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에베소서 2:8-10) 2008, 6.25
1996년 7월, 당시 6살이던 ‘김연아’가 어머니 ‘박미희’씨의 손에 이끌려 언니(애라)와 함께 집 근처에 새로 개관한 과천 시민회관 실내 빙상장을 찾을 때만 해도 김연아는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였습니다. 스케이팅에 흥미를 느끼는 딸들을 엄마가 단체 피겨스케이팅 강습을 받게 합니다. 7개월의 과정이 끝나고 다시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강습지도자였던 유종현 코치가 엄마를 붙들어 세웁니다. “연아가 피겨에 재능이 있으니 한번 키워봅시다.” 이래서 한 아이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이른바 8과 1/2 지능이라는 다중지능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인간의 뇌에는 공부나 똑똑함에 관련된 지능 말고도 신체운동이나 인간친화, 자기성찰, 자연친화 등과 같은 지능이 있고 종교적 능력과 관련된 실존지능도 1/2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영선수인 박태환 군이나, 바둑의 천재 이창호 선수나 수학영재이자 신춘문예 당선자인 홍지현 씨 같은 경우가 모두 IQ 보다는 각자 영역에 해당되는 지능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중지능 이론에 입각한 적성 검사에서 김연아 선수의 신체운동 적성점수는 62.76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톱클래스 선수의 수준치고는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의 수준과 비슷한 점수라는 것입니다. 결국, 김연아를 세계적인 선수로 이끈 것은 그녀의 재능이나 지능보다는 코치인 유종현 씨의 김연아 어린이에 대한 믿음이 김연아 선수와 그의 부모에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결과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입니다. 요즘에는 지능지수인 IQ보다는 감성지수인 EQ가 높거나, 사회지수인 SQ(Social Quotient)가 높아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기독교계에서는 소위 영성지수라고 하는 SQ(Spiritual Quotient)의 개념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습니다. 종교성, 종교적인 삶에 있어서 그 적응도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뛰어난 영성지수를 갖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IQ든, EQ든, SQ든 간에 그 재능이 진정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쓰여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을 위해 세상에 내보내셨고 어떻게 사용 하시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지 인간의 계산적이며 산술적인 평가는 사실 그리 큰 기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누구나 다 똑같지 아니하고 각자 모두 하나님을 위해 특별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단 하나의 유일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것입니다.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오직 하나이고, 베토벤이 작곡한 ‘5번 교향곡’도 단 하나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기 다른 단 하나의 디자인으로 설계하셔서 제 각기 다른 독특함을 갖고 특별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의 치유’의 저자인 맥스 루케이도는 인간이 자신감의 강점, 즉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능력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면서 그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엇 때문에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만드셨는가 하는 그 작품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작품이 되려하기 보다는 세상의 작품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또 자녀들을 세상에 좋은 작품으로 내보려고 무척 애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칫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에 내보낸 우리 자신의 인생, 또는 자녀들의 인생에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모습으로 간섭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하나님께서 두고 계시는 장기판에 훈수를 두고 싶어서, 각자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포석을 놓는 바둑판에 참견을 하고 싶어서 안달들을 합니다. 하나
님께서 특별하게 만드신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며 세상에서 특별해지려고 애쓰는 순간에 우리의 신앙적인, 영적인 인생의 목적을 놓치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독보적이고 유일한 작품으로 그 창작의 목적에 맞게 우리를 만들어 내셨는데 우리는 그 목적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보다는 세상의 작품이 되려고 전혀 엉뚱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우리를 내보내실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여러 특별하고 독특한 도구들로 무장을 시켜서 그것들을 각자의 인생이라고 하는 가방에 꾸려서 보내주셨는데, 우리는 가끔 내 가방보다는 남의 가방에 더 관심을 갖고 자꾸 남의 가방을 열고 싶고, 보고 싶어서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여행 가방이 바뀌면 기어코 자기 것을 찾아내려고 하면서도, 우리 인생을 남의 가방에서 나온 것들로 살아가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내보내실 때 나에게 주신 그 인생의 가방에 어떤 도구들을 넣어 주셨는지 알아차리게 되면, 우리는 그 도구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디자인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먼저 살피십시오. 그래서 나에게 주신 그 인생의 도구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살아가 것인지 자신만의 특별한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저, 세속의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가려고 하고 흉내 내려고 하는 모방인생, 복제인생이 아니라, 그리고 남들이 다하는 것 따라가는 기성품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한 작품으로 독보적인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판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유행과 세속적인 흐름에 빠지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내 자신의 얼굴과 역할을 제대로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유사 복제품 인생이 되거나 이것저것을 조립해놓은 조립품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문에 따라 특별히 생산된 주문 생산품으로서, 그래서 상품이 아니라 작품 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작가 최수철 씨는 그의 소설 ‘몽타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 자신의 삶이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삶, 다른 사물들의 모습으로 짜깁기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면서 그는 ‘TV와 영화, 인터넷에서 보여 지는 얼짱과 배우의 얼굴들, 화장으로 분장하고 성형수술로 짜깁기한 현대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보여 지고, 유행하는 말과 행동을 따라 가면서 삶을 기워가고 있는 몽타주 인간들에게 과연 당신의 모습, 당신의 인생은 어디에 있느냐고 엄정하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이렇듯 각자에게 모두 다른 계획과 설계로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 내셨을까요? 답은 에베소서 2:10 후반부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독보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 가능한 모든 곳에서 / 가능한 모든 순간을 놓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십시오.” 예술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은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라는 작품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스며들어있고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있어서 우리의 생활에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될 때에 우리의 인생은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던 그들의 인생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이야기를 하나님과 함께 써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God story 속에서 나의 인생의 역사인 My story를 같이 만들어가는, 하나님과 함께한 내 자신만의 신앙행전을, 작품으로 써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