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림사
오래전부터 성림사가 자리한 곳은 진천 제일의 명당으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1960년대 쯤 한 노인이 전국을 순회하는 어느 지관(地官)으로부터 고기록(古記錄)을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지관은 진천의 불처당(佛處堂)이라는 이곳을 다녀갔는데 바로 성림사 자리가 문무목상(文武牧相)이 날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적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1965년에 전해산(全海山) 스님이 고려시대 조성된 마애여래좌상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터에 새로 절을 창건하니 오늘날 성림사(成林寺)입니다. 해산스님께서는 지관의 계시(啓示) 때문에 누군가가 무덤을 쓰려는 것을 막고, 쓸쓸하게 폐허를 지키고 있는 부처님(마애여래좌상)을 공양하기 위해 창건이라는 원력(願力)을 세우신 것입니다.
해산 스님의 창건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 성림사는 혜묵(慧黙) 스님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중창 되었습니다. 퇴락했던 가람은 윤기가 흐르고, 부처님(마애여래좌상)을 위한 향화(香火)와 공양(供養)은 끊이지 않습니다.
성림사 입구
성림사 극락전
성림사 전경
성림사 수조
성림사 범종
성림사 극락전
성림사 산수리마애여래좌상
충북문화재자료 제20호
산수리마애여래좌상은 극락전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 한 면에 두껍게 부조(浮彫)한 것이다. 상호(相好)는 원만한 인상이며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넓은 어깨에는 통견의(通肩衣)가 걸쳐져 있는데, 법의(法衣)는 비교적 두껍게 표현되었다. 오른손과 왼손은 손가락을 접어 모두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이고, 광배는 배의 모양으로 되었으나 두광과 신광은 따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 위로 삼구(三軀)의 화불(化佛)을 연줄기 무늬위에 배치하였으며, 하반신은 조각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선이 매우 둥글고 원만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으나, 눈과 코의 일부가 마멸되어 있다. 제작년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220cm, 불상 높이는 188cm이다. 현재 충북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림사 대웅전
성림사 대웅전내 나한들
성림사 대웅전내
성림사 요사
성림사 산신각
산신각은 사찰에서 산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산령각(山靈閣), 산왕각(山王閣)이라고도 부른다. 성림사 산신각은 일반적인 전각의 모습이 아니라 바위에 선각(線刻)된 산신상을 보호하기 위해 비가림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산신각으로 부르고 있다. 이 곳에는 커다란 바위에 산신상이 선각(線刻)되어 있는데, 산신은 파초선(芭蕉扇)과 산삼을 들고 호랑이에 기대어 앉은 모습이다. 또한 앞으로 조금 튀어나온 바위에는 쌍상투를 튼 동자가 복숭아가 든 접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조각 솜씨로 보아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성림사 산신각
성림사 납골
성림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진천IC를 빠져 나오면 바로 안골3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 하여 21번 국도를 따라 금왕 쪽으로 가다보면 가산3거리와 인산3거리를 지나게 된다. 인산3거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덕산농협 미곡처리장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 200m 정도 가다보면 “진천산수리마애여래좌상”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이 푯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900m 가면 왼쪽에 성림사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