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절 바라문 소나단다의 귀의
1 부처님은 길을 동쪽으로 잡아 앙가국에 갔다. 앙가의 하류인 찬파 지방에 이르러 가카라 호숫가에 잠깐 머물러 계셨다. 그곳에는 소나단다라는 바라문이 있어서 빈바사라 왕의 봉작을 받아 매우 호화롭게 살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소나단다가 높은 누다락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가카라 호숫가 쪽으로 갔다. 그들의 소란한 소리에 잠을 깨어
"무슨 일로 사람들이 소란하냐?"
고 묻고는, 구담을 찾아뵈러 가는 사람의 소음이라는 소식을 듣고, 자기도 한번 찾아뵙고자 생각하고 가려 할 때에, 많은 바라문이 놀라서 그를 만류하였다.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쪽에서 찾아가면 당신의 명예는 떨어지고 구담의 명예는 높아질 것입니다. 당신은 칠대조 이래로 순결한 혈통을 받아 온 바라문의 깨끗한 분입니다. 게다가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한 계덕이 있는 학자로서, 삼백 명의 제자에게 성전을 가르치며, 바라문 가운데서도 노덕인 당신이, 그리고 마가다 왕 빈바사라와 붓가라바티 바라문 등의 존경을 받아 왕으로부터 이 땅에 봉작을 받은 분으로서, 사문 구담을 찾아간다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소나단다는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이쪽에서 찾아가는 것이 지당하다. 구담은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집과 재산을 다 버리고 집을 떠났으며, 용모가 빼어나고 위의를 갖춘 분이다. 그리고 계행을 지키고 서른두 가지 모양을 갖추고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인천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널리 사랑한다. 그가 머무는 곳엔 서로 다투는 일이 없으며, 집을 떠난 이와 집에 있는 이들을 통솔하여 큰 교단을 건설하였고, 빈바사라 왕과 붓가라바티 바라문은 각기 온 집안이 귀의하고 존경하는 터이다. 이제 그 구담이 우리 찬바우 가카라 호숫가에 머물러 있다 하니, 우리의 손님이다. 손님이란 잘 받아들여 존경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이쪽에서 가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구담의 덕을 이것만 들어 헤었지만 실은 그의 덕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를 믿는 이들은 먼 곳에서 양식을 지고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2 이와 같은 소나단다의 말에 많은 바라문들은 다 납득되어 같이 가카라 호수를 향해 나갔다. 그 도중에 어느 숲을 지나다가 소나단다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구담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바라문이여,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물어야 한다고 하면, 나는 여러 사람에게서 경멸을 받을 것은 물론, 나의 명예가 꺾이고, 따라서 그로 인한 수입도 줄어질 것이다. 또 구담이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이 제대로 맞지 않을 때엔, 그렇게 대답해선 안 된다고 하면, 그 결과도 앞서와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나왔다가 그를 만나지 않고 되돌아간대도 사람들은 내가 구담을 만나서 문답할 능력이 없어서 피함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정말 곤란한 일이다. 어쨌든 내가 잘 알고 있는 세 가지 베다의 학문에 대해서만 문답해서 그분한테 칭찬을 받았으면ㆍㆍㆍ.'
3 부처님은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소나단다의 얼굴을 보고 또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그를 기쁘게 하고 안심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물었다.
"바라문이여, 어떤 요건을 갖추면 참다운 바라문이라고 하는가?"
소나단다는 이 물음에 매우 기뻐하며 또한 안심하고 속으로, '구담은 참 잘 물어 주셨다. 나의 대답을 잘 받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바로 펴고 쭉 대중을 돌아본 다음에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다섯 가지 요건을 갖추면 참다운 바라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첫번째는 칠대 이래로 아버지 편이나 어머니 편이 다 깨끗한 혈통을 받아오는 것, 둘째는 성전을 읽어 외우고 주문을 가지며 세 가지 베다를 통하고 어원ㆍ문법ㆍ문의 및 순세파의 학문에도 밝고 대인상법을 알며, 셋째는 용모가 빼어나고 위의가 단정하며, 넷째는 계행이 바르고, 다섯째는 신에게 제사하는 공양물을 이바지하는데 제일인이나 제이인의 현명한 제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요건이 갖추어졌다면 참다운 바라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4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네가 말한 다섯 가지 요건 가운데 한 가지를 빼고도 바라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것인 용모가 빼어났다는 요건을 제해도 바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네 가지 가운데 다시 한 가지를 더 빼고도 바라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예, 될 수 있습니다. 주문을 비롯한 둘째의 요건을 빼고도 바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그 세 가지 가운데서 또 한 가지를 빼고도 바라문이라 할 수 있는가?"
