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총리 내각이 총사퇴하기로 했다. 스비리덴코 내각이 출범한(2025년 7월 17일) 지 약 1년 만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스비리덴코 총리를 시작으로 후임 총리로 유력한 인사들을 잇달아 만난 뒤 12일 스비리덴코 총리의 퇴진을 공식 발표했다.
스비리덴코 총리 교체 발표후 올린 젤렌스키 대통령의 텔레그램. 그가 만난 인물은 차기 총리로 유력한 코레츠키 국영 나프타가스 CEO다/사진출처:텔레그램 @젤렌스키 오피셜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스비리덴코 총리의 경질을 발표했다. 스비리덴코 총리도 이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르면 총리의 사임은 그가 이끌어온 정부(내각)의 총사퇴로 이어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비리덴코 총리에게 주요 동맹 파트너와의 새롭고 중요한 관계 분야를 이끌도록 제안했다"며 "우크라이나 정치 전략의 변화에 정부 개편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물을을 주요 외교 정책 분야에 임명하고, 사법 기관의 주요 책임자도 교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비리덴코 총리는 주미 대사로 나갈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총리 교체 이유로 제시된 국정 핵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외교 정책 분야에서 △(나토 정상회의에서 확인된) 우크라이나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위탁 생산과 미국과의 안보 협정 협력 △유럽의 탄도미사일 방어 프로젝트(프레야 프로젝트)에의 합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이웃 국가인) 헝가리, 폴란드와의 관계 개선 △중국과 중동을 포함해 전쟁 종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요 국제기구들과의 협력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11일) 대국민 연설(영상)에서 "(서방과의) 무기 공급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정상들 간의 합의는 훨씬 더 신속하고 완전하게 이행되어야 한다"고 기존의 외교 부문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내적으로 그는 △최전선 방어 작전 수행을 위한 원활한 무기 공급 △동절기 대비 전략 △국영기업의 혁신 △전후 국가 재건 협력 파트너들과의 관계 구축 등을 새 정부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같은 모든 국정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할 총리감이 있을까?
아쉽지만 현지에서는 후임 총리 발탁 과정에서 '능력'보다 '충성심'을 더 중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한 세르게이 코레츠키 CEO/사진출처:포브스 우크라이나. 스트라나.ua
가장 유력한 후임자로 꼽히는 세르게이(세르히) 코레츠키 나프토가즈 이사회 의장(CEO)이 대표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비리텐코 총리 경질 발표후 코레츠키 CEO와 함께 찍은 사진을 텔레그램에 올리며, "우리는 오늘 우크라이나의 복원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 전략의 틀 안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논의했다"고 썼다. 또 "에너지 분야는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영역인데, 코레츠키 CEO가 에너지 기업들의 운영에서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지켜왔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치켜세웠다.
스트라나.ua는 "대통령이 코레츠키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고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코레츠키를 차기 총리로 지목했다는 분명한 암시"라고 해석했다.
코레츠키 CEO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친구인 티무르 민디치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대통령실이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만든) 올리가르히 콜로모이스키로부터 에너지 기업 '우크르나프타'(자회사는 우크르타트나프타)를 압류한 2022년 말, 우크르나프타를 관리할 인물로 발탁됐고, 이후 국영기업 나프토가스마저 맡았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권력형 부패 스캔들'(에너지 분야 부패 스캔들로 '민디치게이트'로 불린다/편집자)이 터지자, 코레츠키 CEO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극 옹호에 나서 '민디치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를 소위 젤렌스키 대통령의 '패밀리'로 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권력형 부패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젤렌스키 대통령의 친구 티무르 민디치/사진출처:SNS
코레츠키 CEO 외에도 미하일(미하일로) 페도로프(페도로우) 국방장관, 데니스 슈미갈 전 총리, 이고르(이호르) 데레호프 하르코프(하르키우) 시장 등이 차기 총리 하마평에 올라 있다.
스트라나.ua는 "지난해 11월 권력형 부패 스캔들에 따른 안드레이(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의 사임 이후, 예르마크 실장의 강력한 천거로 임명된 스비리덴코 총리를, 또 다른 대통령 '패밀리'의 핵심 인물(코레츠키)로 교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반부패국(NABU·나부)이 스비리덴코 총리를 예르마크 부패 스캔들의 한 축으로 수사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전면 개각의 또 다른 이유로 1년 전 개각 시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페도로프 부총리를 자연스럽게 내치기 위한 '모양 만들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권 후보로 부상한 그를 일찌감치 정리하려는 의도라는 것.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온갖 폐습이 쏟아지고 있는 길거리 강제 동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국방부(와 국방장관)를 질책한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라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올렉산드르 포클라드 최고라다(의회) 의원을 국가보안국(SBU) 국장으로 발탁할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이 터진 후 말류크 전 SBU 국장이 국가반부패국(NABU)과 특별반부패검찰청(SAPO) 인사들에 대한 형사 기소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는데, 포클라드는 그 과정에서 반부패기관에 대한 반격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비리덴코 총리가 지난해 7월 의회 동의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장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퇴진하는 스비리덴코 총리(40세) 내각은 지난해(2025년) 7월 17일 최고라다(의회)의 승인을 거쳐 공식 출범했다. 스비리덴코 총리는 키예프 국립 무역경제대학에서 반독점 경영학과를 나온 뒤 국가 경제및 경영 분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9년 경제부 차관으로 젤렌스키 대통령 정부에 합류해 2020~2021년 대통령실 부실장을 역임하며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분쟁 관련 협상에 참여했다. 이후 2021년 11월부터 거의 4년간 제1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을 맡아 2025년 봄 미국과의 희토류 협정을 마무리했으며, 그해 7월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우크라이나의 총리 임면권은 의회가 갖고 있다. 스비리덴코 총리의 사임도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차기 총리 후보도 의회 승인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