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장통 by 전중환 (tistory.com)
특정한 입력 정보 하나와 짝지어질 수 있는 행동은 천문학적으로 많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여 그 종의 진화 역사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 적응적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의 심리 기제psychological mechanism가 하는 일. 인간의 마음은,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부딪혔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이 설계해 낸 수많은 다양한 심리적 기제들의 묶음. 진화된 심리 기제의 중요한 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
1) 각각의 구체적인 적응적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다양한 심리 기제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 인류의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 활동을 하면서 풀어야 했던 적응적 문제들은 수없이 많았다. 자연선택은 우리의 마음속에 대단히 많은 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심리적 적응들을 정착시켰다.
2) 우리의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 따라서 우리 마음이 농경 사회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반드시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님. 복잡한 심리적 적응이 출현하려면 그만큼 복잡한 신경 구조가 적어도 수천 세대에서 수만 세대에 걸쳐 진화해야 함. 그런데 인류의 조상은 침팬지 가계와 약 700만 년 전 갈라진 이후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보냈다. 약 1만 1000년 전 시작된 농경 사회나 200년도 채 안된 현대 산업 사회는 우리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키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 한마디로 우리의 현대적인 두개골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 마음이 설계된 목적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은 심리학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 틀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예측들을 풍부히 생산하여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 준다.
1989년 미국 심리학자 러셀 클라크와 일레인 하트필드는 처음 만난 이성이 건넨 여러 제안에 대해 남녀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 데이트에 동의한 사람은 남녀 모두 절반. 아파트에 따라가겠다고 답변한 여학생은 6%, 남학생은 69%. 성관계에 동의한 여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남학생은 75%. 동의하지 않은 25% 남학생들도 화를 내기는커녕 몹시 미안해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곡 연락하겠다고 답변.
1930년대 초, 심리학자 윈드롭 켈로그 부부는 기상천외한 실험을 감행. 태어난 지 열 달 된 아들을 그보다 두 달 반 어린 침팬지 암컷인 구아와 함께 기르기 시작. 켈로그는 가정에서 인간 아기와 똑같이 키우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터득하리라 기대. 결과는 뜻밖. 구아는 머리털을 빗는 등 몇몇 인간적 특성을 학습하기는 했지만 정작 상대방을 따라한 녀석은 아들 도널드. 도널드는 주먹을 땅에 댄 채로 걷고, 아버지 구두를 물어뜯고 벽에다 이를 문질러 댔다. 심지어 침팬지처럼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기까지 해서 실험은 아홉 달 만에 중단.
켈로그의 실험은 침팬지와 인간이 보이는 행동의 차이가 단순히 두 종이 서로 다른 환경의 세례를 받기 때문이 아님을 시사. 침팬지와 인간이 동일한 환경에서 자란다 한들 결코 침팬지는 인간처럼 말하고 사고할 수 없다.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텅 빈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만 년 전 수렵-채집 활동을 했던 우리 조상들이 무사히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해 주었던 행동 지침들로 빼곡히 채워진 두툼한 가이드북.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보다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 데 더 효과적. 진화생물학자 코리 핀처와 동료들은 말라리아, 주협흡충병, 사상충병, 뎅구, 나병, 발진티푸스, 결핵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대표적 병원균 9종이 전 세계 93국에 얼마나 분포하는지 조사. 예측대로, 과거 병원균이 득세했던 수준은 각국의 집단주의 지수와 정비례했고 개인주의 지수와 반비례. 덥고 습해서 병원균이 더 많았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나라들이 춥고 건조한 북유럽이나 극지방 나라들과 비교해서 집단을 우선시하는 경향.