"예, 될 수 있습니다. 가문의 전통인 첫째의 요건을 빼고도 바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다른 바라문들은 이 문답을 듣고 숙덕거리면서 소나단다에게
"존자여, 그처럼 말해서는 안 되오. 사문 구담의 말에 너무 지나치게 좇아가서는 안 되오."라고 했다.
그때 부처님은 모든 바라문에게 말했다.
"여러 바라문들이여, 너희들 가운데 만일 이 소나단다가 현명치 못하여 나와 언론하는 데 잘 감당치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거든, 스스로 나와서 나와 언론해도 좋으리라. 또한 만일 소나단다가 고명하여 나와 충분히 의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너희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이 좋으리라."
"존자시여, 두어 두십시오. 제가 직접 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하고 소나단다는 여러 바라문을 향하여 말했다.
"그대들은 내가 용모를 가벼이 여기고, 주문을 가벼이 여기고, 혈통을 가벼이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조카인 안다카카를 보라. 그가 용모가 잘나고 또 주술을 배우고, 세 가지 베다를 통달한 자로 내가 스스로 가르친 자이며, 또 그 혈통도 칠대 이래 부모 양쪽이 다 깨끗하다. 그러나 만일 이 안다카카가 남의 목숨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남의 아내를 침범하고, 거짓말을 하고, 술을 마신다면, 그의 용모와 학문과 혈통이 마침내 무슨 값이 있겠는가? 그 때문에 나는 계행을 소중히 여기고 제사 의식에 제일인자 또는 제이인자가 되는 데에 상당하다면, 참으로 바라문답다고 이르는 것이다."
부처님은 말씀했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그 둘 가운데 하나를 빼고 바라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담이시여, 그것은 될 수 없습니다. 지혜는 계행에 의하여 맑아지고, 계행은 지혜에 의하여 맑아집니다. 계행이 있는 곳에 지혜가 있고, 지혜가 있는 곳에 계가 있습니다. 학덕과 계행과 지혜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손으로 손을 씻고 발로 발을 씻듯이 계와 지혜는 서로 밝혀 주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실로 그러하다. 계와 지혜는 서로 밝혀주는 것이며, 세상에 가장 높은 것이로다. 그러면 계와 지혜란 어떤 것인가?"
"구담이시여, 저는 이것만 알 뿐입니다. 그 이상은 구담께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5 "바라문이여,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 법을 설하매, 집에 있는 이가 이것을 듣고 물음을 일으켜, 집을 떠나서 계율을 지키고 바른 행을 닦아 작은 죄에도 두려워하고, 감각기관을 잘 지키어 목숨 죽이는 일, 도둑질, 음란한 짓, 거짓말 등을 여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 포악한 말,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할 만한 말을 할만 한 때에 말하는 것, 이것을 계라고 한다. 또 다섯 가지 덮임을 여의고 초선ㆍ이선ㆍ삼선ㆍ사선에 들어 고요하고 정직하고 견고한 마음으로 모든 법이 덧없고 나라는 자체가 없는 줄을 알며, 번뇌의 없어짐을 알게 되니,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소나단다는 이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삼보에 귀의하여 집에 있는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부처님과 제자를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다. 공양이 끝난 뒤에 소나단다는 낮은 자리에 앉아 이렇게 청원했다.
"부처님, 제가 여러 회중에 있을 때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면, 여러 사람들이 저를 업신여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명예가 떨어지면 저의 수입도 줄 것이오니, 제가 손만 펴서 예배하더라도 서서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마차를 타고 가다가 부처님을 만났을 때에 수레 위에서 손을 머리에 올려 예경하거든 수레에 내려서 예배한 것으로 생각하시고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은 그 사정을 인정하시고 법을 말씀하신 뒤에 가카라 호숫가로 돌아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