어가거나 매립하거나 사업을 하여 티베트 상도를 개척하는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타이닝에서 사업을 하고, 개간하고, 싱지에 시를 설립하고, 생산을 발전시켰고, 산시성 관제의 신앙, 음식 관습(화모모) 및 언어를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청옹정 원년(1723)에는 무당장 단진의 난으로 청나라 조정에 혜원사가 설치되었고, 7대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게 되었습니다. 연갱요(年羹尧)는 토성을 쌓고 군사 성이 되었습니다.
한·티베트 민족의 교류와 상황의 안정으로 그 군사기능이 점차 도시기능으로 대체되고, 대량의 개간병들이 민가로 전환되고, 민족교류가 밀접하여 현의 규모가 되었으므로 현의 관아, 토지사당, 성황당 등의 공공공간을 설치하였습니다.
분류:고고학 프론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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