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입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하양 오일장까지 걸어가려면 몇분 걸립니까?" 하고 누가 물었습니다. 대답하기가 애매한 질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걸음걸이가 아주 빠른 사람과, 빨리 걷고 싶어도 다리나 허리가 아픈 사람과의 걸음 속도는 차이가 많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받으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다가오는 은혜가 다릅니다. 오늘은 시편 팔십 육편, 10절, 11절 말씀을 다급한 마음으로 받아보도록 합시다.
10절 :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절 :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아멘
'가르쳐 주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받겠습니다.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한 자율주행차는 없다 합니다. 그래서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할지라도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언제라도 돌발상황을 대비하여 운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몇일전,고속도로 1차선..., 즉 추월선에서 느리게 운행하는 승용차가 있었습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이상하여 차안을 들여다보니 운전자는 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율주행 모드를 해놓고는 그것을 믿고 자고 있는것이었습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자율주행모드를 해두고 아예 운전석을 비우고 뒷자리에서 주변을 사진촬영을 했노라면서, 운행중인 차의 모습과 빈운전석을 동영상으로 sns에 자랑삼아 올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율주행 모드를 해두고 뒷좌석에서 자고있다가 대형사고가 난적이 있습니다.
언제인가는 완벽한 자율주행 시대가 오기는 올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할에도 자율주행 모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해봅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가 예배하고 있고, 내가 기도하고 있고, 내가 봉사하고, 사랑하고, 전도하고, 구제를 하고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율주행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이되면 방부터 내 맘대로 골라서 들어갈수 없습니다. 식사도, 잠자리에 드는 것도, 교도소에서 정한 시간에 따라야합니다. 내가 불을 켜고 싶다고 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는 감방 창살을 통해서 밖에 있는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는 있지만 체널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세수하기 싫어도 세수 시간에는 세수를 해야합니다. 면도하기 싫어도, 이발하기 싫어도 하라면해야 합니다.
이처럼 죄짓게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게되면 자율은 아니지만 타율에 의하여 움직이게됩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경외라는 말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이라는 말입니다. 공경함도 두려워함도 기계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앙은 우리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야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려고하면 억압으로 되지 않습니다. 술취한 것처럼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행동이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알게되면 자신의 마음이 뜨겁게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마음이 움직여지게됩니다.
시편의 성도는 "주는 위대하시고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므로 주만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알게될때에, 그다음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내가 주의 진리인 말씀을 따라 걸어가겠습니다. 나에게 변함없는 한결같은 마음을 주소서. 내가 주의 이름을 높이고 존경하겠나이다" 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도록합시다. 그래서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놀라운 일을 나에게 행하여 주시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길을 걸어가는 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어 말씀이 명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복된 주의 백성 삼아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