유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진짜 웃음을 뒤센 웃음duchenne laughter이라 한다. 외부 자극에 의해 자연스러운 웃음은 입가 근육뿐만 아니라 눈 둘레 근육까지 수축시켜 눈가에 골을 패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19세기 신경생리학자 뒤센 드 블로뉴의 이름에서 따온 것.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녀 모두 자신의 애인이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지만, 여기서 뛰어난 유머 감각이 의미하는 바는 서로 정반대. 남성은 남을 잘 웃기는 여성보다 자신이 던지는 유머를 잘 이해하여 즉시즉시 큰 웃음을 터뜨려 주는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 반면 여성은 자신이 던지는 유머에 잘 반응해 주는 남성보다 무조건 자신을 잘 웃겨 주는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
향신료가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내는 까닭은 식물 종마다 조금씩 다른 2차 대사산물인 ‘피토케미컬’을 지니기 때문. 피토케미컬은 식물이 초식동물이나 초식 곤충, 곰팡이, 병원균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화학 무기로 수십 가지의 피토케미컬들을 어떻게 잘 배합하느냐에 따라 향신료 고유의 매운맛이 만들어짐.
피토케미컬이 만드는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 따라서 통증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자연 진통제인 베타-엔도르핀이 분비되므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기생충이 없는 건강한 개체임을 알려 주는 광고판이기 때문에 성선택. 마찬가지로, 기생충의 온상을 없애버리려는 자연선택이 인간의 털없음을 처음 가동시켰지만, 나중에는 건강한 배우자를 가려내려는 성선택이 바통을 물려받아 털없음을 오늘날의 상태로 완성.
숙련된 주방장이 감자나 당근을 리드미컬하게 잘게 썰어 내는 모습, 어린아이의 그네 줄을 어른이 뒤에서 밀고 당겨 주는 모습. 걷거나, 뛰거나, 썰거나, 파내는 것 같은 반복적인 행동에는 그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게끔 해 주는 최적의 리듬이 존재. 이러한 리듬을 제대로 탔을 때 우리는 쾌락을 느낌. 자연선택은 어떤 반복적인 행동을 최적의 리듬으로 수행할 때 쾌락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가 계속 그 행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한다.
인지심리학자 파스칼 보이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주 약간만 낯설고 이상한 것에 가장 관심이 가고 더 잘 기억. 반면에 시시하도록 정상적인 것이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억하거나 전파하지 못함. 단단한 벽돌은 따분하지만 수다 떠는 벽돌은 흥미롭다. 곁눈질하며 시들어가는 벽돌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최소한도로 반직관적인 항목들은 92% 기억하나, 직관적인 항목들은 71%만 기억.
벨기에 과학자인 안드레아스 드 블록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스포츠는 경기자의 지적, 신체적 능력을 이성에게 잘 광고하기 위한 필수 요건 세 가지를 갖춘 스포츠라고 지적
1) 진화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대중에게 사랑 받는 스포츠는 유연함, 참을성, 순발력, 민첩성처럼 진화적으로 중요했던 신체적 특질에 관한 정보를 제공
2) 스포츠는 경기자의 신체적 특질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운이나 요행처럼 우발적인 요인이 승패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는 경기자들 간의 미세한 운동 능력의 차이를 제대로 짚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기 어렵다.
3) 스포츠는 규칙이 투명해야. 승자의 지적, 신체적 능력이 패자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경기자들뿐만 아니라 관중들도 쉽게 알아차려야 한다.
아포크린샘이 갓 생산한 분비물은 원래 냄새가 없다. 이 분비물을 토대로 자라난 세균이 사향내를 풍기는 여러 가지 스테로이드를 만드는 것. 날씨가 더워 세균이 너무 활발하게 증식하면 겨드랑이 냄새가 악취로 돌변하는 것일 뿐, 적당한 수준의 체취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성을 유혹하는 속삭임.
테스토스테론은 위험. 면역계의 활동을 저해해서 인간을 포함한 많은 척추동물 수컷들이 시름시름 질병을 앓게 만들기 때문. 또한 테스토스테론은 이른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르티솔 호르몬의 분비를 높여 주는데, 이 코르티솔도 면역계를 망가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