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은 왜 뒤뚱거리는가
심상숙
아현역에서 추계예대까지 보도블록을 걷는다
삼십 리 흙길 어디 가고 팔백 미터 길 뒤뚱거린다
가령, 내 살아남을 그만큼 거리라면
발 아래 보도블록 몇 장이 남은 며칠 같고,
또 견뎌야 할 여러 날이다
갈아엎지 못해 세워둔 겨울배추 두둑처럼
누렇게 얼어붙은 숨 줄기도
하릴없이 얼음 반짝일 때가 있다
쇠심줄보다도 뚝심지고 쓸데없이 질긴 것,
도마 위로 칼을 휘둘러 내리쳐본 이는 안다
간혹
연탄구멍 속에서 소리 없이 흔들리는 제비꽃
어두운 잎새 뒤
지하도 화장실 쪽잠으로 언 겨울을 건너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
보잘것없는 인생, 꿈틀거리는 내 발가락이
잠시 따스했을 그 꿈결을 밟는다
낮은 바람에 흔들리는 제비꽃 몇 송이를 건너 뛴다
빗방울 질 저 구름덩이도
멀리 낮아 보이는 산봉우리도
열아홉 그대의 맑은 창호 밖에서
따스한 귀를 걸고
기다리고 있다
*심상숙 시집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예술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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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블록은 왜 뒤뚱거리는가/심상숙
박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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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
24.07.15 17:0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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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평범한 일상이 편안하게
다가오는글입니다 나즉한
목소리 같은글이 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