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마트에서 울다 -1-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 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르는 뜻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은 고국에서 먹던 갖가지 인스턴트 라면을 사러, 한인 가족들은 설날에 해 먹을 떡국 떡을 사러 이곳에 온다. 큼직한 통에 담긴 깐 마늘도 여기서만 살 수 있다.
한국 음식을 해 먹는 데 마늘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말이다.. H마트는 일반 슈퍼마켓 매대 중 달랑 한 칸을 차지하는 '세계 전통 식품' 코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이곳에서는 스리라차 소스 병 옆에 고야 통조림을 쌓아두지 않는다 대신 오만가지 반찬이 있는 냉장식품 코너도 있고,만두피를 구비해놓은 냉동식품 코너도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엄마의 계란 장조림과 동치미 맛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다가, 엄마와 둘이서 식탁에 앉아 얇은 만두피에 다진 돼지고기와 부추 소를 넣고 만두를 빚으며 보낸 그 모든 시간을 떠 올리면서 만두피 한 덩이를 집어든다.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나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 엄마는 내게 직접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주시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똑 떨어지는 계량법 대신 "참기름은 엄마가 해주는 음식맛이 날 때까지 넣어러" 같은 아리송한 말로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완벽한 한국인 식성을 갖도록 나를 키웠다.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가 분명했다. 김치는 알맞게 익어서 적당히 새콤한 맛이 나야 했고, 삼겹살은 바짝 구운 것이어야 했으며, 찌개나 전골은 입안이 델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차라리 안 먹느니만 못했다.
한 주 동안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었고, 우리는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 먹었다. 만약 3주 동안 김치찌개 말고는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으면, 딴 음식이 생각날 때까지 허구한 날 김치찌개만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철철이 제철 음식을 해 먹었고, 꼬박꼬박 명절 음식을 챙겨 먹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 테라스에 캠핑용 레인지를 들고 나가서 다 같이 둘러 앉아 신선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내 생일 날에는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미역국은 한국에서 산후조리중인 산모들에게 권장하는 영양소가 풍부한 해초 수프인데,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걸 먹는 전통 있다.